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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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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눅10:25-37. 제목/선한 사마리아인

선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궁전이 있었다.
한 소녀가 궁전에 들어가고 싶어 매일 몸을 단장했으나 궁전의 열쇠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루는 궁전의 문지기가 소녀에게 귀띔해 주었다.
“남을 위해 사랑을 실천한 사람에게 열쇠가 주어 진단다”
소녀는 그날 늙은 거지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궁전으로 달려가 열쇠를 요구했다. 그렇지만 열쇠는 주어지지 않았다. 소녀는 낙심해 힘없이 집으로 걸어갔다.

그때 강아지 한 마리가 덫에 걸려 신음하는 모습을 보았다. 소녀는 정성을 다해 강아지를 풀어 주었다. 소녀의 손에는 상처가 나고 피가 흘렀다.
그때 궁전의 문지기가 나타나 열쇠를 주었다. 소녀가 놀라며 말했다.
“저는 열쇠를 얻기 위해 강아지를 구해준 것이 아닌데요”
그러자 문지기가 말했다.
“자신이 지금 선행을 베풀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잊은 채 남을 돕는 사람에게 열쇠가 주어 진단다”
진정한 선행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아름다운 선행은 감추어질 때 더욱 빛난다.

사마리아 인이 강도 만난 자를 도와주었다.
그래서 그를 good samarian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한다.
사마리아인의 행위를 보면서 선한 사람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보자

1.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비유를 보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만나서 매를 맞고 거의 죽어가는 자를 제사장과 레위인이 보고서 그냥 지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에 그 길을 지나가다가 강도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겨 응급 처치를 하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도록 부탁했다.

이것은 사마리아인이 꼭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는 여행을 하는 중이었고 민족도 달랐다. 내 나라 내 동포 내 민족도 아니고 여행을 하는 중인데 자기 갈길을 지체하면서 까지 그 사람을 치료해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만난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당연한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같은 동족이었고 종교인이기 이전에 선행을 업으로 삼는 율법에 의해 선을 행하라는 명령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다.

구약의 레위기서는 일차적으로 제사장과 레위 인들에게 주는 행동강령이다.
거기 19:18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고 했다.
또 [사58:7] 참된 종교행위는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겔18: 7 이하에 보면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하나님의 율례를 좇으며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하면 그는 정녕 의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 일을 하나도 행치 아니했다. 오히려 강도만난 자를 보고도 피하여 지나갔다. 자신들이 행해야 될 의무로부터 도망을 쳤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딱히 보면 자기가 행해야 될 의무가 아닌데도 솔선하여 강도만나 자를 도와주었다.

내가 할 일을 하는 사람은 잘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사람은 더 잘하는 것이다. 사마리아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선한 사람이란 내가 꼭 하지 안하도 될 일을 자진하여 하는 사람이다.

인도의 한 내륙지방에‘데카페라’라는 독사가 있다. 주민들은 어떤 짐승보다 이 뱀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 이유는 이 뱀에 한번 물리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데카페라가 나타나면 무조건 도망을 간다.
이 뱀은 화가 나면 머리가 마치 수건을 두른 것처럼 크게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뱀을 ‘두건뱀’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 뱀에 물렸을 때 해독작용을 하는 특효약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데카페라가 똬리를 틀고 있는 곳에 자생하는 약초이다. 이 약초를 짓이겨 뱀에 물린 곳에 바르면 신기할 정도로 독이 빠진다. 데카페라 주변에는 신비로운 약초들이 많아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든 강도를 만날 수가 있다. 강도 만난 자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일 수 있다. 성씨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고 학교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도와줘야 한다. 선한 사람이다.

2.꼭 내가 할 일을 하는 사람이다.
미국 켐브리지 대학에서 불이 났다. 불이 나자 학생들은 모두 불을 끄기 위해 릴레이식으로 줄을 서서 물을 날랐다. 그 날은 건조하고 몹시 바람이 불어 추운 날이었다. 그런데 그 추운날 한 학생이 물속으로 들어가 직접 물을 퍼서 위로 올리고 있었다.
물을 나르는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헤어’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는 원래 허약하고 건강하지 못한 학생이기에 교수님은 기억하고 있었다.
"여보게 헤어, 자네는 허약한데 왜 이렇게 힘든 일을 자네가 하나?"
헤어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일은 분명 누군가가 해야만 할 일이기에 제가 먼저 맡았을 뿐입니다.”

교회 생활과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누군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일을 외면하며 '누군가 하겠지'라고 장님처럼 외면한다. 일명 '뺀돌이, 뺀순이'라고 하지요. 창27:11 야곱이 자신을 가리켜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뺀질뺀질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닐까?

