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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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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행 4:1-31
초대교회의 특징들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그중 두드러진 것이 바로 전도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 자체가 전도여서 그들은 기회만 얻으면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일으키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로 몰려오자 그 기회를 이용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대하게 됩니다. 즉 그들에게는 전도야 말로 그들의 삶 속에서 최우선순위에 속했습니다. 먹는 것도 전도하기 위함이요, 일하는 것도 전도하기 위함이며, 사는 것 자체가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5장 42절을 보면 그들의 삶을 한 마디로,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이집 저집에서 쉬지 않고 가르치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였다”고 요약하여 표현했습니다. 특별히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자나 깨나 전도 일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은 오늘 너무도 나약하고 헌신되지 못한 우리들 모두에게 전도자의 좋은 모델 (model)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 전도자로서 베드로와 요한의 자세는 무엇이었습니까?
담대함
첫째로, 그들은 담대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성전 미문 앞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켰습니다. 당시 미문은 성전을 드나드는 관문이었기 때문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곧 사도들은 많은 대중들 앞에서 주목을 받는 유명 인사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에게로 몰려들었고 베드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소식이 제사장들과 성전의 관원들과 사두개인들에게 곧바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급히 사도들에게로 가서 그들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가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1. 그들이 증거한 그리스도의 부활의 도가 사두개인들의 귀에 거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사두개인들은 영도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에서는 비록 소수였지만 상당히 자유주의적이요, 진보적인 종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도 그들은 소수파에 속했지만 그들의 금력과 로마 정부의 비호 때문에 사실상 실권은 그들이 다 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과 성전의 관원들이 사두개인들의 귀를 거슬리게 하는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사도들을 가만히 둘 수 없었던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2. 로마 정부는 유대교와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했지만 무질서와 난동과 소란에 대해서는 조금만치도 자비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일으키는 기적을 행하고 예수의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도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전 미문 앞에 모였고 또한 그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요하자 그들은 더 이상 방관만 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 정부 밑에서 평안함과 부와 영광을 누리고 있었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로마 정부의 눈에 나기 전에 빨리 그 일을 수습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 방책의 하나로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가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계속 잡아 둘만한 이유도 죄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위협하여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18)고 명령한 후 놓아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옥에서 풀려 나온 후에도 계속해서 말씀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그들은 옥에 갇히는 것도 매를 맞는 것도 심지어는 죽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습니까?
1. 복음 전파에는 반드시 핍박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그들의 회당에서 매질을 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나가서 그들과 이방 사람 앞에서 증언할 것이다 (마 10:17, 18).
베드로도 후에 그리스도를 인해 받는 고난과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핍박은 전도자에게 항상 따르는 것임을 분명하게 강조했습니다(벧전 4:12-14).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 있는 자 (마 5:11)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은 어떤 핍박 속에서도 오히려 그것을 기쁘게 여기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2. 성령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 받기 전의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한 마디로 말해서 담대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잡히시자 그들에게 다가올 손해, 핍박, 혹은 죽음의 공포 때문에 다 도망했습니다. 그리고 옛 직업으로 돌아가 조용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성령 충만을 받자 비겁함과 소심함이 180도로 변하여 용기와 담대함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성령 충만 없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디에서든지 담대히 증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증인, 전도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한 메시지
둘째로, 그들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바울은 “또 나팔이 분명치 않은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겠습니까?”(고전 14:8) 하고 말했습니다. 전도자는 그가 부는 나팔 곧 메시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순수한 복음, 충만한 복음, 복음 그대로만 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많은 교회의 강단에서 얼마나 변질된 복음, 값싼 복음, 사람의 귀만 즐겁게 해주는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십자가와 고난을 빼고 번영과 영광과 축복만 강조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교인들의 귀에 즐거운 내용만 일부러 골라서 설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웰스 (H. G. Wells)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문제는 그들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보다 이웃의 음성이 더 크게 들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난, 십자가, 부활, 내세, 신유, 재림 등의 핵심적인 내용은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빼고,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주제들이 교회 강단마다 풍성한 것이 요즘의 세태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달랐습니다. 그들이 전했던 부활의 도는 당시 실력자들인 사두개인들이 싫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는 곳마다 기회만 있으면 그리스도의 부활 메시지를 증거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던지 좋아하지 않던지 상관치 않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메시지만 증거했습니다. 심지어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들을 옥에 가두고 위협까지 하면서 그들이 싫어하는 “예수의 이름”을 가르치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라고 회유까지 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본문 19절,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매도 감옥도 핍박도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그들이 보고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불굴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자 죤 낙스 (John Knox)가 순교 당한 후 그를 지켜 본 한 사람은 “그는 어떤 사람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던 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했다”고 증언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만이 가지는 비밀이요, 힘입니다. 베드로, 요한, 죤 낙스 같은 전도자들 때문에 복음은 여전히 전파되고 있고, 그 복음은 결국 나와 여러분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기도의 능력
셋째로, 그들에게는 기도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절대로 기도의 배경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무디 (D. L. Moody)의 위대한 역사, 부흥의 역사 뒤에는 하나님 앞에 꿇려진 수많은 무릎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전도하기 전에 기도했고, 전도할 때도 기도했으며, 전도하고 돌아와서도 기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히면 옥에서도 기도했고, 자유로우면 자유스러운 대로 기도했습니다. 이런 기도의 힘이 결국 초대교회의 위대한 성장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런 기도의 능력이 3천 명, 5천 명씩 한 번에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29절을 보면 사도들 자신들도 열심히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도의 내용도 또한 원숙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 이제 그들의 위협을 내려다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참으로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즉 전도자들 주위에 항상 뒤따르는 위협과 핍박을 감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들의 기도와 얼마나 다른 기도입니까? 우리들은 흔히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것을 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또 빨리 그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려운 환경을 오히려 극복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얼마나 원숙하고 적극적인 기도입니까?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챨스 피니 (Charles Finney)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짝 길로 인도하신다면 그는 우리를 위하여 단단한 신을 예비해 주실 것이다” (If God leads us into stony path, He will provide us strong shoes)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적극적인 기도가 응답되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들이 계속 열렸고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려 남자 어른만 5천 명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4). 하나님은 이렇게 주님만 의지하고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학자의 혀를 허락하셔서 원래 그들에게 배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과 제사장들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전도는 지상 명령이요, 우리들이 평생 해야 할 과제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담대하게, 분명하게, 그리고 기도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에 드러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최완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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