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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의 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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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의 우환
설 교 : 조 용 기 목사
말 씀 : 마태복음 12장 43~45절 말씀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서론>
저는 여러분과 함께 ‘빈집의 우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더러운 귀신에 들려서 고생고생 하다가 어찌어찌하여 그 귀신을 내어 쫓을 수가 있었습니다. 귀신이 쫓겨 나가서 밖에 돌아다니니 괴로워 다닐 수가 없습니다. 사람 몸속에 있을 때는 귀신이 평안한데 사람 몸에서 떠나가면 물 없는 사막으로 다니는 거와 같아서 괴로워 견딜 수가 없어서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예 사람의 몸을 자기 집으로 삼고 살았기 때문에 자기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 집이 잘 소재되고 수리되고 정돈 되었으나 주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귀신이 밖에 나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충동해서 데리고 떼를 지어 습격하고 들어와서 그 점령하니 그 집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흉악하게 되더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은 이 세대는 이와 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론>
1. 빈집
여러분 원래부터 빈집이라는 것은 언제나 적막하고 슬픔이 가득한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집이 시골에서 부산으로 모두 이사를 갔습니다. 그때 빨치산의 공격이 하도 심해서 밤마다 안심하고 잘 수가 없습니다. 빨치산이 산에서 내려와서 민가를 습격하고 사람들을 납치해 가고 죽이고 그렇게 하므로 도저히 살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아버님께서 민주인사로써 지목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집은 계속해서 빨치산의 공격을 받아서 된장이니 간장이니 다 훔쳐가고 사람들을 협박하고 해서 동리사람들도 다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우리 집도 견디다 못해서 모두다 부산으로 이사를 갔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만 아래채 집을 지키겠다고 남아 있는데 외로우니까 나만 남겨놓고 갔습니다. 학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화물차가 지나간 바퀴가 눈에 선명히 보이는데 그 바퀴를 보니 눈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니까 너무나 고독했습니다. 안채에 아홉 형제간들이 떠들썩하게 번잡하게 살았는데 저는 오자마자 제일먼저 어머니가 일하시던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엌이 텅 비었습니다. 세간에 아무런 세간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부엌에 불은 지피지 않았고 더 꺼졌습니다. 적막 합니다. 그 마음에 다가오는 고독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길로 마루를 올라가서 안채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 어머님이 기거하시던 안방도 살림이 다 사라지고 아무도 없고 애들과 왁자지껄하게 살던 건너 방도 가니까 책상도 동생들도 아무도 없습니다. 적막이 가져오는 그 마음속에 슬픔이란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저는 마음속에 버림받은 심정을 너무나 크게 느꼈습니다. 책 보따리를 들고 아래채 할아버지, 할머님이 계시는 방에 들어가서 책 보따리를 놓고 난 다음 ‘나는 버림 받았구나! 부모들이 다 동생들은 데리고 가고 나만 내버려 놓았으니 나는 주어온 자식이구나. 나를 버렸구나!’ 그때 그 절망한 감정이 지금까지 마음에 살아있어 지금도 시골에 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조용한 바닷가에나 산장에 가서 쉬라고 해도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것은 그때 받은 마음에 고독의 충격이 너무나 심했기 때문에 고요한 것 싫어요. 조용한 것 싫어요. 복잡하게 좋아요.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난 다음 혼자 남는다는 것의 슬픔은 경험 안 해보면 모릅니다. 그런 경험을 제가 나이가 많이 들고 또 느꼈어요. 자식들이 커서 해외로 유학을 갔을 때 한두 명이 유학을 떠나고 난 다음에 걔들이 살던 방안에 들어가 보고 마음이 얼마나 쓸쓸한지 모르겠어요. 애들이 쓰던 책상을 손으로 만져보고 책을 만져보고 걔들이 신고 다니던 신발도 만져보고 그렇게 방안에서 인터넷을 보고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던 애들이 없어졌습니다. 방이 적막합니다. 그럴 때 마음에 쓰라린 고독을 또다시 흘리고 느끼고 눈물을 흘린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빈집의 적막이란 언제나 슬픔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울증이나 슬픔이 마음속에 다가와서 자살하는 이유도 마음에 주인이 없고 빈집이 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최근에 유명한 탤런트들이 자살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젊은 청춘에 미모를 가지고 앞길이 창창한데 왜 자살하느냐? 외부적으로 볼 때 화려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박수를 받을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주인이 없는 빈집의 고독이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빈집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상의 명예도 있고, 돈도 있고, 사람들의 칭찬도 있을지 몰라도 인간은 외부적인 환경만 가지고 살지 않습니다. 