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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달랴 대(對) 여호사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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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달랴 대(對) 여호사브앗”
역대하 22장 1-12절
석기현 목사

제가 작년 어버이 주일에 설교를 하면서 “공산주의는 군사독재보다 열배 백배 더 무서운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청년이 그 설교를 방송을 통해 듣고서 우리교회 인터넷 게시판에다가 “그 말에 도무지 공감할 수 없습니다.”라고 항의하는 글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글을 보면서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군사독재가 무서운 것은 알면서 공산주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조금도 알지 못하는 이런 세대가 앞으로 이 나라의 주역이 되어갈 때 과연 조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암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악한 세력의 씨앗을 자기 나라 안에 방치해 두었다가 결국 한 순간에 나라 전체가 통째로 먹히게 되는 위험을 실제로 겪었던 나라가 바로 남조 유다였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여호람 왕의 8년 통치 기간 중 남조 유다가 급전직하의 국력 쇠퇴에 들어가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여호람의 뒤를 이어 남조 유다의 왕이 된 아하시야 대에 와서는 그의 치세 단 1년 만에 다윗 왕조 그 자체가 아예 끊기고 말 위험에 처하게 됨을 보게 됩니다.
그 강하고 부하고 화려하고 명예로웠던 다윗 왕조가 여호람 재위 중에는 모든 국부(國富)를 단번에 말아 먹게 되고, 바로 그 아들 아하시야 왕에 와서는 국권 그 자체가 아예 대적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유다와 다윗 왕조에 어떻게 그런 몰락의 위험이 순식간에 닥쳐왔는지, 그리고 그 최대의 국난의 위험이 어떻게 극복되었는지를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면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원수의 손에서 지켜낼 사명감과 용기를 함께 다지고자 합니다.

1. 친공분자들은 조국 전체를 공산화의 위험에 빠뜨리게 만들 매국세력입니다.

다윗 왕조의 단절 위험도 단 한 명의 우상 숭배자가 유다에 가만히 들어옴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본문 1절로 4절에 기록하기를 “예루살렘 거민이 여호람의 말째 아들 아하시야로 위를 이어 왕을 삼았으니 이는 전에 아라비아 사람과 함께 와서 영을 치던 부대가 그의 모든 형을 죽였음이라 그러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더라 /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 사십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오므리의 손녀더라 /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 모친이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 그 부친이 죽은 후에 저가 패망케 하는 아합의 집 교도를 좇아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여호람이 죽은 후 그의 말째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는데, 그것은 앞장에서 보았던 대로, 블레셋과 아라비아의 연합군이 유다 진영을 공격해 왔을 때 여호람의 다른 모든 아들들을 잡아가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태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을 때에 그의 곁 가장 가까이에서 정치적인 조언을 줄 사람이라고는 자기 어머니 아달랴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아달랴가 “오므리의 손녀”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아하시야 왕의 할아버지 여호사밧이 아하시야의 아버지 여호람을 바로 이 ‘오므리의 손녀’ 즉 북조의 악명 높은 아합의 딸과 정략결혼을 시켰던 것입니다. 그 아달랴는 이미 자기 남편 여호람 왕부터 역으로 우상숭배에 물들게 만든 여자였으니, 당연히 그녀의 아들 아하시야는 모든 면에 있어서 아달랴의 꼭두각시가 됩니다.

그 모친이 “꾀어 악을 행하게” 해도 아무 비판도, 반대도, 갈등도 없이 그대로 따라하게 되어서 결국 그는 “패망케 하는 아합의 집 교도를 좇아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교도”라는 말은 ‘의견’이라는 뜻으로서, 아하시야 왕이 모든 정치적인 결정을 오로지 북조 아합 왕가의 조언을 따라 내리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단 한 명의 우상 숭배자를 방관했을 때 남조 유다 전체가 북조의 손에 마음대로 놀아나게 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현실로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남조 유다의 다윗 왕조는 북조 이스라엘의 아합 왕조가 하나님 앞에서 멸망해 갈 때 그에 덤으로 휩싸여 함께 망해 가게 됩니다.
5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에 그 사실을 기록하기를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교도를 좇고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 / 요람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맞아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있으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사랴가 이스라엘에 내려가서 방문하였더라 / 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받았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아하시야가 갔다가 요람과 함께 나가서 임시의 아들 예후를 맞았으니 그는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아합의 집을 멸하케 하신 자더라 / 예후가 아합의 집을 징벌할 때에 유다 방백들과 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 곧 아하시야를 섬기는 자들을 만나서 죽였고 / 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숨었더니 예후가 찾으매 무리가 예후에게로 잡아다가 죽이고 이르기를 저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이라 하고 장사하였더라 이에 아하시야의 집이 약하여 왕위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라”고 했습니다.

