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좋은 포도주 (요 2:1~11)
본문
“연회장은 신랑을 불러 말하되 그대는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요 2:9-10)
어느 분이 주유소를 50억에 매입 하셨는데 그 주유소가 200억의 주유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을 가리켜 주위에서는 정말 세상살 맛 날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부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상 당사자인 그 분은 그것 때문에 그렇게 살 맛 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저는 호주에서 넓은 대지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과 풀장과 각종 문화적 설비를 갖추고 좋은 차를 타고 때마다 여행하며 살아가는데 별로 흥겨움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자주 저녁시간에 찾아가 대화의 대상이 되어주는데서 살 것 같다고 말했던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흥겨움 속에 살아가는 삶이기를 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즐겁게 나오게 하시며 그의 택한 자는 노래하며 나오게 하신다”(시 106:43)고 했고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고 하면서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은 잔치 집과 같은 흥겨움 속에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된 흥겨움의 삶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흥취를 찾고 누리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술을 통하여 흥을 찾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음주소비량은 세계 2위라고 합니다. 1996년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15세 이상 인구 一人當 순수 알코올 소비량 국제비교」에 따르면 한국은 슬로베니아(15.15ℓ)에 이어 14.40ℓ로 당당 2위로 올라서 있습니다.
얼마 전 주류공업협회는 2001년 한 해 동안 한국의 20세 이상 성인(男女 포함ㆍ3400만 명)들이 一人當 맥주 118병, 소주 82병, 위스키 1.7병씩을 소비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체 소비량은 소주의 경우 27억9100만병(2홉들이 기준), 맥주는 40억1387만병(500ml 기준), 위스키는 5742만 병(500ml 기준)을 기록했습니다. 이 통계에는 해외여행자들이 갖고 들어온 수입 주류와 軍納用(군납용) 술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마약을 복용하므로 흥취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약 중독자와 마약 사범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과거 유흥업소 종사자나 사회 하층민을 중심으로 나타나던 마약중독 현상이 최근 대학생 주부 회사원 등 평범한 중산층은 물론 청소년들에까지 확산돼 심신을 파멸시키고 있습니다.
대검 마약부는 국내 마약 투여자 규모를 20만 명가량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경기불황이 지속되면서 투약인원이 현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인생의 흥겨움을 상실한 사람들 가운데는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자살을 결행할 동지를 구하고 있습니다. 경찰청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자살인구는 해마다 급증한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2000년 1만1천 794명에서 2001년 1만2천277명, 2002년 1만3천55명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36명인 것입니다.
잔치 집과 같이 오늘의 우리시대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인간은 흥취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시대보다도 TV의 개그와 코미디 프로가 인기를 누리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적존재인고로 그것만으로 만족함의 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문제를 어디에서 해결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해결사이십니다.
잔치 집에 포두주가 떨어져 흥취를 상실할 위기의 그곳에서 예수님은 해결사로서 흥취를 살릴 더 좋은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인생의 흥취의 상실은 예수님으로부터 해결 받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는 항상 변화의 사건이 나타났습니다. 그 변화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서와 교회 역사 가운데 예수님의 이야기가 있는 곳, 예수님이 전해지는 곳, 또는 믿는 곳에는 항상 변화가 나타났음을 봅니다. 이 가나 혼인 잔치 집에도 예수님이 계셨기에 물이 변하여 가치 있는 포도주로 변하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변화와 새 창조의 역사가 있는 곳에서는 감격의 최고의 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주심으로 우리에게 변화를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 변화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같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있을 때 우리는 변화되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정에 계실 때 변화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직장, 우리 교회, 우리 사회 가운데 계실 때 변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돌 항아리의 보잘 것 없는 우리의 삶을 값진 포도주와 같은 삶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므로 흥취가 넘치는 감격의 삶을 만드십니다.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의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하십시오. 변화와 새 창조의 역사 가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예수님께 말씀드렸고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마리아에게는 예수님에 관한 예수님에 관련된 특별한 체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한 사실을 알려주고 그 분이 세상을 구원해 주실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사실을 전하여주는 가브리엘 천사와 함께한 체험과(눅 1:16-19; 마 1:21), 예수님께서 나시던 밤에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천사들이 전해준 말을 달려와서 전해준 신비한 사건의 경험(눅 2:26-38)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확신은 잔치집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역사를 전해주는 것이 되었습니다. 확신 있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와 창조의 역사를 전해주는 살아있고 능력 있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더 좋은 포도주를 창조되게 하는 요인인 것입니다.
