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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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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 3:1~12)


회개란 무엇인가?

'회개'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이라고 아주 간단하게 나와 있습니다. 작은 포켓용 국어사전뿐 아니라 엄청나게 두꺼운 국어대사전을 찾아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세상에서는 회개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는 모양입니다. 세상에서는 회개가 별로 필요 없는 모양이지요? 회개란 그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나 큰 죄를 져서 감옥에 갇힌 흉악범이나 하는 것이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믿는 기독교에 있어서 회개는 대단히 중요할 뿐 아니라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간단하게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 정도가 아니라 회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너무도 할 말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죄 사함의 세례를 베푼 내용입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회개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회개의 장소

첫째, 회개의 장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전파합니다. 왜 하필이면 척박하고 아무도 살지 않는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한 것일까요? 기왕이면 큰 도시 예루살렘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네거리 같은 곳에서 선포하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회개를 어디서 해야 할지 깨닫게 됩니다. 회개는 나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지, 얼마나 못나고 부족한 존재인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 편안한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됩니다. 내 편안함 자리에서 내려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요나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고 선포하자 니느웨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습니다(욘 3:6). 왕의 자리, 편안하고 좋은 자리 포기하고 땅바닥으로 내려와 재 위에 앉고, 또 화려한 왕의 옷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자신의 모든 좋은 것과 기득권과 편안함을 포기하고 내려와야 진정한 회개가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또 회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 의식하고서는 진정한 회개가 불가능합니다. 사람 많은 곳이 아니라 홀로 하나님과 1:1로 단 둘이 만날 때 진정한 회개가 가능합니다. 아주 고독하지 않으면 회개가 안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세례 요한은 가장 척박하고 사람들이 가지 않는 거친 땅이요 고독의 땅인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했고, 4절에 나온 것처럼 자신도 좋은 옷, 좋은 음식 다 포기하고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가장 척박한 음식인 메뚜기와 석청(야생 꿀)을 먹고 살았던 것입니다. 회개를 선포하는 사람답게 회개하는 자의 자세를 보여 준 것이지요.

회개의 메시지

둘째, 2절에 보면 세례 요한이 전파한 회개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이아'인데 이 말은 마음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는 '슈브'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데 두 낱말이 모두 어떤 것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뜻합니다. '회개'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회개란 자기 잘못을 후회하고 뉘우치는 감정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회개는 마음으로만 뉘우치고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해놓고 "엄마아빠 잘못했어요." 하고 울면서 비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 다시는 그런 짓 안 하도록 그 잘못된 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회개한 사람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 잘못된 행동과 길로부터 돌아섭니다. 오래전 '투캅스'라는 우리나라 영화가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의 한 장면에서 타락한 형사인 안성기가 교회 와서 남의 등을 쳐서 번 돈의 십일조를 내면서 "오, 하나님 내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회개의 문제를 정말 날카롭게 지적했다고 봅니다. 회개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회개한 사람은 그 죄로부터 돌아서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이것이 참 회개입니다.

또한 회개해야 할 이유로 "천국이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선포합니다. '천국'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뜻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이미 그 때는 회개한 자는 구원 받고, 회개하지 않은 자는 영원한 심판의 지옥 불에 떨어지기 때문에 그 때 가서 후회하고 행실을 바르게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전에 이미 천국 백성이 됩니다. 이미 천국은 가까이 와 있습니다. 오늘밤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아주 가까이 온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중에 안 바쁘면 교회 나오고, 천천히 믿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 합니다. 언제 하나님 나라가 임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당장 믿으십시오. 지금 당장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십시오. 지금 당장 구원 받고 천국 백성이 되기 바랍니다. 천국이 가까웠습니다.