아하시야는 어머니 아달랴를 통하여 자연히 자기 외갓집 식구들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고, 아합의 뒤를 이어 북조 이스라엘의 왕이 된 요람이 전쟁하러 나간다니까 그것까지 도와주러 따라갔습니다.
그 전쟁을 패한 후에, 아히시야는 바로 그 전투 중에 부상당하여 치료받고 있던 요람 왕을 병문안하러 갔다가 어이없는 종말을 맞게 됩니다.
때마침 북조 이스라엘에서는 예후가 혁명을 일으켜서 아합 왕조를 진멸하게 되는데, 그 때 친구 병문안 하러 갔던 멀쩡한 아하시야 왕까지 그 예후의 칼에 걸려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아하시야 왕은 그저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 즉 ‘하나님 잘 믿던 왕의 손자’였다는 이름만 가지고 있었지, 실제로는 평생을 우상숭배하는 어머니 밑에서 우상숭배하는 외갓집 왕조의 사상을 따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던 북조와 정치적으로 교제하며 국제관계에서 공조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사후에 남조 유다는 “아하시야의 집이 약하여 왕위를 지키지 못하게” 되고야 맙니다.
바로 이어지는 10절에 나오는 대로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유다 전체를 들어먹게 되는 것입니다.
단 한 명의 우상숭배자가 다윗 왕조에 들어 왔을 때, 유다 전체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조 유다의 친(親)우상정권 정책은 결국 그 우상숭배 세력에 의하여 나라 전체가 통째로 먹혀 버리는 결과로 걷잡을 수 없이 치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무신론 사상으로 무장된 공산정권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바로 대한민국의 장래에 가장 큰 위험 요인인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작년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대북 인권 결의안’을 압도적 다수로 가결할 때에 우리나라는 기권을 했고, 그보다 일 년 전에는 아예 불참했었습니다.
온 세계가 우리 대신에 우리의 이천 만 북한 동포를 걱정해 주고 있는데도, 정작 이 대한민국 정부만은 북한의 이 악한 공산독재정권을 그처럼 존중해 주면서 북한 인민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묵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서 남북한 축구 경기가 있었을 때, 북한 응원단은 인공기를 마음대로 흔들게 해 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극기를 경기장 안에 가지고 가지 못하도록 입구에서 압수해 버리고 저 정체불명의 ‘한반도기’를 대신 흔들도록 만드는 것을 보고 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대한민국 땅 안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을 응원하러 가는데 대한민국의 국기를 빼앗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 나라를 잃었을 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정부가 이처럼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자존심까지 짓밟으면서 북한 공산정권에 아양을 떨어야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번에 북한에서 있었던 6.15 공동성명 기념행사에 갔던 우리나라의 문화재 청장이라는 사람이 식장에서 6.25 사변 당시 남파된 간첩을 영웅으로 찬양한 노래를 함께 불렀다고 했습니다.
여론이 빗발치듯하니까 본인은 “특별한 의도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는데, 저로서는 ‘특별한 의도’가 있고 없고를 따지기 전에 이 나라 정부의 차관급에 해당되는 인물이 북한 간첩을 미화시킨 그런 영화를 왜 보았는지, 아니면 그런 영화의 주제곡을 도대체 어떻게 가사까지 외우게 되었는지 그 연유가 더욱 궁금합니다.
평소에 “박정희 대통령의 광화문 현판 글씨에 살기조차 느껴진다.”고 신문 칼럼을 쓰던 사람이 김정일 독재자 앞에서는 왜 그토록 ‘특별한 의도도 없이’ 저자세로 나가야 했던 것입니까?

5년 전에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께서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서 북한의 ‘백화원 영빈관’이라는 곳에서 찍었던 기념사진을 눈여겨보십시오.
그런 공식 사진에서는 양쪽 수행원의 수가 같아서 전체가 짝수가 되어야 하는 법인데, 자세히 세어 보면 북한쪽 수행원이 한 명 더 많이 서 있습니다.
즉 그 결과 김정일이 사진 한 가운데를 자리 잡고 우리나라 대통령께서는 그 김정일을 오른쪽에서 보좌하고 있는 모습으로 찍혀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간교하기 짝이 없는 것이 김정일인데, 왜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까지도 그 김정일 입에서 공수표나 다름없는 그럴듯한 말 몇 마디만 나오면 그저 황공무지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들 있는 것입니까?