내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자기의 속에 주인이 없는 빈집이 되었을 때 아무리 외부에서 시끌벅적해도 마음의 고독과 슬픔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주인이 없을 때를 잠1: 27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세계 보건기구(WHO)와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2020년 인류를 괴롭힐 3대 질환 중 하나로 우울증을 꼽았는데, 자살한 사람의 80%가 우울증 환자일 정도로 그 위험성이 치명적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작년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사망원인 통계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1만 2천명, 하루에 평균 약 34명이 자살을 하는데 그 34명 자살하는 사람들 중에 70-80%가 우울증으로 말미암아 자살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높아지는 이 자살 상황이 정신보건센터에서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성 우울증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늘어난다고 말했었습니다. 최근 센터의 조사 결과 40대 여성의 약 36%, 50대는 거의 40%, 60대에서는 42%, 70세 이상에서는 거의 절반 이상이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울증이 심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더구나 마음에 빈집이 되었을 때 마음이 주인이 없을 때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독함과 버림받은 심정을 견딜 수가 없어서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빈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거나 사방이 너무 고요하면 공포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을 철학자 스피노자는 '공간공포'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앉아 있어 보십시오. 불안하지요. 더구나 밤에 고요할 때 빈집에 있으면 대단히 마음에 공포심이 있는 것입니다. 빈집은 원래 공포를 가져와요.
저는 어릴 때 학교에 갔다 오면 우리 집은 동리에서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동네 논,뜰을 지나서 떠나면 산언덕을 지나서 오면 오른쪽에 공동묘지가 있어요. 남부공동묘지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곳에 묻혀 있는데 그 공동묘지 가에는 빈집이 한두 채 있어요. 그곳에서는 상여를 짊어지고 오면 그 상여 따라온 모든 기구를 넣어 놓고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울굿불굿 한 것을 많이 걸쳐 놓았었습니다. 저는 학교 갔다 오다가 그 빈집 곁을 지나오면 소름이 끼칩니다. 빈집이 그렇게 겁나는 줄 몰랐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은 겁이 안나요. 세상에 빈집을 만나면 소름이 끼치고 그 집 앞에만 오면 뛰기 시작하는데 내 발걸음에 놀래가지고서 한번 뛰면 내 발걸음 소리에 쫓겨서 더 뛰고 목숨을 바치고 뛴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빈집의 우환, 이것이 얼마나 두려운지 몰라요. 여러분 TV 가끔 보시지요? TV에 빈집이 나오는 것 보시지요? 전설의 고향. 언제나 전설의 고향에 보면 산에 안개가 싹 끼어 있는데 빈집에 문짝은 떨어졌는데 그곳에 나그네가 가다가 쉴 곳이 없어 들어가서 방에 찾아가면 어 머리를 늘어뜨린 귀신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빈집에는 귀신이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빈집에는 언제나 공포심을 가지고 있어요. 오늘날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마음에 주인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빈집들이 길거리에 걸어 다니고 있어요. 시장터에 빈집들이 많이 걸어 다니고 있어요. 빈집들이 길거리에 많이 걸어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겁이 나는 이유는 빈집이 걸어 다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주인이 있는 집이 걸어 다니게 되면 겁이 안 나는데 빈집에서는 무엇이 나올지 모릅니다. 모두다 전설의 고향 같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 만나는 것이 겁이 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단돈 1불에 건물 한 동을 드립니다. 그러나 반드시 본인이 들어와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황폐해져 가는 도시를 되살리기 위해서 수년 전 뉴욕시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광고문인 것입니다. 뉴욕의 일부분의 도시에서 사람들이 다 나가 버리고 빈집이 되니까 단돈 1불을 주고서 들어와서 살아 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파격적인 제안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로 건물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백인들이 살고 있던 곳에 흑인들이 이주해오기 시작하자 백인들이 순식간에 그 지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도시는 텅 비게 되고 사람들이 살지 않는 빈 집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사 오는 사람도 없자 부랑자들과 노숙자들이 빈 집을 자신들의 거처로 삼아 생활하며 결국 그 도시는 마약과 범죄가 들끓는 지옥처럼 변하고 만 것입니다. 빈집에는 별도리 없이 부랑자들이나 노숙자들이나 마약중독자들이나 강도들이나 이러한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오는 것입니다. 빈집의 우환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 빈집을 단돈 1달러에 들어와서 전세로 살라고 해도 사람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빈집은 범죄의 온상이 되어 사회와 국가에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일곱 귀신이 거하는 집
