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 하나님께 돌아가기 (대하 30:5~12)
본문
육체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기도하는 눈, 영적인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얽혀 있고 회복되어야 할 것뿐이다. 겉은 그럴 듯하고 멀쩡한데 속은 다 썩어서 냄새나고 절망과 탄식 뿐이다. 나라는 나라대로 분단의 상처로 고통하고 있고 새와 벌들도 자유롭게 오가는 북한 땅을 맘대로 가지 못한 지 반세기가 넘었다. 사회는 사회대로 삶의 도덕적 기초가 무너져 내려 밤이면 외출조차도 맘대로 할 수 없는 살인, 폭력, 절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을 토막 낸 가방을 들고 전철을 타고 활보하려는 인간성이 마비된 어둠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나라와 사회를 걱정하는 우리 자신은 어떠한가?
‘나’라는 자아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끊임없이 표류하고 있는 소진하는 인생이 아닌가?
도박에 삶을 팔아버리고 쾌락에, 알콜에, 마약에 삶을 팔아버리고 끝없이 떠내려가는 삶이 아니더라도 사라질 것을 붙잡고 사는 방황하는 삶이 아닌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내가 나를 돌아보아도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복수하고 분노와 혈기 속에 신음하며 어리석은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정말로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보다 비난과 공격과 업신여김으로 으시댄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내 맘대로 사는 죄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내 기분대로, 내 맘대로 사는 불신앙의 죄다. 죄가 우리를 온통 병들게 하고 망하여 죽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진정한 회복의 길은 하나님께로 먼저 돌아가는 일이다. 참된 인생을 사는 것은 돈을 많이 벌게 하는 경영학과 경제학이 해법이 아니다.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상담학과 심리학이 해법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레져나 스포츠같은 문화 진흥도 해법이 아니다. 사람이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어서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복의 지름길이다.
히스기야는 이 회복의 길을 깨달았다. 대하29:8을 보면 유다와 예루살렘이 버림을 받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므로 주변 강국에 의해 두려움을 당하고 놀림과 비웃음거리가 된 것이 하나님 앞에 저지른 범죄 때문임을 말하고 있다.
대하29:6~7을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삶, 하나님을 버린 삶, 하나님의 성소를 외면한 삶을 언급한다. 낭실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번제를 중단한 삶, 이런 기초적인 신앙 생활을 그만 둔 삶을 계속하는 이상 민족의 회복, 개인의 회복, 공동체의 회복은 없다는 것을 히스기야는 알았다. 히스기야는 진정한 살 길, 회복과 축복의 길을 위해 성결 운동을 시작한다.
지도자가 성결한 자가 되자. 성전을 거룩하게 하자. 중단된 성소의 기능을 회복하여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자.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축하하는 유월절을 지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려 한다. 여기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고 성전을 정화하는 것은 어떤 종교적 이벤트를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다. 어려운 시대에 왕이 된 히스기야, 25세 청년의 나이에 왕이 된 히스기야는 민족의 회복, 공동체의 회복을 원했다. 즉, 위기와 고통에서 벗어나 선민답게 살기를 원했다. 그 갈망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신앙 운동이었다.
우리도 이 확신을 가져야 한다. 회복의 길은 자동차를 많이 만들어내고 우주선을 개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일이다.
첫째, 악한 열조같이 사는 삶을 떠나라. (대하30:7)
대하30:7 “너희 열조와 너희 형제같이 하지 말라.”
왜, 조상들과 형제들, 삼촌, 이웃 사람같이 하지 말라고 하는가? 여호와께 범죄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살아온 방법대로 따라가서는 안된다. 히스기야 왕만 하더라도 13대 왕이 되었지만 선왕인 아버지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다. 아하스는 유다 왕 중 가장 악한 왕으로 곤고할 때 더욱 여호와께 범죄한 왕이다. 우상을 소개하고 우상 단을 만들고 성전 문을 닫았던 왕이다.
열조와 같이, 형제들과 같이 따라간다면 더욱 하나님께 멀어지는 삶을 살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삶과 통치가 어떤 유산을 남겼을지라도 하나님이 미워하는 모습이라면 악에서 떠나야 한다. 따라가서는 안된다.
우리의 부모, 형제들은 어떠한가? 과연 그대로 따라가도 하나님이 기뻐할 모습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있는가? 우리는 부모, 형제, 이웃을 원망하거나 핑계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술꾼으로 살았던, 아내를 때리는 폭력과 학대의 사람으로 살았던 닮지 말고 떠나야 한다. 악의 흉내를 내지 말고 열조같이 사는 삶의 영향력을 받지 말고 떠나라. 부모가 기도를 업신여긴다고, 열조가 헛된 미신에 빠졌다고 나도 따라가면 안된다. 하나님께 돌아가자. 그것이 회복이다.
