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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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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에게 배운다 <행 11: 19-26>


What We Learn from Barnabas



지난 2월 12일부터 14일까지 달라스에서 열린 중남부 목회자 수련회는 저에게 여러모로 유익한 기회였습니다. 강사 목사님들은 물론이고 함께 참석한 동료 목사님들로부터도 신선한 자극과 도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강사 목사님 중 한 분이 당신의 교회에서 실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목회 프로그램을 소개할 때 "새신자 정착을 위한 바나바 사역"이라는 프로젝트가 특히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교회에 새로 등록하는 분들을 어떻게 잘 돌보아서 한 가족으로 양육할 수 있는가에 관심 갖는 목회 프로젝트였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성경 안에 수없이 많은 이름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바나바 사역"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 사역," "디모데 사역," "베드로 사역," 혹은 "안드레 사역" 등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바나바 사역"이라는 이름으로 새신자 정착 및 양육프로그램의 성격을 규정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군사지역인 까닭에 교우들이 자주 다른 지역으로 전출해 가고 또 새로운 분들이 많이 전입해 들어오기 때문에 늘 새신자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다시 말해 저의 목회적 관심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하면 새로 등록하시는 분들이 이질감이나 어떤 소외감 없이 한가족처럼 이 교회에 뿌리를 잘 내려서 각자 받은 은사대로 좋은 일꾼으로 양육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바로 이와 같은 "새신자 관리와 양육"이라는 측면에서 며칠 동안 내내 바나바에 대해서 성경도 찾아보고 또 깊이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바나바는 초대교회에 있어서 바울과 필적할 만큼 굉장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새신자 양육 프로그램에 바나바의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 바나바가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바나바가 없었더라면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했다는 사실을 그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었을 뿐 아니라 초대 교회의 지도자로 부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바나바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첫째로, 바나바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일꾼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적극적으로 천거하고 보증해주는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4: 36에 보면 바나바는 이방 지역이었던 구브로에서 태어난 레위인 중에 한사람으로서 "바나바"라는 이름을 번역하면 "권위자"의 뜻이 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권위있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그 말이 믿을만하고 책임적이어야만 합니다. 바나바의 행적을 보면 자신의 이름 뜻 그대로 공신력이 있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 권위를 충분히 인정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회심하기 전 기독교인들을 열성적으로 박해하던 반기독교적 그룹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는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중 하나인 스데반이 유대인들로부터 돌에 맞아 순교당할 때도 현장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루살렘 대제사장에게 보낼 체포 영장, 다시 말해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 족칠 리스트를 가슴에 품고 살기 등등해서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극적 개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자신이 열광적으로 "박해하던 그리스도"를 위하여 거꾸로 "자기 자신이 박해받기를" 기꺼이 감수한 사건은 초대 교회를 깜짝 놀라게 한 대사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처럼 신문이나 TV가 있었다면 단연 특종뉴스감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예루살렘에 본부를 두고 있었던 예수님의 직계 사도들과 제자들이 바울의 회심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 데 있었습니다. 과연 바울의 회심이 그저 일시적인 감정으로 인한 변덕인지 아니면 더 많은 기독교인들을 잡아들이기 위한 계획적인 전략인지 반신반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9: 26-27에 보면 회심한 바울이 가장 먼저 시도한 일은 당시에 가장 확실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 즉 예수님의 직계 사도들에게 자신이 회심했다는 사실의 진실성을 액면 그대로 인정받는 것이었는데 아무도 바울의 개종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바로 이 때 바나바가 바울을 예루살렘에 데리고 가서 바울이 다메섹에서 회심한 사건이 참된 사실임을 설명하고 보증해 주었습니다. 바나바의 보증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비로소 초대교회 공동체에 들어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바나바는 바울이 기독교에 입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그가 초대교회의 가장 주목받는 지도자로 자라나도록 도와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게 소개했던 사람이 바나바라는 사실을 비추어 볼 때 바울이 예수를 믿기 시작했을 때 바나바는 초대 교회 공동체내에서 이미 상당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리더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 2에 보면, 바울이 아직 이방계 기독교인들의 명실상부한 지도자로 떠오르기 전에는 바나바가 바울보다 더 인정받는 지도자였기 때문에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바나바의 이름이 바울보다 먼저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바나바가 바울보다 더 중요한 지도자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줍니다. 