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막 1:21~28)
본문
성경에는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 일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귀신이라는 말이 백 번 남짓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복음서에 여든아홉 번이 나옵니다.
귀신 문제가 예수님의 사역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서 첫 번째 기록입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마가복음은 사복음서 가운데서 제일 먼저 기록된 성경입니다.
마가복음은 간결하고 힘이 있는 표현이 특징입니다.
이야기의 진행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1장 1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매우 박력이 넘치는 선언입니다.
그 다음을 보면 세례 요한 이야기, 세례 받으신 일, 사탄에게 시험 받으신 일, 잠깐씩 말하고 바로 전도활동에 들어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베드로를 비롯해서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매우 숨 가쁘게 진행됩니다.
그 다음에 바로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다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낸 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중요한 일들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래 성경 모두가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중요한 일들만 기록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마가복음은 더욱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1장 13절을 보세요.
예수님이 시험 받은 일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다른 복음서들은 그 시험이 세 가지였고, 그 내용은 이런 것이고 예수님은 이렇게 물리쳤다는 사실을 자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같이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런 마가복음인데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은 이야기는 이렇게 자세하게, 그리고 여러 번 적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시작해서, 34절에도 온 동네의 많은 귀신을 내쫓으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39절 끝에도 갈릴리에 다니며 귀신들을 내쫓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5장에는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 사람에 들어간 더러운 군대 귀신들을 쫓아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귀신을 돼지에게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귀신 쫓아내는 이야기는 그 뒤에도 계속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까 ‘귀신 이야기는 복음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복음서 가운데에서도 마가복음에 제일 많이 나옵니다.
마가복음은 4복음서 가운데 분량이 제일 적은 성경입니다.
그런데 귀신이라는 말은 서른두 번으로 제일 많이 나옵니다.
그 다음이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에는 귀신 이야기가 서른 번 나옵니다.
도대체 귀신이 무엇인가?
귀신을 쫓아낸 이야기는 예수님의 사역에서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많이 나오는가?
이 이야기는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여러분,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오늘은 이 문제를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귀신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에 나오는 귀신은 악령과 같은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귀신이라는 말을 공동번역성서는 악령으로 번역했습니다.
귀신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킵니다.
특히 정신질환을 많이 일으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런 귀신 들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이런 귀신 들린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의학이나 심리학에서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 사람들은 정서적 불안상태가 심한 사람들, 정신이상, 간질병자,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성경이 그렇게 적은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신학자들 가운데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귀신, 악령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귀신을 쫓아낸 이야기는 예수님의 사역에서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성경에 많이 나옵니까?
예수님은 다른 할 일도 많이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귀신 쫓는 일을 힘써 많이 하셨습니까?
귀신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힘써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이 있었는데 차원은 다르지만 귀신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세력이었습니다.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이 회당에서 열심히 가르치시고 사람들은 놀라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들은 웅성웅성했을 것입니다. 분위기가 깨졌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치는 일을 더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24절을 보세요. 귀신의 첫 마디는 “나사렛 예수여” 이었습니다.
그냥 ‘예수여’ 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여’가 아니고 “나사렛‘을 붙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귀신의 교활함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깎아내리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교묘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렛은 시골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나사렛에서는 훌륭한 인물이 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전도했을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빌립이 고향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이 대뜸 뭐라고 했습니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요 2:45-46).
빌립이 “나사렛”을 빼고 그냥 ‘예수니라’했다면 나다나엘은 ‘오, 그래? 나도 좀 만나게 해 다오!‘ 했을지도 모릅니다.
귀신은 이런 사실을 잘 이용해서 예수님에게는 ‘당신, 나사렛 출신 아니오? 나사렛 출신인 천한 존재가 어떻게 구세주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거요?’ 기를 꺾으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이런 생각을 잘 이용해서 사람들에게는 ‘저 사람은 나사렛 출신이오! 저 사람 말을 들을 필요 없어요!’ 선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신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힘써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귀신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게 했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군대귀신 들린 사람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대 귀신 들렸다는 것은 많은 귀신이 들렸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 살지 못하고 무덤 사이에 거처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는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신 다음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귀신은 그 사람의 아들을 말을 못하게 했습니다.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고 파리해지게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불과 물에 자주 던졌습니다.
