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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지 않는 하나님 (행 7: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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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지 않는 하나님 (행 7:51~60)



외국에서 오랜 동안 살다 이제는 미국의 지도급 인사가 된 한국인이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들을 했습니다. 그 분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북한에서 온 어떤 여자가 “한국 여자들은 살결도 우리같이 검지 않고 뽀얗고 예쁜데 왜 그렇게 다들 화장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쁜 옷을 입기 싫다고 막 버리는데 그런 옷을 한 가지라도 입어보고 싶어 하는 북쪽의 가족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남쪽 사람처럼 용모에 신경 쓰고 돈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어디가도 찾기 힘들 것 같아요. 미인에 걸신들린 나라 같습니다. 미국 여자도 하루 종일 거울만 들여다보며 얼굴 돌보기만 합니까?” 라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또 어느 외교관에게서 들은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과거 한국에는 악한 사람들이 정말 있었습니다. 정치 이념이 좋지 않다고 법 무서운 줄 모르고 사람을 죽인 정치가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천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나라가 한국 같습니다. 말도 천하고 행동도 천하고 정신도 천한 사람이 득실거립니다.’ 나라도 부유해지고 개인도 돈이 많아졌는데 왜 그렇게 천한 사람이 많아졌을까요? 옛날에 없고 못 먹을 때는 천한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더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는데 천한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교관의 이야기입니다. 외교관이기에 외국의 많은 나라를 보았을 것이므로 외국과 한국의 대비되는 것이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분이 목격한 한국인들의 모습 몇 가지를 전합니다. 지하철에서 다리를 팔자 모양으로 벌리고 옆 사람의 공간까지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 한 길에 서너 명의 친구들이 옆으로 쭉 늘어서서 걸어가며 바빠서 급히 걷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또 싱가포르 공항에서의 일을 전합니다. -한 쌍의 신혼부부가 타인의 눈총을 받는 줄 모르고 타인의 공간을 파고든 채 쇼핑가방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앞에 선 사람, 뒤에 선 사람의 가방을 건드리고 밀치고 있었다. 그러는 차에 드디어 뒤에 서 있던 인도 사람이 “여보세요, 이제 제발 그만 건드리세요.” 라고 소리쳤다.- 그가 보기에 매우 딱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결론적으로 비친 말은 ‘한국의 부자들은 아름답지 않고 우아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귀족은 커녕 돈 냄새만 풀풀 풍길 뿐이다. 천하고 경박해 보인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개발에 닭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에게는 예쁜 달걀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정말 부끄러운 말입니다. 여러분,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민족이 이런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이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이런 소리 듣지 마시고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이런 소리 듣지 않도록 하십시오.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 일입니까?

예수님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선물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종교 문제만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을 지도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곧 민족의 지도자들이었고 나라와 사회의 지도자였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나라와 백성들로부터 좋은 것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하루 두 끼 먹기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이들은 부도 명예도 다 가졌습니다. 얼마나 큰 복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선물을 받을 때는 그렇게 좋아했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이 자기들에게 조금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고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본문 54절에는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추한 모습입니까? 그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게다가 57절에는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줄 때는 두 손으로 벌떡 일어나서 받으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통해서 조금 싫은 소리를 하셨다고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초대 예루살렘의 아름다운 사람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개발에 닭알이라는 좋지 않은 이 말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런 사람을 두고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7: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덧붙여 그런 사람들에게는 진주나 거룩한 것을 줘봐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것을 받고도 좋은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이런 저런 재산을 나누어 주었더니 그것으로 오히려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염려해서 말씀하신 바가 오늘 본문에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에게 권세도 주고 명예도 주고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게 했더니 못된 짓만 골라서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종들이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영권을 가진 것은 당연하겠지만 세상의 좋은 것들을 가지게 되면 이런 일이 생겨납니다. 여러분은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좋은 것을 많이 가지는 것이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닙니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에게 좀 듣기 싫은 소리를 했다고 스데반을 처형해 버린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몇 가지를 보여주시면서 귀한 것을 가르치십니다. 먼저, 스데반이 무엇을 했으며 어떤 일을 했는가? 그리고 그에게 돌아온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말씀합니다. 스데반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그는 믿음이 아주 좋고 존경할만한 사람이었기에 교회에서 지도자로 뽑혔습니다. 그는 지도자로 뽑혔지만 뽑히기 전이나 뽑히고 난 뒤에나 똑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에 충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나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 잡혀 와서 답변할 때에도 오로지 그가 한 말은 하나님과 예수님뿐입니다.

