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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권의 의미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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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권의 의미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박한응목사 [성경본문] 창세기25:27-34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주님 앞에 나온 성도 여러분에게 신령하신 하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 중의 한 토막입니다. 우리가 통상 생각하기를 쌍둥이는 외형적인 모습이 닮아서 누가 형이고 누가 아우인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운 모습을 생각하는데 얼굴 모습이 전혀 닮지 않은 쌍둥이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형상을 의학적으로 보면 서로가 모습이 닮은 쌍둥이를 1란성 쌍둥이라고 하고, 서로가 닮지 않은 쌍둥이는 2란성 쌍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 쌍둥이는 외모나 성격이 전혀 다른 특이한 쌍둥이입니다. 아마도 2란성 쌍둥이 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에서는 외모도 거칠게 생겼으며 성격도 자유분방한 자기 주의적이며 낙천적인 성격이었던 반면에 야곱은 모습도 곱살하게 생겼으며 성격 또한 내성적이어서 집안일을 잘 돌보아 어머니 리브가의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단 몇 초간의 차이로서 형과 아우라는 도저히 바꿔질 수 없는 운명에 대하여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들 형제 사이는 반목과 불신의 사이가 되었고 시기와 질투가 계속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유대인들에게는 장자는 다른 형제들보다 월등한 대우를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43장에 보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그의 형들을 만났을 때 차서대로 앉혔다고 하였습니다. 신21장에는 장자는 유산의 기업을 줄 때 갑절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신21:17)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고 하였고 또 장자는 왕권을 이어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대하21:3)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므로 왕위를 주었더니…”

그래서 에서와 야곱 두 형제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질투와 반목이 계속되었고 또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저들은 원망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리브가는 집안일은 돌보지 않고 사냥이나 즐기며 쏘다니는 에서보다는 집안일을 잘 돌보는 야곱에게 동정과 위로를 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상이 결국에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야곱과 에서의 장자권에 얽힌 내용을 통하여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함께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먼저 야곱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야곱을 생각하면 야곱은 약삭빠르고 교활하며 집념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 자체가 “발꿈치를 잡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또 다른 의미로서는 거짓말쟁이, 사기꾼, 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왜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느냐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자기가 먼저 세상에 나오려고 하다가 에서가 먼저 나가니까 못나가게 발을 잡고 늘어지다가 같이 나오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간에 자기가 장자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늘 불평과 원망이 잠재해 있었으며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꾸어 볼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야곱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보다는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운명으로 체념해 버리지 않고 어떻게든지 환경과 여건을 탈피해 보려고 노력하고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을 하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없는 것에 대하여 체념해 버리는 것보다는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활이 가난한 사람이 생각하기를 ‘나는 가난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고 체념해 버린다면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는 그렇게 살다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을 이기고 어떻게든지 일어서 보려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들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믿음이 없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생각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장자로 태어났다가 장자권을 빼앗긴 사람도 많이 있고 장자가 아니면서도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1) 장자이면서도 장자권을 박탈당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서가 그랬습니다.
② 야곱의 12명의 아들들 중에 르우벤이 장자였지만 그는 서모 빌하를 범한 죄로 인하여 장자권을 박탈당하였습니다.
③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이새에게는 엘리압과 아비나답과 삼마를 비롯하여 여덟 명의 아들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막내인 다윗이 위로 일곱 명의 형들을 제치고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④ 다윗 왕에게는 여러 명의 왕자들이 있었습니다. 암몬, 압살롬, 길르압, 아도니야, 등등 그런데 첫째, 둘째, 셋째, 왕자가 다 죽자 아도니야가 자신이 왕권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사전 준비를 하였으나, 그의 아비 다윗 왕은 왕권을 솔로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2) 장자가 아니면서도 장자권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①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인 야곱이 그랬습니다.
② 야곱의 12명의 아들들 중에 넷째인 유다가 장자권을 이어 받았는데 야곱의 12아들들 중에 첫째인 르우벤은 그의 서모인 빌하를 범하여 장자권을 박탈당하였고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는 창34장에 보면 야곱이 하란에서 돌아와 세겜 땅에서 살 때에 그 땅의 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이 야곱이 딸 디나를 강간하여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할례를 행하면 당신네들과 함께 통혼을 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세겜의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은 후에 공격을 하여 모두 죽여서 피를 흘린 죄로 장자의 기업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넷째인 유다가 장자권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③ 솔로몬은 다윗 왕의 아들이지만 밧세바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에게는 여러 명의 이복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그 형들을 모두 제치고 왕위에 오르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운명에 맡기지 마십시오. 운명을 탓하면서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모하며 간구하고 노력하면 운명은 바꿔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운명아! 내가 간다! 길을 비켜라!! 담대하게 운명을 깨뜨려야 합니다. <아 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나왔을 때에 홍해가 가로막았습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기병대가 추격을 해옵니다. 그때에 백성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한탄하고 이제는 죽었다고 차라리 우리를 애굽에 그대로 놔두었으면 신역은 고되더라도 실컷 먹고 살 수가 있었는데 우리를 이끌어 내어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였으니 차라리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기면서 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을 향해 외칩니다.
(출14:13-14)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다를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 때 이튿날 새벽에 홍해가 갈라져 길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먹을 것이 없었을 때에도, 마실 물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은 저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반석에서 샘물을 내어 주셨습니다.


