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고 사십니까? (신 11:8~17)
본문
할렐루야!
제가 아주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 아주 조금 살지도 않은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제 경험으로 보면 … 평안이 제일입니다.
힘 많으면 뭘 해 ~ 돈 많으면 뭘 합니까. 평안해야지요.
잘 생기고 예쁘면 뭘 하나요~ 평안 없으면 기쁨 없고, 기쁨 없으면 행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속에서 누리는 평안, 그것이 최고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알 수도 없는 … 평안,
예수 믿음으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누리는 그 평안,
그 평안을 오늘 여러분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일터가 …
평안을 위해 애쓰고, 지키기 위해 애쓰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합니다. “평안을 만드는 자 되게 하옵소서. 평안을 지키는 자 되게 하소서.”
평안을 지키고, 평안을 선언하며 사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 세상이 줄 수 없는 /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 평안을 네게 주노라”
평안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옆의 분과 “평안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 여호수아와 함께 했던 올 한해의 여정이 이제 종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2006년을 시작하며 수없이 기도하며 많이 외쳤던
올해의 목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막을 보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승리케 하옵소서. 가지고 있는 것에, 누리고 있는 것에,
익숙한 것에 … 머물지 않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일어나 어려운 조건들로 가득 찬 2006년 산지를 향해
전진하여 승리케 하옵소서.”
금년, 여러분의 삶이 어떠셨습니까? 힘든 일이 많으셨습니까?
눈물나는 일, 한 숨 쉬는 일들이 많으셨습니까?
아니면 좋은 일이 많으셨는지요?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십시오.
하나님 마음에 들게 살려고 애쓰셨다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결국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결국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았느냐, 아니냐입니다.
순종이 승리의 비결
성경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지도자 여호수아가 살았던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나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나 동일하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옛날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여 승리했다면
지금 살고 있는 우리도 믿고 순종하면 승리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지혜와 경험으로 계산해 볼 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불가능한 목표를 가지고 가나안 땅을 밟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위한 변변한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훈련된 군인이 아니라 오랜 세월 광야에 살다 이주해 온 사람들로 구성된
민병대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철병거로 무장한 잘 조직되고 훈련된 군사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엄청나게 쌓아올린 성들도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느 누가 보아도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는 어떠한 적도 이길 수 있는 비밀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신명기 11장 8절에 보면
“ …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얻을 것이며”(신 11:8)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하게 준행하는 순종이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허락하겠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된 땅을 차지하는 방법은“순종”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도저히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었습니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본토 친척 아비의 집, 정들었고 편한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 어리석어 보이는 순종으로 아브라함의 고생스런 신앙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임상태로 늙어가는 아내와 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이 창대케 되고, 복의 근원이 되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시며
‘자식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느 누가 보아도 황당한 약속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약속대로 100살 된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은 성경 말씀이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이 없겠지만,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제 아브라함은 노년을 기쁨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기다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말년에 얻은 자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희망의 삶을 살아가는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잡아 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이 어떤 아들인지는 하나님도 아시고, 아브라함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생명입니다.
창세기 17장 19절에 보면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 17:19)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름까지 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겠다고,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삭을 죽이라고 명하셨습니다.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만약 저처럼 판단하여 따지고,
계산하고 논리적으로 확인해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하나님께 ‘하나님 말도 안됩니다’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하나님께 항의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비논리적인 명령에 불순종으로 대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니까,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아버지가 하나님께 순종한 것을 보며 자신도 순종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신 하나님이 극적인 순간에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는 아브라함을 막으시고 말씀하십니다.
“ …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창 22:16~17)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을 분명히 믿고 철저히 순종했는데
아직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까우신가요?
아직도 여러분의 삶에 현실이 되지 않은 약속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이 순종을 점검해 보십시오.
정말 하나님 말씀(성경)대로 믿고 순종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따라 살기가 어렵습니까?
어떤 분은 말합니다. “목사님, 성경말씀대로 살면 사업하기 힘들어요.
성경은 표준이지 어떻게 이대로 행합니까?”