바나바가 바울 못지 않게 초대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였음을 알려주는 단서가 또 하나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는 기독교인이 된 다음에도 할례를 비롯한 구약 율법의 유효성을 강조하는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계 기독교인들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 이방계 기독교인들 사이에 일어났던 뜨거운 논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유명한 예루살렘 사도총회에서 이방계 기독교인들을 대표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에도 놀랍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증거한 사람들이 바로 바나바와 바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5: 12에 이방계 기독교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고하는 두 사람의 이름을 표기할 때도 바나바라는 이름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바울의 이름이 나옵니다. 또한 사도행전 13: 2에 보면 바나바는 이방계 기독교인들이 전초기지였던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함께 세계선교를 위하여 안수받고 파송된 최초의 선교사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간에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제 2차 전도여행을 하던 중에 자기의 조카였던 마가를 계속 선교팀에 합류시키는 문제에 있어서 바울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 후로는 바울중심으로 쓰여진 초대 교회 문서, 즉 신약 성경의 바울서신에서는 바나바의 독립된 선교사역에 대해서 자세히 알 길이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초대교회의 핵심리더로 성장하는데 바나바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14: 12에 보면 바나바와 바울이 루스드라라는 곳에서 선교사역을 할 때 앉은뱅이가 일어나 뛰는 것을 본 현지 사람들이 바울은 희랍신 허메(웅변으로 뛰어난 헤르메스)로 바나바는 희랍의 신들 중에 최고신인 쓰스(희랍의 최고 신 제우스)로 묘사한 것은 바나바가 외모나 풍채에 있어서 바울보다 한 수 위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면에 있어서 결코 바울에게 뒤질 것이 없었던 바나바가 바울이 초대교회의 훌륭한 지도자로 자라나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특히 내가 더 잘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오늘과 같은 경쟁사회에서 바나바와 같은 동료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전도한 초신자 분들이, 또 우리 교회에 새롭게 출석하시는 새신자 분들이 하나님 교회의 중요한 일꾼과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격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오늘 본문 24절에 보니까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가 이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결과 큰 무리가 주께 더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 37은 바나바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줍니다. 자기의 밭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그대로 바쳤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소유에 대하여 욕심이 있는데 아무 미련없이 처분해서 하나님과 교회 앞에 드렸다는 것은 바나바가 어질면서도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성품이 착하고 어질면서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오늘 하나님의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교회는 새신자 정착률이 높아지고 새신자들 가운데 자연스럽게 지도자들이 배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는 Nancy라는 여자는 휠체어를 타야지만 움직일 수 있는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저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낸시는 예수믿는 사람으로서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어느날 낸시는 지역 신문에 다음과 같은 개인적인 광고를 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외롭거나 문제가 있는 분들은 저에게 전화를 주십시오. 저는 휠체어를 타고 있기 때문에 밖에 나가는 일이 거의 없답니다. 우리는 문제를 서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저 전화만 주세요. 저는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답니다." ("If you are lonely or have a problem, call me. I am in a wheelchair and seldom get out. We can share our problems with each other. Just call. I'd love to talk.") 광고가 나간 뒤 매주 적어도 30여명 이상이 낸시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낸시는 자기에게 전화를 건 사람들의 문제를 들어주고 상담해줌으로서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 품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자기만이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을 찾고 이웃을 향하여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있는 일꾼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대로 바나바가 어떤 교회의 새신자 양육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주목받은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이 초대교회의 위대한 지도자로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만일 바나바가 없었다면 바울의 위대한 선교 사역이 불가능했거나 아주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무리 위대한 사도였다고 할지라도 그의 배후에는 바나바와 같은 동역자의 빛나는 사랑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루가 교회도 수많은 평신도 지도자들과 일꾼들을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꾼들이 이 교회의 중요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바나바처럼 우리 다함께 겸손한 마음으로 그 분들을 사랑하고 격려하고 붙들어 주고 세워 줍시다. 그리해서 우리 교회를 찾아왔던 분들이 한 분도 실망하는 일없이 이 교회의 온전한 지체가 되어서 우리의 영적인 혈육이 되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 바나바가 됩시다! 아멘.
김흥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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