말3:7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오늘 본문도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러면 저가 너희 남은 자 곧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에게로 돌아오시리라.” 하였다. 열조의 삶은 거짓되어 자녀에게 모방하는 모델이다. 흉내내게 하는 영향력을 준다. 그러나 불신앙으로 산 열조의 유산, 가풍, 가계에서 떠나기를 축원한다.
둘째,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섬겨라. (대하30:8)
대하30:8 여호와께 돌아왔으면 “영원히 거룩케 하신 전에 들어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 그 진노가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거룩한 전에 들어가 섬기기 위해 전제되는 것이 무엇인가? 목을 곧게 하는 것을 버리는 겸손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다. 그 겸손 위에 진정한 섬김은 시작된다. 교만한 자는 섬길 수 없다. 악에서 떠나지 못한 불신앙인은 진실로 섬길 수 없다. 섬기는 흉내는 잠시 낼 수 있을지라도 교만한 자는 아름답고 거룩한 섬김을 만들어 낼 수 없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복의 길은 겸손히 매일 섬기는 데 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퇴보한다. 죄가 우리를 엿보게 된다.
그러므로 일하라. 섬겨라. 말씀을 듣고 배우려고 말씀을 섬기면 칼보다 예리한 말씀의 능력이 나를 인도한다. 매일 기도하며 섬기려 하면 유혹과 시험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안전하게 한다. 예배의 자리에서 섬기려 하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체험한다. 삶의 현장에서 삶으로 봉사하면 이 세상이 복음의 영광을 맛보는 기쁨이 충만하게 흐른다. 육의 욕구가 강하여 옛사람으로 돌아가려 하더라도 성령님께 순종하여 섬기라 성령을 쫓는 자에게 생명과 평안이 넘치게 된다.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관련된 것을 섬기면 하나님의 진노는 떠나가고 회복이 다가온다. 하나님의 전을 섬기려는 자에게는 낙망케 하려는 어떤 대적도 일곱 길로 쫓겨가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주님 곁에 가까이 하는 복을 받는다.
셋째, 말씀대로 준행하라. (대하30:12)
왕의 보발군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신앙 운동은 편지를 만들어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루 다니며 전할 때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 그리고 스불론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사람들이 왕의 명을 좇아 전하는 보발군을 조롱하며 비웃었다. “그것이 사는 길인가? 회복의 길인가? 조상들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당연성이 있는 것이어늘 신앙적 정화를 한다고 그것이 무슨 잘되는 길인가?”하며 비웃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이 마음을 낮추어 북왕국 사람인데도 예루살렘으로 모여왔다.
대하30:12을 보면 “하나님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저희로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일심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고 적고 있다. 회복의 길은 일심으로 결단하는데 있다. 말씀대로 말씀을 지켜 적용하며 살겠노라는 말씀 순종에 있다.
말씀 속에는 성공 설계도가 들어있다. 건강을 위한 웰빙 설계도가 들어있다. 말씀은 양약과도 같아 처방받은 자를 치료한다.
시19:7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 완전한 율법이라고 하며 영혼을 소성케 하고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한다고 하였다.
시19:8 마음을 기쁘게 한다. 눈을 밝게 한다. 그래서 금,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라고 하였다.
시편 119편 기자는 말씀의 복됨을 알았기에 34절에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라고 하였고 44절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하였다.
말씀을 준행하는 자에게 주신 약속은 회복에 멈추지 않는다. 내 창고와 내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자기의 선민이 되게 하고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고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뛰어난 민족이 되게 하신다. 말씀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다. 하나님에 대한 존중이다. 하나님을 향한 경배이다. 또한 나의 회복과 축복의 지름길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아간다는 것과 같다. 말씀이 삶의 표준이고 규범이기에 잘될 수 밖에 없다.
오늘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운동! 이것이 우리들에게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우리의 이웃과 민족을 향해 담대히 외치고 싶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신앙 정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25세된 히스기야와 그를 따르는 백성들은 드디어 속된 것을 뿌리 채 캐내어 던져버리고 하나님의 원하는 것은 말씀을 준행으로 붙잡는 이들이 되었다. 그때 어떤 결과가 왔는가? 심판, 진노, 무너짐, 위협, 곤고함 속에 있던 저희들에게 놀라운 일이 주어졌다.
1. 사하시는 용서가 주어졌다. (대하30:19~20)
용서가 부흥이다. 백성의 깨끗지 못함을 고치고 사하시는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였다.
2. 희락이 주어졌다. (대하30:24~26)
솔로몬 때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최고의 희락이 주어졌다.
3. 응답이 주어졌다. (대하30:27)
종교 지도자들의 축복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고 응답이 임하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는 길, 회복의 길은 간단하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악에서 떠나면 히스기야 시대가 경험한 회복이 이 시대도 주어질 수 있다.
용서가 필요한가? 희락이 필요한가? 상달된 기도가 필요한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섬겨라.
절망의 이 시대에 희망이 필요한가?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듣고 배우는 말씀을 준행하라. 일심으로 준행하라. 상상하지 못한 인생, 정말 놀라운 회복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