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눈을 촉범치 말라 (사 3:1-12)
본문
서 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두 나라에 소속된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나라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나라입니다. 물질적인 나라를 우리는 흔히 세상이라고 부르고, 영적인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상 국가인 대한민국의 국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동시에 대한민국 통치권자들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이 두 나라가 하나가 되었던 국가였습니다. 세상의 국가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국가를 신정통치 국가라고 하는데, 본래 세상의 국가와 하나님의 나라가 일치했던 이스라엘에서는 이 두 가지 국가 간의 갈등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450년 동안의 사사시대를 거치는 동안 이스라엘이 외적의 침략을 많이 받게 되자, 이스라엘의 내부에서는 외적이 침략한 이유는 왕이 없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가서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하나님께서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침략을 당한 이유는 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통치권자인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판단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지만, 그 요구가 너무 강해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에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단, 앞으로 세워질 왕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 받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통치해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왕들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신들의 경험과 뜻을 믿고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세상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와 갈등을 일으키는 국면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사야서 3장은 바로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갈등을 일으킬 때, 어떤 결과가 임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1. 유다의 혼란
이사야가 예언을 하던 시기에 남왕국 유다에는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선한 왕이었던 웃시야, 요담, 히스기야 와는 다르게 악한 왕 아하스는 바알과 아세라, 그리고 몰록에게 향을 드렸고 심지어는 자기 아들을 불태워 우상에게 제물로 드리는 못된 짓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적인 건달이요, 방탕자요, 타락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로 말미암아 남왕국 유다를 아주 비참하게 낮추셨습니다.
아하스의 시대에 북쪽에 있는 아람 왕 르신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베가와 연합군을 형성하여 유다를 침공하였는데, 이 전쟁을 ‘르신-베가 전쟁’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엄청난 전쟁이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아하스 왕은 여전히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라는 선지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하스 왕은 왕궁과 성전의 금은을 앗수르 왕 디글락빌레셋 3세에게 주며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을 공격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아하스의 요청대로 디글락빌레셋 3세는 아람 왕 르신을 죽이고 호세아 왕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나 앗수르가 유다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유익이 없었더라”(대하 28:21). 유다도 후에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 2:22)말씀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스가 우상숭배하며 세상 왕국의 통치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오늘 본문에 고스란히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말해서 혼란chaos 입니다.
먼저 유다에 경제적인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1절). 양식과 물을 제하셨기 때문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대혼란에 처했습니다. 두 번째로 사회의 각계각층에 인재들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 하실 것이며”(2-3절). ‘그리하신다’는 것은 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군대에 가도 군인이 없고, 음식점에 가도 주방장이 없으며, 법원에 가도 재판관이 없고, 교회에 가도 목사님이 없습니다. 사회 각계각층의 훈련된 지도자가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침공할 때에 “저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 일만명과 모든 공장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4:14)고 기록되었습니다. 경제적 혼란이 오고 사회의 인재들이 모두 사라지자 정치질서에도 혼란이 왔습니다.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4절). 적자란 아주 어린 아기를 뜻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백성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정치질서의 혼란입니다. 본문 12절 말씀에도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아이나 부녀’는 그 분야에 전문지식이 없고 경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통치자가 되면 다닐 길을 훼파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엉뚱한 길로 인도합니다. 또한 이들은 백성들의 사이를 이간합니다.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5절). 백성들이 서로 학대하고 잔해합니다. 계층과 세대 사이에 이간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통치자들은 자격도 의심스럽습니다. “혹시 사람이 그 아비의 집에서 그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어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할 것이면”(6절)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의복이 있다는 이유로, 양복 한 벌이 있다는 이유로 관장이 되었다면 그 통치자의 자격이란 보나 마나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통치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책임감도 없고 해결책도 없습니다.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말라 하리라”(7절). 지금은 멸망의 때요, 좋은 때가 아니니 관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책임성이 없는 태도입니다. 공부를 많이 하거나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고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를 불어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합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사회적인 책임을 많이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책임과 의무를 이행
하지 않고 있음이 사회가 혼란해진 증거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유다에는 사치풍조까지 만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16절). 예루살렘의 여자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을 하고 다닙니다. ‘늘인 목’은 목을 길게 빼서 머리를 곧바로 세운 것을 일컫는 말로 교만한 자세를 가리킵니다. 또한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고 아기죽거려 행합니다. ‘아기죽거린다’는 말은 보폭은 짧지만 빠르고 교태가 섞인 걸음걸이를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냅니다. 온갖 장신구를
걸치고 사치스럽게 행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가 예언하던 시대의 사회적 혼란입니다. 경제적 혼란, 사회적 혼란, 정치적 혼란, 그리고 문화적 혼란입니다. 이러한 혼란에 대한 해결책도 없습니다.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8절의 말씀처럼 결국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유다의 멸망이 과거시제로 기록되어 있지만 영어성경에는 Jerusalem staggers, Judah is falling(예루살렘은 비틀거리며 유다는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현재 시제 진행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 혼란의 원인
