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
본문
이원준 [성경본문] 창27:30-40
50대쯤으로 보이는 버스기사와 비슷한 나이의 승객이 언쟁이 붙었다.
승객이 화가 나서 기사에게 “넌 평생 버스기사나 해 먹고 살아라.”했다.
기사가 대답하기를“넌 평생 버스나 타고 다녀라.”고 응대했다.
버스 기사 돈 많이 번다. 그리고 버스 타고 다니는 거 경제적이고 힘 안들고 괜찮다. 버스 운전해서 자녀들 네 명을 대학공부 다 시킨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딸은 한미 FTA 협상단의 직원으로 부총리 표창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평생 버스기사나 하고 평생버스만 타고 다녀서야 되겠는가?
직업의 귀천을 말하는게 아니다. 신분의 상승을 말하고 축복을 말하는 것이다.
버스회사 사장도 하고 에쿠스도 탈 능력도 되고, 그렇게 돼야죠.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큰 축복을 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처음으로 하신 축복의 말씀이 무엇인가?
너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라 한 것이 아닌가?
정복하고 다스리는 게 힘이 있어야 되지 않는가? 힘은 영적인 권위와 세상적인권력을 말하는 것이다. 권력에는 물질적인 힘도 들어가는 것이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주려한다. 그래서 별미를 만들어 오라 한다. 별미를 먹고 마음껏 축복하겠다고 한다. 에서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별미를 만들려고 사냥을 하러 간다. 그 사이에 남편이 하는 말을 리브가가 듣고 야곱을 설득하여 별미를 만들어 주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한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그 내용이 27-29 에 있다.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나오는 그 찰나에 에서가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들어가‘아버지, 내가 아버지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어 왔으니 잡수시고 마음껏 축복해 주십시오’말한다.
이삭은 일이 어긋난 줄 알고‘내가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고 말한다’.
이로 인하여 야곱은 결국 축복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이다.
태어나기 전에 리브가가 기도할 때 야곱이 에서보다 더 큰 축복을 받게 되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축복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축복을 받는 데에는 인간의 힘씀,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린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지만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신다. 두드리는 자에게만 열리는 것이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는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오늘은 이 주제를 가지고 은혜를 받읍시다.
1.그릇이 큰 사람(큰 그릇의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그릇이 크다는 것은 인품, 성격, 마음, 생각이 크다는 것이다.
스케일이 넓다는 것이다. 스케일은 일이나 계획 따위의 틀이나 범위, 크기 통을 말하지 않는가? 인물의 도량을 말한다.
스케일이 큰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서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고 하셨다. 그리고 또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고 하셨다. 보이는 땅을 주고 밟는 땅을 준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고 밟지 않는 땅은 주실 수가 없다, 받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서 사방을 바라보았고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았다.
그 이전에 아브라함은 태어나서 자라고 잔뼈가 굵은 고향을 떠나왔다.
‘여기 떠나면 어떻게 살아, 이것이면 족해’하는 사람은 더 큰 축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릇이 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야베스는 이렇게 기도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복에 복을 더해 달라, 지경을 넓혀 달라, 이것은 통이 큰 사람, 스케일이 큰 사람이 하는 기도이다.
수17장에 보면 땅을 분배할 때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여호수아에게 나아왔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복을 주시므로 우리가 큰 지파가 되었거늘 당신이 우리에게 기업을 한 몫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여호수아가 그 말을 들으니 일리가 있다. 그래서 대답한다
“너희가 받은 땅이 너무 좁으면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에 올라가 그 땅을 개간하라”. “그 땅도 우리에게는 너무 비좁습니다.”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지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어느 땅이든지 스스로 개간하라 그러면 그 땅이 너희 것이 되리라”
성경 지도에서 12지파의 땅의 면적을 보면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의 면적이 상당히 넓다.
이것은 가만히 앉아있는 데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해서 얻은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려면 그릇을 키워야 한다.
시81:10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의 말을 듣고 그릇을 빌려 올때 작은 그릇을 빌려 왔겠는가? 함지박처럼 큰 그릇을 빌려 왔겠는가? 분량만큼 생각하기를 바란다.
2.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이 큰 축복을 받는다.
