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내지 말자/출20:17/2004…
본문
설교: 몇 주 동안 계속해서 십계명을 살펴보며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십계명설교 마지막 날입니다. 아마도 매 주일마다 십계명을 살펴보면서 좀 지겨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솔직히 말해주셨는데 주일마다 말씀 때문에 매우 부담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이며, 또 우리에게 엄청난 복을 가져다주는 계명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받은 백성이기에 분명하게 지켜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십계명중에 가장 작은 죄처럼 보이는 제 10계명을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이 열 번째 계명은 가장 작은 계명 같으나 실상은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17절을 다같이 다시 한번 읽습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1. 탐심이 무엇인가? 탐심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나라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부당한 욕심, 탐내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삼으로는 부당한 욕심이 탐심입니다. 이 탐내는 마음이 모든 죄악의 기본이요 근원입니다.
사단 원수마귀가 인간에게 선물한 무서운 도구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탐심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죄를 지어 탐심이 생긴 것입니까? 탐심이 들어와 죄를 지은 것입니까? 에덴동산의 하와에게 찾아온 마귀를 보세요. 처음에는 하와를 한번 떠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며 떠봅니다. 그러자 하와가 대답 잘못된 대답을 합니다. 그때 하와가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 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와가 약속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먹지도 만지지도말라고 하시지 않았고 죽을까 하노라 하지 않고 정령 죽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하와가 약속에 대해 확신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마귀는 곧바로 거짓말을 하고 탐심을 넣어줍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결국 탐심이 발동하여 선악과를 보니 그전에 보던 것과는 다르게 보였고 결국 따먹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영원히 살수 있었던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하고 죄의 고통을 당하며 살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탐심은 무서운 존재요, 우리로 하여금 인생동안 마귀의 종 노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무엇을 탐내지 말아야 합니까? 오늘 우리가 봉독한 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제2계명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는 계명을 빼고 대신 제 10계명을 둘로 나누어 가르칩니다. 그래서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와 “네 이웃의 아내와 재산을 탐내지 말라” 두 계명으로 나누어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네 이웃의 집속에 사람도 재산도 다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 살인 합니까? 왜 간음하고 도적질하고 거짓 證據합니까? 또 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깁니까? 왜 안식일을 못 지킵니까? 겉으로는 이런 저런 그럴듯한 이유를 대지만 실상 알고 보면 탐심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상 섬기는 이유도 탐심, 안식일을 못 지키고 돈벌러 가거나 놀러가는 이유도 탐심 때문입니다. 부모를 못 모시는 이유도 이런 저런 이유가 많으나 솔직히 나하나 편하게 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내 자식은 나에게 그러지 않겠지 하는 착각 속에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수능 부정사건 때문에 난리입니다. 이것도 탐심입니다. 공부는 안되고 성적은 올려서 좋은 대학을 가야 하겠다는 욕심입니다. 전부 탐심에 눈이 멀었습니다.
정치인들이 싸우는 것을 욕하지 마시고 왜 싸우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것이냐 자기들을 위한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사실 국회는 싸우라고 보낸 것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견제하고 비판하고 바르게 하라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탐심은 이처럼 사람의 눈과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우리는 어떤 탐심을 경계해야 할까요? 1)재물의 탐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제 뉴스에 보니 로또복권에 당첨된 부부가 파경이 났다고 합니다. 1997년 결혼해 두 아이까지 두고 행복하게 살던 A씨는 지난해 3월 로또복권 1등에 당첨돼 132억원을 받는 행운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대박 행운인 동시에 가정이 깨지는 불운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부부는 20만원짜리 월세방 신세를 면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커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을 꿈꾸며 남편은 건설현장과 할인마트에서, 아내는 친정이 운영하는 횟집에서 구슬땀을 흘려왔는데 하지만 대박의 주인공이 된 뒤 남편의 행동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그 열심히 하던 일을 그만두고 술과 도박에 빠져 돈을 흥청망청 써댔으며 이에 더해 바람까지 피웠답니다. 결국 남편은 지난해 11월 내연녀와 여관에 투숙했다 현장에서 발각됐고 부부는 끝내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탐심이 만든 비극입니다.
성경에도 탐심의 비극은 수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하나님은 여리고 성은 첫 것이므로 다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리고성은 무너졌고 그 성의 모든 사람은 라합의 집에 있던 사람만 살고 나머지는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 옆의 아이 성을 정벌하려다가 이스라엘이 대패를 합니다. 여호수아가 패전의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 물으며 기도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犯罪한 것 때문이라고 하셔서 죄인을 제비뽑기로 찾아내는데 아간이 걸렸습니다. 그는 외투 한 벌과 금은을 숨겨두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로 일가족이 화형을 당하는 벌을 받습니다.
또 엘리사의 종 게하시도 나아만 장군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숨겨두었다가 문등병자가 되었습니다.
