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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종 화 목사님의 또 다른 글 (225개) ..more
"성령의 네트워크" / 2007년 6월 10일 (답변: 0개) 2007.06.11



구약의 말씀 / 이사야서 55:1-3
서신서의 말씀 / 에베소서 2:17-22
복음서의 말씀 / 누가복음서 14:16-24


이렇게 아름다운 찬양이 울려 퍼지는 것을 축제라 이름 합니다. 오늘 좋은 축제가 예배에서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가면서 가정에도 축제가 있는 가정을 주옵소서. 민족에게도 축제가 있는 민족을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백성 이스라엘아 목마르지 않은 물은 내가 주는 물을 먹어야 한다. 내가 쉬지 않고 솟아나는 샘이므로 육도 영도 함께 사는 샘이므로 내가 주는 물을 먹어야 목마르지 않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도주와 젖이 없으면 못삽니다. 우리가 밥 먹고 사는 거와 같습니다. 포도주와 젖을 사라. 아무리 젖을 먹어도 포도주 마셔도 목마릅니다. 배고픕니다. 하나님인 내가 포도주와 젖의 원천이므로 나를 먹어라. 나를 먹고 나를 마시는 것이 바로 축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사야의 입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진실로 목마르지 않을 수 있고 참으로 배고프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와 맺었던 계약을 확실히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 계약은 이미 내가 다윗에게 했고 다윗을 통해서 그대 민족들에게 약속을 베풀었는데 내가 다시 상기시키마.

하나님의 약속 내용은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맺으실 때 두 문장입니다. 첫째 문장. 나는 그대들의 하나님이고 그대들은 나의 백성이다. 이 두 마디입니다. 나는 그대들의 하나님 그대들은 나의 백성. 이 두 가지 사실만 확인하면 그대들은 목마르지 않다. 그대들은 배고프지 않다. 왜? 나는 약속을 지키므로.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목마르고 배고픈 현상은 보통 일상에서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층과 백성의 지도자들 그리고 이 사회를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 나라를 잃은 체 포로로 끌려가 있습니다.

바빌론이라 이름 하는 이방국가에 포로로 끌려가 있습니다. 집도 없습니다. 가족도 흩어졌습니다. 자식도 어디 있는지 볼 수 없습니다. 전쟁이 나서 천지 사방으로 흩어졌던 우리 과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안식일 날, 금과 옥처럼 지키는 안식일 날 예배할 성전도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갈 수도 없고 예루살렘이 완전히 바빌론한테 패망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라는 형식으로 찾고 싶으나 하나님을 찾을 장소가 없고, 그리고 가족을 만날 수도 없고, 외롭고 서럽고 슬프고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이스라엘보고 어떻게 하란 얘기입니까?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나를 찾고 싶으면 목마르지 않고 싶으면 나를 찾아라. 내가 모세를 통해서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인도했듯이 그대들의 백성을 다시 예배 할 수 있는 장소로 고향땅으로 가족이 있는 땅으로 인도할 수 있다. 단, 조건입니다. 약속을 회복하라.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약속을 위반하는 것은 사람이지 나는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말하는데 나와 약속을 갱신하자.

다윗에게 내가 확실히 베푼 은혜를 상기하라. 그러면 내가 약속을 지켜주마. 하나님하고 저희들하고 살아가면서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저희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약속 지키는 관계라고 보시면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약속을 지키기를 원 하시냐면, 다른 얘기 말고 하나님 당신은 내 삶의 규율이십니다.

내가 어려워도 내가 기뻐도 내가 슬퍼도 당신이 내 주인이십니다. 이 고백을 할 수 있으면 그걸 가리켜서 기도라 합니다. 하나님의 답변은 단 한가지입니다. 너는 내 사람이다. 내 백성이다. 운명을 같이 한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해도 안 들어 주실 때는 무슨 고백이 빠져서 그런가 하면 내가 말씀 할 테니 들어 보십시오 하고 아무리 많이 얘기를 해도 당신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 몸과 영혼은 당신께 다 달려있습니다 하는 일차적인 고백이 없어서 하나님은 못 듣습니다.