그 아들 역시 귀신 때문에 사람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유대의 어린이들은 일정한 연령이 되면 회당에 다녀야 하는데 이 아이는 회당에 다닐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성에서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고쳐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6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이 여종이 귀신 들려 있을 때는 사람답게 살 수 없었습니다.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돈을 벌게 해 주는 도구와 같았습니다.
이 여인은 여종, 노예였습니다. 노예는 당시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위에 이런 상태였으니 이중으로 비참한 처지였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보고 괴로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입니다.
사람답지 못하게 사는 사람들은 오늘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몇몇 사람의 정신질환을 고쳐주시기 위해 귀신을 힘써 내쫓은 것이 아니십니다.
만일 그랬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무엇보다도 위대한 정신병리학자였다.’고 하면서 그 관점에서 더 깊이 살펴야할 것입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천국건설 사업을 방해하기 때문에, 예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기 때문에,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힘써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귀신 쫓아내는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귀신의 문제를 너무 좁게 생각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충청남도 예산에 열심 있는 한 감리교 청년이 있었습니다.
영성이 매우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이 분은 침례교 목사님이 되어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그런데 귀신 문제에 너무 집착했습니다.
이 분은 귀신을 ‘제 명이 차기 전에 죽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 이렇게 규정했습니다.
이 분은 모든 좋지 않은 현상을 귀신에 결부시켰습니다.
한 가지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결국 여러 교파에서 이 분을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
이 분의 이름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귀신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 귀신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선한 의지와 도덕성을 상실하도록 하는 것, 귀신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구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귀신이 열심히 하는 일입니다.
만일 내가 인간적인 생각이나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면 나는 알게 못하는 사이에 귀신의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귀신의 일에 동참하지 않는, 협조하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귀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23절을 보면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라고 하였습니다.
회당은 학교의 역할도 하고, 예배당의 역할도 하고, 공중집회 장소 역할도 하고,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이 회당을 만들어 유대인의 중심지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회당은 가버나움에 있었던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선교본부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가버나움에 가면 회당의 폐허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성지순례를 한 분들은 가 보셨을 것입니다.
성지순례를 할 때 몇몇 곳은 거룩한 곳이라 하여 반바지를 입은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데 가버나움의 회당도 그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중요한 곳, 거룩한 곳, 한마디로 해서 있어서는 안 될 곳에 귀신이 있었습니다.
이 관점에서 오늘 우리 사회와 교회를 보면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귀신은 그 사람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귀신 안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온전히 귀신에 잡혀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귀신은 어떤 사람 안에 들어가 그 사람을 포로로 할 때 매우 철저하게 합니다.
어설프게 하지 않습니다.
귀신은 언제 역사합니까?
23절을 보세요. “마침”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깊은 뜻이 있는 말입니다.
“마침”은 헬라말로는 ‘유두스’인데 ‘바로 그 시간에’라는 뜻입니다.
「표준새번역성경」은 이 말을 “그때에”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때에” 어떤 때입니까?
예수님이 가르치는 일을 처음 시작한 때입니다.
21절,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여기 “가르치시매” 마가복음에서 이 말은 이곳에 처음 나옵니다.
예수님의 3대 사역은 전도, 교육, 치유입니다.
전도는 14절,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더라”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치유는 오늘 본문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것, 그리고 31절의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신 것에서 출발합니다.
교육, 가르치는 것은 바로 21절에서 시작됩니다.
이렇게 3대 사역 가운데 하나가 시작되는 때에 귀신은 방해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때에” 어떤 때입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이 직업적으로, 형식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당 안은 놀라움과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귀신은 방해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교회에서도 부흥회 한 다음에 어려움을 겪는 일을 종종 봅니다.