믿음 있는 사람이 큰 축복을 받는다.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헤브론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내 나이가 비록 85세지만 헤브론을 준다고 허락만하면 올라가서 그 땅 사람들을 쫓아내고 우리 땅을 만들겠습니다’ ‘좋다, 가라’
갈렙은 믿음으로 요청하고 믿음으로 행하여 헤브론 땅을 치지하였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을 축복하신다.
국민일보를 보는데- 여러분도 보라. 신앙에 유익한 내용들이 많다.
그 기사 가운데 역경의 열매라는 간증기사가 있다.
처음에는 안 봤는데 어느 날 기사 내용이 눈을 끌었다.
대우그룹의 협력업체인 대의그룹 채의숭 회장의 얘기이다.
2001년 대우그룹이 부도가 났을때 받을 돈은 119억이었고 어음은 89억이었는데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어음을 막아야 했다.
은행과 보증기금에서 융자를 받아 하루하루를 연명하는데 집에 있는 반지 목걸이 보석 등 돈이 될 만한 것은 다 내다 팔았다.
그러는 중에 추수감사절이 다가왔다.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었다.
가지고 있는 것이 없으니---그렇다고 장로 가정에서 그냥 지나갈 수도 없고,
체면으로 할 수도 없고 난감했다.
감사절 전날 아내가 장롱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주택청약 통장이었다.
“여보, 이 통장을 해약해서 추수감사헌금으로 드립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겁니다”. 아내의 말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데 “여보 어차피 모든 것의 소유자는 하나님이시잖아요. 나중에 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이니 미련없이 바칩시다.”그러는 것이다.
아내의 믿음이 이 정도는 돼야한다. 그래야 장로감이다.
장경동 목사가 강의하는 것을 들었는데 평강공주는 바보로 소문날 온달을 고구려의 유명한 장수로 만들었단다.
내력은 이렇지요. 평강공주가 하도 떼를 쓰고 우니까 ‘바보 온달한테 시집보낸다’고 했더니 커서 온달한테만 시집을 가겠다고 고집을 세우더란다.
그래서 온달한테 시집을 보냈더니 바보를 장군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바보도 장군으로 만들었는데 적어도 여러분의 남편은 바보는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 대통령은 되게 만들어야 된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멀쩡한 사람을 바보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남자들은 죽을 때 아내에게 “미안해, 잘못했어”그러고 죽는데 기왕이면 좀더 빨리 그러면 좋지 않겠느냐? 그러면 어디가 덧나냐? 고 한다.
옳은 말이다.
아내의 믿음이 더 좋아야 한다.
그래서 해약을 해 가지고 추수감사헌금을 정성껏 드렸다.
그것은 정말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의 향유와 같았고 과부의 엽전과 같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회사상황은 여전히 급박하게 돌아갔고 나날이 부도를 막는 것이 시급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부도난 협력회사들로부터 일부자금이 회수되기 시작했고 어음도 무리 없이 해결됐다. 외국 자동차 회사들로부터 주문이 폭주했다.
직원을 더 채용해야 했고 밤낮없이 공장을 돌려야했다.
지금도 그 회사는 제품의 90% 이상을 외국으로 수출한다.
이것은 주택청약 통장을 깨드려 추수감사헌금을 드린 후에 일어난 기적이요 축복이었다.
하나님이 그들 부부의 순수한 믿음, 하나님을 사랑하다 못해 경외(두려워)하는 큰 믿음을 보시고 주신 축복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친구 둘이 바닷가에 낚시를 하러 갔다.
비록 낚시질은 서툴렀지만 비교적 고기가 많이 잡혔다.
그런데 한 친구는 손바닥 만한 작은 고기가 물리면 그것을 잡아 가지고 간 구럭에다 집어넣고 큰 고기가 물리면 다시 바다에 놔주었다.
옆에서 낚시를 하던 친구는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도중에 물을 수 없어서 궁금해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준비해온 도시락을 함께 나누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게, 이상한 게 하나 있어."
"뭔데?"
"가만 보니까 자네, 작은 고기는 잡아 구럭에 넣고 큰 고기는 오히려 다시 물 속에 놔주는데 이해가 안 가는 걸? 나 같으면 오히려 큰 것을 집어넣고 작은 것은 불쌍해서 바다에 다시 놔줄 텐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별 것 아니야. 우리 집엔 후라이팬이 7인치 짜리 밖에 없어서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기회를 주시는데 내 믿음의 그릇이 너무 작아서 그 큰 축복을 놓쳐버리는 경우는 없습니까?
