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증거하지 말라 (출 20:16)
본문
최초의 거짓말은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했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3:4-5)입니다. 뱀을 이용한 사탄의 간교한 거짓말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무한한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지게 했습니다. 거짓을 몰랐던 인간에게 거짓이 침투되어 거짓의 존재로 변하여, 결국 인간은 하나님과 사탄의 말에서 진리와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므로 거짓의 종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사탄을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8:44)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십계명 아홉 번째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을 상고하면서 거짓의 출발과, 그 정체를, 거짓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질 피해를 생각하고, 거짓을 이길 수 있는 최선을 방법이 무엇인가 함께 생각하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거짓은 인류를 멸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물리적인 죄가 폭력이라면, 입술로 짓는 대부분의 죄는 거짓말, 혹은 거짓 증거입니다. 폭력적인 죄가 신체를 상하게 한다면, 거짓 증거의 죄는 정신적인 피해와 상처를 안겨줍니다. 거짓 증거의 범위는 자신과 이웃, 그리고 하나님으로 이어집니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양심의 마비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거짓말과 거짓 증거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속이는 자가 이웃을 속이고, 결국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이웃의 인격에 상처를 주고, 이웃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거짓증거를 할 경우, 이웃에게는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와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왕상 21장에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아합 왕과 왕후 이세벨이 나옵니다. 아합의 별궁 옆에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이 있었는데 아합은 그 포도원을 자신의 별궁으로 확장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나봇에게 정식으로 포도원을 자신에게 팔든지 아니면 다른 포도원과 교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한마디로 거절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파별로 분배된 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팔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일로 아합이 근심하자 왕후 이세벨이 계락을 꾸며 결국은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거짓 증인들을 세워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게 했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은 진노하여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어 아합과 그의 가족들에게 재앙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예수님도 제사장들이 거짓증인들을 내세워 법정에서 증거하게 했고(마26:59-61), 스데반이나 바울도 유대인들에게 거짓 증거를 받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짓는 우리의 죄는 불순종과 거짓입니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이지만, 거짓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거나 행동이 없는 신앙고백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거짓된 신앙이 무엇이겠습니까? 행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된 신앙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바나바라는 사람이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지고 오자 자신들도 팥을 팔아 사도들에게 바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밭을 팔아 돈 얼마를 감추고 사도들에게 가지고 갔습니다. 영성이 충만한 베드로가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5:3-4)고 했습니다. 아나니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삽비라 역시 사도들에게 그 돈이 전부라고 거짓말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을 속인 것입니다.
거짓과 거짓증거는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을 불행하게 합니다. 특별히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거짓과 거짓증거를 멀리해야 합니다. 거짓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하얀 거짓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짓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며, 사탄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불행과 다툼과 원망은 거짓된 말에서 시작됩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에게 다양한 상황에서 거짓말과 거짓증거를 하도록 유혹합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거짓말과 거짓증거를 하도록 하는 근본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입니다. 요한은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요1서 2:22)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거짓말과 거짓증거를 하게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멸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2. 거짓은 진리의 거울 앞에서만 회복할 수 있습니다.
거짓의 종말은 심판에 있습니다. 계21:8에 최후의 심판을 받는 자들을 열거하기를“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거짓말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을 말합니다. 불신은 자신에게 거짓증거 할 뿐 아니라 이웃에게까지 거짓증거 하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 앞에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결국 거짓의 정체를 폭로하고, 진리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마치 감추었던 보물을 발견하는 것이 진리요,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행하는 거짓말이나 거짓증거에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짓은 하나님에게 나온 것이 아니라 거짓의 원조인 마귀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거짓과 거짓증거를 통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 유익보다 불이익이 더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유익이 있을지라도 이웃에게는 큰 상처를 안겨주는 것입니다. 그것의 피해가 결국은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불량식품을 만들거나, 정량을 속이는 상행위, 이웃의 정직을 파괴하는 거짓증거는 결국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이 서로간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사회를 무너뜨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말할 때에 이 땅에서의 하나님나라와 죽어서 가는 하나님나라로 구분합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이루어집니다. 거짓으로 얼룩진 세상은 마귀의 권세아래입니다. 이 거짓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부정과 불의, 다툼과 전쟁으로 불행을 부추깁니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외칠 때 한 첫 번째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했습니다. 왜 인간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그것은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아 거짓된 진리에 순종하며 거짓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진리는 참된 진리의 거울 앞에서만 그 실체가 폭로되는 것입니다. 마치 어두움에 있을 때에는 자신의 더러운 모습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밝은 곳이나 거울 앞에서는 자신의 허물이 공개되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 회개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거울 앞에 우리의 더러운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곧 거짓의 아비 마귀의 권세아래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의 아홉 번째 계명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거짓과는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거짓증거는 이웃의 행복을 빼앗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금했던 것입니다. 나봇의 고귀한 신앙을 짖밟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세벨이 아닙니까? 이세벨은 이방신 바알을 왕궁으로 가지고 왔던 왕후였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왕궁에서 기거하게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척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말씀대로 살려는 나봇을 사람들을 선동하여 거짓증거하게 하여 죽이게 했습니다.
지금도 마귀는 거짓된 진리를 앞세워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협합니다.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된 진리를 참된 진리로 믿게 합니다. 또한 거짓된 진리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혹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차단하려고 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는 거짓된 진리를 폭로하고 참된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삶의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정직해야 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며, 이웃의 행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수 7장에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공동체가 위기를 맞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간의 죄가 무엇입니까? 진리인 여리고 성의 물건은 다 여호와께 바치라는 것을 왜곡합니다. 아름다운 물건을 몰래 감추어 두는 것이 내게 유익하다는 거짓된 진리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아간 한 사람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36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고,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를 저하시켰던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는 교회 안에 거짓된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할례를 행하여야만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연약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혼돈하게 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가리켜 거짓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거짓에서 자유할 수 있는 길은 진리의 거울 앞에 날마다 자신의 삶을 비추는 것입니다. 진리의 거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 앞에 온전히 서있으면 거짓된 진리는 폭로되고, 거짓된 진리가 우리의 신앙을 좀먹게 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거울 앞에서 서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거짓된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거울 앞에 날마다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결한 삶을 위해 말씀 앞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우리가 다른 것은 우리는 죄와 허물을 날마다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 성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성결한 삶이 무엇입니까? 거짓과 거짓증거가 없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성결한 삶으로 자신은 물론 이웃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는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강정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