아나니아도 탐심이 발동하여 헌금을 하려던 것을 일부 감추고 전부라고 속이며 드리다가 부부가 한날 장사지내는 무서운 결과를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異性에 대한 탐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서 유일무이한 왕이었는데 그런 그가 평생 고통 속에서 살게 된 것은 이성에 대한 탐심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부인이 4명이나 되었고 그들 사이에서 여러 명의 자녀들이 태어났는데 자식들 간에 살육이 벌어지는 모습을 여러 곳에서 보게 됩니다. 특히 압살롬과 아도나야 같은 아들들이 얼마나 그를 고통스럽게 했습니까? 그것이 이성에 대한 탐심을 절제치 못한 다윗의 아픔이었습니다. 특히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사건은 탐심의 비극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순간적인 이성에 대한 탐심이 간음으로, 그리고 신하를 죽이는 살인으로 발전되는 모습을 성경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3)명예에 대한 탐심도 경계해야 합니다. 사울이 그토록 겸손하고 위대했던 모습 속에서 무너진 것은 다윗과 자기를 비교하는 백성들의 노랫말 가사 한 구절 때문입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千千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萬萬이라” 이 한 구절에 사울이 다윗에게 시기질투를 느끼고 명예가 땅에 떨어짐을 느꼈고 결국 인생이 비참하게 변한 것입니다. 동역자 다윗이 경쟁자, 라이벌로 느껴지게 될 때 인간이 탐심이 발동하게 되고 결국 인생이 추잡하게 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탐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3. 탐심은 어떤 피해를 인간에게 가져다줄까요? 1) 인격을 상실케 합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인격을 잃게 되고 마치 짐승과 같이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밭에서 많은 소출을 얻게 되자 이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어 궁리한 끝에 “옳지, 헌 창고를 헐고 더 큰 새 창고를 지어 그곳에 내 모든 곡식을 쌓아두었다가 몇 년 동안 실컷 먹고 마시며 즐기자”라고 합니다. 전부 자기만 생각합니다. 조금도 남을 위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이 밤 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탐심은 정상적인 삶을 빼앗아 갑니다. 2) 도덕성을 상실케 합니다. 현대인들의 심각한 문제는 가난보다 탐심에 있습니다. 사람이 배고플 때는 허기를 면하는 것이 절실한 문제지만 일단 허기문제가 해결되면 남과 비교해서 상대적빈곤의 고민에 빠집니다. 나만 만족하면 남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는 것이 탐심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탐심 때문에 갖가지 범죄들이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공무원이 노조를 결성하는 것도, 수능 부정 시험도, 뇌물 문제도, 전부 도덕성이 문제인 듯하나 실상은 탐심의 결과입니다.
3) 영적타락을 가져옵니다. 성경에 있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40개 중에 16개는 돈과 소유에 관한 내용인데 사람은 돈 때문에 걱정이 많아지고 결국 심령이 악해지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잃게 됩니다.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탐심 때문에 선악과를 따 먹었으며, 롯의 처는 소돔성에 두고 온 재물 때문에 소금 기둥이 되었고 롯도 재물 때문에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성에 가서 살다 망했습니다.
딤전 6:10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했고 약1:15에는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탐심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4. 어떻게 해야 이 탐심을 벗을 수 있을까요? 1)탐심을 성령으로 누르셔야 합니다. “골로새서3: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지체를 죽이라는 말은 칼로 찔러 죽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억제하고 누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사람 중에 탐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구원받은 백성인 저와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성령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성령의 권능은 우리에게 놀라운 힘을 줍니다. 그 성령은 탐심의 정체를 알게 하고 그것을 절제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승리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육신의 정욕을 성령이 다스려 주어야 합니다. 2)올바른 생각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누가복음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어떻게 물리쳐야 할까요? 성경적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곧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사람의 생명이 노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행복이 소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잘못된 가치관입니다.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친 소유는 인간을 파멸로 이끌어 냅니다. 좀더 많으면 큰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좀더 많으면 탈선합니다. 그러기에 생각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내게 필요한 것만큼 주셨다. 지금이 내게 최고의 행복이다, 라고 믿어야 합니다.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내게 딱 맞게 주셨다고 생각하고 딴 데 쳐다보지 마세요. 물질도 내가 감당할 능력만큼 주셨다고 믿고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자꾸 헛된 생각이 들거든 “물러가라 떠나가라”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3)성경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움켜잡으면 사라지고 나누어 주면 더하는 원리를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물질과 명예를 누구에게 주실까요? 움켜잡으려는 사람에게 주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을 맡아도 능히 감당 할만한 사람에게 주실 것 아닐까요? 그러기에 베푸는 자, 나누는 자, 그리고 바르게 쓰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놀라운 능력을 우리에게 베푸십니다.
자기밖에 모르던 인색한 부자가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는 왜 돈이 많은데도 행복하지 않는지, 왜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 그를 데리고 창가로 갔습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번에는 거울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제 얼굴이 보입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창문과 거울은 모두 유리로 돼 있으나 거울 뒤에는 수은이 칠해져 있어 밖이 안보이고 자신만 보게 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이 탐욕으로 칠해진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는 불행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라며 교훈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탐심이 사라지면 행복은 찾아옵니다. 기도합시다. (통성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