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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예수님의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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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예수님의 사역 행 1:1-5
사도행전은 교회성장의 이상적 모델을 제공해 줍니다. 사도행전 교회 (초대교회)는 수적 성장, 질적 성장이 잘 조화를 이룬 교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도행전 교회 (초대교회)가 완전한 지상교회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 교회도 이 세상에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며, 또한 앞으로도 존재할 어떤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문제가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도 우리들 현대 교회들처럼 약하고, 부족하며, 죄인인 인간들이 모인 신앙공동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에는 현대교회들에 비해 한 가지 현저하게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고 연구할 때마다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현대교회들 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요소가 그 교회 안에는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3P의 조화를 잘 이룬 교회였습니다. 그 3P는 영어의 대문자 P로 시작되는 세 개의 단어로 되어 있는데, 1) Paraclete (성령), 2) People (사람, 특히 평신도들), 그리고 3) Prayer (기도)입니다. 이 세 가지는 사도행전 교회 (초대교회)를 특징짓는 아주 괄목할만한 요소들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사도행전 전체를 마치 천을 짜는 것처럼, 종횡으로 연결되어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다른 말로 1) 성령행전, 2) 평신도행전, 그리고 3) 기도행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3P는 또 다른 P, 곧 ‘Power’ (능력)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즉 3P가 잘 조화를 이루는 교회는 자연적으로 또 다른 P, 곧 ‘능력’ (Power)이 있고 나타나는 교회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어느 기관이나 조직과 달리, 신적인 기관이요 조직이기 때문에, 사람의 능력이나 물리적인 능력보다는 ‘신적인 능력’ (Divine Power)이 필요합니다. 이 능력을 다른 말로 ‘성령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능력은 위의 세 가지 요소들이 교회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룰 때 임하고 나타납니다. 이 능력은 교회부흥과 성장과 아주 깊고 밀접하며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교회의 이 세 가지 요소와 관련지어서 현대교회 안에 나타나는 몇 가지 가능성들을 아래의 도식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1. 사람(교회)-성령-기도=인본주의, 인간왕국 2. 사람(교회)+기도-성령=거짓 능력, 인위적 프로그램 3. 사람(교회)+성령-기도=일시적, 제한적 부흥 4. 사람(교회)+성령+기도=신본주의, 하나님의 나라, 진정한 능력
사람 (교회)은 있으나 성령과 기도가 빠진 경우
첫 번째 가능성은 정말로 불행하고 비극적인 상황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은 있어도 그 안에 성령의 능력도 기도의 능력도 없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대신 인간이 주가 되는 인본주의 혹은 인간왕국이 세워지는 경우입니다. 불행하게도 현대교회들 가운데 이런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자유주의 계통의 교회들, 제도적이고 전통적인 교회들 가운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교회에 프로그램은 다양하나 성령의 역사도 없고 기도도 없다면 과연 누가 그 교회를 참된 교회라고 부르겠습니까? 아마도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교제하는 세상 클럽 (club)들과 하나도 다른 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사를 보면 한 교회가 오랜 역사를 지나게 되면 이런 경향으로 가기가 아주 쉽다는 점을 대하게 됩니다. 혹시 우리 교회도 이십 수년을 지나 이런 경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한 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올해 새로 시작하는 사도행전 강해설교는 퍽 시의적절하다고 봅니다.
사람 (교회)과 기도는 있으나 성령이 빠진 경우
두 번째 가능성은 첫 번째 경우보다는 더 낫고 다행스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성령의 능력없이 교회가 기도만 한다고 해서 진정한 부흥이나 능력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사람의 눈에 보기에 부흥이나 능력 비슷한 것들이 일어나지만, 실상은 그런 것들 모두가 다 거짓된 것들입니다. 성령의 능력 없는 교회는 아무리 교회 부흥과 성장에 대한 여러 가지 좋은 프로그램들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다 거짓된 것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소위 ‘토론토 축복’ (Toronto Blessing) 운동 같은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 운동 속에는 뜨거운 기도와 찬양도 있고, 신유와 귀신이 쫓겨나가는 능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분별하여 보면, 그런 것들이 다 진정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결과들이냐 하는 것에는 의문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같이 상세하게 살펴볼 것이지만, 진정한 성령의 역사, 부흥의 역사 뒤에는 항상 통회 자복하는 회개의 역사가 뒤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운동 뒤에는 강력한 회개 운동 대신에 ‘거룩한 웃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질서를 무시하지 않는데, 이 운동은 그 특징이 무질서입니다. 설교자가 설교할 때에도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크게 웃어 설교를 방해하는가 하면, 때로는 짐승이 우는 소리를 지르기도 하여 처음 참석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큰 당혹감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 어느 곳에도 이런 현상들이 진정한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는 곳은 없다는 점입니다.
