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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관과 모세의 법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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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관과 모세의 법궤



이름 : 김춘섭
날짜 : 2002-12-28 06:09:08 (IP : 210.54.247.221)
조회 :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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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50:22-26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마지막은 언제나 시작과 연결됩니다. 죽음조차도 영원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해, 새로운 달, 새로운 날이 열릴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모여 마지막이 되고 또 시작이 됩니다. 창세기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하루하루를 귀하게 일하신 것이 나옵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 둘째 날이라'는 엄숙한 선포가 그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 과거가 되고 그것이 다시 현재화되고 미래로 열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늘 들고 다녔던 요셉의 해골이 든 관과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명이 들어있는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시간관을 알려주는 귀중한 상징입니다. 이것들을 들고 그들은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요셉의 관은 과거의 기억이었고 모세의 법궤는 미래의 기대였습니다.

1. 요셉의 일생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삽니다. 30세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복 형제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 가는 신세가 되고, 죄 없이 옥살이까지 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고난의 시간을 잘 극복해 냅니다. 그가 견디기 어려운 아픔의 때에도 인간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고 계시다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그 신앙과 성실함으로 평민으로서는 최고의 관직인 총리대신에 오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고난으로 몰았던 형들과 함께 70명의 식구들을 이주시켜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줍니다. 사랑과 용서로 마무리하는 위대한 인간승리의 소유자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본보기가 됩니다.

그는 과거를 정리할 줄 알았고 미래를 볼 줄 알았습니다. 과거의 원수인 형들을 용서하면서 잘못된 과거를 소화하였습니다. 그가 감옥의 고난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지 못하고 복수심에 불탔다면 그의 미래는 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의 미래는 암담한 채 끝났을 것입니다. 그는 미래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캄캄한 고난을 극복합니다. 과거를 해결하고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고난을 이겨냈고, 7년 흉년이라는 극심한 경제 위기도 극복해 냅니다. 어려움에 처한 오늘 우리가 요셉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 창세기 마지막 장에 요셉의 유언이 나옵니다. 불안해하는 형들을 다시 한번 용서하고는 자신의 뼈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고향 땅에 묻어 달라고 당부합니다. 그것은 먼 훗날의 자손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미래의 자손들이 먼 훗날의 어느 때에 과거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을 일깨운 것입니다. 수 백년이 지난 후 출애굽이라는 대 역사를 시작할 때, 그의 후손들은 요셉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의 해골이 든 관을 들고 가나안으로 향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삶에 귀중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고난 속에서 어떻게 그 아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2. 과거를 기억하는 관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을 동안 요셉의 유골이 든 관을 늘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그 관을 볼 때마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요셉의 고난과 그의 승리를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의 길이 열렸다는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단순히 4백여 년 전에 죽은 한 사람의 유골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애굽에서 살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회상하였던 것입니다.

과거는 좋았던 것이든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든 그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은 기억해야 합니다. 요셉은 과거를 잊지 않았습니다. 용서도 하기 전에 잊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기억은 하되 해결을 한 것입니다. 기억상실증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어려운 일을 만났던 자에게 '잊어버려'라고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잊혀지지 않는데 어떻게 잊습니까? 그냥 잊혀져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하되 해결은 해야 합니다. 둘째 딸이 얼마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권총강도를 만났는데 그 사건이 자주 기억나서 두려움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자꾸 기억이 나니 어떻게 하면 잊겠느냐?"고 합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기억하여라. 그러나 어떻게든 해결하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자"고 했습니다. 잊혀지지 않습니다. 잊혀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에는 '기억하라' '기념하라'는 소리가 수도 없이 나옵니다.

신앙이란 과거의 기억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의 역사도 과거의 기억 없이 어떻게 설 수 있겠습니까? 어린 시절의 기억이 우리에게 때로 얼마나 넉넉한 힘이 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서 과거의 기억이 다 사라진다면 그것은 심각한 병에 걸린 징조일 것입니다. 과거는 기억해야 합니다.

3. 미래를 위한 법궤

그러나 과거의 기억이 필요한 것은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미래지향적인 과거의 기억이 아니면, 그것은 후퇴요 파멸입니다.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그때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소박한 우리의 꿈을 찾아 살아갈 힘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과거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으로 과거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를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과거를 잘못 정리해서도 안 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의 죄악상을 폭로하는 것은 정의를 살리지 못함 때문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것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 시대는 그렇게 열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올 때 4백년 전의 일을 기억하면서 요셉의 해골이 든 관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가져가 묻기까지 40년을 들고 다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40년 광야 길에서 그들은 언제나 수백 년 전의 한 조상의 뼈를 들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시내산에서 또 하나를 더 들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계명이 적힌 돌판이 들어 있는 법궤였습니다. 이 요셉의 관과 모세의 법궤를 들고 다니면서 광야의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요셉의 관이 과거를 기억하며 힘을 얻는 것이었다면, 모세의 법궤는 미래를 위하여 다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법궤는 새로운 계약이었습니다. 그 계약을 지키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 것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법의 근본 정신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법으로 아름다운 사회 공동체를 이루자는 미래지향적인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과 거기에 맞는 이스라엘 백성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요셉의 관을 들고 과거를 기억하였고, 모세의 법궤를 들고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광야여행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3. 새로운 미래를 위하여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도착하자 요셉의 관을 묻었습니다. 더 이상 들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관을 묻기 위하여 40년 동안 그 관을 지키면서 기다린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40년 동안 그들은 철저히 그 관을 지키면서 과거를 기억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거를 언제나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기억했다면 기억하고 난 뒤에 해야 할 작업이 있습니다. 그것은 묻는 것입니다.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묻어버리는 것입니다.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미래를 위해 묻어버린 것입니다. 그 과거의 기억을 묻고 그것을 미래를 향한 징검다리로 사용할 때 비로소 역사에는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요셉의 관에 연연하지 않고 계명이 든 법궤만을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미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미래를 어떻게 살 것인가가 그들의 문제였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가 그들의 문제였습니다.

지난 삶을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정리해야 할 것이 없습니까? 버려야 할 것이 없습니까? 잘못된 마음을 그대로 안고서 잊어버리면 된다는 잘못된 이름으로 새해를 맞이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그런 마음이라면 미래는 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묻어야 합니다. 묻어 버리되 철저히 기억하고 묻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역사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법궤를 드는 일입니다. 미래는 그냥 열리지 않습니다. 과거를 기억한 후, 땅에 묻은 사람 그리고 새로운 다짐으로 살아가야 할 법을 마음속에 깊이 새긴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겠다는 강한 미래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법궤입니다.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믿음의 결단이 법궤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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