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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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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이름 : 김춘섭
날짜 : 2003-03-17 13:49:36 (IP : 202.123.145.54)
조회 :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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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7:8-16

하나님께 감사하십니까? 마음 깊이, 진심으로 감사하십니까? 만나는 사람들이 사랑스럽습니까? 삶에 불평과 불만이 없습니까?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거짓 감사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알고 있어서 입에서 감사는 나오는데, 삶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때는 차라리 시편 시인처럼 솔직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시 3:1-2)" 이렇게 솔직히 기도 드리십시오.

1. 너무하신 하나님

힘든 경우에는 차라리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라고 기도하면 어떻겠습니까? 아닌게 아니라 때때로 하나님은 너무하신 분입니다. 적어도 우리의 눈에 보이기에 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요구는 어떻습니까?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시험하시기 위해서 그런 것이니 괜찮은 것입니까? 그것은 결과가 그랬다는 것이지, 너무하신 요구였습니다.

오늘 본문도 바로 그런 차원에서 말할 수 있습니다.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아니하여 가뭄이 극심했던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엘리야는 삼 년 가뭄을 예언하고 요단 앞의 그릿 시냇가에서 시냇물을 마시며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서 보내 주시는 떡과 고기를 먹고 지냈습니다.

얼마 후 시냇물마저 말라 들어가자, 하나님은 한 과부에게 가서 식생활을 해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사르밧으로 옮겼고 그 미망인을 만나게 됩니다. 엘리야가 그곳에 갔을 때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었는데, 더 이상 버틸 기운이 없어 마지막 남은 가루 한 움큼으로 최후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음을 기다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라 처음에는 "물을 조금 달라"고 하였다가, 다시 용기를 내어 "떡 한 조각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인의 대답은 "만들어 먹고 죽을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엘리야의 편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어찌하여 많은 집안들 가운데서 최후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음을 기다리려고 하는 한 미망인의 집안으로 인도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좀 넉넉한 곳에 가서 대접받고 지내라고 하면 괜찮겠는데, 이것 정말 너무한 일이 아닙니까?

여인의 입장에서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가뭄이 심하여 견디다 못해 비장한 마음으로 마지막 음식을 만들려고 하는데 느닷없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나타나 "물 좀 달라"고 하더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먼저 자기를 위하여 음식을 만들라고 하니 정말 너무 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게 대접하는 일입니까?

그런데 어떻습니까? 엘리야 편에서 이 너무한 일을 놓고 이치적으로 따져 보니 이건 너무한 일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추진하던 일을 멈추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너무한 하나님의 요구 앞에 엘리야는 미안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말하였습니다. "두려워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13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남은 것까지도 먼저 달라고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2. 먼저 만들라

하나님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먼저 만들어서 자기에게 달라"고 하는 너무도 야박한 선지자의 요구를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 여인은 마지막 가루 한 움큼 남은 것까지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예수께서 칭찬하신 또 한 과부가 있습니다. 생의 마지막 한 주간의 어느 날, 성전에서 헌금하는 모습을 보시고 계셨습니다. 여러 부자들은 많이 넣는 것도 보시고, 한 가난한 과부가 와서 두 렙돈을 넣는 것도 보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적은 것이지만 그것은 그 여인의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것은 무모한 짓으로 보였습니다. 자식들로 보아도 정신없는 엄마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칭찬했습니다.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때는 너무 하십니다. 아주 작은 것 그것마저도 원하십니다. 철저하게 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일들이 많습니다. 이쯤 참고 기다렸으면 이제 허락하실 때도 되었는데 하나님은 끄덕도 않으십니다. 그럴 때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시니 실은 미칠 지경입니다. 그래서 시편 시인은 이렇게 기도하였지 않습니까?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 10:1)"하고 말입니다.

결국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마지막 남은 것까지도 원하시는 너무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고 나니 홀가분해집니다. 그런데 내게 있어 하나님은 아직도 너무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너무하시자면 멀었습니다. 이 너무하신 하나님께서 과부의 가루 한 움큼도 그냥 달라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떡 한 조각을 만들어서 달라고 하신 것처럼, 내게 있는 마지막 것을 다 달라고 하시는데 저는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못 갈 것 같아 오히려 송구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3. 우리의 마지막 가루와 기름

우리가 믿음이 있습니까? 정말 주님과 함께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시거나 무엇을 요구하고 계십니까? "얼마나 힘드냐?", "열심히 살아라."

그러하다가도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합니다. "아니다. 하나님은 최후의 것까지도 원하신다. 우리의 마지막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원하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불경기라고 하지만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의 기근에는 비할 바가 아닙니다. 아직 우리는 먹을 것도 마실 물도 풍부합니다. 삶에 대한 걱정이 있기는 하지만 굶어 죽을 위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시대에 우리의 어떤 것을 하나님께서 요구하고 계실까 생각하였습니다.

오하이오 우리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41세의 어떤 여자 교우와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침례교 신학대학에서 남편을 만나 함께 목회를 하다가, 남편의 박사 학위를 위하여 미국에 왔다고 합니다. 과정을 다 마치고 귀국을 앞두고 있는 즈음에, 남편의 몸에 이상이 생겼는데 암으로 판명이 났고, 그로부터 한 달만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남자가 아내를 잃는 것은 하나만 잃지만, 남편을 잃는 경우는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은 자기가 그토록 의지하던 세 사람의 남자를 다 데려가셨다는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따랐던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충격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이후로는 오빠를 따르며 살았는데 그 오빠는 교통사고를 당하여 아직까지도 식물 인간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런 시련을 주시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어린 세 딸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엄마로서 더욱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아빠 죽는 거야?" 라는 둘째 딸의 질문에 "아빠는 하늘 나라 가신단다."는 대답하였더니, 울면서 소리쳤습니다. "I don't like heaven!"

그런데 "나는 천국 싫어!" 하는 그 소리는 바로 자기가 아버지를 잃고 난 뒤에 지른 소리였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의지한 것까지 다 가져가셨으니 정말 하나님은 너무하시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것까지 다 원하시는 너무하신 분이 맞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저 모든 것을 드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작은 결단이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저희 목사들이 함께 얘기했습니다. 용서하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너무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의 것을 요구하시는데, 가정이 있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께 감사절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결론은 우리가 그 과부들처럼 그렇게 하나님께 드리지는 못하지만, 최소한의 장성이라도 드려야겠다는 것입니다. 한 달 생활비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아버지가 너무하신 분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막 14:36)" 고상한 말로 표현하여 그렇지, "아버지 너무 하십니다. 십자가만큼은 피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는 기도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은 너무하신 아버지의 요구에 순종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부활의 길이 열렸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너무하신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그 너무하신 하나님의 요구 앞에 겸손히 다 드리는 것이 또한 우리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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