하나님은 큰 축복을 받을만한 믿음이 있는지 믿음을 보신다. 그리고 합당하면 축복하신다.
막9:24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말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우리는 믿는다, 그런데 믿음이 없다. 부족하다. 이것을 신앙인의 불신앙이라고 한다. 믿기는 하는데 따져보면 이상하게도 믿음이 없는 것이다.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막상 무슨 일이 닥쳤을 때 보면 믿음이 없는 것이다.
주님이 갈릴리 바다 건너갈 때 베게 베고 주무시다가 깨어나서 풍랑 때문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보고 말씀하셨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 이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평상시에 믿음이 있는 것 같음과 비상시에 발휘되는 믿음은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도 이렇게 요청해야 한다.
“주여 믿음을 더하소서!” 340장
3.모험과 도전정신이 있는 사람이 축복을 받는다.
아브라함은 복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안정된 생활을 박차고 고향을
떠나 말씀을 좇아갔다.
야곱은 복을 받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복 받을 일을 감행했다.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는 것을 알고 리브가가 야곱에게 내가 별미를 만들어 줄테니 네가 형보다 먼저 들어가서 아버지를 대접하고 축복을 받으라고 말할 때
‘형은 털이 많은 사람이고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데 아버지가 나를 만져보시면 거짓이 탄로나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겁납니다’
‘그런 저주는 내가 받을 것이니 걱정 말고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라’야곱은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갖고 아버지께 들어갔다.
이삭이 야곱을 만져보고‘음성은 야곱인데 손은 어째서 에서지’하면서 능히 분간하지 못하고 야곱을 축복했다.
이때 야곱의 가슴이 어땠을까?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치지 않았을까?
새가슴처럼 콩당콩당 뛰었을 거다. 그때 이삭이 야곱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보기만 했어도 일은 탄로가 나고 야곱은 큰 책망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야곱을 복주시기 위하여 이런 쉬운 방법을 간과하고 손을 만져보기만 하고 분간치 못하고 축복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가?
축복을 받으려하는 야곱의 열망을 보셨기 때문이다.
야곱의 이 행동은 모험적이다. 도전적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이 일이 잘 안되면 어쩌지’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두려움에 삼키우면 도전을 하지 못한다. 두려울지라도 감행해야 한다.
도전하지 못하면 큰 축복도 없다.
사람들 중에는‘조금 먹고 조금 싸지, 밥만 먹으면 되지, 큰 욕심 부려서 뭣해’그러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포부가 없는 사람이다.
어느 어머니가 딸에게 들려주셨던 이야기다:
“세 마리의 쥐가 있었단다. 한 마리는 하수구로 떠내려 오는 밥알이랑 음식물 찌꺼기를 건져 먹으며 살았지. 추운 겨울에 그것들을 더러운 물에서 건져 먹으려니 온 몸은 물에 젖어 꽁꽁 얼어붙었지.
그래도 그 쥐는 매일 달달달 떨면서 그곳에서만 살다가 죽었지.
다른 한 쥐는 온몸에 똥을 뒤집어쓰고는 냄새나는 똥통에서 똥 냄새를 풍기며 살았지. 또 다른 한 쥐는 쌀 곳간에 살았어.
사시사철 넘쳐나는 하얀 쌀을 마음껏 먹고 졸음이 오면 따뜻하고 깨끗한 쌀가마니 위에서 쿨쿨 늘어지게 잠을 잤단다. 얘야, 쥐가 다니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니?”
“아니요.”
“그래. 하수구에 살던 쥐가 곳간에 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하수구에 사는 쥐는 일평생 그 하수구를 떠나지 못한단다. 더러운 물에 떠내려 오는 밥 알갱이를 주워 먹지 못하면 배고파 죽을까 봐 그곳을 못 떠나고 달달달 떨면서 살다가 죽는 거야.
똥통에 있는 쥐도 마찬가지야.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견딜 수 없으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지. 왜 못 떠나니?”
“그 쥐도 그곳을 떠나면 죽을까 봐 겁나서요.”
“그래. 언제라도 네가 있는 곳이 하수구 같거나 똥통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거든 다른 곳으로 가거라. 사람에게는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곳으로든 갈 수 있단다. 그곳을 떠나면 금방 죽을 것 같아도 죽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다 두고 떠났는데 죽었는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축복을 받았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라는 말이 있다.
