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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낚는 어부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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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낚는 어부되기 <눅 5: 1-11>


The Way of Discipleship(III)―Becoming a Fisherman of People




어떤 남자가 죽은 후 천국문에 도착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사람이 땅위에서 행한 모든 일을 기록한 보고서를 읽고서는 "너는 특별히 좋은 일도 안했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나쁜 일도 하지 않았구나. 그러나 만일 네가 땅위에서 행한 정말로 좋은 일이 하나 있어 지금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천국에 머무르게 허락하겠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저는 한 가지 정말로 좋은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자전거를 탄 불량배들이 한 젊은 여자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서는 차를 단박에 세우고 자동차 바퀴 갈 때 필요한 쇠뭉치를 들고서는 이 깡패들의 우두머리 앞에 걸어갔습니다. 이 녀석은 덩치가 크고 털이 가득한 온 몸에 온갖 무시무시한 문신을 새기고 있었을 뿐 아니라 코에는 귀걸이까지 걸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녀석의 코걸이를 낚아챈 뒤 '이 여자를 그만두지 못해!' 하고 고함을 친 뒤 불한당 녀석들을 노려보았지요. 그런 다음에 저는 '이 놈들, 빨리 여기를 떠나든지 내 말에 대답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란 말이야!' 하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말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나이에게 묻기를 "그런데 이 일이 언제 일어났지?" "약 2분전입니다." (이 남자는 불량배의 두목에게 대들었다가 그 길로 얻어 터져 결국 죽어서 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도 안주고 도움도 안주는 삶, 언뜻 생각하면 그런 삶이 괜찮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주님의 좋은 제자가 되는데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서 미적지근한 것이 싫어 토하여 내친다고 말씀했습니다(계시록 3: 15-16).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되는 길은 아주 적극적이든지 아주 소극적이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할 뿐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온적인 태도로는 참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서 큰 깨달음을 얻은 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제자의 길이 뜨거운 가슴으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이제 본문 말씀이 주는 영적 교훈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본문 말씀의 주인공은 베드로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이르기까지 베드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4: 38-39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리셔서 그 병을 고쳐주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칠 수 있는 신통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누가복음 4장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과 귀신을 쫓아내는 일, 각종 병자들을 치료하시는 기적 등을 통하여 갈릴리 지역에서 상당히 잘 알려지게 되었으며 연일 허다한 무리들이 주님 곁에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예수님의 인기가 갈릴리 호수--누가식 표현대로 한다면 게네사렛 호숫가--주변에서 하늘을 찌를 듯 높을 때 이제 팀 사역의 중요성을 깨달으시고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10절 후반과 11절의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예수를 쫓으니라"고 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베드로와 그의 동업자들인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어떻게 일생을 걸었던 자신의 천직과 배와 그물, 등등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뒤쫓는 제자들이 되었을까요? 어떻게 물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낚는 어부로 바뀌어질 수 있었을까요?