혹시 기도 응답이 없다고 판단되시는 분은 그 고백했는지 반성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하여 말씀하실 때 실제 할 말이 없으시걸랑 하나님 당신 내 주인이십니다. 알아서 하십시오. 그 얘기가 차라리 낫습니다. 수시간, 수십 시간 기도하는 것보다 그 말씀 한마디가 하나님 귀에는 잘 들립니다.

하나님은 우리한테 잡다한 얘기를 주시는 게 아니라 너는 내 백성이다. 네가 가는 곳에 내가 가고 나 가는 곳에 너도 함께 있자. 함께 있는 하나님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에 대한 응답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답변만 구하면서 하나님한테 해야 할 약속의 확인, 당신이 우리 국가에 이 민족에 나 자신에 우리 가정에 주인 이십니다, 하는 그 약속은 안하십니까? 그 얘기는 안하고 왜 받기만 하려합니까? 받기만 좋아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확인하지 않고 받기만 좋아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 은혜가 때로는 이루어지지만 그런 은혜는 아주 헐값의 은혜입니다. 그런 은혜는 은혜라고 말아야 됩니다. 그것을 여러 신학자들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만 특별히 누가 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아주 구구절절이 감동받을 이 얘기를 보네파라는 사람이 이 얘기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은혜 받고 싶습니까? 한 가지 확인하고 은혜 받으십시오. 드리고 받으십시오. 드리지 않고 확인하지 않고 받는 은혜는 그런 은혜를 값싼 은혜. 천박한 은혜. 오늘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목마른 자 마시게 합니다. 돈이 없는 자 다 오십시오. 포도주와 젖을 풍성하게 드리리다. 단 한 가지 하나님이 주인이신 것만 확인하십시오. 그 주인은 어떻게 하십니까?

오늘 이 말씀과 누가복음에 있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잔치 비유와 어쩌면 그렇게 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축제의 예수님 축제의 하나님 이란 말씀을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는데 오늘 설명을 보면 어느 주인이 잔치 하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랬더니 초청에 응하지 않은 여러 가지 얘기가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땅을 사가지고 제 일이 급해서 당신 축제에 못가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 몇 마리 샀는데 그냥 둘 수 없어 못가겠습니다. 어제 전 장가갔는데 아내를 혼자 두고 갈수가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야기는 그 핑계 하나하나가 우리 일상생활의 단면들입니다.

제가 바빠서 사업 때문에 공부 때문에 가정일 때문에 공무로 사무로. 하나님이 베푸신 축제의 장에 제가 갈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 오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의 일상에서 나오는 핑계는 이 셋만이 아닐 겁니다. 예수님 말씀은 나는 초청을 받은 자가 핑계를 대도 나는 축제를 계획한대로 벌려야 한다.

하나님의 축제는 인간의 응답과 상관없이 반듯이 이루어진다. 절대로 하나님은 축제를 혼자 즐기시지는 않는다. 초청을 받지 않은 병자들 이방인들. 도대체 초청장을 받을 수가 없는 신분의 사람들이라도 데려다가 하나님이 계획하고 개설한 축제는 반듯이 열려야 한다.

다만 이 축제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만큼 축복을 못 받는 사람들 이므로 축제는 열려야 한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공의의 축제를 하나님이 여셨는데 여러 가지 핑계로 내가 공의의 축제에 갈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가 아닌 사람을 데리고 가도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축제를 벌이는데 응하지 않은 사람은 당신들 책임이고 하나님은 누구라도 데려다가 사랑이 무엇인지 보이는 축제를 반듯이 벌이십니다. 오지 않는 사람들의 변은 뭡니까? 나는 내가 바빠서요.

