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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사람되기 (막 9: 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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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사람되기 (막 9: 30-37)


The Way of Discipleship (V)―Becoming a Servant of All



어떤 청년이 얼굴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처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매일 편지를 보내서 자기 사랑을 표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세 통의 연애 편지를 써서 그 처녀에게 보냈습니다. 약 700여 통의 편지를 보냈을 때쯤 되어서 마침내 그 편지들을 받은 처녀가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처녀는 매일 세 통의 편지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배달해 준 우체부와 결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고생은 자기가 하고 덕은 다른 사람이 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수고한 사람이 열매를 항상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오늘과 같은 경쟁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1등을 하려고, 더 높아지려고,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눈이 벌게 있습니다. 그러나 1등을 해보려고, 더 높아지려고,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하면 할수록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오히려 꼴등이 되고 낮아지려고 하고 손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인생의 궁극적 승자가 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가 첫째가 아닌 꼴찌가,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될 때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마가복음 9장 전반부(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셔서 존귀한 모습으로 변형이 된 채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사건 후에 제자들은 적지 않게 고무되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과 더불어 고난과 십자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미 8장에서 당신의 십자가 고난을 만류하는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8: 33) 고 심한 꾸지람을 주셨던 주님이 두 번째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에도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9: 31)고 예언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장차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십자가의 중한 고난을 받으실 것을 준비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전혀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마치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처럼 제자들은 길에서 여행을 하면서 누가 더 큰 사람이냐, 다시 말해 누가 1등이고 누가 위대한 사람인가에 대하여 실랑이를 벌였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까 하는 논공행상을 미리 벌였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최고다, 네가 최고다" 어리석은 다툼을 벌이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자리에 앉으셔서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35절)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서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껴안으신 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과 같다"(37절)고 말씀하십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린이들은 가장 힘없고 낮은 계층을 대변합니다. 아무리 부모님이나 가족들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어린이들은 자기 스스로 무엇을 결정할 주권이 전혀 없으며 항상 어른들에게 의존해야만 합니다. 특히 예수님 시대의 어린이들은 언제나 여자들과 같은 부류의 소외되고 하찮은 계층을 대변하는 그룹이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하찮고 낮은 어린이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 당신을 영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더 크고 위대한 사람인가 논쟁을 벌였던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미천하고 하찮은 존재를 섬기는 그 사람이 곧 크고 위대한 자임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이 전달하려고 하는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제자의 길은 섬김을 받는 길이 아니라 섬기는 길임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초등학교 어린이들처럼 노상에서 "내가 최고다, 아니 네가 최고다" 서로 설전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수치와 모욕, 십자가 처형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큰 영광을 받으실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써부터 서로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다투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향하여 조용히 그리고 부드럽게 첫째가 되려면 꼴찌가 되어야 하고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겸손한 마음으로 섬길 때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피차 섬기는 사람이 되고자 할 때 함께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CBS TV에서 방영하는 Survival이라는 '생존 게임'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각계 각층에서 뽑힌 8명의 남자와 8명의 여자들이 사람들이 전혀 살 수 없는 무인도로 귀양을 갑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음식과 잠자리를 찾아야 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러나 매주 마다 부족회의를 열어서 투표를 통하여 한 사람씩 추방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 두 사람의 경쟁자가 살아남게 되면 그 동안 쫓겨난 사람들이 투표를 해서 마지막 승자를 결정하게 됩니다. 최후의 생존자는 상금으로 1백만 달러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생존 게임으로 The Eco-Challenge라는 경주가 있는데 10일 동안 약 300마일이나 되는 사막과 정글, 강을 건너서 목적지까지 도착해야만 합니다. 팀은 4명으로 구성되는데 반드시 한 사람의 이성, 즉 남자들이 3명일 경우 여자가 한 명 끼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The Eco-Challenge라는 경주는 만일 팀 멤버중에 한 사람이라도 질병이나 극심한 피로, 부상 등으로 기권할 경우 팀 전체가 경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팀 멤버들 사이에 진한 우정과 공동체 정신이 있어서 다함께 목적지까지 도달할 때 우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Survival Game은 자기가 살아남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몰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게임을 'Zero-sum Game'이라고 말합니다. 테니스나 권투 시합에서와 같이 한 사람이 승리하려면 다른 사람이 져야만 합니다. 반면에 The Eco-Challenge와 같은 경기는 'Non-zero-sum game'으로서 나도 이기고 상대방도 이겨야지만 승리할 수 있는 'win-win game'입니다. 마치 우리가 현대 자동차 소나타를 샀다고 할 경우 한국의 현대 자동차 회사와 Non-zero-sum 게임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대 소나타를 타고 다녀서 좋고 현대 자동차는 차를 팔아서 수익을 올리니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게임"이 바로 Non-zero-sum game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쌍방간의 이익이 함께 맞물려 있어서 함께 협력할 수밖에 없는 게임은 모두 Non-zero-sum 게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제자들은 철저히 Zero-sum 게임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에, 즉 누가 가장 위대한 자이고 누가 가장 작은 자인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제자가 승리하면 다른 제자들은 패배자가 되어야만 하는 Zero-sum 관계성 속에서 이들은 설전을 벌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제자들의 Zero-sum Mentality를 예수님은 Non-zero-sum Mentality로 바꾸도록 가르치십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바로 이렇게 할 때 우리 모두가 승리할 수 있다는 예수님의 철학에서 나온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위대한 왕이 되는 영광의 길, 즉 Zero-sum game을 포기하시고 십자가의 희생과 섬김의 길, Non-zero-sum game을 택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본인도 승리하셨을 뿐 아니라 인류 전체가 구원받을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피차가 섬기고 종이 되는 Non-zero-sum game을 하게 되면 첫째와 꼴찌의 구별이나 섬기는 자나 섬김을 받는 자의 구별이 무의미하게 됩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섬기는 자의 길을 우리는 'Non-zero-sum Discipleship Adventure Race'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섬기는 제자의 길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누가 가장 위대한 자인가?"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가장 위대한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 협력할 수 있을까?"가 될 것입니다.


셋째로, 지극히 적은 자 하나를 섬기고 영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 하나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신 것은 당신과 이 어린이를 동일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장 낮고 무기력한 어린이, 순진한 어린이가 바로 당신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의 어린이들과 같이 지극히 작은 사람들을 겸손한 마음으로 섬길 때 우리는 바로 예수님을 섬기며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무조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겸손히 섬기게 될 때 가장 위대한 자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하여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당신을 아낌없이 희생하셨기 때문에 왕중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섬기는 종의 모습을 취할 때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큰 것 속에는 작은 것이 들어갈 수 있지만 작은 것 속에는 큰 것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커져서 모든 작은 것을 포용하려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과 겸손의 마음으로 섬길 때 우리는 위대하고 강해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첫째가 되려 하고 섬김을 받아 군림하려는 자가 되려고 할 때 우리 주님의 제자들은 뭇 사람들의 끄트머리가 되어서 섬기는 종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주변에 소외된 형제들을 겸손한 마음으로 돌볼 때 우리는 결국 주님을 돌보고 주님을 섬기게 됩니다. 주님의 좋은 제자가 되려면 낮아지는 자,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김흥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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