자족하는 삶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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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ret to Self-Contentment
미국에 사는 한국분들에게 LA는 한국의 서울과 같은 곳입니다. 미국에 10년 가까이 살면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하여 LA공항에 잠시 들린 적은 있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한번도 LA구경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5월 21일부터 23일 사이에 LA에서 열린 웨슬리 연구회 모임에 큰 기대를 걸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교회사에서의 웨슬리의 위치"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일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럽고 흥분이 되었지만 내심 그 동안 한번도 LA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구경을 좀 제대로 하리라 하는 희망을 안고 LA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달리 이번 학회의 일정이 얼마나 빡빡한지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화요일 오후 전체 강연을 빼먹는 일이 있더라도 대충 LA 한인타운만이라도 구경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LA에서 목회하시는 친구 목사님과 함께 강연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LA의 Korea Town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 과연 어디를 가나 한국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또 한글 간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친구 목사님의 말씀이 한국에서 나온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곳에서 다 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과연 LA가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수도라는 말이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동안 네브라스카나 클린과 같은 시골 동네에서 살아서 그런지 매연과 공기 오염으로 도시 전체가 뿌연 환경, 그리고 넘쳐나는 자동차 때문에 교통 체증이 심한 것을 보면서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제가 New York City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과연 LA도 서울처럼 교통 체증, 대기 오염, 복잡함, 등등의 모든 대도시적인 요소들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LA에서 오신 여러 목사님들과 대화를 하는 중에 자기 교회 건물을 가지고 있는 목사님을 무척 부러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LA에는 땅값은 물론이고 건물 값이 몹시 비싼 까닭에 비교적 교세가 큰 교회들도 대부분 미국 교회 건물에 세들어 사는 형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인 연합감리교회 중에 LA에서 손꼽히는 교회들이 아직도 자체 건물을 마련하지 못하고 미국 교회를 빌려쓰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서는 새삼 제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교회를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도시나 다른 사람의 형편과 비교해서 어떤 행복감을 찾아서는 안되겠지만 저는 이번에 LA에 다녀오면서 이렇게 조용한 시골에서 그래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교회 건물을 가지고 신앙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진정한 행복은 어떤 환경속에 사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자세에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자족하는 삶'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삶에 만족했던 적이 언제였습니까? 아마 꽤 오래 전의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경제적으로 점점 더 넉넉한 생활을 하는데도 이상하게도 참된 만족감은 누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집에는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Bailey라고 하는 개인데 언제 봐도 해피하고 만족해 보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하나도 만족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하루도 만족하지 않은 날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집에서 키우는 개보다 훨씬 더 유복한 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자족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사실 미국은 전 세계 쓰레기의 약 30% 정도가 매일 처리되고 있을 정도로 풍족한 땅입니다. 먹고 입는 것 등 물질적으로 우리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엄청난 축복을 누리고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하다고 불평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너무 비좁아," "내가 타고 다니는 차가 너무 오래되었어, 신형이 새로 나왔다는데," "내 몸매가 너무 뚱뚱해," 혹은 "너무 말랐어," "내 결혼 생활이 왜 이렇게 무료한지 몰라," 등등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보다 늘 모자라서 더 갖기를 원하는 불만족한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이것은 마치 물속에 깊이 잠긴 물고기가 늘 물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면 바울은 언제 어떤 곳에서든지 늘 만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비결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지금 이 편지를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장소는 아마 만족하기가 가장 어려운 장소일 감옥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자기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종종 만날 수 있는 바 어느 정도의 자유를 가진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결국은 순교를 당할지도 모를 위험천만한 구금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그가 오히려 감옥밖에 있는 빌립보 교인들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단독 비행을 하다가 기관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고 물도 한 방울 없는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발버둥을 쳤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살 소망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사막에서의 고독한 최후를 담담히 맞으려고 할 때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슬픔에 잠겨 일그러진 아내의 모습, 라디오 앞에서 자기가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많은 동료들의 초조한 눈매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때 이 사람은 갑자기 아주 중요한 의식의 전환을 경험하고 절망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사막에서 실종된 조난자였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동료들이 초조하게 자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떠오르자 이제 조난자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저쪽에서 자신의 생환을 초조하게 기다린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구해야만 한다는 자세로 바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동안에는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모두 헛것이 된 채 죽음의 절망에 다다랐지만 이제 생각을 고쳐먹고 저쪽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하겠다는 적극적인 생각을 하니까 새로운 희망과 삶의 의지가 힘차게 솟아올라 마침내 생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삶의 자세와 가치의식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으면서도 감옥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치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사막에 홀로 내동댕이쳐진 사람이 자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과 동료들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가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처럼 바울 역시 예수 안에서 참 생명과 구원을 얻은 자신이 오히려 감옥밖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진취적인 가치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더욱 의연해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해마다 설날, 즉 새 해 첫날이 되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소설가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mingway)는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소유물 중에 하나를 누군가에게 거저 주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헤밍웨이는 "나는 내 자신이 어떤 소유물을 소유하고 있지 그것들에 의하여 내가 소유당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동차나 집이나 보석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 자신이 그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 얼마나 중요한 발견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소유물의 진정한 주인이 될 때에만 소유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소유에 상관없이 자족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돈과 집과 자동차와 수없이 많은 다른 소유물들을 가지고 있지만 소유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끌려 다니기 때문에 참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만족의 비결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바울은 빌립보서 4: 11―13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이 어떤 환경 속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예수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족을 세상적인 풍요로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밑빠진 독과 같기 때문에 끝이 없습니다. 세상의 물은 목이 마를 때 마시면 또 다시 목마르게 만들지만 영원한 생수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만족은 영원토록 우리를 갈하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넉넉할 때나 좋은 일이 생길 때나 나쁜 일이 생길 때나 언제 어디에서든지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살아 계셔서 믿는 이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만이 여러분에게 참된 만족을 주실 수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이신 예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바울처럼 되어서 감옥에 갇혀서도 오히려 감옥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찬송할 수 있는 비결을 가지게 됩니다.
무신론자로서 변호사였던 클래렌스 대로우(Clarence Darrow)가 미국의 경기가 아주 나빴을 때 시카고 남부 지역에 있는 흑인 형제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아주 궁핍한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간신히 연명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환한 얼굴로 찬송을 부르는 모습에 대로우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대로우는 묻기를,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도 당신들은 모두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어떤 사람도 당신들처럼 행복한 모습으로 노래부를 수는 없답니다. 도대체 이 어려운 환경 가운데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어떤 여자 한 분이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We got Jesus to sing about!" "우리는 찬양할 수 있는 예수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대답에 많은 사람들이 "아멘!" 혹은 "That's right!" 혹은 "Yes!" 하면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대로우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비록 비참한 환경 속에 빠져 있었지만 자기들이 찬양할 수 있는 예수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기쁨으로 노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찬양할 수 있는 예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환난 중에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자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사와 자족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도 기쁨과 자족을 누렸던 것은 바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로하시고 그에게 참용기를 주신다는 사실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도 주 예수님 안에 거하심으로 참된 자족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우리 힘으로는 하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멘.
김흥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