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본문
누가복음 5장 1~11절
석기현 목사
옛날의 소위 고승들은 제자를 받아들일 때 무척이나 까다로웠던 것 같습니다. 달마라는 유명한 승려가 소림사에 있을 때, 혜가라는 승려가 여러 차례 찾아와서 자기를 제자로 받아 주기를 간정했지만, 달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겨울에 혜가가 또 찾아와서 달마에게 “제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해야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달마가 대답하기를 “천하에 붉은 눈이 내릴 때에 너를 제자로 받아 주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혜가는 밖으로 나가서 절 마당에 쌓여 있는 눈 위에서 자기 왼팔을 잘라 버렸습니다. 그 잘린 손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려 눈 위에 떨어지면서 흰 눈이 붉게 물들어 갔습니다. 그러자 달마는 그 혜가를 비로소 자기 제자로 받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불교 신자들은 감동이 깊다고 하겠지만, 제게는 너무나도 황당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뽑고 키우시는 과정은 결코 그렇게 까다롭거나 비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세상의 스승들처럼 이미 그릇이 틀림없는 사람들, 즉 사실상 자기 밑에 들어오지 않아도 이미 경지에 도달해 있는 사람들만 골라 가지고, 못이기는 체 하면서 특별히 받아 주는 척 온갖 생색을 다 내신 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베드로의 경우만 보아도 그랬습니다.
나중에 수제자가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으며 결국 순교하기까지 했던, 실로 유명하고도 훌륭한 제자였지만, 그 베드로가 제일 처음 부름 받을 때의 상황을 보면 도무지 예수님의 제자가 될만한 그릇으로는 보이지 않던 인물이었습니다. 좋은 학벌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무슨 고귀한 인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자기 나름대로의 어떤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는 전무했습니다. 그저 갈릴리의 전형적인 어부로서 그에게 있던 것이라고는 거친 성격과 먹고 살기에 바쁜 일손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람 좀 볼 줄 안다는 스승이면,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이 베드로 같은 사람을 자기의 제자로, 아니 그중에서도 수제자로 키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갈릴리 호수의 고기 잡는 어부를 부르셔서 결국에는 복음으로 사람을 낚는 큰 제자로 만드셨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평범해 보이는, 아니 사람들이 보기에는 적어도 주님의 중차대한 사역에 쓰이기에는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던 베드로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그처럼 큰 제자로 자라나게 되었습니까?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어떤 과정을 통하여 오늘날의 우리들 역시 당신의 제자로 부르시고 키우시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교회 생활을 통하여 예수님과 접촉을 시작하는 것이 바로 ‘제자 입문’의 단계입니다.
본문 누가복음 5장 1절로 3절의 말씀에 기록하기를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이미 갈릴리 여러 동네에 소문이 퍼진 까닭에,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 왔습니다. 그런 중에 예수님께서는 ‘게네사렛 호숫가’ 즉 갈릴리 호숫가에 오셨던 것입니다. 마침 그 갈릴리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었는데, 이 배들은 지난밤에 내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아침에 돌아와 이제 막 정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정비 작업을 하고 있던 두 척의 배들 중에 하나가 바로 시몬 베드로의 배였던 것입니다.
사복음서의 다른 곳과 비교해 보면, 이 장면이 예수님께서 시몬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이 있기 이전에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베드로는 자기 동생 안드레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요 1:41)라고 전해 주었을 때 예수님을 만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첫 상면하는 자리에서 대뜸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 1:42)고 그의 미래의 이름이 ‘베드로’가 될 것을 예언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그 첫 만남을 통해서는 그리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이후에도 오늘 이 사건이 있기까지 계속 갈릴리에서 어부 생활을 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정식 제자가 되어 있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시몬의 배를 보시고 지금 당신 앞에 모여든 무리들에게 설교하실 좋은 장소라고 생각하시고는, 거기에 오르셔서 그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해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배에 앉아 호숫가에 모여 있던 무리들을 향하여 설교를 시작하시니, 이 시몬 베드로의 배는 졸지에 아주 멋진 옥외 강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호수 위에 떠 있는 강단에서 설교하시는 동안 베드로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 그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었을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 말씀에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그가 분명히 했던 것은, 그는 예수님의 청을 듣고 자기 배를 예수님의 설교 강단으로 사용하시도록 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까지 마음에 무슨 뜨거운 감동이 온 것도 아니었고 예수님과의 사이에 무슨 깊은 교감이 생긴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그저 전에 자기 동생 안드레의 소개로 한번 만나 인사했던 예수님께서 그 즉석 야외 부흥회를 위하여 자기의 배를 강단으로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청에 협조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소해 보였던 접촉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엄청난 사건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알게 되는 그 첫 순간부터 모두가 다 큰 은혜 받고 당장 변화되어 예수님의 평생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처럼 