죄의 고백

셋째, 회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의 메시지가 선포되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인근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와서 자기 죄를 자복합니다. 여기서 '자복'이란 고백하다, 시인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게 있는 모든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낱낱이 털어놓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일이 있게 마련이지요? 여러분은 이런 비밀 없습니까? 저도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비밀을 제일 잘 털어놓나요? 믿을만한 친구에게나 혹은 남편이나 아내에게 잘 털어놓습니다. 어떤 분은 결혼한 후에 서로에게 숨기는 일이 없기로 약속하고 옛날에 있던 일을 몽땅 다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나쁜 짓 한 것, 못된 일 한 것까지는 서로 잘 듣고 있다가 정작 옛날 사귀던 애인 얘기가 나오자 그만 대판 싸우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나 심지어 배우자라 해도 끝까지 서로에게 털어놓지 않는 비밀이 한두 개는 있게 마련입니다. 맞지요? 오늘 이 설교 듣고 집에 가서 "당신, 나한테 숨기는 것 있으면 다 털어놓으라."고 했다가 부부싸움 하는 집도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 비밀을 끝까지 털어놓지 않는 것이 좋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다릅니다. 우리 죄를 전부 다, 아무리 부끄러워도 남김없이 털어놓지 않으면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털어놓지 않아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지만 자녀 된 우리가 내 부끄러운 죄와 허물을 스스로 털어놓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1907년 평양에 성령의 바람이 불자, 장대현교회에서 그동안 숨겨 놓았던 무서운 죄를 다 털어놓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남의 돈 떼먹은 일, 간음한 일, 전쟁 통에 자기 자녀를 버리거나 죽인 일까지 정말 무섭고 끔찍한 죄가 너나 할 것 없이 자백되는데 어떤 선교사는 "마치 지옥에 온 것처럼 온갖 죄가 다 터져 나왔다."고 증언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내 원죄와 내 스스로 범한 자범죄까지, 내 기억 속에 있는 모든 죄를 크던 작던 내놓고, 누구에게도 알리기 싫은 내 아픔과 상처와 더러운 죄악을 하나님 앞에 낱낱이 내놓을 때 우리의 주홍 같고 진홍 같은 붉은 죄가 흰 눈 같이, 양털 같이 깨끗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사 1:18).

죄 사함의 세례

넷째, 이렇게 죄를 자복한 사람들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습니다(6절). 죄를 자복하면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이 죄 사함의 '표시'가 바로 세례인 것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 반드시 먼저 신앙고백을 하게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고백 없이도 세례만 받으면 죄가 사해지는 줄 아는 분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세례는 그저 죄 사함 받은 표시로 "이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고 사람들 앞에 선포하는 예식일 뿐 세례 자체가 무슨 죄를 사해주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제가 세례 교육할 때 예로 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번 주에 각 학교 졸업식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졸업식'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수업 한 시간도 안 받은 학생이 무조건 졸업식 날 와서 졸업장 달라고 떼쓰면 줍니까? 반드시 학교에 나와 수업을 다 받으면 "이 사람은 학교를 잘 다녀 졸업할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하고 사람들 앞에 공포하는 예식이 졸업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세례식은 어떤 예식이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으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하고 사람들 앞에 공포하는 예식입니다. 죄 사함의 확신과 신앙고백도 없이 무조건 물을 머리 위에 뿌린다고 해서 죄가 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간혹 신앙고백도 없이, 또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15살 넘었다고, 교회 나온 지 6개월 넘었다고 무조건 세례를 받는 분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내 죄 사함을 받았다는 고백 없이, 또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얼떨결에 세례 받으면 평생 후회하게 됩니다. 왜? 세례는 평생 한 번밖에 못 받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초코파이 준다고 따라갔다가 얼떨결에 세례를 받았는데 나중에 제대로 믿고 보니 그렇게 세례 받은 것이 너무 후회스러워 한 번 더 세례 받고 싶다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이미 받으신 분은 어쩔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세례 받은 사람답게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면 됩니다. 또 아직 세례 안 받은 분은 이 사실을 분명히 명심하고 꼭 제대로 신앙고백 하고, 죄 사함 받고, 잘 준비해서 세례 받기 바랍니다.

또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반드시 그 표시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꽤 오래 교회를 다니고도 바쁘다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세례를 안 받고 미루는 분들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으로 이미 죄 사함을 받은 것이고, 이렇게 죄 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세례를 받아서 정식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선포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물세례입니다. 11절에 보면 성령세례, 불세례도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준 세례는 물세례지만 세례 요한 뒤에 오시는 예수님은 성령세례와 불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물세례와 성령세례 불세례는 따로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물세례를 받았어도 성령세례 불세례 못 받은 성도도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둘을 구분하기보다 예수님이 세례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신 것처럼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물을 뿌리는 형식만이 아니라 정말 내 마음 속에 성령이 내려오셔서 충만히 임하시고 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 뜨거운 성령의 불로 내 모든 죄와 더러운 것이 다 불살라져서 깨끗해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물세례뿐 아니라 성령세례와 불세례를 다 받아야 제대로 죄 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는 법입니다.