그런데 성경에는 빈집으로만 남아 있으면 좋겠는데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빈집에는 그대로 오래 두면은 반드시 일곱 귀신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한 마리의 귀신이 나가서 일곱 귀신을 데려왔다는 것은 일곱이란 온전한 숫자를 말하기 때문에 온갖 귀신을 다 데리고 온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워 놓으면 주인이 들어와 있지 아니하면 그곳에 한두 가지 귀신만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말 하는 귀신이 들어오는가 하면은 추한 귀신, 악한 귀신, 도둑질하는 귀신, 음란한 귀신, 방탕한 귀신, 술 취하는 귀신, 도박하는 귀신, 살인 귀신 온갖 귀신이 다 들어와서 난장판을 치기 때문에 그 집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황폐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없는 집은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옛날에 동리에 내려가면서 동리에 주인 없는 집을 가끔 보았는데 반드시 동리에 주인 없는 집에 가면 비행청소년들이 그 집에 들러서 그곳에서 몰래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고, 도박도 하고, 싸움질도 하고 또 빈집에 가면 그 온 동네의 개도 들어와 있고, 고양이도 들어와서 똥을 싸고 빈대 벼룩 온갖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그런 빈집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저는 어릴 때 가끔 그 빈집을 지나오면서 몸서리치던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인이 들어있지 않으면 그 빈집에 오만가지 귀신들이 다 들어오는 것입니다.
롬1:28~32에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또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보십시오. 오만가지 귀신이 다 들어왔지 않습니까?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오늘날 이 세계에 왜 전쟁과 전쟁소문이 나며 가난과 질병과 고통이 많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을 때는 이 세계는 질서와 평안이 있고 아름답고 귀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주인이 없이 자기가 주인이 되겠다고 태어났는데 사람은 스스로 주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집입니다. 하나님 와서 거하는 집이 되든지, 귀신이 와서 거하는 집이 되든지, 사람은 집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가 주인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주인 되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모시고 믿고 의지하고 살지 아니하고 주인을 배반하고 등 돌리고 뛰어 나와서 이 세계가 주인 없는 세계가 되고 난 다음부터 이렇게 큰 혼란이 다가온 것입니다. 주인이 없으니까 마귀와 귀신들이 완전히 날뛰죠. 온갖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 5:19에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인 없으니까 악한 자가 와서 온 세상을 점령했지요. 전쟁과 질병과 가난과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렘 6:7에 “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드러내니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들리며 질병과 살상이 내 앞에 계속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과 민족,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는 어려움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주인이 없는 이 세상이 얼마나 가난하지 보십시오.
제프리 D. 삭스가 지은 「빈곤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그는 인류의 1/6인 약 10억 명이 '절대 빈곤'의 사람들이고, 15억 명의 사람들은 '빈곤한 사람들'에 처해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빈곤한 사람들'은 안전한 식수와 제대로 된 화장실 같은 기초적인 편의시설이 없으며 만성적인 재정적 어려움이 일상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절대빈곤의 사람들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말라위는 1인당 하루 소득이 50센트, 1인당 연간 소득이 180달러, 우리 돈으로 약 18만원에 불과할 뿐입니다. 대량 질병과 기근, 기상이변 등으로 기초생활조차 힘이 듭니다. 세계은행의 추산에 따르면 2001년 당시 11억 명이 하루 1.08달러, 우리 돈으로 1000원 정도 수준 이하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주인 없는 세계는 이처럼 가난과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 없는 사회와 국가의 혼란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류 역사는 언제나 전쟁 속에서 시작하고 전쟁으로 계속되고 전쟁으로 끝났었습니다. 가까이 제2차 세계대전을 보십시오. 유럽에 히틀러가 일어나서 유럽 전역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유럽의 문화가 완전히 파괴되고 잿더미가 된 것입니다. 주인이 없는 곳에 악이 들어와서 악한 자가 일곱 귀신을 데리고 날뛰니 그 형편이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아시아도 한가지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일어나서 우리 한국을 강점하고 만주와 중국을 점령하고 온 동남아시아에 살상을 가져오고 고통을 가져오지 않습니까? 오늘날도 정신대에 나갔던 할머니들이 정의를 실천해 달라, 2차 대전은 끝났지만 우리의 생애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그 슬픔을 호소하며 미국 하원에 증언한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주인 없는 세계, 마귀가 주인으로 들어와서 귀신들이 날뛰니 그 참혹한 결과는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공산주의가 일어나서 온 세계에 수억 만 명을 죽였습니다. 공산주의의 해악은 형언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낡은 공산주의 교재에 잡힌 북한과 머리를 맞대고 있으므로 모든 일에 우리는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기도할 때 나라가 임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서 임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나라가 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나의 가슴에 우리 가정에 우리 사회, 국가에 세계에 임하여 주시옵소서. 주인 없는 세상 속에 우리가 더 살 수 없습니다.