사람 (교회)과 성령은 있으나 기도가 빠진 경우
세 번째 가능성은 앞의 두 경우들보다 다행스럽기는 하나, 이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성령의 역사는 있지만, 뜨겁게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그 부흥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부흥은 일시적이요, 제한적인 부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교회 안에 나타나는 성령의 능력은 잠간 있다가 사라지는 ‘빤짝 능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사를 통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흥운동이 일시적인 것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졌는가를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한 시대를 성령의 바람으로 흔들었던 위대한 하나님의 부흥운동들이 얼마 가지 않아 다 만개했다가 시드는 꽃잎처럼 지지부진해 지는 결과를 갖게 되는 역사의 증언이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부흥운동이 그랬고, 그렇게 되서는 안 되겠지만 현대 오순절 운동도 지금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도 없는 성령의 역사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교회사의 증언입니다.
사람 (교회)과 성령과 기도가 잘 조화를 이루는 경우
마지막 가능성은 바로 사도행전 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이상적인 경우입니다. 이 교회는 성령의 능력과 기도의 능력이 교회의 주체인 사람들 (평신도)과 잘 조화를 이룬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 안에 나타났던 능력은 거짓된 것도, 일시적인 것도 아닌, 진정한 능력이요, 지속적인 능력이었습니다. 우리 모든 현대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가 목숨 걸고 따라야 할 본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갑시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행적을 다룬 책들입니다. 특히 사도행전 기자인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그의 행하신 일들, 가르침들, 고난,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의 일들을 아주 자세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사역이 바로 여기에서 종지부를 찍고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이 점을 너무도 분명하게 집고 넘어갑니다. 그 요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예수님의 미완성 사역을 누군가 대신 감당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사역을 대신 감당합니까?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자신이 곧 아버지께로 가야하고 그 후에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요 14장-16장). 그 성령은 “다른 보혜사”라고 했는데, 여기서 “다른”이라는 말은 놓쳐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우리말에는 ‘다른’ 하면 별로 구분이 없지만 헬라어를 보면 크게 두 가지 상반된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헤테로스’ (heteros)라는 말로 이는 내용도 모양도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하나는 ‘알로스’ (allos)인데 이는 모양만 다를 뿐 질이나 내용은 동일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 하셨을 때 ‘헤테로스’를 쓰지 않고 ‘알로스’를 쓰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과 성령님이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뜻합니다. 삼위 하나님 중 다른 위격 (person)을 가지신 성령님이 예수님의 사역을 대신 맡아 감당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역사의 종말까지 계속되는 예수님의 사역을 성령님이 맡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2. 성령님께서 맡으신 계속되는 예수님의 사역을 먼저 사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맡기셨다는 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천사들을 동원해서라도 넉넉하게 수행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꼭 그의 대행자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성령을 통해 그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2).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부활 후 40일 동안 줄곧 그 한 명제에 대해서만 집중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말하는 ‘지상명령’ (Great Commission)곧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는 유언의 말씀이 복음서 말미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 1장 초반부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사도들과 우리들이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들 스스로의 힘만 갖고는 불가능한 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을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앞으로 더 자세하게 살펴 볼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성령 세례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제자들과 우리들이 그 능력을 받기 위해 기다리며 기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만도 제가 이미 서론에서 언급했던 3P 곧 성령과 사람 (평신도)과 기도의 3요소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사람 (평신도)이 계속되는 예수님의 사역을 위해 기도할 때 진정한 영적 부흥 곧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확장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계속되는 예수님의 사역을 주도하시는 성령님, 우리를 사용하시되 큰 능력을 부여해 주시고 이를 위해 기도에 헌신할 수 있는 사역자들이 되게 하옵소서.”[최인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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