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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건축 그 이후(느헤미야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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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건축 그 이후(느헤미야7;1~4)




존 러스킨(J.Ruskin)은 「건축의 일곱가지 등대」란 책에서 으레 건축재료가 되어야 할 철근, 시멘트, 나무, 흙들이 건축에서 중요한 재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정의 했습니다. “건축 재료란 그런 것이 아니라 진리, 미, 힘, 희생, 순종, 노동, 기억이다” 무슨 말입니까? 건축은 외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축물에 배어있는 설계자 혹은 건축자의 인격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즉 성전건축의 외형인 건물만 잘 지었다고 자랑하거나 내세우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외형만 그럴듯하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대단한 시설을 갖췄다 하더라도 외형을 지탱할만한 내면의 구조나 재료가 바로 세워지지 않았거나 사용되지 않았다면 위험한 건물이 되어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도 학력이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대단한 지식을 갖췄다 하더라도 외형을 지탱할만한 인격이나 삶의 철학 그리고 깊은 영성이 없다면 언제 몰락할지 모릅니다.

본문말씀에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이 서원했던 예루살렘 성은 수없는 시련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가운데 완공됩니다. 힘들었던 만큼 완성한 보람과 기쁨이 무엇보다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성벽완공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성벽 완공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함인가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집을 구입하는 것보다 그 집을 통해서 어떤 가정이 되는 가가 더 중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기에 느헤미야의 성벽완공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작은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중요와 화려함을 지탱해주는 더 본질적인 내면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느헤미야의 이러한 태도는 바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하는 부분입니다.



첫째,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하나님의 진정하신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본문의 느헤미야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1차 목표는 예루살렘 성을 쌓는 일이었으나 궁극적인 목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열방을 향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것이었습니다. 본문1절 말씀을 보면 성이 건축된 뒤에 문짝을 닫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뒤에도 내적인 완성과 내실을 위해 느헤미야는 만족감과 성취감에 안주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6장 19절 후반부에서 “도미야가 항상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을 통해 느헤미야가 아직 끝나지 않은 하나님의 비전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작은 성공과 성취 후에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과 목표를 모르고 스스로 정한 뜻과 목표를 이루고 모든 것을 이룬 것 마냥 착각하고 거기서 멈추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가 중심이 되어 본인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루었다고 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자만과 교만에 빠집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교회도 성전건축을 남들보다 화려하고 웅장하고 크게 지었다고 우리의 목적한 바를 다 한 냥 착각하면 안됩니다. 이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비전과 꿈과 목표를 찾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살이가 귀찮아서 출애굽했지만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갈렙은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 벗어나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비전은 하나님의 택한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막상 애굽을 떠나고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생활은 애굽의 종살이 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모두 도중 하차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비전과 꿈을 가지고 목표를 향하여 가는 이들은 실패하지 않았고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교회의 비전과 꿈은 ‘행복과 소망이 넘치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 오직 성령안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헌신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며 역사와 세상 앞에 예수의 가치관으로 무장된 지도자를 파송하고 21c의 비전과 역사적 사명을 다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교회를 통한 궁극적인 목적과 사명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 가정이든 직장이든 학교든 그곳이 어디든 어두움의 영들이 주관하고 있는 이 땅을 하나님나라로 바꾸어 가야할 놀라운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선교사의 영성을 가져야 합니다. 보냄받은 자의 영성을 훈련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처소로 파송 받으면 선교사는 가정을 새롭게 합니다. 직장과 교회를 새롭게 하고 사회를 새롭게 합니다. 학교를 새롭게 합니다. 선교사의 영성을 가진 참된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마다 새롭게 변화되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받은 복을 관리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복을 관리하고 유지하며 누리는 것은 훨씬 중요합니다. 건강의 복을 받았지만 엉뚱하게 사용해서 잃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또 물질의 축복을 주셨지만 그 때문에 자녀들이 서로 다투고 나누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축복이 오히려 저주가 되는 상황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쌓게 하신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 1절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의 관리자들을 세웁니다.

성벽공사를 마친 다음에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사람들을 세웠습니다.” 문지기를 세운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전에는 예루살렘에 외부사람들이 마음대로 출입하고 노략질했습니다. 그런데 성을 쌓고 문지기를 세웠다는 것은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비전을 소유한자로서 삶의 현장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사람은 세속적인 풍조나 생각이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게 문지기를 세워야 합니다. 포르노를 보고 있으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수 없습니다. 세상의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가면 안됩니다. 내게 영적인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받은 복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드는 습관과 문화 도덕과 윤리가 들어오려고 하면 문지기를 세워 막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아내와 남편이 그리고 자녀가 지켜야할 윤리 규범을 무시하면 깨집니다. 울타리를 세워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쉽게 잃어버리지 않도록 간직하고 관리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삼각관계로 얽힌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으면 안됩니다. 병든 가치관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게 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게 만들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도록 유혹하는 마귀를 막아내도록 문지기를 세워야 합니다.




