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적 건강을 위협하는 영적 군것질들 (롬 1:14-17)
본문
에릭 프롬이라는 분이 ‘소유냐 삶이냐?’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사람을 소유형의 인간(having mode)과 존재형의 인간(being mode)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소유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소유 (to have)하는 것에 두고 사는 사람을 의미하고, 존재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존재 (to be)하는 것에 두고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사탄 앞에서 욥을 자랑하셨습니다. 세상에 욥과 같은 사람이 없다고 자랑하시니까 사탄이 욥을 깍아 내립니다. 욥이 그냥 하나님을 섬기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욥을 부자가 되게 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 하나님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쉽게 말해서 욥은 소유형의 인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탄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십니다. 욥이 부자인 것은 사실이나 그 때문에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욥은 소유형의 사람이 아니라 존재형의 사람이라는 것이셨습니다.
욥이 과연 소유형의 인간이냐 아니면 존재형의 인간이냐를 놓고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논쟁이 붙게 되자 당연히 욥을 시험해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유형이냐 존재형이냐를 시험해 보아야 하는 문제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욥의 모든 소유를 무너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욥이 사탄의 말대로 소유형의 인간이었다면 소유가 무너질 때 그 소유와 함께 무너질 것이고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존재형의 인간이었다면 그의 삶의 중심이 소유에 있지 아니하고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소유가 무너진다고 하여도 그의 인생과 삶은 무너지지 않게 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욥은 하나님의 생각과 같이 존재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소유가 다 무너지게 되었을 때에 그가 한 말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한 가장 훌륭하고 근사한 말 중에 하나였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이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여러분은 과연 소유형의 인간이십니까 아니면 존재형의 인간이십니까? 여러분의 삶과 믿음의 중심은 소유와 세상이십니까 아니면 존재와 하나님이십니까?
큰 아들이 그 동안 유학 준비를 해 왔습니다. 몇 학교에 지원을 하였고 지난 주부터 통지가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2개 학교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바보처럼 자랑하라면 제법 좋은 학교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 동안 가능성으로만 놓고 기도하던 아들의 미국 유학이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직 몇 개 학교의 결과를 더 지켜보고 결정을 하게 되겠지만 올 여름이면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 거의 확정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루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과 감사에도 그늘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지금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손녀 민희입니다. 아들과 며느리를 떠나보내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손녀 민희를 떠나보내는 것은 그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전자는 노력하면 될 수 있는 문제인데 후자는 노력만으로는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지난 일년 가까이 저와 한 집에 살면서 온갖 재롱을 다 보면서 키웠는데 그 아이가 이제 앞으로 넉 달 후면 제 곁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 벌써부터 무척이나 힘듭니다. 그 충격이 잠을 깨워 새벽에 잠이 깨는 일이 잦아 졌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제가 좀 더 유별난 것 같습니다.
이 제 약 넉 달 정도의 시간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빠를는지도 모릅니다. 그 넉 달 동안 제가 힘써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넉 달 후에 아주 건강하게 민희를 떠나 보내는 것입니다. 민희를 떠나보내고도 무너지지 않고 제 신앙과 삶의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입니다. 아마 제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격었던 어떤 어려운 일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저는 도전할 것이고 그리고 성공할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이 도전에서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는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목사로서 하는 상투적인 말이 아닙니다. 그 답은 하나님께 좀 더 집중하는 것입니다. 좀 더 속되고 거친 말로 표현 하다면 좀 더 하나님을 즐기는 것입니다. 좀 더 하나님의 맛을 깊이 알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사랑하여 하나님께 더 폭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세상의 모든 자랑을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다는 바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은 다 나를 떠납니다. 앞으로 십년 후면 저는 높은 뜻 숭의교회를 떠나야만 합니다. 지금은 교인 여러분들이 제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이 그러시지만 그 때가 되면 여러분들은 아마 저를 잊어버리실 것입니다. 좀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를 부담스러워 하실 것이고 저를 경계하실 것입니다. 아마 그때가 되면 여러분들은 저를 섭섭하게 하실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새로 오시는 목사님에게 집중하실 것이고 또 그 분에게 열광하실 겁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옳은 일입니다. 그때 여러분들이 떠나는 저에게 집중하고 새로 오시는 목회자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때 잊혀지는 아픔과 슬픔을 충격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슬픔과 충격을 가지고 교회를 떠나야만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도 벌써부터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모두가 다, 모든 것이 다 나를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것들과 사람을 하나님처럼 사랑하면 안 됩니다.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외에는 영원한 것이 없고 언젠가는 다 나를 떠나게 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사랑하고 그것에 의존하게 되면 그것들이 나를 떠나게 될 때 내 신앙과 인생도 함께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게 되면 사람은 그것의 종이 됩니다. 노예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의 교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애굽 고센땅을 더 사랑하여 애굽에 집착하고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 않게 되자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 그 어느 것도 집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자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집착은 우리에게서 소중한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외입니다. 하나님은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멍에는 매면 맬수록 가벼워지는 신기한 멍에입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는 멍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만 집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즐기시고 하나님의 맛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그 맛으로 세상에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하여도 능히 그것을 이겨내고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에는 아직도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습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그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영적으로 더 겸손한 존재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이유를 대라면 그것은 교회가 남자 보다 여자들에게 더 매력적인 집단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세상은 남녀가 평등하지 못합니다. 전에는 더했습니다. 100년이 넘은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옛날 교적부에 적혀 있는 여신도의 대부분은 이름이 없었답니다. 김씨, 이씨, 박씨, 수원 댁 등등.