암5:10~13에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 도다.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주인이 없는 곳에 정의와 인도와 질서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간절히 바라야 될 것은 좋은 주인이 오셔서 우리를 점령하고 우리를 돌보아 주시기를 간절히 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좋은 주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2천년 전에 하나님께서 주인 없이 황폐화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참 주인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참 목자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참 주인, 참 목자가 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죄악을 청산하여 마귀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 것입니다. 나쁜 주인이 이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데 이를 축출하기 위해서 인간의 죄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나쁜 마귀와 귀신들이 사람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죄에 볼모로 잡혀 있는 것입니다. 이 죄 값을 청산하지 않고는 인류를 해방시킬수가 없습니다. 나쁜 마귀와 귀신들을 축출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하나님 앞에서 벌을 받아 몸 찢고 피를 흘려 죄악의 대가를 지불하므로 보혈로 말미암아 마귀를 내어 쫓고 우리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게 된 것입니다.

3. 참 주인이 계신 집
주인이 들어와서 집을 차지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주인은 들어오면 집을 잘 소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너진 것을 다 수리하고 정리하고 집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습니까? 언제나 아무리 좋은 집도 세를 줘놓으면 세집에 살다가 세든 사람이 나갈 때 쯤 집에 가면 파벽풍창입니다. 세를 든 사람은 자기 집이 아니기 때문에 그 집을 잘 돌보지 않습니다. 집이 무너져 가도 돈 들여서 고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벽이 뚫어져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문짝이 삐뚤어 져도 내버려 놓는 것입니다.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고 나갈 것이므로 수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들어오면 그 집을 잘 소재하고 수리하고 정리하고 아름답게 미화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생이 아무리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파괴 되었을지라도 주인인 주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성령으로 임재 하여 계시면 우리는 완전히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팽개쳐 놓은 집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인은 자기 살집을 언제나 소재하고 수리하고 정리하고 정돈하고 미화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엡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주인이 들어오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소재하고 수리하고 정리하고 미화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의롭게 거룩하게 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돼요.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의롭고 거룩하게 될 수가 없어요.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 보면 한 사람이 어느 집에 갔는데 그 집에 먼지가 자욱한데 청소를 한다고 빗자루를 들고 막 먼지를 쓰는데 쓸수록 먼지가 더 나서 온 집에 먼지가 자욱하고 또 쓸면 먼지가 떨어지니 빗자루로 쓰니까 또 공중에 올라가서 돌고 온 집이 먼지도 뽀얗고 벽도 천정도 마루도 안방도 먼지투성이입니다. 빗자루로 열심히 쓸어도 안돼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빗자루로 이렇게 열심히 쓰는데 점점 먼지는 더 공중에 꽉 들어차고 집안이 먼지투성이인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아! 이것은 율법주의자를 말한다. 율법이란 것은 아무리 그것을 가지고 사람을 청소하려고 해도 점점 더 먼지가 나고 더러워지고 공기만 나빠지고 율법주의로는 절대로 사람이 깨끗하게 안 된다.” 그 다음 옆방에 가니까 방이 아주 깨끗한데 소재하는 사람을 보니까 물을 쫙 뿌려놓고 난 다음 빗자루로 싹 쓰니까 깨끗하게 청소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물으니까 “이 물은 성령의 은혜를 말한다. 성령의 은혜가 와서 빗자루로 쓸어버리면 먼지가 다 날라가 버리고 집이 깨끗하게 된다. 사람이 깨끗하게 되는 것은 율법의 빗자루로 쓸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써 되는 것이다.” 맞았습니다. 여러분 가을이 되어서 나무에 잎사귀를 떨어뜨리려고 장대를 들고 나무를 때려 보세요. 