그때 그는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존경하면서 정작 아브라함을 보낸 하나님은 존경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불린 것은 아브라함을 통해서이고 그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보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아야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을 보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만 자랑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공부시켜주고 집을 사주었는데 재산만 보고 아버지를 바라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유대민족은 율법을 정말 잘 지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과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율법을 받고 율법만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좋아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당신과 만나자고 주셨습니다. 우리 예배당도 마찬가지로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하라고 주셨는데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사귐이 없이 웃고 즐기기만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또 예수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너무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바로 하늘의 하나님 그 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님만 말했습니다. 얼마나 신실한 하나님의 종입니까?

그런데 이런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 스데반에게 돌아온 것은 고통밖에 없었습니다. 법을 어겼다고 이야기하고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죽는 것이 스데반에게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잘 보고 잘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일은 스데반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상 그리고 교회역사상 항상 있어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종노릇을 잘 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아서 평안함과 넉넉함,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은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보십시오. 그들이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때 사람들이 환호하며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보자 그들을 고친 자는 자신들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바로 예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나서 이들을 고쳤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들어 다시는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 말고 일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였는데 그 때 장면을 생각해보면 “여러분, 왜 그렇게 어리석은 말을 합니까? 우리가 여러분의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 같습니까?” 라고 이야기하면서 빙그레 웃었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그런데 이런 베드로와 요한에게 돌아온 것은 평안도 명예도 부와 세상적인 복이 아니었습니다. 체포되어 채찍질 맞고 심문당하고 핍박을 받고 고통을 받는 것만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란 이렇습니다.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은 다 그렇습니다. 종은 종놈이지 종님이 아닙니다. 종일뿐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종은 하나님의 종이고 예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스승이고 어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일을 당했기 때문에 참된 하나님의 종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참된 제자는 뒤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렇게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스승이 그렇게 당했는데 어찌 제자는 당하지 않겠습니까? 예수의 이름을 걸고 십자가의 이름을 걸고 자기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그 누구도 돌보지 않는 가난하고 병들고 불쌍한 사람들을 먼저 챙기셨습니다. 아무도 챙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이 예수였으므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수에게 돌아온 것은 처참한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나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합니다. 내가 정말로 예수의 뒤를 따라간다면, 정말로 예수의 제자라면, 정말로 하나님의 종이라면 나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합니다. 싫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종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세상도 좋아하지 않고 세상 사람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은 수치를 받고 별별 모욕과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누명 받도록 되어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초라했습니다. 아주 보잘 것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들도 때로는 비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신실한 종들을 절대로 그것으로 끝나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하고 충성된 종들을 반드시 영광받도록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최고의 영광을 얻게 하십니다.

본문 55절에는 스데반이 죽기 전에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한 번 보기만 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뜨겁게 연애할 때 다른 것이 보였습니까? 날씨가 상관없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55절에는 또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자주 서계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본문에서는 이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 우리 예수님께서 그대로 앉아계실 수가 없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다른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때 그냥 인사만 하시다가 여러분이 천국에 들어갈 때 예수님께서 일어서서 여러분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영광입니까? 여러분이 이 땅에서 얼마나 사십니까? 하늘나라에서의 시간은 영원합니다. 그 영원한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실 때마다 기뻐하시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여러분에게 좋은 자리에 앉혀주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영광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영광을 주십니다. 세상이 결코 주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하는 이런 영광을 주십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평화를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환경이 조금 좋지 않으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세상 그 어떤 상황도 빼앗아갈 수 없는 참된 평화를 주십니다. 본문 60절에는 돌에 맞아 깨어질 때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통 한 다섯 번 정도 돌에 제대로 맞는다면 죽는다는 소리를 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돌멩이에 맞아 죽어 가는 상황에서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평안이 도대체 어디서 생깁니까?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평안을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힘들게 훈련시킨 사람이 일을 얼마 하지 못하고 죽으면 그 사람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데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 각본대로였습니다. 너는 여기까지만 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라는 각본이었고 그가 죽은 것은 각본대로 된 것 일뿐 실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데반의 뒤를 이를 다른 종을 이미 준비하고 훈련시키고 계셨습니다. 58절에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장 첫머리는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훈련인지 아십니까? 사울은 한 평생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능력있게 일하면서도 늘 이때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얼마나 멋진 훈련입니까? 하나님께서 실패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최고의 것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 붙들고 있는 분이 바로 실패하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을 실패하지 않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일들을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딸들도 맡기고 아들도 맡기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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