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십니까? (눅22:39-46…
본문
비거스탑은 말하기를 “병든 제왕보다는 건강한 구두 수선공이 더 훌륭한 사람이다.”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은들 병들면 무엇 합니까?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 넓은 집이 있으면 무엇 합니까? 청소하기만 힘이 듭니다. 건강해야 합니다. 돈도 건강해야 합니다. 명예도 건강해야 합니다. 우선 몸이 건강하고 나서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오는 증상이 무엇입니까? 한의원에 가면 제일 먼저 의사가 무엇을 진찰합니까? 맥을 짚어 봅니다.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해보세요.”그럽니다. 그리고는 “옷을 걷으세요.”하고는 청진기를 가지고 배에도 대보고, 어떤 때는 등에도 대어 봅니다. 뭐하는 거지요? 호흡을 보는 겁니다. 숨을 잘 쉬는가 보는 겁니다. 질병의 시작이 호흡에서 온다는 겁니다. 질병이 시작되면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맥박이 불규칙하게 뜁니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닙니다.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 저희 어머니가 양계장을 하셨습니다. 전에는 양계장에 새벽4시 되면 전등을 켜주고, 밤9시가 넘으면 소등을 해줍니다. 9시가 되어서야 하루 일과가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9시가 되어도 안 끝납니다. 모두 다 잠이 들면 조용히 나가셔서 양계장을 한 동, 한 동, 돌아보십니다. 그때는 생각하기를 ‘도둑을 밝히시나?’그랬는데 제가 나중에 돼지 농장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그건 도둑 밝히는 게 아니라, 닭의 호흡을 살피는 겁니다. 조용한 밤중에 닭들의 숨소리를 듣는 겁니다. 왜요? 질병의 시작이 호흡기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숨소리가 잘못되면 틀림없이 병이 언 겁니다. 닭이 코를 골겠습니까? 잠꼬대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질병이 오면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색~ 색~”합니다“ “그르륵 그르륵~~~”합니다. 닭만 그런 게 아닙니다. 돼지도 마찬가지고, 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의 시작이 호흡입니다. 숨소리를 들어보면 압니다. 모든 질병이 시작되면 호흡기에서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한의원에 가면 우선 맥을 짚고, 병원에 가도 청진기를 들이대는 겁니다. 영적으로 병이 들어도 똑같습니다. 호흡이 안 됩니다. 맥박이 고르지 않고 뛰지를 않습니다.
성도의 맥박은 기도입니다.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맥박을 보면 압니다. 맥박이 정상적으로 뛰지를 않습니다. 병이 들거나, 늙어가면서 맥박이 더디고, 건강 증세에 따라서 맥박이 아주 약하게 뜁니다. 호흡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이 아닙니다. 불규칙스럽습니다. 그것은 건강에 어떤 위험 신호를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성도,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기도 생활은 이와 똑같은 겁니다.
그래 신앙이 약해지고, 문제가 생기고, 병이 들면 제일하기 싫은 게 기도입니다. 기도가 하기 싫습니다. 귀찮습니다. 무릎 꿇기가 싫습니다. 앉아 있기가 싫습니다. 기도하러 나오기가 싫습니다. 새벽에 일어나기가 싫습니다. 나중에는 교회에도 나오기 싫어지는 겁니다. 결국은 영적으로 중병에 걸리고, 어디까지 갑니까? 한마디로 기도는 살아있는 성도의 증거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믿지 않는 성도와 차이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는 기도는 도를 닦는 것도 아닙니다. 수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나의 하는 이 일을 하나님과 함께 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자기 프로젝트를 내놓고 그분의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써 그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인간의 육체는 연약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지식도 한계가 있습니다. 생각도 한계가 있습니다. 재능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주님이 도와 주셔야 하고, 주님으로 하는 겁니다. 거기에서 믿지 않는 이들과의 차이가 나타나는 겁니다. 때로는 이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세상을 놀랠만한 일들이 나타나기도 하는 겁니다.
오늘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는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입으시고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이 땅에서 공적인 사역을 하실 때에 늘 기도 하셨습니다. 습관을 쫓아 하셨습니다. 39절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쫓아 감람산에 가시매” 어쩌다가 한 번 와서 하룻밤에 세게 기도하고 만 게 아닙니다. 어느 날 뭔가 아쉬워서 몇 시간 기도하고 만 게 아닙니다. 그런 것을 “기도 생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숨을 쉬는 데, 어느 날, ‘오늘은 숨이나 쉬어야겠다.’ 그러고는 ‘훅 훅!!’하고 또 며칠 있다가 ‘훅훅!!’하고 그럽니까? 호흡은 습관적으로 하는 겁니다. 맥박이 습관적으로 규칙적으로 뛸 때, 그 사람이 건강한 겁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1분에 60-90회로 정상적으로 뛰어야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습관적으로 해야 좋은 성도입니다. 건강한 성도입니다.
새벽마다 습관적으로 하는 겁니다. 아니면 밤마다 습관적으로 하는 겁니다.
그런 분들은 유행성 감기가 돌아도 안 걸립니다. 걸려도 쉽게 지나갑니다. 할렐루야! 어떤 이들은 그럽니다. “목사님 나도 교회를 안 나와서 그렇지 늘 기도해요!” 예, 하십니다. 그러니까 오늘까지 살아있지요.(환하게 웃으면서~~~)
그러나 오늘 주님은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그러셨습니다. 주님은 기도하신 장소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기도하는 장소가 중요합니다. 오늘 날 세계 선교의 기초를 둔 교회가 빌립보교회입니다. 그 빌립보 교회를 세울 때, 바울은 자주장사하는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나 세우게 됩니다. 그 여인을 어디서 만납니까? 사도행전16장 13절에 보면 “바울이 안식일에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그랬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하는 처소를 두고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오순절 성령님이 강림하실 때도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기도하다가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기도하는 집이 있다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9장 46절에 “기록 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열왕기상 8장 29절에서 솔로몬은 기도하기를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그러자 주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9장2-3절에서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 나사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감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는 곳이 있으십니다. 신명기 12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있는데 거기로 가서 제번제도 희생도, 십일조도, 첫 새끼도 드리라고 하십니다. 16장 2절에 보면 유월절도 마찬가지입니다. 10절에 칠칠절도, 15절에 초막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택하신 거룩한 곳에 나아가 드릴 때 받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인 이 성전에 나와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엄청난 이름입니다. 구원의 이름입니다. 응답의 이름입니다. 치료의 이름입니다. 축복의 이름입니다. 영생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성전에다 두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내서 나와야 합니다. 어려워도 나와야 합니다. 멀어도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이곳에 나와서 기도하는 겁니다.
여러분 주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44절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 방울 같이 되더라.” 이것이 주님의 기도이십니다. 주님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을 보세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주님은 육체에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여기서 심한 통곡이란 무엇입니까? “심하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초월적이란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