저는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용공 사상과 친공 정책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정말 ‘평화적 적화통일’의 위험이 지극히 높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친공 인터넷 사이트들이 땅굴보다 더욱 위험하게 이미 이 나라 청년들의 머릿속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6.25 사변은 통일전쟁’이었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소리가 전직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고, ‘우리나라에도 공산당이 허용되어야 참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현직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고 있으니, 이 나라의 사상계는 완전히 ‘아합의 교도’를 따라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노사 대립을 부채질하고, 재벌을 ‘사회악’이라는 개념과 동일시하고, 정부가 사사건건 경제 정책을 주도하려 하는 이런 것들이 다 사회주의의 기본 바탕이 아닙니까?
거기에다가 차 안에서 운전 중인 기사를 백주에 두들겨 패고, 무슨 언어폭행이라는 것을 당했다고 해서 동료 전원에게 수류탄을 터뜨리고 총기를 난사하는, 이처럼 참을 줄 모르고 화를 잘 내는 것이 오늘날의 청년들입니다.
이런 신세대로 하여금 노년 세대를 수구주의로 인식하게 만들고 게다가 반미감정까지 부추겨서 결국 친공산주의 사상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그야말로 ‘아합의 아들 요람과 정치적 노선을 같이 하는’ 꼴이 그대로 이 대한민국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용공은 친공으로 이어지게 되고, 친공은 결국 나라 전체가 공산화되는 바로 직전 단계입니다.
국민의 사상이 공산주의에 오염되고 국가 정책이 공산정권과 나란히 가게 되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한 것입니다.
단 한 명의 우상숭배자 아달랴가 들어오게 됨으로써 결국 남조 유다 전체가 당하게 되었던 망국의 비극이 우리의 조국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이 대한민국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는 무서운 공산주의와 위험한 친공세력을 철저하게 경계하며 대적하며 끝내 이겨내는, 이 민족의 진정 깨어있는 파수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기독신자들만이 조국의 민주주의와 신앙 자유를 지켜낼 수 있는 애국세력입니다.

단 한 명의 우상숭배자 때문에 야기되었던 다윗 왕조의 단절 위험은 또한 단 한 명의 신자에 의하여 방지되었습니다.
본문 10절 이하 12절의 말씀에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한고로 아달랴가 저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더라 / 요아스가 저희와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통해 마음껏 섭정 정치를 펼치고 있던 아달랴는 아하시야가 죽게 되자 아주 한술 더 떠서 “유다 집의 왕의 씨를 진멸”하려 하게 됩니다.
여자들이 정치에 나서면 그 모질고 무서운 것이 또 보통 아닌 것은, 중국의 유명한 측천무후 역시 다른 경쟁 왕비나 나라의 충신들은 물론 나중에는 자기 아들까지 죽이고 결국 스스로 중국의 여황제가 되었던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아달랴 역시 모든 “왕자들” 즉 자기 손자들까지 다 죽이고 여왕이 되었으며 그 이후 6년 동안 유다를 자기 손아귀에 쥐고 다스렸던 것입니다.

평소에는 얌전히 있다가 일단 기회가 오면 한 순간에 나라 전체를 잡아 먹어버리려 하는 것은 우상숭배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이 꼭 같이 써 먹는 술책입니다.
지금은 ‘민족 공조’니 뭐니 하고 미사여구를 떠들어대어도, 55년 전에 그 동족에게 총칼을 들이밀었던 자들이 바로 공산정권이며, 앞으로도 기회만 오면 소위 ‘계급투쟁’이라는 명목으로 이 나라의 정계, 재계, 종교계 지도자들뿐 아니라 공산독재를 반대하고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일 사람들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소련이나 중공, 최근의 캄보디아나 월남의 공산화 과정에서 예외가 없이 벌어졌던 일 아닙니까? 북한 공산정권은 그 정도는 두말할 것도 없고 남한에서 자기네들을 도왔던 남로당의 요직 인물들을 포함해서 최고 지도자 박헌영까지도 결국 미국 첩자라는 죄목을 씌워 사형시키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다윗 왕조와 유다가 바로 그런 배반과 참극을 당하고 외면상으로는 이미 완전히 끝난 듯이 보였지만, 놀랍게도 한 가닥의 줄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생존이었습니다.
나중에 23장에서 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을 입어 나라를 다시 찾게 되었던 요아스가,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유다 왕조의 씨를 완전히 말리려 했던 아달랴의 그 무서운 손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여호람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였던 여호사브앗이란 한 여인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호사브앗이 그 피투성이의 살육극 중에서도 용기를 내어 그 어린 요아스를 극적으로 구출해 내고 6년 동안 성전에 숨겨 길렀던 것입니다.
여호사브앗 공주이면서도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가 되었다고 했으니 두말할 필요 없이 신실한 신자였을 것입니다.