나무 가지만 부러지고 껍데기는 벗겨지고 나무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청소하기가 싫으니까 나무 잎사귀가 한 두 잎 떨어지지 청소하기 싫으니까 한꺼번에 청소하겠다고 나무를 흔들고 장대로 때려도 잎사귀가 다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룻저녁에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불고 난 다음에 아침에 일어나니까 나무가 옷을 벗고 잎사귀가 싹 떨어져서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잎사귀가 다 떨어졌습니까? 비가 오니까 비를 맞으니까 나무에서 잎사귀가 다 떨어진 것입니다. 흔들어도 안 떨어지고 장대로 때려도 안 떨어지는데 비가 오니까 다 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흔들고 율법의 장대로 때리고 교훈해도 나무 잎사귀처럼 나쁜 습관과 죄악이 떨어지지 않는데 성령의 단비가 오면 싹 다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않는데 나의 신으로 말미암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를 죄악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율법적인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은혜가 역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해방시켜 주고 항상 우리와 함께 있으므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들어오시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행복과 보화가 있는 곳으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주인이 있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주인이 없으면 그렇게 되지 않아요.
고전 2:9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깜짝하는 은혜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도록 우리에게 채워 주시는 것이 주인이 하시는 역사인 것입니다.
엡3:17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인이 계시면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넘쳐 나지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만 빈집 교인이 있어요. 그 빈집 교인은 형식과 의식적으로 교회에 나오지만 속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빈집 교인인 것입니다. 그런 빈집 교인은 왔다 갔다 하다가 마귀에게 잡혀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교인은 별장교인입니다. 별장은 여러분 1년에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별장입니다. 교회에 크리스마스 때, 부활절 때, 특별한 계절에나 한번 빙긋 들어와 보고 나가는 별장교인, 이 사람들도 빈집 교인인 것입니다. 언제나 마귀의 유혹과 시험에 빠져 넘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떠한 사람은 주말 교인이 있는 것입니다. 주말에 한번 씩 찾아가는 주말교인, 주말에 교회에 한번 와보고 그 다음에는 성경과 바이 바이 하는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기도는 한 번도 안하고 성경도 한 번도 안 읽다가 주일 오면 “벌써 주일이냐?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아 따 주일이 왜 그렇게 빨리 다가 오냐”그러면서 주말에 한번 왔다가는 이러한 교인도 언제나 마귀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교인이 진짜 교인이냐. 상주교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주님께서 마음속에 와서 계시는 주인이 계시는 교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성령으로 깨끗이 소재해 주시고 우리를 수리해 주시고 정리해 주시고 우리 속에 보화로써 가득하게 채워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좋은 하나님이시라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놓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일을 일으켜 주는 것입니다. 용서와 의로 채워 주시고 거룩함과 성령 충만으로 채워 주시고 치료로 수리해 주시고 아브라함의 축복으로 채워 주시고 영생복락의 희망으로 넘치게 해주셔서 새로 주인이 있는 집은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넘치는 집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인을 모시지 않는 집의 우환이란 얼마나 처절한 것입니까? 주인이 있으면 여러분 귀신들이 못 들어옵니다. 지키잖아요. 주인이 집을 지키는 것입니다. 울타리를 치고 혹은 특별히 장치를 해서 도적이 못 들어오도록 주인은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인 되신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밤의 놀램과 낮의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의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 사자들을 명하사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인이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주인이 우리를 주인의 소유물로 삼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계시면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므로 주님께서 당신의 소유물을 안 돌봐 줄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성령이 와서 거하시고 천사들을 보내어 우리를 둘러 진쳐주는 것입니다.
요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히1:14에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고 말한 것입니다.
