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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자, 교체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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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자, 교체된 자 행 1:15-26
성경은 숫자를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1이나 3이나 7같은 숫자들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숫자요, 6은 마귀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12라는 숫자도 아주 의미심장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12지파를 선택하셔서 그의 백성들을 대표하도록 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12제자를 택하셔서 모든 성도들을 대표하게 하셨습니다. 요한 계시록 4장을 보면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라간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그는 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24장로들을 보았습니다. 이 24장로들은 구약시대의 12지파, 신약시대의 12제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신, 구약을 다 합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이라는 숫자는 ‘대표 수’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12제자들 중 한 사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는 기사가 나옵니다. 한 사람은 영광스런 직분을 맡았으나 그 직분을 욕되게 해서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그를 대신해 영광스런 직분을 다시 맡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대하면서 우리는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다 자신이 지켜야 하고 행해야 할 본분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중하게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경하게 보이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직분과 사명이 중하다고 생각되거나 경하다고 생각되거나 간에 충성되게 지키고 행하면 하나님은 모두 다 동등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직분과 사명을 경하게 여겨 가룟 유다처럼 오히려 영광스런 직분을 욕된 직분으로 바꿀 때 우리도 유다처럼 버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항상 “버림받은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선택받은 자가 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있다는 사실을 알고, 전자보다는 후자의 사람이 되기 위해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버림받은 자는 어떤 사람이며, 선택된 자는 어떤 사람인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버림받은 자의 대표, 가룟 유다
첫째로, 가룟 유다는 버림받은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는 원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막 3:14, 19). 그가 돈궤를 맡았던 것으로 보아 그래도 제자들 중에 공부한 사람 측에 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일에 항상 논리를 앞세웠고 이성적인 판단이 믿음보다 앞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의 영혼을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이나 그리스도로 믿기보다는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할 정치적인 메시야로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면 따를수록 그에게서 실망만 커갔습니다. 그에게서 정치적으로나 무력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힘이나 능력이 전혀 없다고 최종적으로 판단되자 그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 축복의 자리, 구원의 자리를 차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들 중에도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과 축복의 자리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유다처럼 다른 목적 곧 세상적인 목적을 갖고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그 영광의 은혜를 욕되게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고 그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행하는 온갖 이적과 기사를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300데나리온 가치의 거금의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마리아를 보고 그 돈을 그렇게 허비한다고 비난했습니다(요 12:3-5). 그만한 돈이면 가난한 사람들을 더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럴싸하게 말했지만, 성경은 사실 그가 도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 실망한 나머지 그를 그냥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까웠는지 은 30에 그를 팔고 말았습니다(마 27:3-10). 성경은 또한 가룟 유다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마리아를 비난했을 때 곧바로 마귀가 그에게 역사해 “예수를 팔려는 마음을 넣어주었다” (요13:2)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가 취했던 행동의 순서들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그가 자신의 영광스런 직분을 헐값처럼 여기고 버렸을 때 그에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곧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 후에 마귀가 그 안에서 역사하여 그를 완전히 조종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결국 마귀의 도구로 쓰임 받고 그에게 종노릇하다 철저히 그 인생을 망친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그를 가리켜 “자신의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다” (23)고 했고, 예수님도 그를 보고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 (마26:24)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제 곳” 즉 세상과 돈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우리들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 가룟 유다처럼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산다고 하지만 실상은 마귀의 도구요, 그에게 종노릇하며 스스로 멸망의 길로 치달리고 있는 가련한 사람입니다.
교체된 자의 대표, 맛디아
둘째로, 맛디아는 교체된 자의 대표입니다. 작년에 월드컵 (World Cub)이 한국과 일본에서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전국이 남여노소를 막론하고 월드컵 열기에 들떠 오로지 축구만 생각하고 말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한국 축구 팀이 사상 최초로 본선에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4강(semi-final)까지 올라가는 획기적인 전적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때 선수들도 잘했지만 세계적인 감독 ‘히딩크’가 게임마다 선수들 기용을 잘했기 때문에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그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게임이 제대로 풀려가지 않을 때마다 그는 교체 선수를 내보냈고 그것이 적중하여 폴튜칼이나 스페인이나 이태리 같은 어려운 상대들을 맞아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라는 대 드라마 속에도 ‘교체 선수’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에서 대신 야곱이, 사울 대신에 다윗이 교체 선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원래 세웠던 사람들이 제대로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자, ‘교체 선수’로 들어가 하나님의 일을 아주 효과적으로 충성스럽게 감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또 하나의 ‘교체 선수’가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맛디아엿습니다. 원래 ‘맛디아’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맛디아는 전에 감히 12사도의 반열에 들어간다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12사도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동안 주를 위해 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그의 이름이 본문 한 곳에서만 언급되고 있어서 그의 행적이나 역사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추측하여 “맛디아는 무능력한 사람이요,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었다. 12사도라는 숫자적 의미에 단지 자리 수만 채워준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를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맛디아는 주의 놀랍고 큰 은혜로 말미암아 12사도 중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교만해질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자신의 임무만 묵묵히 수행해 나갔습니다. 그는 자신은 뒤에 물러서고 항상 선배 사도들을 앞세우며 주께서 그에게 맡기신 밀들을 소리 없이 감당해나갔습니다. 사실 맛디아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나 요한이나 바울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뒤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들을 받들어 섬기고 도와준 이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들의 사역이 그런 열매들을 맺을 수 있었겠습니까?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 뒤에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를 받쳐준 이들이 있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 때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그의 손이 지쳐서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론과 훌 두 사람이 그의 지쳐 내려온 손을 받쳐 올렸을 때 이스라엘이 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모세의 승리와 영광 뒤에는 이런 2등의 자리로 기꺼이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맛디아도 주를 위해 교회를 위해 2등의 자리로 기꺼이 내려간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한다면서도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1등 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비해 맛디아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과 자리를 아는 사람은 맛디아처럼 늘 겸손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늘 남을 나보다 높이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빌 2:5). 우리 모두 주의 영광을 위해 2등의 자리로 기꺼이 내려앉을 수 있는 멋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최완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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