주님을 첫 대면하는 순간부터 완전히 붙잡히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베드로의 경우처럼 시간이 좀 걸리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때까지 우리가 예수님과의 접촉점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계속 지키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만드시기 위하여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엄청난 특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의 스승들처럼 제자 지망생들에게 등을 돌리고 ‘면벽’하면서 냉대하거나, 그들로 하여금 자기 집 문 바깥 땅바닥에 며칠이고 꿇어앉아서 기다리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교회에 나오면 예수님 제자 학교에 무시험으로 입학할 수 있도록 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교회 생활에는 자신에게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지 않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나는 예수쟁이 될 사람은 아닌가보다.’하고 일찍부터 낙심해서는 아니 됩니다. 아무리 전도될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미리부터 포기하지 말고, 일단 태신자로 작정해 놓고 어찌하든지 교회에 첫 발을 한번 내디디도록 끈질기게 끌어 당겨야 합니다. 설교를 잘 못 알아들어도 일단 예배 시간마다 빠짐없이 참석해 보고, 아직 믿음이 약해도 교회 일 중에 자기가 잘 도울 수 있는 일은 자원해서 맡아 보기도 하고, 믿는 아내가 자기 집에서 구역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면 베드로처럼 자기의 배를 주님의 강단으로 쓰시도록 해 보기도 하다보면, 바로 그런 접촉들이 언젠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짜로 알게 되고 본격적으로 따라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성하는 유일한 학교이며 최고 학교이기도 합니다. 일단 이 제자 학교에 꾸준히 등교함으로써 절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엘리트 코스에 입문하는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배우는 것이 ‘제자 수업’의 과정입니다.
본문 누가복음 5장 4절로 7절 말씀에 기록하기를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설교를 끝내신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베드로에게 명하심으로써 본격적인 제자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고기잡이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할 전문가인 베드로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말씀은 정말 황당무계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오직 고기잡이 생활 이것 하나만으로 어릴 때부터 잔뼈가 굵어진 그는, 그 갈릴릴 호수에서 어획을 위한 가장 좋은 시간은 밤이고 가장 좋은 장소는 얕은 물가인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대낮에, 깊은 데에다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베드로에게 명하셨습니다. 바로 어젯밤에 좋은 시간에 좋은 장소에서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으나 한 마리 고기도 못 건졌는데, 이제 가장 나쁜 시간에 가장 나쁜 장소에 가서 그물을 내려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에게는 그야말로 전문가의 자존심을 뭉개는 것이며 결과가 뻔한 헛수고를 사서 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실로 놀라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그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도 되지 않았고 찬성도 안 되었지만 그저 한번 순종해서 실천해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천만뜻밖의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낮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한번 던지자, 그물이 찢어지고 배 두 척이 거의 가라앉을 정도로 가득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어부로서의 모든 상식을 깨고 자신의 인생 경험 전체를 깨뜨리는 일이 예수님의 말씀을 일단 한번 순종해 보았을 때 단번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가 꼭 통과해야 할 단계입니다. 일단 교회를 출입하는 생활을 계속하기만 하면 자연히 성경 말씀을 들을 기회가 많아지게 됩니다. 목사의 설교와 구역 성경공부 등을 통하여 말씀에 계속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그 중의 한 절 말씀이 내 마음에 충격적으로 와 닿고 내 영혼을 깊숙이 강타하여 내 인생을 근본적으로 확 바꾸어 버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성경 말씀 한 구절이 한 인생을 순식간에 극적으로 바꾸어서 주님의 위대한 제자로 만들어 버린 일들은 교회사에 비일비재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 이 한 귀절의 말씀이 당대 대표적 방탕아였던 어거스틴을 단숨에 교회사의 성자로 만들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 이 말씀 한 마디는 마틴 루터 자신의 절망적인 인생을 살렸을 뿐 아니라 중세기의 기나긴 영적 암흑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제자로 입문한 후에도 스승의 지도를 직접 받는다는 것은 세상 학교에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둑 잘 두는 유망주가 유명한 선배 프로기사의 집에 들어가서 숙식을 같이 하면서 지도받는 것을 ‘내제자가 된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제자가 되어도 자기 스승과 직접 바둑을 한 판 두면서 개인 지도를 받는 것은, 처음에 내제자로 입문할 때 한 판, 입단하게 되면 축하로 한 판, 그리고 내제자 생활을 끝낼 때 한 판, 이렇게 통상 세 번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교회에 상주하면서 매주 매일 그 지도를 직접 받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자기 손으로 성경 말씀을 펼치고 예배시간마다 목사의 설교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당신의 특별한 ‘내제자’로 받아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도 기록된 말씀과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우리 스승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는 이 특별 수업을 통하여 참된 주님의 참된 제자로 꾸준히 자라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사죄의 은총에 감사 감격할 줄 아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 자격’을 정식으로 얻는 순간입니다.
