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니아와 삽비라 (행 5:1~11)
본문
한 젊은 변호사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막상 사무실을 열고 보니 찾아오는 손님이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파리만 날리고 있던 어느 날 첫손님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아마 변호사가 자신을 보이고 싶었나 봅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전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시늉을 하였습니다. “아, 죄송합니다만 제가 요즘 맡은 사건이 많아서 그 사건은 제가 하기 어렵겠습니다.” 그리고는 찾아온 손님에게 점잖은 목소리로 “손님은 무슨 사건으로 찾아 오셨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찾아온 손님은 민망한 듯이 “저~ 사실은 전화국에서 나왔습니다. 선생님 사무실에서 신청한 전화선을 오늘 연결시켜 드리려고요. 늦게 나와서 죄송합니다.”
오늘 본문의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은 우리가 잘 아는 무시무시한 사건입니다. 아마 이들은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싶은 명예욕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으로 무섭고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세상 사람들이 아직 교회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던 때인 사도행전 5장에서 이렇게 무서운 일을 일어나게 하셨을까요? 여러분은 이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말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깜짝 놀란 만한 사건이 있을 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 상식과 지식으로 납득하지 못하는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선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무시무시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치시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기독교의 정직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독교, 기독교인들과 교회의 정직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실까요? 두 번째는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사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서도 교회가 무엇인지,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그 가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나와 같이 살아가는 아내가 참 멋지고 좋은 아내인데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시시한 아내와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내놓으면 서로 모셔가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 그런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그 남편이 얼마나 좋은지 알지 못하면 시시한 남편과 살아가는 것이 됩니다. 가치를 알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여러분, 돈이 있다고 돈의 가치를 다 알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이 있다고, 재능 있다고 전부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만큼만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회가 막 시작하는 쯤에 교회란 어떤 곳인가를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그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세상 사람들은 물론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사람들 중에서도 교회란 어떤 곳인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이 무시무시한 사건을 여러분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시선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는 정직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이 무시무시한 사건에 대해서 여러 의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굳이 성경에 기록할 필요가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가끔 세상 언론이나 신문, TV에서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별로 마음이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것이나 예수 믿는 사람들의 좋지 않은 것들만 골라서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도 볼 성경에 구태여 그런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또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던 그 하나님이 거짓말은 조금 했지만 좋은 일을 하려다 그렇게 했는데 그렇게 하실 수 있는가? 이러면 누가 교회 가서 일하려 하겠으며 누가 교회에 헌금하려고 하겠느냐? 라고 충분히 우려할 수 있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고 나간다고 할지라도 교회에서 일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기독교인은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해 보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하나님 당신은 계속해서 그렇게 할 것이라고 아주 분명하게 천명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성경은 얼마나 정직하게 기록되었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근원은 야곱입니다. 야곱의 다른 이름은 이스라엘인데 성경은 야곱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여러분의 조상 야곱은 엄마 배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형의 발목을 잡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조상이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뿐 아니라 누구든지 보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근원은 거기서부터 출발했다고 고발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재주 부려 외삼촌 재산을 가로챈 것이 야곱이고 이스라엘 조상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중에는 자식을 편애하여 자식끼리 싸움을 불러일으킨 사람이 여러분의 조상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만큼 성경은 하나님은 정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편애, 야곱의 사기성은 그 어머니부터 이미 출발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리브가는 둘째 아들을 축복 받게 하기 위해서 야곱의 목에 털을 두르고 목소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여러분들의 조상이고 여러분들의 모습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마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본래 그렇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록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또 예수님의 족보를 이야기 할 때 그 많은 어머니들, 할머니들 중에서 다섯 여자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다섯 여자들은 모두 정숙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맨 처음 나오는 여자는 다말이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자식을 보기 위해 시아버지와 동침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낳은 사람이 예수님의 조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것을 아주 정직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조상 할머니 중에는 기생 라합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술만 따라주는 기생을 넘어서 거의 창녀였을 것이라고 많은 신학자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대로 정직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믿음의 선배들은 이런 사람들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한사람 룻이라는 사람은 자식을 보기 위해 집안사람이 잠자고 있는 홀 이불 밑에 살짝 들어가 잠을 자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의 조상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성경에 기록하지 않겠지만 하나님은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밧세바가 나옵니다.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그녀는 다윗과의 잘못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국에 충성하고 충직한 사람인 남편을 전쟁터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낳은 아들이 예수님의 조상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기독교인들이 건드리기 싫어하는 마리아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동정녀 마리아라고 믿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또 믿든 믿지 아니하든 간에 사실은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서 기독교란 이렇게 정직한 종교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도 정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교회에는 거짓말 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교회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싶어 땅을 판돈을 모두 내겠다고 약속하였지만 막상 땅을 팔아서 돈을 손에 쥐고 보니 아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것 저것 남기고 바친 후 그들은 다 바쳤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교회에 바치지 않아도 되었고 땅을 팔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들은 땅을 팔고 교회에 바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렇게 한 것보다 거짓말 한 것을 분명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이렇게 거짓말 하는 사람이 교회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거짓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추한 사람도 많고 시기 질투하는 사람도 많고 다투는 사람도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교회는 명예를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정직 하십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고 선하고 깨끗하고 의롭다고 한 마디 더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건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한 번 저주까지 했는데 그 사실이 우리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습니까? 