유다라는 한 나라를 두고 두 여인 사이에서 벌어진 이 드라마틱한 대결을 보십니까?
한쪽에서 악한 우상숭배자 아달랴가 유다 왕조를 완전히 말살시키려고 날뛰는 와중에,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자였던 이 여호사브앗이 소리 없이 대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한 명의 여인, 그 다윗 왕족들 중에 어쩌면 단 하나만 남았을 신자, 여자인지라 아무 정치적 힘도 없고 그저 목사 사모로 평범하게 살고 있던 한 여인이, 온 유다의 국권을 쥐고 흔들고 있던 아달랴 왕비의 그 압도적인 악한 세력을 홀로 대항해서 싸워 이기고야 말았습니다.
바른 신앙 가진 한 연약해 보이는 여인이, 결국은 풍전등화 같던 다윗 왕조의 명맥을 지키고 유다를 살려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제 기억으로는 뉴스위크(Newsweek)지였다고 기억되는 미국의 유명한 주간지의 표지에 김정일이 크게 웃고 있는 사진이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밑에는 ‘이 사람이 웃고 있는 까닭’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습니다.
제가 그 기사를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그 내용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모든 정세가 김정일에게 좋게만 돌아가고 있는 시기였으니 안 웃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이 오년 안에, 길어야 십년 안에 저절로 망하게 될 북한정권이라고 보았던 그 시점에 갑자가 공짜 쌀, 기름, 달러, 비료가 김정일에게 퍼부어졌습니다.
안 웃을 까닭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미국을 귀축이니 제국주의니 하고 그렇게 욕을 해 대어도 같이 편들어 줄 사람이 없었는데, 웬걸 미국의 도움을 받던 한국이 덩달아 반미감정에 열을 올리니 왜 안 웃겠습니까?
굳이 간첩 남파하지 않아도 남한의 친공 정치가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국회에서 대신 다 해주고, 이제 대남방송 따위를 애써 하지 않아도 남쪽에서는 인터넷을 통하여 주체사상이 쫙 깔려 나가고 있으니 왜 웃지 않겠습니까?
무조건 연방제로 통일만 시켜 놓으면 김정일이 북한 사회를 개방하고 인민을 풀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참 많이도 있는데, 그렇게 매사가 자기 좋게 잘 풀리는 김정일이 자신의 독재정권을 망하게 할 그런 무덤을 왜 스스로 팔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김정일의 그 만족스러운 웃음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분해서 잠이 오지 않을 지경입니다.
왜 그런 저질의 인간, 최악의 민족 원수는 ‘햇볕 정책’ 때문에 혼자만 따뜻해지면서 그토록 여유 있는 웃음을 짓고 있으며, 반면에 우리의 이천 만의 동포는 공포와 기아 속에 죽어가야 하며 오천 만의 대한민국 백성은 그 김정일의 미소와 핵위협이라는 ‘당근과 채찍’ 앞에 오히려 설설 기어야 하는지, 정말 원통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은 웃음을 짓고, ‘민족자주’니 ‘평화공존’이니 하면서 나오지만, 기회만 오면 ‘아달랴’처럼 한 순간에 적화통일시키려 할 것은 과거 공산주의자들의 행적을 보아서도 뻔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어느 전직 대통령께서 남북한의 화해 무드를 조성시켰다는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니 이 나라의 공산화 위험은 사라졌다고 안심이 되십니까?
키신저가 월남 휴전을 성사시켰다는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고 미국이 월남에서 철수한 직후에 월남이 무력 공산화되고 말았던, 기억도 생생하고 섬뜩한 그 역사가 어떻게 그렇게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교훈이 되지 않습니까?

김정일이 결국 얼굴 바꾸고 본색을 드러낼 때, 과연 누가 우리 편이 되어 주겠습니까?
미국은 지금 그런 공산정권에 속을 바보도 아니며, 또한 그런 공산정권과 친한 국가를 끝까지 도와줄 줏대 없는 나라도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6.25 사변 때 유엔군을 대항해서 불법 참전했던 중국이 대한민국을 도와주겠습니까, 아니면 불과 100여 년 전에 우리나라를 강제합방시켰던 일본이 도와주겠습니까?

