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뜻이 있었습니다/ 행28:1~10/2003년 8월 24일 설교 > 설교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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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뜻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28:1~10 2003년 8월 24일 주일낮설교 28: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8:2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28:3 바울이 한 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28:4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28: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28:6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28:7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28: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28: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28: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설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는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노예장수들에게 팔리게 된 경우를 보세요. 아버지의 심부름, 형들의 죽일려는 생각, 구덩이에 빠진 요셉을 4째 유다가 애굽으로 가는 이스마엘 장사꾼에게 노예로 판일, 그리고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집에 팔린 일, 감옥에 갇힌 일, 이런 모든 일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뭐하고 계시는가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국무총리가 되어 자기를 해하려던 형들과 가족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를 왕궁에서 자라게 하시고 40세가 되어 쓸만할 때 살인을 저지르게 하여 광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되게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이해가 안되나 40년이 지난 후, 모세가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모습과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서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자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3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갔던 바울은 그곳에서 체포당하고 고소당하여 재판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이미 그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간 것입니다. 그는 그 재판석 상에서 총독에게도, 아그립바 왕에게도, 그리고 헤롯 왕에게도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일부러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합니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살기위해서가 아니고 재판이 불리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그 로마행 항로가 순탄치 않습니다. 시기상으로 때가 아니기에 출항치 말았어야 할 배가 선장과 선주의 욕심 때문에 무리한 항해를 합니다. 결국 엄청난 풍랑과 바람으로 선박이 좌초 직전까지 갑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이해가 안됩니다. 그런데 그 배가 섬에 도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되어진 일을 살펴보니 그 하나님의 섭리가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 배를 그리로 인도하셨을까요? 1. 바울의 權威를 세우기 위해서 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종입니다.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택한 그릇입니다. 그런데 그가 죄수의 몸으로 백부장의 감시와 군사들의 호송을 받고 끌려갑니다. 그 모습 속에서는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로마 政府下에서는 죄수는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바울에게는 로마 시민권이 있었기에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그를 호송하는 백부장에게 그의 생명이 맡겨진 상태입니다. 백부장이 판단하기에 도망치려고 한다 판단되면 죽일수도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 풍랑이 닥칩니다. 배가 침몰 직전까지 갑니다. 사람들은 살기위해 배의 물건들을 바다에 버립니다. 생명처럼 여겼던 재물이 풍랑이 닥치자 오히려 자기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도구가 되기에 다 버리는 것입니다. 며칠씩 음식도 못 먹고 살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그 상황이 되자 바울이 일어나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행전27장 21절부터 26절을 보세요. 27: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7: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7: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7: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7:26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결국 바울 일행은 그 풍랑과 危機속에서 오히려 그 배의 승객 276명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는 지도자가 됩니다. 죄수가 백성의 지도자로 인정을 받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는 그 약속을 그대로 전하고 그의 말대로 상황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줍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실까요? 바울의 권위를 높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종인데 권위가 없고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 복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멜리데 섬에 도착하였을 때, 그 지역 토인들이 그들을 향해 특별한 동정을 베풀어 줍니다. 비가 오고 날이 차기에 불을 피우고 그들을 영접합니다. 하나님은 토인들의 마음속에 동정의 마음, 긍휼의 마음을 심어주어 영접하여 살게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은 또 한번 바울을 높여 줍니다. 바울이 불을 피우다가 나뭇가지 속에 있던 독사에게 물리게 됩니다. 모든 섬사람들이 그가 바다에서는 살았으나 이제는 죽을 것이라 예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특별 보호로 죽지 않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 섬사람들은 그 사건을 통해 바울을 신처럼 떠받들게 되고 바울의 복음전도자의 권위가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그 섬의 최고 높은 사람 <보불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죽게 되자 바울이 안수 기도하여 낫게 합니다. 이것도 바울이 갖고 있는 능력이라기보다 하나님이 그를 높여주기 위해 행하신 기적입니다. 결국 섬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문이 났고 그들은 바울에게 나와서 고침을 받고 복음을 듣게 되고 결국 예수를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왜 이런 사건을 통해 바울의 권위를 높이시고 사람들에게 바울을 들어내실까요? 그것은 바울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바울을 통해 복음을 전하시고 그를 통해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도자가 권위가 없다면 복음도 권위가 없게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선지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그것을 보고 그를 높이고 그를 대접하는 그 사람이 받는 복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종들의 권위를 업신여기거나 무시하고 합당치 않게 대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복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종들이 겉모습으로 볼품없고 하찮아 보여도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의 권위를 높여 놓으십니다. 그런 이유는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서 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그 배를 그 섬으로 인도했을까요? 