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본문
강정태 목사 [성경본문] 마 5:13
사람의 존재가치는 창조자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완벽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창조물을 말할 때 함께 거론되는 것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만물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했고, 피조물인 인간을 비롯한 자연만물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타락은 창조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말에 귀를 기우리다가 결국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어 부활하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롭게 변화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거듭남’이라고 했습니다. 거듭남이란 그리스도인의 출발입니다. 성도라는 것은 교회에 등록하는 순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영접하는 순간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오늘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 일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입니다. 소금에는 음식을 짜게 하는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성도는 구별된 존재입니다.
성도(聖徒)란 거룩한 무리라는 뜻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존재입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란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로 세상의 많은 무리가운데 불러 모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바울은 엡1:3-5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선택 교리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무능력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고나 노력의 어떤 행위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100%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단 1%의 인간의 행위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인간을 가리켜 구별된 존재라고 합니다. 구별된 존재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은 죄가 왕 노릇 하는 곳입니다. 성도는 죄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라는 공간에서 활동합니다. 이것은 마치 미국사람이 한국에 와서 활동을 하지만 그의 신분이 미국인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불신자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살아갑니다. 문화와 환경이라는 공간에서 같이 살아가지만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구별된 성도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고 했습니다.
왕자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 아무리 거지의 삶을 산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왕자입니다. 비록 우리의 환경이 화려하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환경이 우리의 신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신분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대통령이나 재벌가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가지면 어떤 환경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요 영광입니다. 요1:12-13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넘어져도 성도요, 실패하여도 변함없는 성도입니다. 환경이 우리의 신분을 흔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며 그분의 기쁨이 되고자 힘써 노력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우리의 삶입니다.
2. 성도는 세상에 맛을 내는 존재입니다.
성도를 구별된 존재라고 했는데 이것은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인 우리들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맛을 내는 일에 요긴하게 쓰임 받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것은 세상을 향해 맛을 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맛을 낸다는 것은 세상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맛을 바꿀 새로운 맛을 말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부정과 부패, 거짓과 미움이 세상을 더욱 어둡게 합니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을 검증해보면 깨끗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서 자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세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어둡고 맛을 잃어버린 세상을 향해 맛을 내는 소금 같은 존재가 되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짠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금이 짠맛을 가지지 못하면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어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힌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세상을 향해 맛을 내고 변화의 주체가 되는 존재입니다.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게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불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기까지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이 전하는 복음과 성도들의 삶을 보고 그들이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잘못된 행실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 문을 닫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성도들은 철저하게 양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접해야 합니다. 그들과 똑같은 행위로는 그들에게 소금의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가치가 바로 이웃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웃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기독교가 들어가는 곳에는 항상 섬김과 사랑이 동반되어 들어갑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 전에 구제를 하고, 병원과 학교를 세워 이들에게 사랑을 먼저 베풉니다. 이들은 선교사들의 사랑을 먼저 접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1884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들어오기 1년전에 알렌이라는 선교사가 궁중 주치의가 되어 병원을 짓고 간접적인 복음을 전했습니다. 선교사들은 병원뿐만 아니라 학교를 지어 우리나라 백성들을 깨우쳤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복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어 오늘의 한국교회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소금의 생명이 짠맛이듯이, 성도의 생명도 세상을 변화시킬 맛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만 영적으로 자랄 수 있고, 세상을 향해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세상은 맛을 갈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저것에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종교에 인생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참 맛이라고 만족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우리가 소금으로서의 참된 맛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 사람들에게 맛을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 맛에 취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귀한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맛을 잃은 소금 같이 하나님 앞에 아무 쓸모없는 존재들로 가득합니다. 세상의 권세와 부귀가 있고, 다양한 재능이 있어도 생명이 없는 존재는 하나님 앞에 모두가 불행한 존재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생명이 없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맛을 가지고 있는 오늘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15%의 염분이 바닷물을 짜게 하듯이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든 것은 10%로 되지 않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나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나 한 사람이 우리 가족을, 나 한 사람이 주변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은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제자들과 오늘 우리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고 했습니다. 소금으로서 예수의 사랑으로 우리의 이웃들에게 참된 맛을 내어 그들을 변화시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