정말이지 이 대한민국을 공산화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이 나라의 기독신자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대한민국에 그런 ‘여호사브앗’ 신자들이 남아 있는 한에는 이 조국이 결코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완전히 넘어가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호사브앗이 6년 동안 성전에 요아스 왕자를 숨겨 두었던 것처럼, 기독신자들은 극한 상황에 가서는 지하교회 투쟁을 통해서라도 끝내 이 조국의 신앙자유와 민주주권을 지켜내고야 말 것이라고 믿습니다.
정권과는 무관하면서도 나라를 정말 사랑하고 민족의 진짜 원수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적함으로써 결국 유다를 살려내었던 여호사브앗처럼, 이 조국 대한민국을 이 악하고 무서운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지켜내고 살려내는 진정한 애국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님 여러분, 저는 이제 아까 서론에서 나왔던 말, ‘공산주의가 군사독재보다 열배 백배는 더 무섭다’라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이 나라의 청년들에게 다시 한 번 말하고자 합니다.
김정일의 얼굴이 아니라 북한 인민들의 실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북한이 무슨 모델하우스처럼 만들어 놓은 평양시가 아니라 북한사회 전체를 냉정하게 관찰해 보면 정말 그것을 못 깨닫겠습니까?
지금도 북한에는 정부의 꼭두각시 노릇하는 노동신문 하나밖에 없지만, 군사독재 때에는 ‘광고 탄압’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민간인들이 경영하는 신문사들이 수두룩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북한 인민들에게는 그저 김일성 동상 참배가 그들의 신앙생활이요, 현수막에 인쇄된 김정일 사진이 비 맞는다고 눈물 흘리는 것이 그들의 감정표현이요, 금강산의 빼어난 바위마다 ‘김일성 만세’라고 자연 훼손하는 글씨를 대문짝만하게 새겨 넣는 것이 그들의 문화생활 아닙니까?
하지만 군사독재 때 우리가 예배의 자유를 빼앗기거나 팝송을 듣지 못하고 살았습니까?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니 생산 의욕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그 결과 북한 전체의 국민 총생산량을 다 합쳐도 우리나라의 제주도의 총생산량보다 못한 것이 공산독재가 저질러 놓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군사독재 하에 있었을 때에는 그 때문에 배고파진 적이 있었습니까?
오히려 신세대 여러분이 지금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나라가 이처럼 모든 개발도상국가들이 부러워하고 모델로 삼을 정도로 초고속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것이 바로 그 군사독재 시절 때에 이루어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공산주의는 군사독재보다 열 배 백 배 더 무서운 것이다’라는 말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이미 십 수 년 전에 다 끝난 군사독재 가지고서는 지금도 그렇게 이를 갈면서도, 지금 현재까지도 우리 동포 이천만을 이렇게 못살게 굴고 있는 공산독재 정권의 악하고 무서운 것은 왜 그렇게도 모르겠다고 말들 하는 것인지, 오히려 제 쪽에서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제가 그때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서 이제 고쳐서 이 나라의 청년들에게 다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공산주의는 군사독재보다 열배 백배 더 무서운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는 군사독재보다 천배 만배 더 무서운 것’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여러분이 그 공산주의의 무서운 것을 실제로 겪어서 알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이미 아무리 알게 되어도 필요 없는 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때가 될 뿐입니다.
정말 땅을 치고 이를 갈아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그런 때가 오기 전에 지금 미리 꼭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어느 장로님께서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는 공산주의와의 사상 전쟁은 끝난 줄 알았는데 이제부터가 시작이군요.”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이미 이 나라 안에는 이 대한민국을 악한 무신론 독재정권의 영향력 아래로 끌어가려 하는 간첩들과 매국노들, 이 ‘아합의 딸’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 조국을 사랑하고 이 나라를 신앙 자유의 국가로 지켜내어야 하겠다는 시대적 사명감에 투철한 ‘여호사브앗’ 신자들은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 나라의 청년 여러분들, 머지않아서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여러분들이야말로 이 나라를 지켜내고 살려 내어야만 할 장본인들입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바로 여러분들이 미래에도 계속 자유를 누리고 여러분들이 생존권과 신앙을 누리고 살아야 할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라는 것은 공산정권 아래에서는 눈곱만큼이라도 누릴 수 없는 것인 줄을 바로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 영적으로, 육적으로 또한 국가적으로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철칙입니다.
우리의 대한민국이 김정일 독재정권의 종이 되지 않도록 이 무신론 사상, 이 반민족적인 공산주의와 끝까지 싸워 이기고, 조국의 민주주의와 신앙의 자유를 끝내 지켜내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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