2. 그 섬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멜리데 섬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몇 명이 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 배에 타 265명과 그 섬에 살고 있는 사람 중 구원을 얻어야 할 사람이 있기에 그 배를 그리로 거쳐 가게 한 것입니다. 만약 풍랑이 불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섬사람들은 평생 복음을 듣지도. 믿지도, 구원 얻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그 땅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섬은 지중해의 대양 중앙 시칠리아 섬의 남쪽 약 95㎞지점에 있는 섬인데, 오늘날은 `몰타'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크기는 강화도(293㎢)보다 약간 큰 섬이고 이 섬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무역의 중계지(中繼地)로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 섬이었습니다. 그 섬에 가면 지금도 <바울灣>이라는 지역이 있답니다. 바울 일행이 그곳에 도착한 사건을 기념하여 그렇게 명명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 일행의 도착 사건은 그 섬 역사에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 된 課程도 어찌 보면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신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 1883년 신학교 모임에서 “조선 민족”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Albert라는 목사가 조선에 대해 소개하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지금 조선은 1,300만 민족이 복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채, 가난과 질병과 학대 속에서 쓰러져 가고 있습니다. 그 나라가 드디어 작년에 門戶를 열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 조선 민족을 위해 선교사로 갈 것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알버트 목사님의 呼訴力있는 메시지는 많은 신학생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언더우드는 그 당시 인도 선교사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선교에 대한 강한 도전을 받았으나, 조선으로 갈 생각을 안했습니다. 그는 인도로 선교사로 가기 위해 인도 말을 배웠는데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로 잘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들 이럴까? 헌신을 맹세한 사람들이 왜들 다 미온적이고 부정적일까? 복음의 처녀지, 주님이 기다리시는 그 땅으로 갈 선교사가 이렇게도 없다는 말인가?"
그때 돌연히 강력한 반문의 소리가 그의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너는 왜 못 가느냐?"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나 자신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주님의 부르심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렇다 왜 나는 못 가는가?" 그는 단 한번도 복음을 못 들어 본 미전도 종족인 조선민족에게 선교의 우선순위가 있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한번의 희생을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동안 인도를 위해 인도 말을 배우고 준비해 온 것들을, 모두 조선 선교를 위해 포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어려운 결단을 하고, 조선을 선교지로 정하고 나서 교회와 선교부에 조선 선교사로 가기로 요청을 하였지만, 두 번씩이나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조선 선교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기도하면서 우여 곡절 끝에 장로교 본부회의에서 조선 선교사로 임명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미전도 종족인, 우리 민족을 가슴에 품고 설레는 마음으로, 장도의 길에 올랐습니다. 한달 여 걸리는 긴 항해 끝에, 일본을 거쳐 1885년 4월 2일 부산 앞 바다에 잠시 정박하여, 조선 땅과 조선민족을 처음으로 바라보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 부산을 떠나 삼일 후인, 4월 5일에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날을 한국교회는 최초로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날로 정하였습니다. 우연히도 그날은 부활절 아침이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118년 한국 기독교사의 멋진 장을 연 최초의 선교사가 되는 영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 교회를 시작으로 교회개척사역을 하였고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시작으로 하는 교육사업을 통해서 한국의 젊은이들을 깨워나갔습니다.
그가 우리나라를 위해 이룬 업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언더우드 같은, 귀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고, 그 결과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살 수 있는 축복의 삶을 허락 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우연처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은총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3. 지금도 하나님은 뜻을 가지고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당신의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라 우리는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찌 보면 우연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이 돕지 않는 것처럼 침묵하고 계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럴때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심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바울의 배를 보세요. 바울은 항해 하지 말자고 했으나 그 배는 출항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생각을 무시한 것 같이 보입니다. 또, 배는 14일씩이나 바람에 휩쓸리며 항로를 잃고 다녔습니다. 그때 바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응답은 없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침묵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배가 침몰직전까지 갔던 것도, 또, 멜리데 섬에 도착케 하신 것도 뜻이 있었습니다. 또, 토인들이 적대시하여 그들을 죽일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그들을 동정하여 선대한 것도 뜻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독사에 물려 당연히 죽어야 했는데 기적적으로 산 것도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높이시고 그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듣게 하십니다. 결국 백성들은 바울의 그 말을 듣고 믿어 구원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어떤 일을 이루실까요? 과거 바울을 쓰셨듯이 오늘날 우리도 구원사역에 들어 쓰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통해 누구를, 어떻게 구원하실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주변 인물들도 구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 자녀, 부모, 형제도 여러분을 통해 구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을 통해, 가정을 통해, 후손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갖고 살면 됩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방인인 로마를 위해 기도하고 꿈을 갖고 있을 때 쓰셨듯이 여러분도 그렇게 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 일에 여러분이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높이실 것이고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권세를 세울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지나고 나서 깨닫지 마시고 미리 알고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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