선한 행실을 하는 사람은 그때는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많은 사람을 동료로 얻을 수 있고 당장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은 고생을 피하는 현명한 처사라 생각할지 몰라도 조금만 지나면 동료들이 등을 돌린다.
자기의 주위에는 싸늘한 기운만 감돌 뿐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내가 꼭 해야 될 일은 어떤 일인가?
내 눈 앞에 닥친 것이 내가 꼭 해야 될 일이다.
하나님은 내가 그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내 눈앞에 그 일을 닥치게 하셨다.

아브라함은 장막 문에 앉았다가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 세 사람을 보고 달려나가 청하여 다가 대접했다. 그들이 자기 집 앞에 왔기 때문에 대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내 집 앞에 온 손님을 어떻게 그냥 보내냐는 것이다.

롯도 성문에 앉았다가 자기 앞에 나타난 천사를 영접하여 자신의 집에 모셔 들이고 대접했다. 그리하여 소돔이 멸망하는데서 구원받았다.
눅24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 길에서 제자들 두 명과 동행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엠마오에 다 왔을 때에 예수님은 더 가려는 것 같이 했다.
그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강권하여 해가 이미 지고 날이 저물었으니 함께 머물기를 강권했다.
하나님은 일을 가지고 사람을 테스트하신다. 그 일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시는 것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만난 자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을 것이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돌보아 주었다. 내가 할 일이라고 여긴 것이다. 내가 이 사람을 돌보아 주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꼭 돌보아 주어야 한다. 자기 할 일 사명감을 느낀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한다.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보다 존엄하다. 그것은 형통이나 종족, 피부색을 불문하고 마찬가지다. 천하보다 한 생명이 귀하다고 예수님을 말씀하셨다. 인간이 모든 만물보다 존엄한 것은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닮은 자로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자신을 닮게 지으신 존재는 인간 외에는 없다.

생명 존중사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가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것이다.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다. 탈레반에 우리 국민들이 납치되고 그 중에 두 명이 살해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들은 생명을 경시하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를 서슴치 않았다.
자신의 생명도 경시하기 때문에 남의 생명도 경시한다.
그들은 자폭조끼를 입고 있다. 여차하면 너 죽고 나 죽자는 것이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 해야 되는데 너도 죽고 나도 죽자는 것이다.
알라신을 위해서 그런다는 것인데 알라신은 생명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명을 귀중히 여기신다.
그래서 살인하는 것을 금하셨고 자신의 생명을 해하는 것도 금하셨다.

기독교는 남의 생명을 빼앗아서도 안되지만 남의 생명을 해치는 것도 안된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생명을 우습게 여기고 해치는 일이 많다. 사람을 죽이는 사건을 보면 너무 끔찍하고 잔인하다.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유영철을 재판한 판사가 선고한 것을 보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행위라고 했다.

인터넷을 보면 기독교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아프칸 사건을 비난하고 비방하는 글이 수백 수천 건이 올라와 있다. 그들은 단순히 아프칸에 간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 것 때문에 무조건 비난하고 매도한다.
위험 지역에 스스로 갔으니 스스로 살아서 돌아오게 내 버려두라는 등, 그들을 구출하는 일에 내가 낸 세금을 쓰지 말라는 등, 하나님이 구원하시도록 내버려 두라는 등 이성적이지 않은 말들 무뇌아들 같은 말들을 마구 지껄여댄다.
생각이 없는 사람들 같다.
그 글들을 보면 동포이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비방하는 것은 기독교인이라는 것 때문이고 다른 이유는 없다. 취미로 삼는 것 같다.
그들은 기독교라고도 하지 않는다. 개독교라고 한다.
그들을 우리 쪽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라고 말한다.
다른 영을 받아서 기독교와 교인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탈레반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죽어가는 사람을 방치할수 없다. 방치해선 안된다. 양심의 소리를 들었다. 그를 살리는 것이 꼭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여겼다.
잠24:11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24: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두 사람은 피하여 지나갔으나 사마리아인은 가까이 가서 치료해주었다.
하나님이 그 행위대로 판단하실 것이다. 선한 사람은 어떤 일을 내일이라고 여긴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이라고 사명감을 느낀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그 일에 개입한다.
선하지 못한 사람은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겨서 피하여 지나간다.

3.자비를 들여 봉사하는 사람이다.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자를 도울때 모두 자비를 들여 치료했다.
자기 여행을 위해서 써야할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를 치료하고 싸매어 주었고 자신의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모두 자기 비용을 사용하였다.

샘물교회는 말아톤이라는 영화를 보고 자극을 받아 봉사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는데 아프간에 간 사람들은 자비를 들여 봉사활동을 갔다.
교회에서는 지난 7월부터 160여명이 아프간을 비롯해 캄보디아, 터키, 아프리카 등으로 떠나 봉사활동을 벌였다.

[히10:24]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물질주의 사회는 점점 더 이기적이 되고 개인주의가 되어서 남을 위한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고 말한다. 기독교를 이기적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 베드로는
[벧전3:16]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고 말했다.