한마디로 해서 귀신은 중요한 때 방해 역사를 일으킵니다.
교회에는 ‘성령의 역사가 강한 곳에 악령의 역사가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성령의 역사가 강한 때에 악령의 역사가 강하다.’ 이렇게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장우석 전도사님이 간증을 하면서 이 말을 했지요.
예수님이 언제 시험을 받으셨습니까?
마가복음에는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셔서 광야에 사십 일을 계실 때라고 되어 있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사십 일 금식을 끝낸 다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약간 차이가 있지만 공통된 점은 성령이 예수님께 강하게 역사할 때입니다.
영적으로 가장 강한 힘에 사로잡혀 있을 때입니다.
금식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승리감, 성취감을 느낄 때입니다.
광야로 나가기 전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데 그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더욱 고조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때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여러분, 좋은 일이 있을 때에 귀신의 침투를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88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비롯해서, 북방국가들과 관계 개선 등 좋은 일이 많을 때에 그만 조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나라 전체가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모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말씀의 관점에서 말하면 귀신 들린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도 부흥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귀신은 중요한 때 역사합니다.
개인생활, 교회생활에서 이 점을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귀신에 대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 귀신과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너 지금 좀 가만히 있어! 네가 가만히 있으면 나도 너를 쫓아내지 않을 테니 우리 서로 좋게 지내자’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르치고 금방 다른 곳으로 갈 테니까 그 때까지만 조용히 있어! 그러면 나도 못 본 척 할께!’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호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습니다.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 예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것,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 지나친 욕심과 이기주의, 이런 것들은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보다 지금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귀신을 그냥 귀신이라고 하지 않고 “더러운 귀신”이라고 거듭거듭 말하고 있는데 오늘날에는 ‘더 더러운 귀신’들이 많습니다.
자,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을 살필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귀신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세력,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세력에 대해서 단호해야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의 악과 너무나 타협을 많이 하고 있는 느낌을 줍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하셨기 때문에 거기 있는 사람들은 놀랐고 예수님의 소문은 온 갈릴리 지방에 퍼졌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처음에는 그럴듯했으나 귀신을 만나니까 달라지는 사람이 하나 우리 회당에 다녀갔어!’ 이렇게 조금 퍼져 나가다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간구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6장 7절 이하를 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는 이야기입니다.
7절에서 9절까지를 봅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이제 전도의 길에 오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한 가지, 그것은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이었습니다.
양식, 배낭, 전대의 돈, 여벌의 옷,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악령을 쫓아내는 축사의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또한 천국복음역사를 방해하는 세력을 모두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또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들과 싸워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권능을 받은 제자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마가복음 6장 12절과 13절을 봅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오늘 저녁에 청년부가 제13회 마데테스를 하는데 마데테스는 ‘제자’라는 뜻입니다.
청년들이 ‘우리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하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이런 발표회를 하고 있습니다.
청년들만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저 모두를, 하나, 하나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예수님은 나도 제자로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나를 제자로 부르셨다면 내게도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을 주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퍼져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을 이기는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들, 물리치는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귀신을 물리치는 힘을 가진 교회가 강한 교회입니다.
그 힘을 활용하는 것이 바로 천국운동입니다.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약해졌거나 잃어버렸기 때문에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으로부터 귀신을 제어하는 힘을 받아 먼저 내 안에 있는 귀신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나와 그리스도를 멀어지게 하려는 생각,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을 방해하는 것,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는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강하게 받은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5장 16절,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도행전 8장 7절과 8절, 빌립의 사마리아 성 전도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우리교회도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을 향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너라!’ 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은 세력 앞에 단호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제거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칩니다.
귀신의 존재, 귀신이 하는 일을 바로 알고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너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 성도들과 교회가 되기를 이 세상에 계실 때 귀신 쫓아내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힘써 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