그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당하고 있는가 알아보기 위해 대제사장 집에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그들로부터 당신도 같은 패라는 추궁을 받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한 번 저주까지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던 이 일을 오늘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베드로 자신이 이야기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베드로를 존경하고 베드로 얼굴 한 번 보려고, 목소리 한 번 듣고 싶어서 멀리서 몰려왔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한 번 저주까지 한 사실을 스스로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고 나면 이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의미에서 정직에는 또 다른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정직은 비참한 일입니다. ‘나는 이런 못난 사람입니다. 제가 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이건 이렇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직하면 손해 보는 것도 많고 과오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비참함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설사 부끄러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연출하여 부끄럽다 하더라도 정직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천성입니다. 하나님의 천성이 기독교인들의, 교회의 천성이 되어야 합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의 권세를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힘도 가지고 싶고 권세도 가지고 싶고 또 하나님의 지혜도 가지고 싶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가지고 싶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면 좋겠지만 그러나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고 하나님을 닮은 사람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을 닮아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한 사람, 이런 사람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천성입니다. 하나님의 천성이 여러분의 천성이 될 때에 여러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천성에 대해서 언제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전갈, 거북이 이야기인데 기억하실 것입니다. 전갈이 강을 건너가려고 하는데 강을 건너 갈 수 없으니까 거북이에게 자기로 하여금 강을 건너가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거북이는 전갈의 속성을 알기에 강을 건너 주었다간 당할 것이 뻔한 일이었으므로 거절하였는데 어찌나 사정하든지 마음이 약한 거북이가 전갈을 업고 강을 건너갔습니다. 강을 건너면서도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강 중간쯤 지나자 전갈이 거북이를 쏘아 버렸습니다. 거북이는 죽어 가면서 전갈에게 “너, 참 이상하다 여기서 나를 죽이게 되면 너도 죽을 텐데 왜 그 짓을 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전갈은 “나도 안다. 여기서 너를 쏘면 나도 죽은 것을 알지만 어찌하느냐 내 천성인데.” 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혹 손해 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교회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다니던 사람들이 떠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해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곧 하나님의 천성입니다. 아울러 우리들에게 요청하시는 바가 사람들을 끌어 들이기 위해서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교회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며 그럴 때에 그 교회에, 그 그리스도인에게 힘을 주고 권세를 주고 필요 할 때에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정직하라는 것이 처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말씀하시는 것은 교회란 어떤 곳인가? 라고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대강 알고 있지만 세상적으로 보면 또 계산적으로 보면 분명 손해 보는 장사입니다. 좋은 것은 많이 알리고 안 좋은 것은 숨겨야 되고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손해 보기 마련입니다. 하나님도 아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있는 그대로를 기록해 놓고 사람에게 공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도무지 넘어 갈 수 없는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죄이기에 그러시는 것일까요?
첫 번째는 성경에 있는 그대로 교회에서 하나님의 종을 속인 것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베드로를 속이고 어수룩하고 순진한 교인들을 속이면 사람을 속이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고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하는 일로 안내, 봉사, 교사, 찬양 등 여러 가지 귀한 일들이 많습니다. 이 전부 다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학교 교사란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합니까? 그런데 그런 일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봉사입니다.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봉사가 힘들어도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고 난 뒤의 천국은 예배도 없고 찬양밖에 없다고 하는데 바로 그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교인들을 안내하는 것, 차량을 안내하는 것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차량을 안내하다 보면 별별 시비도 다 있습니다. 그러나 참아야합니다.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반찬 준비를 했는데 반찬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원래 그런 것입니다. 그럼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란 다 그렇습니다.
그런 연유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바로 하나님께 지은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가 무섭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가 무서운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 앞에 거짓말 한 것, 교인들 앞에 거짓말 한 것은 교회에 사탄을 끌어 들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하여 사탄이 역사하도록 만드는 전초기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단호히 단절시킨 것입니다. 사탄이 얼마나 거짓말을 잘 합니까? 한 번 거짓말을 시작하면 누룩처럼 펴져나가게 됩니다. 사탄이 잘 하는 것들은 다 그렇습니다. 또 사탄은 이간질 시키는 일을 잘 합니다. 이 사람에게 이 말하고 저 사람에게 저 말하는 것 이것은 사탄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사탄을 끌어들이는 일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멱살 잡힌다고 하더라도 싸울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바뀝니다.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시끄럽게 떠들고 다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이 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전부 사탄이 하는 것입니다. 파벌을 만드는 것 또한 전부 사탄이하는 노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니아, 삽비라의 일은 교회에 사탄을 끌어 들인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처벌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은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소리를 들어도 교회에서 그런 일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천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교회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손해를 보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정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직하면 손해 볼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여러분으로 하여금 손해 보게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교회가 무너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직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이고 교회를 두려워함도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기 때문에 결과는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여러분, 교회에 돈이 많다고 세상 사람들이 칭송할 것 같습니까?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존경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정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칭송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될 때에 세상 사람들은 존경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정직하고 바른 길로 갈 때에 우선은 잘못된 것 같지만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고 권세도 생깁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교회를 두려워하는 것도 복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겁이 없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서 흩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를 훼손하는 사람, 교회를 오염시키고 교회를 잘못되게 하는 사람은 깨어지고 부서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변을 잘 보십시오. 교회를 두려워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복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복을 받기위해서 교회를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결과로 복을 주신다면 마다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직한 것, 교회를 두려워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여러분의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