지금은 여성들도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은 자기의 이름으로 불리워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누구 아내, 누구 엄마, 누구 할머니로 불리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은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꼭 누가 있어야만 그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 때문에 여성은 외로우며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지 못해 늘 공허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면 모든 여성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것만도 매력적인데 조금 지나면 직분이 붙기 시작합니다. 권찰님, 집사님, 권사님, 회장님..... 황홀해 집니다. 그 사회적인 신분의 회복이라는 매력 때문에 여자들이 남자 보다 더 교회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와 같은 심리는 여자들뿐만이 아닙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 민주주의 하지만,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세상은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분명히 있는 것이고 그것은 한번 결정이 되면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분상승의 기회가 생각처럼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 사회적인 신분이 그다지 높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도 직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도 일종의 계급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회적 신분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사회보다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가 많습니다. 조금만 노력하고 애쓰면 장로도 될 수 있고, 권사도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동물인 우리들에게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있는 목회자들과 교회는 그것을 이용합니다. 그것을 이용해 교인들을 교회에 묶어 둡니다. 그리고 교회에 충성하게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효과가 있습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습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들 중에는 직분을 바겐세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투표와 선거로는 모든 사람을 다 장로와 권사가 되게 할 수 없으니까 명예장로와 명예권사를 임명하는 것입니다. 아직 명예장로는 저는 본 적이 없지만 명예권사는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옳지 않다고 봅니다. 건강하지 않다고 봅니다. 실제로 오늘 날 우리 한국 교회가 건강을 잃어버리고 중병에 걸려 그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저는 바로 이와 같은 직분의 계급화와 그것의 바겐세일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 외에 다른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것에 자꾸 마음을 쏟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마약과 같은 것입니다. 잠시는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교회와 교인들의 영적건강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힘으로 결국은 교회와 교인들을 몰락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 밥을 먹지 않고 군것질로만 사는 어떤 어린 아이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냥 비만이 아니라 고도비만이 되어 건강상태가 아주 심각했습니다. 밥을 잘 먹는 아이가 건강합니다. 어려서부터 군것질을 지나치게 하다보면, 밥보다 군것질을 더 많이 하다보면 아이에게 좋지 못합니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밥 잘 먹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저는 요즘 교회가 교인들에게 밥을 잘 먹게 하기보다 군것질을 더 잘하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군것질 중에 하나는 기복신앙과 교회 직분의 계급화입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된다. 예수 믿으면 어떤 병에 걸렸든지 다 낫는다. 예수 믿으면 모든 일이 다 형통해 진다.> 꼭 찍어 이야기하자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것은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하여 밥과 같은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군것질 같은 것들입니다. 자꾸 그것에만 맛들이다보면 정작 중요한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맛을 모르게 됩니다.
그러면 큰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직분이 아닙니다. 물질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를 모든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중요한 하나님은 소홀히 하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셔두고 섬긴다면 그것이 우리를 떠나게 될 때 우리는 그것들과 함께 다 무너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세상의 그 누구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맛을 익혀야만 합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아야만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말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외에 다른 곳에 한 눈을 팔면 안 됩니다. 민희도 중요하고, 물질도 중요하고, 명예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이 믿음 안에 있을 때에만 그것들은 복이 됩니다. 그것이 지나쳐 그것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게 될 때 우리는 바보가 됩니다. 어리석어 집니다. 추해 집니다. 그리고 몰락하게 될겁니다.
믿음 없이 그냥 교회 백날 다녀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교회생활을 오래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교회 직분이 아무리 높아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냥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민희를 사랑하지만, 너무, 너무 사랑하지만 제 삶의 중심을 민희에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제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민희를 사랑하여야만 합니다. 그러면 민희와의 관계가 더 좋아질 겁니다. 평생 할아버지와 손녀로서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그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물질도 마찬가지이고,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들은 다 귀한 것이지만 하나님보다 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그와 같은 것들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서 문제없이 행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삽니다. 오직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