확신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마리아의 말씀을 듣고 “여자여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4절; 새 번역)고 말씀하셨습니다. 표현 중에 ‘여자여’는 어머니를 높여서 부르는 ‘귀나이’(ϓύναι)라는 헬라어를 직역한 번역에서 오는 표현입니다. 그 다음의 예수님의 말씀은 한마디로 잔치집의 포도주 문제는 예수님께서 꼭 해결해야 하고 책임을 질 절대적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류구원을 위한 주님이 이루실 일에 비해 중요한 일이 아니기에 어머니와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마리아의 확신은 예수님께 상관없는 일을 상관있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으로 예수님께 가져 왔을 때에 예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대통령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도 청와대에 진정하면 그것이 대통령과 상관있는 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이는 말을 못하게 하는 귀신이 들렸습니다. 어디서나 귀신이 아이를 사로잡으면, 아이를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자, 아이에게 즉시 심한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아이는 땅에 넘어져서, 거품을 흘리면서 뒹굴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아이 아버지는 큰소리로 외쳐 말했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악한 귀신을 꾸짖어 내어 쫓으시자, 귀신은 소리를 지르고서, 아이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켜 놓고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막 11:23)
마리아의 예수님을 향한 확신하는 믿음은 위대한 일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변화와 창조의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전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 3:14)
확신하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변화와 새 창조의 역사를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인들
예수님의 변화와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일어나도록 한 사람은 마리아 외에 하인들이 있습니다. 하인들은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절)는 대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는 말씀대로 아귀가지 물을 채웠습니다.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시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포도주는 가장 좋은 포도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에 대해 분석하고 계산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의 믿음의 생활 속에서 이런 요소들이 발견되면 즉시 내어 버려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확신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분석하기 좋아하고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해방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백성에 처음 난 것의 생명을 죽이시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재앙가운데서 이스라엘 배성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양의 피를 집 좌우 문틀에 바르게 하심으로 그 재앙이 넘어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유월절 절기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틀에 양의 피를 바름으로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것이 어떻게 죽음에서 구원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니 순종하는 것이 진리이고 그렇게 함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느냐고 따지는 것이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으니 그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내가 배우고 읽은 책이 얼마나 된다고 그것이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입니까? 나의 과학적 지식이 얼마나 된다고 그것에 우리 인간의 모든 것을 맡길만하다고 합니까? 우리의 한 치의 앞도 가늠해볼 수 없으면서 무엇을 장담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 말씀 앞에 겸손히 ‘예’ 하십시오. 그 말씀 앞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능력이고 생명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하인들이 주님의 말씀에 따랐을 때에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에 변화의 삶을 간직하시기를 원하십니까? 더 좋은 포도주를 원하십니까? 그렇게 하시는 변화와 창조의 주체 자이신 예수님을 확신하십시오. 그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시작하십시오. 왜 물을 채워야 합니까? 어떻게 감히, 항아리의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줄 수 있습니까? 고 따지지 맙시다. 주님이 하라고 하시니 하십시다. 그곳에 주님이 만드시는 변화와 창조의 역사가 있습니다. 더 좋은 포도주가 있을 것입니다. 더 좋은 포도주는 우리의 삶의 흥취이고 풍성함입니다. 이 축복을 만드시는 성도의 삶을 이루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김성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