심판은 있습니다

다섯 째,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7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유대교의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자신이 세례 베푸는 곳에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독설을 퍼붓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여기서 '독사의 자식'이란 정말 심한 욕입니다. 요즈음 말로 바꾸면 'Son of bitch' 즉 '개자식'정도 되는 말입니다. 왜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이런 심한 말을 한 것일까요? 무조건 바리새인 사두개인이라고 이런 욕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단강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나타난 이유는 아마 자기들도 죄를 자복하고 세례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려고, 나아가 세례 요한이 무슨 불순한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태도는 회개와는 정 반대가 되는 행동입니다. 자신들이 누리는 지위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가장 교만한 자세요, 또한 "나같이 종교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무슨 회개할 것이 있느냐?"는 태도이므로 세례 요한은 거침없이 이들을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부르며 "그런 교만한 자세로는 절대 심판을 피해 갈 수 없다."고 단언한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이라고 해서 무조건 심판만 선포한 것이 아닙니다. 8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너희도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반드시 용서 받는 것이 회개의 특징입니다. 사람을 여럿 죽인 흉악범이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예수 믿고 회개했다는 말을 간혹 듣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아무리 회개해도 인정해 주지 않고 사형을 시켜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세상에서 용서 못 받을 흉악범이라 해도 진정으로 회개하면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십니다. 그래서 바리새인 사두개인이라 해도 회개만 하면 용서받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믿음으로가 아니라 혈통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믿고 자기들만 구원 받는다는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하나님이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요즈음 말로 바꾸면 "아브라함의 자손은 무슨 쥐뿔도 없는 소리야?"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혈통이니 하는 조건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개하고 자복한 사람만 하나님의 자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도 물론 기회는 있지만 교만하고 잘못된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이 회개하고 구원 받기는 정말 힘들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들처럼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오직 무서운 심판이 주어질 뿐입니다. 10절부터 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좋은 열매'란 회개의 열매와 회개한 자 다운 삶을 뜻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는 자에게는 나무뿌리에 이미 놓여진 도끼처럼 심판이 즉각 닥쳐온다는 뜻입니다. 또 12절도 봅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타작할 때 알곡만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태우듯 회개한 자는 천국에 들어갈 것이요, 끝까지 회개를 거부한 자들은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떨어진다는 무서운 심판의 말씀입니다.

현대 교회에서 회개와 심판의 메시지가 사라져 버렸다고들 합니다. 실제로 설교자들은 교회 강단에서 더 이상 회개나 심판을 잘 전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성도들은 회개나 심판 이야기 하고 지옥 이야기 하면 "교회에서 뭐 저런 소리를 하나? 좋은 말도 얼마든지 많은데 말이야." 하면서 몹시 불쾌해합니다. 이게 무서워서 정직하지 못하게 성경이 분명히 증거하는 회개나 심판이나 지옥을 언급하지 않는 설교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입만 열면 무조건 잘 될 거라고, 축복과 은혜만 선포하는 설교자들을 성경은 분명 거짓선지자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회개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만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귀사탄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예수 못 믿게 하기보다 회개 안 하고, 진지하고 심각한 신앙생활을 안 하며 가볍게, 부담 없이 믿도록 유혹합니다. 매 주일 예배시간에 참회의 기도 순서가 있는데 마귀가 이렇게 속삭입니다. "뭐 그리 회개할 게 많다고, 괜찮아, 너도 그만하면 잘 믿는 거야." 회개가 필요 없다고, 그만하면 잘 믿는 것이라고 말하면 마귀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회개 안하고 스스로 적당히 만족하며 신앙생활 하도록 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심판에 떨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네 주 동안 '회개'를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교만과 무감각증으로 "나는 회개 안 해도 돼." 하다가 심판의 도끼질을 면치 못한 바리새인 사두개인 같은 신앙인이 아니라, 너도나도 유대 광야로 모여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듣고 요단강에서 죄 사함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처럼 겸손한 회개로 진정 복 받은 삶을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진정한 회개운동의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는 우리 효자교회 되기 바랍니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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