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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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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행 2:42-47
최근에 사도행전을 다시 읽으면서 내 마음에 크게 부딪쳐 오고 부각되어 온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 47절 말씀 곧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는 기록입니다. 이 말씀처럼 초대교회는 날마다 성장하고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4장 4절을 보면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믿는 사람이 많으니 남자 어른의 수가 약 오천 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6장 7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 나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의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양적인 성장 (growth of quantity)입니다. 그런데 본문 47절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고 말합니다. 이는 초대교회가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장 (growth of quality)도 이룬 조화를 이룬 교회요 모범적인 교회인 것을 잘 말해 줍니다.
이 사실을 접하고 나서 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 그때에만 일어나고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는 일어나지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우리 교회에도 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오랫동안 묵상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사도행전 교회는 적어도 네 가지 면에서 우리가 갖고 있지 않는 비상한 열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케 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 (John calvin)은 “신앙생활이란 첫째도 열심이요, 둘째도 열심이요, 셋째도 열심이라”고 말한 것처럼 초대교회는 열심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면 초대교회의 네 가지 비상한 열심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배우는 열심
첫째로, 그들은 말씀을 배우는데 열심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보다도 말씀을 듣고 배우기 위해 모이는 일에 힘쓰고 열심을 냈습니다. 사도행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초대교회 성도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보다도 말씀에 열심이었다는 점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베뢰아 교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성경은 베뢰아 교회 성도들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보다 더 신사적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각양각색인데 그 중 베뢰아 교회 성도들은 신사들 중에 신사들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습관적으로 예배에 참석해 설교가 단지 예배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냥 앉아서 말씀을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잡다한 생각들에 마음을 빼앗겨 말씀을 흘려들은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읽되 “간절히” 받고 읽었습니다.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고 듣고 배우려는 열심, 은혜를 사모하는 특출한 열심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2. 그들은 말씀을 받고는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이는 말씀을 단지 듣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떠합니까? 우리들 가운데 말씀을 듣는 것에 끝나지 않고 공부하고 연구하려는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그들은 말씀 안에 영생이 있고 길이 있고 진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성경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3. 그들은 날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말씀 연구는 최우선순위였습니다. 어떤 일들보다도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우리들처럼 시간이 있으면 성경을 읽고 시간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매일같이 (day by day) 지속적으로 말씀을 가까이 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 가운데 말씀을 대하는 면에 있어서 크게 세 부류의 신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단지 듣기만 하는 신자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읽기도 하는 신자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듣고 읽으며 연구하는 신자들입니다. 올해도 벌써 사분의 일이 지났는데 이제부터라도 말씀을 가까이 하는 우리 성도들,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교제에 열심
둘째로, 그들은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데 열심이었습니다. 교회는 장차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을 미리 맛보는 그런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가장 좋은 지름길은 바로 성도의 교제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133:1)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도의 교제를 통해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여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46) 성도들 간에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서는 오늘 우리들처럼 시기도, 다툼도, 분쟁도, 파벌도 없었습니다. 빈부귀천의 차별도 없었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이 있으면 있는 사람이 자기 재물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서로 나누어 썼습니다. 45절을 보면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들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대로 나누어주었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4:34)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교제’라는 말은 원래 헬라어로 ‘코이노니아’ (koinonia)인데 이는 아주 다양한 뜻을 갖고 있습니다. ‘교제’라는 말 외에도 ‘나눔,’ ‘통용,’ ‘교통,’ ‘친교’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코이노니아가 초대교회 때처럼 우리들 가운데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선행하는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1. 겸손입니다. 성도의 교제의 첫 번째 조건은 겸손입니다. 교회 안에 교만한 사람이 있으면 성도들 간에 올바른 교제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문제들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겸손하여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고 좋게 여길 때 교회 안에 참다운 교제가 이뤄지게 됩니다.
2. 용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할 수 있고 죄도 지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실수가 없고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아 남을 정죄하기보다는 용서의 미덕을 보이고 실천하는 곳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잘못이나 죄를 범한 형제자매 그들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 가능해집니다. 서로서로 용납하고 용서할 때 교회 안에는 초대교회 때와 같은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3. 양보입니다. 진정한 일치는 서로 간에 조금씩 양보할 때 가능해집니다. 부부간에도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밀고 당길 때 그 가정이 결국 깨어지고 맙니다. 교회에서도 성도들 간에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늘 시끄러운 일들만 생깁니다. 진정한 양보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모든 일을 보고 생각할 때 가능합니다. 이런 양보를 통해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가 우리 가운데 이뤄질 수 있습니다.
기도에 열심
셋째로, 그들은 기도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 마디로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도 그들이 열심히 모여 기도할 때 일어났습니다.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거지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올라갈 때 고침 받고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기도에 열중하다가 최초로 이방인 중에 성령을 받았던 고넬료의 집에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성장과 부흥은 다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기도를 자세히 연구해 보면 그 괄목할 만한 특징들 중에 하나가 바로 시간을 정해놓고 드리는 기도, 곧 정기적인 기도요 지속적인 기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윗과 다니엘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지켜오던 좋은 영적인 관습이었습니다. 다윗은 시간만 나면 기도했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도 하루 세 차례씩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기도에 열심을 기하되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좋은 영적인 습관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기도는 시간이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중요한 일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교우 개인 개인이 이렇게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일에 힘쓸 때 성도들 심령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교회에도 큰 부흥의 불길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전도에 열심
넷째로, 그들은 전도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사도행전 전체에 흐르는 중심적인 주제는 ‘전도’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이면 예배드리고 기도했으며 찬양하고 교제했지만, 흩어지면 오직 예수만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2절은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이집 저집에서 쉬지 않고 가르치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였다”고 말합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같은 위대한 사도들, 하나님의 종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아무도 그 교회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전했습니다. 그들은 말로만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한 것이 아니라 삶으로 전했습니다. 그래서 47절을 보면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호감을 샀습니다. 그 결과로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교회는 초대교회와 같이 때만 얻으면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말씀을 듣고 한 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 하고 되새겨봐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말씀을 듣고 배우는데 열심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들 간에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기도의 불이 뜨겁게 타오르되 정기적으로 열심을 다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때만 얻으면 전도와 선교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최완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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