내 하는 일 때문에요. 마누라 때문에요. 남편 때문에요. 사실은 나 때문입니다. 내가 중심이 된 내 일상을 내가 계속 단절시키고 당신이 베푸시는 은총의 축제에 올 수가 없어서 내가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오늘 주인의 잔치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축제의 장은 일상을 버리고 안식일은 특수한 날이므로 버리고 여기 와서 경건하게 예배하자 그게 아닙니다.

오늘 주일이지요, 성일이지요, 안식일지요. 오늘이 뭔지 아십니까? 어제까지 살았던 일상을 집에 두고 와서 오늘은 거룩하게 예배하자가 아닙니다. 예배에 올 때 성전에 올 때 나한테 올 때 축제의 장에 올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짐을 놓고 오지 말고 가지고 와라. 일상에 아픔을 집에 두지 말고 가지고 와라.

여기에 와서 나하고 같이 울자. 같이 웃자. 그거 아닙니까? 왜 두고 오십니까? 일상 따로 오늘 축제 따로 가 아닙니다. 오늘은 뭐하는 날이냐 하면 그대 혼자 애써 일했던 것을 오늘은 나와 함께 일상을 까놓고 뒤집어놓고 분석하고 울음이 있는지 웃음이 있는지 보고 나와 함께 셈하자. 그러고 나서 짐을 홀로지지 말고 내가 함께 지어주마.

예수님 말씀은 축제 따로 일상 따로 결혼한 생활 따로 집짓는 것 따로 가 아니구요 모든 일상 속에 내가 함께 있었으므로 오늘 특수한 잔칫날에도 함께 있겠다. 나와 함께 즐기며 오늘 좀 즐기자. 왜 즐기자는 축제에 대답을 안 합니까?

오늘의 축제의 주인은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은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너희를 백성 되기 위한 나 자신을 베푸는 나를 주는 나를 희생하는 사랑의 축제를 벌이고 싶다. 오늘 속에 그대들 각자의 삶을 일상을 생존을 실존을 다 가지고서 나와함께 즐기자.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말은요 하나님 따로 우리 따로 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걸 함께 가져옵시다. 가져오셨습니까? 생각 속에라도 갖다 놓읍시다. 이곳이 우리 모든 것을 갖다 놓고 서로 얘기하며 대화하며 찬송으로 기도로 대화하며 서로 셈하는 시간입니다.

여기 거부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거부하시는데 하나님의 사랑의 분노를 받습니다. 여기 거부하시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데려다가 이 자리에 갖다 놓고 자기 축제를 지내십니다. 나 홀로 지내. 그게 아니고 우리함께 축제에서.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시면서 사랑하는 여러분 축제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제입니다. 베푸는 사람의 행복이 뭔지 아십니까?

받는 사람의 행복보다 베푸는 사람의 행복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제가 쉬운 얘기하나 들어보려고 합니다. 아동심리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논 여러 가지 대책 중에 공통점이 이런 게 있습니다.

혹시 애를 낳아서 기를 때 어떤 아니는 활발하고 붙임성도 있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내성적이고 때로는 자폐증 있는 애를 포함해서 활동 잘 안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리적으로 조사결과 어떻게 자녀를 기르면 아이가 가장 활발하고 자신감이 있고, 적극적이고 이렇게 변할 수 있나. 그 대책 중에요 제일 좋은 대책을 읽고 감동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축제의 주인이 되게 하여라. 애 생일 때 제발 많은 친구들 불러다가 잔치를 그 아이 이름으로 베풀어 주어라. 아이 교육시킨다고 데리고 다니면서 여기도 구경시키고 저기도 구경시키고 많은 경험시키는 것도 좋다. 그런데 돌아다니면 돌아다녀볼수록 축제의 부분이 되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주인이 되는 일은 부족합니다. 아이로 하여금 오늘은 내 생일잔치, 우리 어머니가 도와줬지만 내가 초청하고 내가 베푸는 축제를 하면 이미 리더십을 양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진실로 자식을 사랑하면 많이 베풀어라.