첫째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 위에 오르셔서 무리들을 가르치셨다는 구절(3절)에 주목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4장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주로 병자들을 고치시는 치유자(healer)로 묘사되었는데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신 5장 말씀에는 가르치시는 선생(teacher)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생명과 진리를 가르치시는 예수님께서 물위에 뜬 배 위에 앉아서 무리들을 가르치셨는데 중요한 사실은 누구의 배, 어떤 상태에 있는 배를 타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개의 배 중 하나는 베드로의 배였으며 물고기를 잡지 못해서 둘 다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어선은 고기잡이를 위하여 필요한데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해서 어부들이 빈그물을 씻고 있는 실패한 배, 그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 삼기로 미리 작정하신 베드로의 배 위에 오르셔서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우리 인생의 배 위에 주님이 타실 수 있게 하고 그 분의 말씀에 귀기울여만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배 위에서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절)고 명령하셨을 때 베드로가 순종했습니다. 어떻게 순종했습니까? 5절에 보면,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순종했다고 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 대하여 베드로는 분명히 주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나사렛 동네에서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자라났고 베드로는 어린 시절부터 물고기 잡는 일에는 이력이 난 직업적인 어부였습니다. 수온이 어느 정도일 때, 하루 중 어느 시간에, 또한 드넓은 호수 어느 곳에 그물을 내려야지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 날은 이른 아침부터 밤이 찾아올 때까지 그물을 던져 보았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깊은 좌절과 낭패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는 자기의 배 위에서 무엇인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전혀 색다른 가르침을 듣고서는 "그것 참, 고기잡는 일에는 프로인 우리 힘으로 하지 못하는 것을 혹시 예수님이라면 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이미 베드로는 누가복음 4장에서 기록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자기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희미하게나마 신뢰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내 힘, 내 기술, 내 방법으로 되지 않는 것, 우리 장모님 병을 고쳐주셨던 이 분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순종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문 6-7절을 보면, 그 결과 고기를 에운 것이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어서 다른 배에 있던 어부들에게 손짓을 해서 물고기를 두 배에다 나누어 실었는데 이 두 배 마저 물고기의 무게를 못 이겨 물에 깊이 잠길 정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실로 너무나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평생을 물고기 잡는 일에 종사한 자기는 별의 별 방법을 다 써봤어도 피라미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예수님께서 지시하는 대로, 다시 말해 고기잡이의 황금시간도 다 지나갔고, 또 다른 배가 근처에 있었다는 말을 볼 때 멀리 나간 것도 아닐 터인데, 그물이 찢어지고 배가 잠길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은 것은 분명히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우리 인생의 배에 타셔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대로 순종할 때 우리의 삶은 풍요로운 삶으로 바뀌어 집니다. 그러면 이런 기적을 경험한 베드로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셋째로, 실패한 자기의 배, 빈그물을 씻으며 좌절을 씹고 있었던 베드로의 배 위에 예수님께서 타셔서 예수님이 일러주신 그대로 했더니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게된 베드로는 8절에 보니까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자기에게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질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신적 권능과 위엄을 가진 분이시고 자기 자신은 한 사람의 초라한 죄인이라고 하는 외경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게 된 것입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베드로의 또 다른 이름인 '시몬'으로 계속해서 표현되었던 이름이 이와 같은 기적을 경험한 다음부터는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 전체로 표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은 자기들과는 분명히 다른 신적 존재라는 사실을 비로소 확신함으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에 들어섰음을 암시해주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압도되어서 자기는 감히 예수님과 같이 권능이 넘치고 거룩한 분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경험했을 때 5절에 예수님을 '선생'(master)으로 불렀던 것을 이제 8절부터는 '주여'(kyrios 혹은 Lord)라고 바꾸어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더 이상 하나의 훌륭한 윤리교사가 아닌 자기의 전 생애를 내맡길만한 인생의 주인, 참 주님되심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이와 같은 기적을 직접 경험한 베드로와 주변 모든 사람들이 다 깜짝 놀라게 되었으며(9절), 특히 베드로와 더불어 장차 주님께서 가장 아끼시게 될 수제자들인 야고보와 요한까지도 놀라게 되자 그들 모두는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11절) 예수님을 뒤쫓아가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제자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은 예수님의 신성을 확신하고 일생을 바쳐온 생업과 가족, 모든 것을 뒤로하고 주님의 제자되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특별히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목회'에 대한 성경적 이미지는 'fishing,' 즉 '사람낚는 것'과 'shepherding,' 즉 '양떼를 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계유지를 위해 평생토록 물고기잡는 일만 해왔던 베드로에게 이제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새로운 사명, 즉 사람낚는 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기적적으로 많은 물고기를 잡은 뒤에 "주님, 도대체 이 많은 물고기가 다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날마다 이렇게 많은 물고기 잡을 수 있는 비결이 있으면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주님, 저는 죄인이오니 제 곁을 떠나소서!"라고 두려워 떨었던 것입니다. 그의 관심은 이제 먹고사는 문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서 더 많은 돈을 벌까 하는 육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이 걸린 문제, 삶의 의미 물음의 문제, 즉 종교적인 문제로 전환된 것입니다. 사람낚는 어부가 되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능력의 복음을 증거하여서 저들이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사람이, 옛사람이 아니라 새사람이,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도록 바꾸는 일에 삶의 목적을 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세 사람은 사람낚는 어부되는 일이 자기의 일생을 걸만한 모험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고기잡이배와 그물과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뒤를 따른 것입니다.


Charlie라고 하는 어떤 미국 사람이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에게 전도를 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이웃집 남자는 언제나 기독교 이야기만 나오면 쌍심지를 세우고 "아니 당신은 성경에 나와 있는 그런 황당한 이야기들, 신화나 꾸며낸 이야기들을 그대로 믿는단 말이요. 참 어리석군요." 전도할 때마다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Charlie는 어떻게 해서 저 완고한 이웃집 남자를 예수믿게 할까 하다가 상대방을 지적으로, 이론적으로 설득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쓴 신학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Charlie는 이웃집에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지붕 위에 비가 내려오도록 하는 낙수홈통에 나뭇잎이 가득 차서 막히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고공공포증이 있어서 지붕 위에 올라가 나뭇잎 치우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Charlie는 이웃집에 그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어느 날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자기집 사다리를 그 집 지붕에다 대고 낙수홈통에 끼어 있는 낙엽들을 다 치워주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일이 있은 바로 그 주일부터 이웃집 부부가 Charlie가 다니는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배 도중에 이 사람은 복음의 능력에 사로잡혀 비로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남자는 Charlie가 베푼 자그마한 선행이 자기로 하여금 교회에 나가도록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노라고 Charlie에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사람낚는 어부가 되는 길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작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때 이웃의 마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좋은 제자, 사람낚는 어부가 됩시다. 우리의 부족함과 죄인됨을 절감하고, 실패와 좌절감으로 가득찬 우리 인생의 빈배에 찾아오시는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친 풍랑이 이는 인생 바다에 사람낚는 그물을 던집시다.94
아멘.

김흥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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