위기는 축복받을 수 있는 기회인데 위험한 기회라는 것이다.
위험하니까 안전을 취한다 해서 기회를 놓쳐버리면 축복도 놓쳐버리는 것이다
축복과 위기는 함께 오는 것이다.
위기는 축복을 가져오는 통로, 과정, 기회이다.
축복을 받으려면 모험을 감행하고 도전해야 한다.
현재에 만족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축복을 받으려면 계속해서 도전하고 모험해야 한다.
전11:1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식물을 물 위에 던지는 것은 무모한 일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꼭 축복으로 돌아온다.
4.의지가 있는 사람을 축복하신다.
잠24:16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했다.
일곱 번을 넘어 졌을지라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의인 즉 믿음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일곱이란 완전수이다. 일곱 번이란 완전히 무너졌다, 완전히 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의인은 그렇게 망했어도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일곱 번이나 넘어졌으니 이젠 끝났어 하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은 의인, 믿음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 상범 이란 가수가 부른 노래가 있다.
오똑 오똑 오뚜기 놈이 넘어질 듯 비틀 거리다가 여봐란 듯이 일어나네
세상살이 고달프다고 말만 많은 양반들아 오뚜기처럼 살아가소
빈 털터리 맨 주먹에 인생길 가다가 실패를 해도 칠전팔기 정신이라
어화둥둥 내 인생아 내 인생이 다시 오네
의인은 실패했어도 실패했다고 주저앉아 있지 않는다.
또 실패할까봐 도전하는 것을 단념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또 또전한다
김 진홍 목사는 결혼하는 부부에게 오뚝이 인형을 선물로 주곤 한다.
선물을 받은 어느 부부가 물었다. “왜 장난감을 선물로 주십니까?”
이렇게 대답했지요. “이것은 장난감이 아닙니다. 앞으로 두 분이 부부가 되어 살아가려면 생각지 않게 실패하는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라는 정신을 지니라는 뜻에서 오뚝이를 선물로 드리는 것이다.”
사노라면 때로 넘어질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는 용기와 지혜를 지니라고 오뚝이를 선물로 준다.
그리고 오뚝이 인형의 뒷면에 말씀을 적어 준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느니라.”
믿는 사람들 중에서 가끔 엉뚱한 말을 하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자기는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함을 받은 이후로 늘 기쁨 충만하고 은혜 충만해 실족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 분을 만나면 타이르듯 일러주는데.
“형제님이 진심으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에 해당됩니다. 첫째는 형제께서 정신박약아일 정도로 지능이 심히 낮은 경우이든가 아니면 스스로 속이고 거짓말하는 경우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항상 순탄할 수는 없다. 인생살이는 마치 장애물넘기와 같아서 때로는 생각지도 않은 장애를 만나 넘어지게 된다.
그런 때에 신앙인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래서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삶으로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사26:3“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심지가 견고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마음이 견고하다는 뜻이다.
하나님만을 굳게 붙잡고 의지하는 마음상태를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평강에 평강으로 지켜주신다.
정말로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은 한 번도 실패를 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하고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하나님은 실패할까봐 두려워서 아무것도 않하고 도전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하고, 실패했어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을 마침내 축복하시는 것이다.
야곱을 보라.
어머니가 제의했을 때 그는 그의 말대로 걱정스러웠다.
아버지가 자신을 알아차리면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게 뻔했다.
그렇지만 야곱은 위험을 무릅쓰고 축복을 받기 위하여 모험을 감행하고 최선을 다하였다.
야곱이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 영적인 축복이지 세상적인 물질적인 축복이 아니다.
물질적인 축복은 힘쓰고 애씀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영적인 축복을 받고 태어났어도 힘쓰지 않으면 아무 축복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고,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으며
일하는 소가 먹을 것을 받는다 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가난하게 살아도 천국에만 가면 된다는 식의 믿음은 결코 좋은 믿음이 아니다.
천국에 가기 전까지 이 땅위에서 할 일이 너무 많다. 그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크게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 축복을 주실 사람을 찾으신다.
큰 그릇의 사람이 되라.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이 되라. 모험심과 도전정신을 가지라. 의지있는 사람이 되라.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