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믿음
본문
골 2:1-7
김정태 전도사
(골 2:1-7)
『[1] 여러분과 라오디게아에 있는 사람들과 그 밖에 나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를,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사랑으로 결속되어 마음에 격려를 받음으로써 풍부하고도 완전한 이해력을 갖게 하고, 나아가서는 a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a.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하나님의 비밀 곧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비밀을)
[3]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4]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여러분을 속이지 못하게 하려고 함입니다.
[5] 나는 육체로는 비록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있으면서 여러분이 질서있게 살아가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의 믿음이 굳건함을 보고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6] <그리스도 안에서 사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의 안에서 b살아가십시오. (b. 또는 행하십시오)
[7] 여러분은 그의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서론
말씀이란 하나의 생명체와 같습니다. 그래서 작은 믿음을 "겨자씨" 에 비유합니다. 비록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에는 새영이 있는 까닭에 거기서 싹이 나고 자라서 뭇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나무로 성장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까닭에 그 겨자씨가 터져서 싹을 내고 줄기가 자라서 마침내 큰 나무라 되어 그 가지에 새들이 와서 깃들이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이 있는 믿음은 자라나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 자라는 모습을 본문에서 세단계로 가르치고 있는데 그 단계를 따라 믿음의 단계를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본론
첫째로, 믿음의 뿌리를 말하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첫단계로서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은 확신을 먼저 가져야 함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설교의 첫마디가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음이러라"라고 말하는 것은 회계가 믿음의 첫 단계임을 잘 들어내는 증거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나무의 뿌리가 바로 박혀서 시냇가에 심겨져야 아름답게 자라나는 나무가 되듯이 신앙은 먼저 철저한 회개와 사죄의 경험을 통해서 그 뿌리가 깊게 내려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뿌리없는 나무처럼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며 그 신앙은 모래위에 지은 집처럼 허약한 것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회개와 사죄는 그리스도의 품안에 들어와서 믿음으로 참 소망과 평안을 가지게 되는 가장 귀중한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했을 때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사로 인하여 감사한다"(고후9:15) 고 했습니다. 은혜는 은혜받은 자 외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회계를 통해서 체험하는 체험적인 신앙은 바로 뿌리와 같은 것으로 은혜를 받고 싶어하는 신자라면 꼭 가져야할 첫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굳게 서는 믿음의 단계입니다.
믿음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뿌리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튼튼하게 자라서 굳게 서는 과정을 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아무리 따가운 태양빛이 내리 쬔다해도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아니하고 굳게 서 있어야만 합니다. 뿌리박힌 신자는 언제까지나 어린아이가 아니라 이제는 자라서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스스로 자기 할 일을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남의 도움으로 남을 의지하며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굳게 서는 믿음을 소유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립적인 신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문중에 '교훈을 받는데로'라고 하는 전치사가 의미하듯이 '말씀'으로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믿음을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을 배우고 배운대로 실천에 옮길 때에 그 믿음은 몰라보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배우는 일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올바로 성장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기초가 없는 신앙은 쉽게 흔들리고 넘어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58절에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라"고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 말씀,찬양 그리고 봉사를 통해 그 신앙이 인격화되어야합니다. 과거 기독교에 대해 무서운 박해가 있었지만 그럴때에도 그들은 조금도 굴함이 없이 오히려 기쁨으로 찬송하며 서로 주님의 평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님의 박해자들을 놀라게 하고 그들이 매질하던 도구를 놓고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신앙은 이해 타산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감격인데 이것은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위에 굳게 서 있기 때문입니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에 백합화 더욱 향기 날린다"는 노래말처럼 굳게 세움을 입은 신앙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법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믿음 안에 굳게 서서 올바른 성장을 체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 합니다.
셋째로, 넘치게 하는 믿음의 단계입니다.
신앙의 나무가 자라면 거기에 많은 열매를 맺어 풍성한 결실의 기쁨을 갖게 됩니다. 풍성한 은혜로 나혼자만의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갖추고 사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 모여 공동체로서 더불어 좋은 일을 나누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높은 경지는 권리의 주장이 아니라 의무에 속한 삶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로 시작하는 이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품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멋있게 살아보리라는 욕망에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의 분깃을 요청했습니다. 마침내 아버지로부터 재산의 분배를 받아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먼 이국땅으로 나갔습니다. 둘째 아들은 권리만을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곧 그에게 파산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국땅에서 빈털털이로 견디지 못한 이 둘째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아들의 자격으로가 아니라 품군의 하나로 써 달라고 엎드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이상 귄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의 사람이 되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그 속에 감사가 있습니다. 이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낳고 더 큰 기쁨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언제든지 하나님을 떠나는 우리의 불신앙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에 순종하기만 하면 풍성한 삶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어 나누는 신앙이요 나만 걱정하던 삶이 이제는 이웃 사람들을 생각하고 걱정을 해주는 큰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24절에 "서로 돌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살아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풍성한 신앙은 나와 이웃에서 온 세계로 향할 수 있는 신앙으로 성장하게되는 안목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거저 주라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참 도는 체질적으로 나누어 주는데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이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타인을 위한 삶, 이것이 바로 풍성하게 사는 삶의 비결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3장 12절에 보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더욱 많아 넘치게 하라"고 권면하십니다. 내 안에 있는 사랑도 믿음도 그리고 재물도 나누면서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듯이 우리의 신앙도 성장하여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성숙한 믿음을 소유합시다. 하루 하루 삶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라 승리하는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