2. 에서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에서는 어떤 사람입니까?
에서는 외모도 거칠게 생겼으며 성격도 활달하며 난폭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집안일을 동생에게 맡겨 놓고 자신은 사냥을 즐기면서 낙천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에서를 그의 부친 이삭은 신임하고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에서에게 결정적인 잘못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장자권을 동생 야곱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결정적인 잘못이 무엇입니까?

(1)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지쳐서 돌아온 에서는 배고픔을 못 이겨서 야곱의 요구대로 장자의 명분을 주기로 하고 죽 한 그릇을 얻어먹었습니다.
이 상황을 한 번 추리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야곱에게 죽을 달라고 했을 때 야곱은 그 기회를 잃지 않고 장자의 명분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에서는 이 때 배고픔과 장자의 명분 사이에서 많이 갈등과 고민을 하였을 것입니다.
배고픔을 면키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포기할 것인가? 장자의 명분을 지키기 위해서 배고픔을 참아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갈등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항상 다가오고 있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현실을 포기해야 하느냐 아니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믿음을 배신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에서는 재빨리 결론을 내렸습니다. 야곱의 요구대로 장자의 명분을 판다고 해서 당장 장자의 서열이 바꿔지는 것도 아닙니다. 또 부친 되는 이삭이 절대로 용납을 하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천륜을 어떻게 하랴 하는 결론에 이르자 우선 배를 채우고 보자는 데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후에도 에서는 계속해서 장자 노릇을 했고 야곱보고 형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또 호적이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도 에서와 비슷한 경우를 많이 겪고 있습니다. 주일날 꼭 가야할 데가 있으면 순간적으로 갈등을 하게 됩니다. 주일을 지키느냐 아니면 하루쯤 빠지면 어떠랴 고 쉽게 생각하고 그냥 범하고 맙니다.

(2) 우리는 에서의 성품 중에 기회주의적이며 완악함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 성도들 중에서도 이와 같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주일은 다음 주일도 있으니 오늘은 내 볼 일을 보자는 기회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은 우리 영적 장자인 성도들이 이 구원받은 장자의 명분을 순간적으로 포기할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야곱을 보세요. 그가 일평생 장자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은 얼마나 믿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까?
좋은 예로써 집사가 되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집사가 되고 싶어 하는데 정작 집사가 된 사람들은 그 직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것을 망각하고 태만하고 게으르고 경홀히 여기고 있습니까?
그리고 권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권사가 되고 싶어 하는데 정작 권사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은 그 직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을 알지 못하고 나태하고 태만히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해야 할 신앙생활의 의무도 하지 못하면서 되려고 욕심만 부려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경홀히 여기는 자는 에서와 같이 빼앗기게 됩니다. 있는 것, 받은 것도 모두 빼앗기고 어두움에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마25:28-30)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렘48:10)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

(3) 오늘의 우리들도 결단을 잘 해야 합니다.

에서와 같이 소홀히 생각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신앙적인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신자들의 흠이 있다면 너무나 쉽게 믿음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쉽게 받은바 은혜를 저버리고 세상과 짝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지 않고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어떻게 해서 받은 것인데 그 영생의 구원을 그리도 쉽게 배반한단 말입니까?
에서와 같이 순간적으로 결정하였다가는 평생 가슴 치며 회개하여도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게 됩니다.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히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마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 하나님은 항상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축복도 주십니다.

아무리 좋은 여건과 환경에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그 여건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그 가진 것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그 좋은 예로써 마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달란트를 맡기고 간 주인이 돌아와서 회계할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며 칭찬한 사람이 있고,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며 책망한 종도 있습니다. 결과는 책망 받은 종은 갖은것도 빼앗기고 어두움에 쫓겨나서 슬피 울게 됩니다.
그 반면에 어떤 악조건에서도 노력하고 사모하며 감사할 때에 운명은 바뀌고 새로운 길이 열려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마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시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주시지만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렘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제 우리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축복도 사모하고, 건강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결과적으로 에서는 장자권의 명분을 잃었습니다. 축복도 잃었습니다. 그 반면에 야곱은 그렇게도 소망하던 장자권의 축복을 얻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에서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을 받았지만 그 장자의 명분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당한 모습을 보여 준 것이며 그 반대로 야곱은, 비록 이방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장자권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장자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얻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면서, 받은바 장자의 기업을 대대로 자손 천대까지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장자의 명분은 곧 축복의 명분이요, 하늘나라의 기업을 얻는 명분입니다. 이 장자권을 우리는 생명 걸고 지켜야 합니다.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에서와 같이 우리의 이 신앙을 경홀히 여기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서, 하늘나라의 기업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아 멘>
[박한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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