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말라 / 학2:1-9
본문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는 1948년부터 14년 동안 루마니아의 공산정권에 의해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3년간은 전혀 빛이라곤 볼 수 없는 독방에서 지냈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는 결코 신앙을 굽히지 않았는데, 마침내 노르웨이 정부의 노력으로 석방되어 미국에서 공산권 선교를 위해 크게 사역하였습니다.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에 성경을 읽다가 발견한 사실이 있는데, ‘두려워 말라’는 구절이 모두 365개라는 것입니다. 범브란트 목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1년 365일 언제나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며 힘을 주신다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복음 찬양 가운데 스바냐3:17절을 가사로 한 찬양이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 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하시리라.”는 찬양입니다.
이 말씀 바로 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두려움의 문제는 시시 때때로 찾아오는 문제입니다. 어쩌면 인생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누군들 낙심하거나 두려워하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살다보면 낙심도 하게 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힘들어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요즘 얼마나 무서운 병들이 많이 있습니까? 병명도 밝혀지지 않은 희귀병과 불치 난치 병들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희귀병들 보다 더 경계해야할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망, 낙심, 두려움이라는 병입니다. 희귀병으로 죽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사람들에게서 모든 자신감을 빼앗아 가 버립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마비시킵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맺고 있는 아름다운 관계들을 파괴시킵니다.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을 정직하게 대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누리는 행복을 방해합니다. 두려움은 성공을 방해합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 그것은 영적 생활의 방해물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사랑을 줄어들게 하며, 두려움은 정력을 쇠하게 하고, 두려움은 정열을 식게 하며, 두려움은 믿음을 약화시키고 두려움은 하나님의 증거를 무력하게 하며, 두려움은 기도하지 않게 하며, 두려움은 성령을 슬프게 하며 두려움은 순종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딤전1:7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안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은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일을 만나든지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강하고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사41:10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이 2007년을 살아갈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된 말씀이십니다.
하나님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나는 네 하나님이다.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할렐루야!
학개서 본문의 말씀으로 들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치된 순종으로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약속하셨고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3절입니다. “너의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하냐?”
그런데 완공된 성전을 보니 지난날 솔로몬의 성전과는 비교가 되지 못할 만큼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지난날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보았던 사람들은 낙심하고 실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낙심하거나 실망할지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하십니다. 지도자인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뿐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맡겨진 역할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셔서 주님과 동행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어찌 두려워하고 낙심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이런 권면의 말을 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 굳세게 하여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보다 더 축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만사가 형통입니다. 절망이 소망이 되고 두려움이 변하여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굳세어져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5절입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이라는 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또한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다”는 말은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함께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지켜주고 보호하시리라는 말씀입니다.
사43:2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어떤 위험과 어려움에도 반드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결코 망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십시오. 손을 늘어뜨리지 말고 가슴을 쫙 펴십시오. 굳세게 하여 일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는 만국의 보배로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7절-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모든 민족을 뒤흔들어놓겠다. 그 때에, 모든 민족의 보화가 이리로 모일 것이다. 내가 이 성전을 보물로 가득 채우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모든 민족의 보화가 이리로 모일 것이며 보물로 가득 채워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약속하심이 있기에 그들은 두려워하거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새로 지어진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는 보잘 것이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난 날 솔로몬 성전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알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너무 비교가 되는 겁니다.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낙심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왜 생길까? 낙심과 두려움은 비교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불행은 비교하면 끝없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남편을 다른 남자와 비교하니 너무 초라한 겁니다. 그러니 실망하고 행복이 없는 겁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니 걱정되고 불평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다가 열등감에 빠지고 낙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어라 물으셨습니까?
3절 후반절에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하냐?” 초라하게 보이고 보잘 것 없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거에 보았던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왜 낙심하고 두려워합니까?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결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새로 지어진 성전이 눈에는 초라하게 보이나 내가 만국의 보배들로 가득 채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나의 영광이 이곳에 나타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말씀 의지해서 여러분들을 축복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이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가 오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만국의 보배들이 가득 넘치는 가정, 만국의 보배들이 가득 채워지고 흘러가는 교회, 이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이제부터 영원히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만국의 보배는 세상 모든 민족들 가운데 있는 가장 귀한 보물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는 겁니다.
만국의 보배가 세상 모든 민족으로부터 오는 보배가 아니라 세상 모든 민족에게로 가는 보배, 그래서 만국 가운데 보배들로 세워지는 역사,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이 앞으로 만국의 보배들로 세상 모든 민족 가운데 우뚝 세워지게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받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자라나는 세대들이 미래에 모든 민족 가운데 보배들로 우뚝 세워지리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받아 드리고 싶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성전의 문지방에서 흐르는 물이 모든 죽은 것을 살리고 마른 것을 적시고 생명이 풍성해지고 모든 것이 회복되는 역사를 일으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 모든 것들을 회복시키고 다시 살게 하는 부흥의 역사가 시작되는 성전,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이며 교회인 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세상을 살리는 만국의 보배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세상에 생명의 물줄기로 흘러 들어가 온 세상에 부흥을 일으키는 만국의 보배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히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고”
그러니 여러분, 금과 은으로 인해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 내 삶에 은과 금이 채워져 있지 못해도 살아계신 주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심을 고백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삶을 일으키시고 하나님을 찬미하게 하실 것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이것이 부흥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경험하고 증거 해야 할 부흥이 이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세워지는 부흥의 역사, 바로 그 부흥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결코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만국의 보배로 채워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담대히 일어나셔야 합니다.
셋째는 희망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있으면 삽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분명한 희망을 볼 수 있다면 어떤 실패도 능히 넘어설 수 있습니다.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우리의 미래는 희망으로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 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희망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은 부흥에 대한 비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흥에 대한 비젼을 심어주시고 계십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이 희망의 비젼은 20년전 제게 주셨던 비젼입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 모인 우리 모두에게 다시금 주시는 희망의 비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희망의 비젼을 여러분의 것으로 받으십시오.
우리 자녀들의 것으로 받으십시오.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 모든 하나님의 교회들에게 주시는 희망의 비젼으로 받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희망의 비젼을 갖고 두려워하거나 낙심치 말고 담대히 일어나십시오.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도와주실 것입니다. 물 가운데서 물에 침몰치 않게 하시며 불 가운데서도 불이 사르지 못하도록 지켜주실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비젼을 가지고 이 땅에 하나님의 부흥을 이루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