본문 누가복음 5장 8절로 11절에 기록하기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로 이 놀라운 이적을 보게 된 베드로는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기를 많이 잡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대신, 당장 그 자리에서 예수님 앞에 엎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아까 5절에서는 ‘선생님(Master)’이라고 불렀었는데, 지금은 ‘주 (Lord)’라고 극상의 호칭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에는 그저 말씀을 존중하고 따라야 할 대상 정도로 여겼다가, 지금은 자신이 엎드려 숭배해야 할 분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일견 이상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이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게 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첫 고백입니다. 극단적으로 더러운 것이 극단적으로 깨끗한 것과 같이 한 자리에 있게 된다는 것이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것처럼, 사람은 도무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잠시라도 머물러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이 더러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몸 둘 바를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정말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필연적인 과정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양심 바르고 무흠 결백하게 살아서 제자로 뽑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임을 깨닫는 바로 여기에 진짜 제자 되는 첫걸음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그와 같은 고백에 대하여 우리 예수님께서는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무서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겁내지 말아라’는 뉘앙스가 아니라 ‘무엇 앞에서 떨지 말아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식하고 죄인 된 자신을 깨닫고 그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베드로에게 용서를 선언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주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자각할 수 있어야 만이 그 죄를 사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지극한 것인지를 뼛속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이며, 바로 그 감동력이 우리로 하여금 제자의 사명을 뜨겁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엑소더스’라는 영화에 보면, 한 유태인 소년이 어떤 비밀 결사 단체에 가입하려고 찾아갑니다. 그 단체의 지휘자는 그 지원자 소년을 이리저리 테스트해 보면서, 그 소년이 다이나마이트 사용법을 어떻게 배웠는지를 물어봅니다. 그 소년은 처음에는 적당히 둘러대려고 했지만, 끝내 가서는 자기가 옛날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그 안에서 학살당한 자기 동족을 땅에 파묻는 일을 하면서 그것을 배웠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 소년이 그처럼 동족에 대하여 죄를 저지른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어쩔 줄 모르고 괴로워하자, 그 비밀 결사 단체의 지휘자는 그 소년에게 ‘너는 이제부터는 네가 빚진 조국 이스라엘을 위하여 네 목숨을 내어 놓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서약을 시키면서, 그를 단원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 역시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삼으시기 위하여, 먼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지난날의 부끄러운 죄들을 당신의 거룩하심 앞에서 절로 상기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창피한 것 때문에, 그 두려움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할 때,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서약시키십니다. “너의 지난 죄는 이제 다 용서받았다. 하지만 그 대신에 그 옛날 어부 생활하면서 제 멋대로 살던 것 다 청산하고 이제부터는 네 목숨을 바쳐서 날 위하여 ‘사람 낚는 어부’로 충성해야 한다.”라고 우리의 눈물로 서약하게 하신 후에, 비로소 당신의 정식 제자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를 만드시는 방법은 이처럼 진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감히 함께 있을 수도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제자의 자격을 박탈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죄인됨을 고백하는 순간 당신의 정식 제자로 임명해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자격 미달자들인 까닭에 오히려 더욱 진실한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신 갚아 주신 ‘일만 달란트’의 빚이 있는 줄을 깨달을 줄 아는 까닭에, 실로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는 진짜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이름 없는 한 시골 어부였던 베드로, 아니 아무 훌륭한 이력도 없었고, 자격으로 말하자면 미달되어도 한참 미달되었던 죄인 베드로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예수님 제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그 고귀한 제자의 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꼭 같이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지망생을 문안에 들여 놓지도 않고 들들볶는 세상의 스승들과는 달리, 어느 누구라도 당장에 이 제자 학교인 교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그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교장이십니다. 자기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것을 지극히 아까워하면서 아주 조금씩 가르쳐 주는 세상 스승들과는 달리,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고 처음부터 당신의 말씀으로 철저히 가르치시는 교수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제자 되겠다는 사람의 팔을 자르게 만드는 세상 스승과는 달리, 이런 못난 죄인들까지도 당신의 제자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오히려 자신의 피를 대신 흘려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스승 예수님이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아무 가망성도 자격도 없던 우리들을 이처럼 온갖 공을 다 들여서 제자로 만드시는 것입니까? 그 목적은 단 한 가지, ‘사람을 취하여(데려) 오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 제자감으로 낚아오게 만드시기 위하여 이처럼 너그럽게, 철저하게, 은혜롭게 교육시키시는 것입니다. 스승과 만나게 되는 교회 중심의 생활, 스승의 육성으로 가르침을 받는 성경공부와 설교 말씀, 그리고 스승의 인격과 사랑을 체험하게 해 주는 사죄의 은총 - 바로 이런 제자 입문과 교육과 양성을 받음으로써, 자기 먹고 살기에만 바빴던 어부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이제부터는 숙달된 ‘사람 낚는 어부’로 크게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