자식의 이름으로 부모와 함께. 저는 그 얘기를 읽으면서요, 여러분 자식 사랑하시지요. 혹시 자식의 이름으로 많은 축제를 도와준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 자식이 주인이 되는 일을 많이 도와주신 적 있으십니까. 축제의 주최자가 되라고 해요.

그 속에서 사랑하는 친구도 오고 미워하는 친구도 오고 다 와서 같이 포도주와 젖을 먹고 마시고 감사도하고 노래도 부르고 하면서 우리 자식이 한번 나가서 내가 축제를 베푼 주인의 입장이 되는 게 너무 고맙다. 이렇게 얘기하게 하자. 이것 말고 아이를 주도적 인간으로 주체적 인간으로 기르기에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제가 이걸 보고 축제는 살린다. 축제의 참석도 감사하다. 축제를 베풀면 훨씬 더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하나님은 누구시냐고 물어봤더니 하나님은 우리한테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축제를 개설하고 우리한테 공유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실까. 우리가 응대할 때 얼마나 기쁘고 우리로 하여금 그대들도 축제의 주인이 되라고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사실을 보면서 축제는 진실로 사랑의 축제요 감사의 축제요 그러기 때문에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축제의 장소가 바로 오늘과 같은 예배의 축제요 그리고 성스러운 날에 축제라고 믿습니다. 예수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일상을 버리고 오늘 특별한 날에 오라는 게 아닙니다. 일상이 오늘 이곳에 오면 그대들이 고백했던 주인인 하나님과 함께 일상의 보따리 풀어놓고 셈하고 울고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그러면서 일상이 오늘 여기서 익어가는 날입니다. 일상이 여기서 재조정되는 날입니다.

예배는 다른 게 아니라 생활의 성숙이요 삶의 완성이요 삶이 완성이 되면 우리는 기쁜 삶의 축제를 오늘 드릴수가 있습니다. 기도의 형식으로 찬송의 형식으로 결단의 형식으로 헌금과 헌신의 형식으로. 하나님은 축제를 베풀고 자기도 즐겁지만 함께 즐기자고 얘기하십니다. 함께 즐기십시다.

저는 그래서 예배의 축제가 너무 좋습니다. 그리도 핑계대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과 함께 즐겨보십시오. 왜 혼자만 즐기십니까? 축제는 같이 즐기는 겁니다. 축제는 주인이 되는 겁니다. 왜 객이 되려 하십니까? 핑계. 대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입니다. 핑계는 필요 없다. 나와의 계약위반이다. 나와 계약 갱신하고 싶으면 내 축제 받아라.

그리고 와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나와 함께 즐기자. 오늘 이 말씀을 에베소서 이렇게 엮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축제가 있는 곳에는 성령이 오셔서 축제에 동참한 모든 사람들의 피가 통하듯이 엮어주십니다.

성령이 하는 일은 다른 게 아니라 은총을 주시되 엮어주십니다. 하나님과 먼저 엮어 주시고 그리고 자기 자신과 엮어주시고 거기 동참한 모든 사람을 엮어주시는 분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엮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성전이라 그럽니다.

그런데 그 성전에 오는 사람은 움직이고 노래하고 찬송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성전이 됩니다. 오늘 저는 성령이 여러분 진실로 엮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엮음을 당해야 됩니다. 축제의 주인이 되셔야 됩니다. 근데 우리가 하나님께 아무리 간구를 해도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을 때 아까 제가 말했듯이 한 가지만 확인합시다.