이 혼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사야는 혼란의 원인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찐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8-9절). 아하스와 유다 백성들의 언어와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했기 때문에 재앙과 혼란이 오게 되었습니다. 세상 국가가 하나님의 나라를 거역하고 대적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죄의식마저도 없었기 때문에 죄를 숨기지 않고 발표하였습니다. 마치 동성연애자들이 커밍아웃coming out 하는 것처럼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발표하였습니다. 방대하게 악을 행하면서도 뻔뻔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의 눈은 이들의 언어와 행위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13절) 일어나셨습니다.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11절). 하나님은 장로와 방백들을 국문하고, 사치하는 여자들의 사치품을 제하시며, 장정과 용사들이 전란에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이 예언대로 유다는 주전 587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24절). 24절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대신하고’입니다. 전에는 향이 좋은 향수를 뿌리고 다녔는데 이제는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아름다운 머리띠를 둘렀는데 이제는 죽은 사람이 애곡할 때 두르는 노끈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다녔는데, 이제는 굵은 베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고운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얼굴에 온갖 흉터와 상처만 남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세상 국가의 통치자들과 백성들의 언어와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국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번창하는 모판입니다.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세상 국가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고 확장하며 완성된 나라로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이후에 또 다시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주장은 이단 사설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구원의 문이 닫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세상 국가가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세상 국가 모두를 하나님의 나라로 바꿀 계획도 갖고 있지 않으십니다. 그저 세상 국가가 평안하게 먹고 사는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국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호하고 육성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반역하면 그 결과는 이사야서 3장에 기록된 대로 혼란과 멸망chaos and destruction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국가가 부딪히면 세상의 국가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마 13:38). 하나님은 세상 국가 속에 악한 자들이 살아도 은혜를 주십니다. 악한 자들도 동일한 햇빛과 비를 누리며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반은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사는 불신자들을 모두 뽑아내신다면 세상 국가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학교는 어떻게 유지되고,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악한 자들, 불신자들과 같은 가라지도 뽑지 않고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뽑지 않는 이유는 알곡을 보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과 불신자들이 공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어떤 분이 대한민국의 통치권자가 되든지 바라는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치권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거역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하면 이 사회에는 혼란이 찾아오고 결국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온 국가의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국가가 교회를 육성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대항하거나 핍박하지 않으면 됩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인터넷 매체, 언론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를 이간시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항하지 않고 공조할 때,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커가는 아름다운 모판으로 가꾸어 가실 것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국가를 위해 오랜 시간 기도했습니다. 2007년에도 우리는 국가를 위한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 대한민국이 평안하기를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위로
세상의 국가와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거역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심판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위로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10절). 세상 국가가 망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망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의인에게는 복이 있고, 의인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유다 왕국에도 참된 믿음을 가지고 사는 남은 자들the remnant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수였지만, 의인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가 전체적으로 부패하고 악이 횡행했기 때문에 소수의 의인들이 아무리 외치고 행동했어도 유다는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의 눈은 여전히 의인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참된 백성들이었습니다.
세상의 국가가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결국 완성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이미 주후 400년경에 아프리카 히포에서 목회했던 유명한 어거스틴의 신국론city of God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강한 국가였던 로마는 망했습니다. 서로마는 476년 게르만 족에 의해, 동로마는 1453년 터키족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했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국권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양되지 않습니다. 이 국권은 하나님께서 굳건히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나라이며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자는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나라의 백성들은 순수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충성하며 살아야 할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도 ‘대신하시는’ 축복을 주십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사 61:3).
결 론
아무리 세상의 국가가 혼란스럽고 근심이 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을 지키고 축복하십니다. 2007년에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세상 국가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리석게 대적하는 일이 없도록 함께 기도해야하겠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통령을 위해 기도합니다. 설령 대통령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국민들의 평안한 삶을 위해 바른 통치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세상의 국가가 하나님을 대적하면 혼란과 멸망이 오고 그 피해는 하나님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세상 국가의 국민들도 함께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번영을 위해서라도 이 국가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의 기독교는 너무 이기주의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나의 축복, 내 가정의 축복만을 생각하면서 사회를 위한 관심을 놓치고 있습니다. 사회가 어려워지면 하나님의 백성들도 함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2006년에 남은 자the remnant로서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는 2007년에도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 국가가 번영하도록 함께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번영하도록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설령 세상 국가의 통치자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해서 혼란과 어려움이 온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들은 하나님이 위로와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국가의 번영과 환란에 관계없이 우리는 늘 의인으로서, 소수의 남은자로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축복으로 넘쳐나고 우리는 행위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세상 국가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