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자 창4:16-26
본문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 종류의 사람들이 살았던 삶을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은 우리 시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고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식으로 살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특징 있는 삶을 살았고, 그 삶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이 이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 세 사람은 가인과 라멕과 셋의 아들 에노스입니다.
첫 번째로 가인의 삶의 특징은 끊임없는 방랑입니다. 그는 한 곳에 정착하여 살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끝없이 새로운 곳을 향하여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충동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한평생 방황하고 방랑하다가 삶을 마쳤습니다. 또한 이러한 가인의 삶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로 라멕은 가인의 후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라멕은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을 다 가졌고 누리고 싶은 것을 다 누린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본인뿐만 아니라 그의 자녀들도 탁월해서 인간 문명의 발달에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셋의 아들 에노스의 삶입니다. 에노스는 놀랍게도 가인의 후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죽은 아벨 대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셋의 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에노스의 삶에서 주목할 만한 것을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는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도 못했고, 무엇인가를 개발하거나 발명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아주 중요한 특징적인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셋의 아들 에노스는 우리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에게 귀한 본을 보여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Ⅰ. 우리는 첫 번째로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가인의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인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가인의 삶의 특징은 끝없는 방황이었습니다.
본문 16절-17절을 보십시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우리는 가인의 삶에서 이중적인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방랑자의 삶을 사는 가운데서도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았으며, 더욱이 성을 쌓아서 정착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생략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가인의 삶이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가인이 끊임없이 방랑했다는 것과 그 가운데서도 정착하려고 성을 쌓았다는 두 가지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가 끊임없이 방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가인에게 12절 하반 절에서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인은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나그네 삶을 살았습니다.
가인이 그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무리 수고하여도 그에 준하는 소산을 얻지 못하자, 다른 삶의 터전을 구하기 위해 떠돌아 다녔기 때문이며, 동생 아벨을 죽인 양심의 가책과 고통에 짓눌려 심적 안정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17절에 보면,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았으며, 더욱이 성을 쌓아서 정착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가인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가인은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끝없이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욕심, 자기 죄 때문에 하나님의 존전에서 쫓겨나서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가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는 예배의 소중함도 알고 있었고, 여러 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일 낮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가인은 자기의 제사가 하나님께 거절당하자 화를 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서 “왜 분을 내며 얼굴색을 바꾸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서 하나님 없는 삶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살았던 삶의 전부였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던 사람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체험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고 예배의 기쁨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을 떠나자 어느 곳을 가도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경험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요 기쁨인 줄 믿습니다.
예배드리면서 드리는 찬양이 최고의 찬양입니다. 믿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것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최고의 경험이며, 최고의 가치입니다.
성도여러분!
이 최고의 경험, 최고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욕심과 죄 때문에 이 모든 축복을 잃어버린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큰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도저히 견디지 못합니다.
신앙을 버릴 당시에는 그것이 그렇게 큰지 모릅니다.
그러나 일단 잃고 나면 도저히 다른 것으로는 그 허전함을 메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미신을 찾든지 술을 찾든지 다른 일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역사를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떠나자 그에게는 심한 우울증과 신경쇠약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반미치광이가 되어서 엔돌의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이렇게 최고의 은혜를 한 번 맛보고 타락한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다른 극단으로 달려갑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말씀을 듣고 배웠던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돈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 사이에서 교제하는 것은 최고의 가치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욕심이나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떠나면 그 어떤 것으로도 그 빈 자리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돈이나 명예 같은 것으로는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면 더욱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인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을 떠난 가인이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본문 17절을 보니 가인은 자기의 성을 쌓았습니다.
이 당시에 성을 쌓았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잃고 끊임없이 방황하다가 결국 마지막으로 붙든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성을 쌓고 거기에서 군림하고 거기에서 큰소리치다가 죽는 것입니다.
가인은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에녹’이라 하였습니다. 곧, 가인이 쌓은 성은 ‘에녹 성’이었습니다.
에덴의 동편 놋 땅에 세워진 에녹 성은 죄인들이 모여 살기에 편리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죄인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행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풍부한 농산물과 고기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들을 무찌를 수 있는 군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에녹 성의 주인은 인간이며, 에녹 성에는 가인의 보좌만 있을 뿐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이 앉으실 자리가 없었습니다.
에녹 성은 하늘 보좌에 도전하는 인간의 교만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에녹 성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을 떠난 가인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끝없는 외로움이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외로움과 갈망, 끝없는 그리움, 이것이 가인의 삶이었습니다.
끝없이 방황하다가 결국 자기 세계에 갇혀서 최후를 마치는 삶,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존전을 떠난 가인의 삶이었습니다.
Ⅱ. 오늘 본문에서 설펴보고자 하는 두 번째 사람은 라멕입니다.
라멕은 가인의 5대손입니다. 라멕은 사실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었습니다.