“벌어서 먹고 살기도 힘든데 10의 하나를 어떻게 뗍니까? 그렇게는 못살아요.”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합니다.
비현실적인 명령에 순종하며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을 기억하십시오.
명령하신 그대로 준행하였더니
우리가 1년 동안 따라 온 성경 여호수아에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성경엔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올해 1월 1일 0시 송구영신 예배부터 시작해서 그 순종의 길을 배워왔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오직 여호와께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이 되는 수많은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보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바보스럽게까지 느껴질 만한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명령하신대로 행하는 곳에 기적의 길이
그리고 사건 해결의 길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은 한 바퀴씩,
그리고 일곱째 날은 일곱 바퀴를 돌게 하셨는지 …
왜 침묵하게 하시고 마지막 순간엔 함성을 지르게 하셨는지 …
그 모든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명령하신 그대로 준행하였더니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 정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단지 한번 순종하는 자에게 일회적으로 허락되는 축복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단지 축복의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의 말씀은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신 11:9)
장구 (길 長, 오랠 久, 오래 오래)라는 말은 오래 오래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을 누리며
오래 오래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로건 스미스라는 사람은
“인생에 두 가지 목표가 있는데 첫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달성하는 일이며,
다음에는 그것을 즐기는 일이다.
그러나 가장 현명한 자 만이 둘째 것을 달성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준민의 『영적 거장의 리더십』p.314 참조」
사람들 가운데 열심히 노력해서 목표를 이루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 이룬 목표를 즐기고 누리며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순종과 섬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면서 오래 오래 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 신명기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명령에 대한 철저한 순종입니다.
그 다음은, 다른 어떤 신에게도 미혹되지 말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는 것입니다(신 11:13,16).
이 두 가지를 합하면「순종」과「섬김」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두 가지를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쳤습니다. 요즘 표현으로‘올인’했습니다.
가나안 정복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여호수아가 들었던 평가를 보면
여호수아가 어떻게 살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수 11:15)
여호수아가 백성들과 함께 이루어낸 가나안 정복의 승리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철저한 순종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백성들에게 선언한 것이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입니다.
여호수아는 인생의 마지막에 자기의 후손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하나님을 섬겨라. 나와 내 집은 하나님을 섬기겠으니 너희들도 정하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한 민족의 지도자가 자기의 후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을 멋있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주변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올 것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진, 폭풍, 기근 … 같은 자연 재해가
이스라엘 땅에 임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당시의 급변하는 국제 정세나
어려운 경제 상황 같은 것들은 일체 언급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단 하나‘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여호수아가 현실에 대한 감각이 미래에 대한 예측, 통찰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 정도라면 그 당시 이스라엘이 생존하는 데 있어서
주변 국제적인 정세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당면한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꼭 붙들고 있으면 …
항상 승리하고, 풍성함을 누리며,
주변 국가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집중되어 있다면 항상 소망이 있다는 것을
여호수아가 알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그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산다면 이 땅이 축복의 땅이요, 약속의 땅이지만
하나님을 등진다면 멸망의 땅이요 저주의 땅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 여호수아는 그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경고와 함께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겁나는 일 많아도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들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것들보다 더 크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일들을
다 승리했던 것을 보면 우리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에만 시선을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처럼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우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보다 더 크신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에 소개했던 이야기지만 기억하시는 분이 몇이나 되실지 … 다시 한번 소개합니다.
1968년 스웨덴에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마져 짧은 중증 장애인 여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병원에서는 이 아이를 보호소에 맡길 것을 권했지만 …
그 부모는 그 여자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길렀습니다.
그래서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다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수영실력은 세계장애자 수영선수권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낼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멋있는 청년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팔도 없고 다리 하나도 짧은 중증장애인이 금메달을 땄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녀는 스톡홀름의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현재는 프로 가스펠싱어로서 전 세계를 다니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왔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레나 마리아’입니다.