밴 다이크의 소설의 `대저택'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웅장한 집에서 살던 한 부자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올라갔다.그런데 자신의 집은 비가 새는 허름한 오두막이었다.마침 그 옆에 으리으리한 대저택이 건축되고 있었다.부자가 천사에게 물었다.“도대체 저 웅장한 집은 누구의 것입니까?”“당신의 옆집에 사는 가난한 의사가 살 집입니다”

부자는 깜짝 놀랐다.그 의사는 동네에서 조그마한 병원을 운영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다.의사는 마을 사람들의 질병을 무료로 치료하느라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천사는 놀란 표정을 짓는 부자를 향해 말했다.

“땅에서 쌓은 선행들은 모두 하늘나라로 배달됩니다.당신의 선행은 오두막의 지붕을 씌우기에도 부족할 정도예요.당신은 자신을 위해서만 살았어요.그러나 그 의사는 평생동안 남에게 사랑을 베풀었어요.그가 베푼 사랑은 대저택을 짓고도 남을 분량입니다”

사랑은 실천이다.사랑은 희생이다.우리가 베푼 사랑은 반드시 하늘에 배달된다.

4.미래까지 생각해주는 사람이다.
주몽에서 소서노 역으로 유명해진 탤런트 한혜진 씨는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로 임명돼 '위촉패'를 받았다.
'월드비전'측은 한혜진 씨가 평소에도 꾸준하게 봉사활동을 해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홍보대사를 제안했고, 한혜진 씨도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혜진 씨는 '월드비전'과 함께 강원도 정선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쳤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찾아 '목욕봉사활동'을 했다.
또 낡은 도시락용기 300개를 자비를 들여 새 것으로 바꿔주기로 약속했다.
가까운 이웃에 어려운 분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죄송하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사마리아 인은 아마도 하룻 밤을 강도만난 자와 함께 지냈다.
35절에 이렇게 말한다.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겠습니다.”
그는 강도만난 자를 돌보아 주면서 하룻밤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주인에게 그를 부탁했고 치료비가 더 들면 갚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오늘의 할 일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내일의 일까지 책임을 졌고 생각해 주었다. 한 번의 봉사와 치료는 어떻게 불가피하게 할 수 있다.
눈 앞에 닥친 일은 양심상 외면하지 못하고 어떻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내일 모래 그 다음의 일까지 생각하고 처리해주는 일은 따뜻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쉽지 않다.

이튿날 이라는 시간은 새벽이라는 말이다.
그는 결코 할 일이 없어서,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강도만난 자를 돌보아주고 치료해 준 것이 아니다. 이튿날 새벽에 일찌감치 떠날 만큼 자기 갈 길이 있고 바쁜 여행길이었으나 위급에 처한 사람을 돌아보는 일을 자기의 바쁜 일정보다 우선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바쁜 일 때문에 급히 가지만 치료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반드시 갚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정말로 신실한 사람이요 선한 사람이다.
봉사와 헌신은 일시적으로 충동적인 동기에 의해서 행해져서는 안된다.
끝까지 완전하게 책임의식을 가지고 행해져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현실의 필요뿐만 아니라 내일의 필요까지 채워주신다.

탈레반에게 납치된 봉사단원들이 전쟁 중인 나라에 가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 무슨 명문 규정에 있는가? 없다. 꼭 그들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그들은 자원하고 나섰다.
그것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내가 꼭 해야 될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존중하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프칸에 가는데 어떤 부자의 물질적 지원을 받고 갔는가?
직장을 휴가내고 살림을 가족들에게 부탁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실천이라는 대명제를 위해서 전쟁의 상흔이 있는 사막의 땅 아프칸에 갔을 뿐인다.
그들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땅의 비기독인들에게 비난받아야 될 어떤 죄도 짓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고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매도하는 것은 자신들이 못하는 일을 했다는 열등감의 표출일 뿐이다.
타락한 사람들의 심리는 고약해서 자기들이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하면 괜히 심술이 나서 욕을 하고 훼방을 놓고 심통을 부린다.
안티 세력은 그런 사람들일 뿐이다.

어찌 보면 아프칸이라는 나라는 우리와는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웃이라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봉사단이 아프칸에 간 것은 거리를 따지지 않는 이웃이라는 마음 때문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네 이웃에게 사마리아인 같이 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웃의 범위가 어느 만큼 되는가? 내가 아는 사람인가?
관계가 있는 사람인가? 범위가 넓혀져야 된지 않겠는가?
봉사단원들은 이웃 사랑의 범위를 내 주변에서 지구촌 곳곳으로 넓힌 사람들이다. 그들 자신이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반성은 할수 있을지언정 제 3자가 그들을 평가하고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들은 주님이 칭찬하신 선한 사마리안의 계승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원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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