라멕은 이 세상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고 성취하고 싶은 것은 다 성취해본 사람이었습니다.
라멕이 어떤 사람입니까?
라멕은 아내가 둘이 있었습니다.
본문 19절을 보십시오.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여 부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입니다. 그런데 라멕은 두 명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라멕은 최초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정의 제도를 깬 장본인이었습니다.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라멕의 자식들이 모두 탁월했다는 것입니다.
라멕에게는 ‘야발’과 ‘유발’ 그리고 ‘두발가인’이라는 아들들이 있었는데
야발은 장막에 거하면서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전문적으로 목축업을 해서 크게 성공한 사람은 야발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발은 음악의 재능이 있었습니다.
또 두발가인이라는 아들은 대장장이로서 동철로 각양 기계를 만드는 자였습니다.
이와 같이 라멕은 자식농사에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큰 아들은 유명한 목축업자였고, 작은 아들은 음악의 대가였고, 또 막내는 각양 기계를 제작하는 기술자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라멕은 이 세상에서 대성공을 거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본문 23-24절을 보십시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겉으로는 그렇게 성공했지만 실제로는 라멕 역시 살인자였습니다. 라멕은 자기 욕심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모두 다 죽이고 성공한 것입니다.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남긴 그의 고백을 보면, 그는 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인의 후예들의 모습니다.
그는 살인자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죄가 가인의 죄보다 휠씬 무겁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인을 죽이는 자에게 벌이 7배라면 자기를 죽이는 자에게는 벌이 77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라멕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노로 살아왔으며 모든 사람들을 이용하고 짓밟았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인으로 살았습니다.
Ⅲ. 이제 우리는 또 다른 한 사람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25-26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 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 사람은 살인자인 가인의 후손이 아닌 ‘셋’의 아들인 ‘에노스’입니다.
인간이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와는 처음 아들을 낳았을 때 이 말씀으로 기억하고 ‘여호와로 말미암아 아들을 낳았다’는 뜻으로 그 아이 이름을 ‘가인’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한 여인의 후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동생을 죽이는 살인죄를 지었습니다.
가인에게는 아벨이라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이 동생은 가인보다는 못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가인의 손에 죽었고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남으로 하와에게는 한 명의 자식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자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깨리라는 약속은 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또 다른 아들을 주셔서 이 약속을 이루셨는데, 그가 바로 ‘셋’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마지막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셋의 아들인 ‘에노스’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들이 이때부터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생활을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성도여러분!
라멕의 삶과 에노스의 삶을 비교해 보십시오.
라멕의 삶은 얼마나 화려합니까? 그는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본 사람입니다. 게다가 자식들의 업적은 눈부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에노스가 한 것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아벨이 완성하지 못한 믿음의 제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답답한 삶입니까?
►누구는 목축업을 해서 떼돈을 벌고 있는데,
►또 누구는 음악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기뻐하고 춤추고 잔치를 벌이게 하는데,
►또 누구는 계속 무엇을 두들겨서 칼도 만들고 곡갱이도 만들고 칼과 창을 만드는데, 계속 여호와의 이름이나 부르고 있으니 얼마나 썰렁한 일입니까?
성도여러분!
에노스와 그의 믿음의 식구들은 이 세상에 라멕 같은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게 하려면 누군가가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이 땅에 무서운 죄가 범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지연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군가가 피의 제사를 끊임없이 하나님께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다 세상 재미를 찾아 달려 나가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바로 임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놀고 떼돈 버는 일에 빠지면 곧바로 심판이 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남아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도록 피의 제사를 드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의 살아있는 예배가 하나님의 진노를 막습니다.
믿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의 살아있는 예배가 여러분을 살리고, 여러분의 가정과 나라를 살릴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하나님께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려고 할 때 그 전쟁 앞에 막아서서 하나님의 긍휼을 호소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경배하며 범죄 했을 때 모세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기도한 것처럼 누군가 목숨을 걸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도 살고 이 세상 사람도 살리는 길이며 믿지 않는 사람들을 살리는 길인 줄 믿습니다.
성도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집이 생기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으로 기뻐합니다. 그런 것마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에서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도 가지고 하나님 나라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도 가지고 떼돈도 벌려고 한다면 그는 최고의 죄인입니다.
성도여러분!
성령의 역사가 내 마음속에 일어날 때 이것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감동을 불러일으킬 때 세상적으로 손해 보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예배는 할일 없는 사람들의 소일거리가 아닙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서 이 세상을 살리는 일입니다.
여러분, 얼마 전에 4주 동안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며, 여호와께 부르짖었던 3인조 기도운동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살릴 줄 믿습니다.
새벽마다 부르짖는 여러분들의 기도가 나라와 민족을 살리고 교회의 부흥을 앞당길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는 천국생활을 맛보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속한 욕심을 버리십시오. 오직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이 세상에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