그녀의 자서전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는 책을 보면
레나 마리아는 자신의 부모에게서 3가지 삶의 자세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첫째, 긍정적으로 삶을 대하는 사고방식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부모의 삶을 통해서 어떤 상황도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눈으로 보지 않고
가능성과 유익한 면을 먼저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둘째, 사랑과 격려를 항상 받았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딸을 동정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혼자 해결하게 했고,
꼭 도움이 필요한 일 외에는 도움을 주지 않도록 주위 사람에게도 부탁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깊고 아름다운 뜻이 있음을 굳게 믿는 믿음이
레나 마리아의 어두운 미래를 밝게 만들어 나갔습니다.
레나 마리아의 부모는 힘들고 어려운 일, 낙담할 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딸 레나 마리아를 맡겨 길렀습니다.
여러분은 두 팔, 두 다리가 있는데 무엇을 못합니까?
문제는 우리가 문제를 너무 크게 보고,
문제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하나님을 못 보게 하는 것입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면서 많이 해 온 말들이
“못한다, 못해먹겠다, 못 살겠다” 등으로 매사에 “못”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송구영신예배 때‘못’을 빼자고 했는데 … 그런데 아직도 ‘못’자가 들립니다.
아직도 못을 빼지 못하고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변함없이 …
우리는 올 한해 성경 여호수아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신앙의 여행을 했습니다.
우리가“못할 것이 없고 못 이룰 것”이 없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 다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산지를 달라고 1년 동안 부르짖었습니다.
그 산지는 이미 우리에게 다가 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산지를 정복하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삶은 성장해야지,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성장이 멈춘 것은 죽음/마지막을 향해 내려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믿음이 계속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잊지 마세요. 이미 하나님이 약속하신 산지는 여러분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산지에 사는 아름다움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심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말씀은 좋은데 믿지 못하고 따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휴일을 맞아 한 가족이 소풍을 떠났습니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갔습니다.
물장구도 치고 나무들 속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앉아서 음식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김밥과 음료수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병따개가 없었습니다. 산 아래 주차장의 차 안에다 두고 왔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막내에게 일렀습니다.‘차에 가서 병따개를 갖고 오너라’
막내는 입이 한주먹 튀어나와서는 떼를 썼습니다.
‘누나도 있고 형도 있는데 왜 저한테 시키세요.’
이번에 아버지가 장남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네가 갔다 오너라.’
장남은 ‘그럴게요.’하고 말하면서
“갔다 오는 사이에 김밥 먹지 말기”라고 한 마디를 더 했습니다.
모두에게 약속을 받고는 내려갔습니다.
가족들은 음식을 앞에 놓고 있으려니까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김밥을 먹을 수도 없고.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병따개 가지러 간 장남은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이제 김밥을 먹으려고 뚜껑을 여는 순간
갑자기 숲 속에서 장남이 뛰어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 그럴 줄 알고 가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지.’]
꼭 의심 많은 우리들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쓸데 없는 의심으로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들 이야기 같지요?
잊지 마십시오.
이미 하나님이 약속하신 산지는 여러분의 것이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산지가 평생토록 여러분의 영적성장의 터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하나님의 약속을/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그 믿음과 순종은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을 통한 순종은 결코 헛되지 않은 순종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 친척들과/친구들과/동료들 사이에서 …
믿음의 사람으로 올곧게 자신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의 비결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헛된 유혹에 귀를 기울이거나,
주변의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립니다.
그래서 성경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말씀이“변치 말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2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엡6:24) 했습니다.
왜 성경에 끊임없이 변치 말라고 했을까요?
순간적인 감정으로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고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 멸망 없는 영생을 얻었고 (요3:16)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고 (요1:12)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된 우리들 (빌3:20) …
한 생명도 버리시지 않으려고 독생자를
사람의 몸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베푸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장된 산지를 얻었으니 그 산지의 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약속된 복을 누리는 방법은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겼고, 불순종하면 서글플 정도로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약속된 복을 순종함으로 누리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에 예배의 자리의 주인공 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 것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에게 이김을 주시고
불순종하는 자에게 실패를 주셨음을 우리들이 잘 보아왔습니다.
그런데도 순종치 못하고 믿지 못했던 우리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사람으로 이 산지를 정복하여
승리의 삶을 간증하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