내가 하나님을 당신이 주인입니다 하고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못 알아들을 말을 제가 했기 때문에 내가 내 자신이 모를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뭐라고 했는데 제가 왜 그 말을 했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는 말을 한 제가 하나님한테 기도란 이름으로 뱉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받아들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자기 스스로 보기에도 올바른 말을 해야 하나님이 올바른 말로 받아들입니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도 못하면서 하나님과 대화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내 가족과도 대화 못하면서 크신 하나님과 어떻게 대화 합니까. 내 동료와 대화를 못하고 커뮤니케이션 못하면서 하나님과 기도란 이름으로 어떻게 대화 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방식이 있습니다. 당신은 내 하나님이고 나는 당신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서로 대화합니다. 어디서 대화하고 싶습니까. 축제의 장에 오셔서 대화합니다. 축제는 어디서 벌어집니까? 오늘 같은 예배에서 벌어집니다. 예배 때만 벌어집니까? 아니요 나가서 하루하루 일상사는 모든 삶의 현장에 축제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으로 계신 곳마다 축제가 있어야 됩니다.

축제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집니까. 오늘 말씀입니다. 축제는 십자가라는 바탕을 지고 이루어진다. 십자가에 사랑과 헌신이 있는 곳 마다 하나님은 축제를 벌이십니다. 그 말씀은 병들어 죽기 직전에 앞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가셔서 병든 사람을 위로하고 병이 낫게 하는 축제를 벌이십니다.

오라고 했더니 바빠서 못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죽어가는 현장에도 하나님은 십자가란 이름으로 가서 축제를 벌이고 싶어 하십니다. 죽을망정 죽은 다음에 죽음을 이긴 부활이 있다고 그렇게 하나님은 말씀하고 싶어서 죽음의 현장에도 축제가 있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은 십자가란 이름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위로와 자비를 베풀고 싶은 곳에 십자가의 축제가 있고 그 축제의 목적은 십자가를 이긴 부활을 경험 시키려고 하나님이 축제에 초청합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불의 때문에 허덕이는 곳. 탄압과 압박 때문에 좌절과 분노가 있는 곳. 어디든지 하나님은 십자가의 이름으로 축제를 벌이십니다. 우리보고 오라고 하십니다.

거부하면 전혀 딴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분명히 십자가의 보혈로 사해주시고 부활의 축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에 가면 그 현장이 어디든지 우린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과거 잘못된 예를 청산하자고 많이 얘기합니다.

과거 청산을 많이 하는데 진실로 과거 청산이 잘되려면 법칙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축제의 현장에서 과거청산 합시다. 보복과 보복의 악순환이 아니라 다 보따리 풀어놓고 진실을 말하고 십자가의 현장에서 다 용서 받고 현장에서 다 진실을 고백한 다음에 우리는 미래를 향해서 삽니다.

부활의 비전을 향해서 우리 살아갑니다. 그런 목적을 놓고 우린 우리 진실을 말합시다. 그래야 사는 거 아닙니까. 제가 말하는 중에 투투 대주교가 south africa에 진실화회위원회 얘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백인 여러분 그 동안 독재했던 여러분 잡혔던 여러분 진실을 말하십시오. 진실입니다. 단 조건은 보복은 없습니다. 진실을 밝히고 그 대신에 한 가지만 약속 주십시오. 미래는 같이 하겠다고. 이것이 화해와 진실이 있는 목적이었습니다. 나중에 만델라 대통령 얘기도 그렇게 했더니 진실이 수많이 밝혀지고 화해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거기 보복은 끼어들 장소가 없습니다.

민족사회에 있어서나 국가사회에 있어서 우리는 반듯이 죄 된 과거를 집고 넘어가야 되지만 그러나 부활이라 이름 하는 미래의 비전이 있습니다. 미래의 비전이 만들어지는 십자가 아래서의 축제를 진실을 얘기하십시다.

국가문제 뿐 아니라 우리 개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제가 죄 된 과거를 벗고 새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십자가와 부활의 축제를 저한테 주십시오.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응하시면 부활의 영광을 새 생명의 영광을 선물로 받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말씀. 살아 움직이는 성전. 성령이 늘 함께 하시면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부활축제의 현장인 성전을 만들어 갈수 있습니다.

오늘도 축제구요. 예배를 마치고 나면 일상 속에서 축제가 여러분의 삶의 방식이 되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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