2) 2절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 성읍의 책임자를 세웠습니다.

하나니와 하나냐입니다. 하나니와 하나냐를 성읍의 책임자로 세운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성실해서 백성들을 잘 보살피기 때문입니다. 느5:15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토색한 귀족들과 전에 있었던 총독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을 돌아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며 느헤미야와 같은 관점과 비전을 가지고 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삼았던 것입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니 느헤미야는 축복을 관리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3) 3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읍을 보호하는 수칙을 세웁니다.

“해가 뜨고 난후에 성문을 열고 해가 있을 때 성문을 다는 것입니다.” 보통해가 뜰 때 성문을 열고 해가 질 때 닫는데 아직 이스라엘 백성이 힘이 없고 약하기 때문에 낮에 해가 떠있는 동안 성문을 열고 닫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순서에 따라 성을 지키는데 자기 집이 아니라 반대편 집을 지키게 합니다. 이는 성을 지키는 원칙이었습니다. 영적인 축복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예배에 참석하지도 기도하지도 않으면서 또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지켜야할 영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마음대로 살면 당장 편할지 모르지만 중요하고 아름다움 유산은 가질 수도 없고 결코 일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과 특권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삶의 원칙들을 간직하셔야 됩니다. 놀고먹고, 자고 쉬면서, 기도는 언제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유지하는 지혜를 가지십시오. 그럼으로써 받은 축복을 지켜 나가십시오. 그리해야 오래오래 복을 지속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성도들에게 잃어버린 사명을 일깨워줄만한 영성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역사를 바로 세워갈 수 있습니다.

4절과 5절 말씀을 함께 읽어 봅시다.

성전건축은 마쳤지만 성읍에 거할 거민이 없었습니다. 성안에 사람이 없으면 성읍으로 역할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주신축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5절에 하나님이 마음을 감동케 했다고 되어 있는데 원어로는 하나님께서 생각을 넣어 주셨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귀환자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족보를 찾아서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과 숫자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8절 이하에 나오는 명단입니다. 그리고 11장에 가서보면 느헤미야는 그들을 예루살렘성안으로 이주시킵니다. 그들이 성읍으로 몰려와서 성전을 짓기 위해 현대 돈으로 500만불에 해당하는 금은 보화를 내놓습니다. 사람들이 헌신하며 가진 소유를 내놓으니 진정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맞습니다. 느헤미야는 잠자던 그들의 사명을 일깨웠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전을 건축하여 마쳤지만 성전에서 예배 드릴 사람이 적습니다. 빈자리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전이 비어있으면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할수 없게 됩니다. 예배 때마다 성전을 가득 가득 차야 합니다. 빈다리가 없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처럼 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느헤미야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생각을 넣어 주신것처럼 성령님이 우리들의 마음을 감동 해주시고 전도의 생각을 넣어주셔서 전도를 할 수 있도록 성령충만 받아야 합니다. 전도 대상자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시대의 사명을 일깨워 주어야하고 민족과 세계관을 심어 주어 잠자는 영혼들을 깨워 사명을 깨워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살기 바빠서 혹은 교회에 와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라하신 사명과 명령을 떠난 자들이 계십니까? 살기 바빠서 기도의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까? 생활에 바빠서 찬양과 감사의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까? 삶이 고달프다고 찬양하는 자리 영광의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까? 좀더 편하게 살고 좀더 나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힘들어도 하라고 하신 사명의 자리를 떠나 있다면 이제 돌아오셔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현대 교회들마다 마이너스 성장에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교회 이 사명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신랑 신부도 하나이듯이 교회도 하나입니다. 지키고 서있어야 할 그 자리가 때로는 고달프고 힘들다 해도 하나님의 교회를 kq로 세워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할 일이 있기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기도하라고 하는 이유는 육신의 힘으로 가지 못하는 기도의 자리에 강제로라도 안내하기 위함입니다. 새 생명과 은혜로운 교회생활 그리고 제자훈련 등을 통해서 잃어버린 사명을 다시 찾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새로운 자세와 각오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자리로 옮겨 기도하라 하시면 기도의 자리로 가십시오. 주님께서 전도의 생활에 들어가라 하셨으니 생활과 환경을 전도의 환경으로 바꾸어 가십시오. 주님께서 헌신의 자리에 있기를 원하시면 헌신의 자리로 가십시오. 그리고 내가 서있는 곳이 비록 험난하고 어려운 곳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원하셔서 인도하신 곳이라면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오심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사역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성장 부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로 세워가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 안에서 기뻐하며 헌신하며 영광스런 찬미와 제사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예수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형제들아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빌3:12,14) [강헌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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