백화점 왕 페니(J.C. Penny)는 시골 침례교회 목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떠나고 난 다음에 신앙을 멀리했습니다. 많은 시련을 겪어 아내를 둘이나 사별했습니다. 게다가 미국을 강타한 경제공황은 백화점사업과 자선사업의 선두주자를 꿈꾸던 그의 꿈을 무산시켰습니다. 그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약물에 의지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고 항상 유서를 써서 포켓에 넣어 놓고 다녔습니다. 마음에 주인이 없으니까 마음의 슬픔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언제 죽을지 모르므로 유서를 포켓에 써놓고 다닌 것입니다. 주인 없는 사람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을 지나다가 복도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과 기도 소리에 이끌려 소리 나는 곳으로 가보니 바로 병원 예배실 이었습니다. 거기에 어떤 분이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그 찬송을 부르고 있는데 그 찬송을 듣고 그 옆에 꿇어 앉아 있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 마음속이 서서히 지옥이 물러가고 천국이 다가오는 느낌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혼자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아내를 두 사람이나 사별하고 사업을 망가뜨리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여 절망에 처한 그가 주님께서 지킨다는 그 찬송을 듣고 난 다음에 마음속에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다시 모셔 들이고 어두움이 떠나가고 햇빛이 마음속에 비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제기하여 사업에 크게 성공했고 그 후 96살까지 왕성한 사업을 하며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입니다. 우리의 창조주 되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 우리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큰 은혜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찬송 한번 불러 보십시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시91편에 있는 말씀 그대로인 것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주님이 주인이 되시면 우리를 그 날개 아래 병아리를 품는 암탉처럼 우리를 품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함이 없이 안연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 모시지 않은 집은 빈집이 되고 빈집을 오래 그대로 두면 일곱 귀신이 들어와서 난장판을 치고 파벽풍창을 만들고 폐허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곱 귀신이 들어온 집은 우환, 질병, 고통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기쁨과 평안과 행복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아버지를 섬기며 성령의 은혜 가운데 주인 있는 집이 되는 것이 바로 그 축복인 것입니다. 빈집의 우환을 당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빈집이 되어서 우왕좌왕하고 혹은 빈집에 일곱 귀신이 들어와서 황폐하게 된 심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진실한 기쁨과 소망과 사랑을 갖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한 것은 주인이 들어오는 것이고 그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성령의 능력으로 빈집을 소재하고 예수님의 은혜로 수리하고 정리, 정돈해서 보화로 가득채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우리들이 되어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든지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와서 주인으로 집을 점령하든지 그렇지 빈집은 오래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학자 벵겔은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중립지대는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중립은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도 믿지 아니하고 마귀도 섬기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거짓말입니다. 그런 빈집은 오래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찾아 오셔서 주님을 모시면 우리의 생애 속에 새로운 영광이 다가오고 태양이 비취고 소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은 의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는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신에 병든 자는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는 부요하고 축복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천국의 부활과 영생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새롭게 변화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그리스도를 우리 구주로 모셔 들이고 그리스도를 영광 돌리고 예배 드려야 될 것인 것입니다.
찬송가 324장 우리 다같이 손바닥 치면서 힘차게 부릅시다.
1.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 죄를 속하려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2. 보라 성자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인자 높이 들렸네 모시어 들이세
헛된 교만 버리세 우리 구주 모시고 영원 복락 누리세 모시어 들이세
3. 겸손한자 찾도다. 모시어 들이세 하늘에서 부르네 모시어 들이세
좋은 자리 드리고 주실 은혜 구하세 하늘나라 세우세 모시어 들이세
4. 주여 내가 믿으니 오소서 오소서 주여 환영 하오니 오소서 오소서.
생명 길로 이끄사 슬픔 위로 하시고 진리 알게 하소서 오소서 오소서. 아멘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저에게로 들어가 저와 더불어 먹고 저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4시간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인생을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여러분을 지으시고 여러분을 피로써 값 주고 사주신 참된 주인이요, 마귀와 귀신은 거짓된 도적이요, 마귀와 귀신에게 속아 살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참주인 되신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우리를 찾아오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버림받은 삶을 살고 빈집이 되어 일곱 귀신이 들어와서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보혈로 우리 죄악을 청산하시고 참 주인으로 오셔서 우리를 소재해 주시고 수리해 주시고 정리, 정돈해 주시고 보화로 채워 주시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참주인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섬기는 기쁨을 우리가 항상 누리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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