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 인생 (수 1:1~9)
본문
성경을 보면 우리 인생을 가리켜 여러 가지로 비유합니다. “인생은 광야와 같다” “인생은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 “인생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등등 ... 이런 말씀들은 나름대로 인생의 특징을 잘 설명해 줍니다. 그 중의 하나가 “인생은 전쟁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 말씀대로 인생을 사노라면 끊임없는 문제들과 씨름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앙생활도 전쟁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적인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Spiritual Warfare)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도는 영적 군사입니다. 우리는 영적 군사로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생이 곤고해집니다.
특별히 구약 성경에 보면 전쟁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1차적으로 과거에 실재했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인생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영적 전쟁 가운데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는지 가르쳐줍니다. 즉, 인생의 승리 비결을 제시해 주는 모형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 출애굽한 후 광야 40년을 거쳐 이제 목적지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는 때의 일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모세가 지도자로서 인도해 왔습니다. 이제 모세는 죽고 그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항상 모세라고 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조수에 불과하던 여호수아가 과연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여호수아 자신도 백성들도 의문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여호수아는 누구도 당해내지 못하는 무적장군(無敵將軍)이 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여호수아서를 연구해 보면 그가 33번의 전투가 있었는데, 전승합니다. 33전 33승! 물론 ‘옥에 티’ 같은 사건이 있었죠. 7장에 보면 아이 성 전투가 나오는데 첫번째 공격에서는 패퇴합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 1차 전투였던 여리고 전투에서 승리한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우쭐대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다가 작은 아이 성 정복에 애를 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두번째 공격에서 결국 승리합니다. 여호수아는 정말 무적의 장군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장군이라도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운동선수라도 전승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일을 허락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가르쳐 주는 대로 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무적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가슴이 뛰는 일이 아닙니까? 험한 세상에서 숱한 문제 속에서 매일 깨지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승의 축복이 가능하다니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호수아는 우리에게 ‘무적인생(無敵人生)의 모델’이 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그 비결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금년 내내, 아니 일평생 ‘무적 인생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무적 인생의 보장 :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던 약속을 재확인하십니다. 4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지중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그리고 여호수아 개인에게는 아주 특별한 약속을 주십니다. 5절(상).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 ” 여호수아는 ‘무적 장군’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무적 장군으로 약속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적 인생을 약속해 주십니다. 무적 인생은 막연한 기대나 희망 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분명한 약속입니다.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면 반드시 성취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언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안에서 무적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롬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성도 여러분! 이 약속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이 사실을 꼭 믿으시고, 무적인생을 꿈꾸고 성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무적 인생의 근거 : 하나님의 동행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무적 장군의 약속을 주셨지만 정작 여호수아 자신은 긴가민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자기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모세라면 몰라도 자기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강력한 가나안 족속의 군대가 버티고 있는데 승승장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심하게 말하면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왜 터무니가 없냐? 내가 있잖아!”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조심해야 할 사항이 바로 이겁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 그들 자신이 위대한 게 아닙니다. 그들은 연약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신 겁니다. 이 중요한 원칙을 놓치면 안 됩니다.
모든 성도들의 능력의 근거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면, 동행해 주시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5절(하). “ ...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모세가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이 동행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9절(하). “ ...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모세에게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 해 주시면 되지 않냐 이겁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악기가 좋으면 좋겠지만 혹시 악기가 덜 좋은 것이라도 연주자가 탁월하면 빛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래 전 영국의 런던브리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추운 겨울 날 한 노인이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동냥을 하느라 낡은 바이올린을 열심히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지나가던 외국인 여행자가 가여워서 노인에게 다가갑니다. “노인장, 바이올린을 내게 잠시 빌려 주시오.” 노인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빌려주었습니다. 여행자는 바이올린을 받아들고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어찌나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는지 지나가는 사람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이올린 연주를 듣다가 돈을 던져 넣습니다. 노인의 모자에 동전이 모이더니 나중에는 지폐로 가득 쌓입니다. 여행자는 바이얼린을 넘겨주고 웃는 얼굴로 길을 떠납니다. 그때 모인 사람들 중 한 명이 외쳤습니다. “파가니니야! 맞다 맞아. 저 사람이 그 유명한 파가니니야” 이태리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해주시겠다고 성경 곳곳에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3:1~2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마28:20 (예수님의 승천 시 하신 말씀)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14:16~18 (예수님의 성령 보내심 약속)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부디 이렇게 많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때문에 승리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무적 인생의 자세 : 담대한 믿음, 말씀 중심의 삶
그런데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적인생을 약속하셨어도 우리가 감당할 몫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무적 장군을 약속하셨지만 만일 그가 믿지 못하고 겁을 집어 먹은 나머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차지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가서 땅을 밟아야 자기 것이 된다는 겁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세요. 지하 땅 속에 엄청난 석탄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저절로 뜨뜻하죠?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캐내서 불을 붙이지 않으면 에너지가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은혜를 쌓아두고 계신다 할지라도 인간아 자기의 몫을 감당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게 무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적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가 있음을 명심하고 그대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① 담대한 믿음 :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여호수아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6절(상).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 ” 7절(상).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 ”
9절(상).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 ”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전쟁에 나설 때 담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객관적인 전력 이상으로 사기(정신무장)가 중요합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는 우리에게 겁을 주고 포기하게 만듭니다. 내 앞에 닥치는 문제가 엄청 커보이게 하고 질리게 만듭니다. 그때 중요한 게 바로 나와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담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용기’입니다.
예수님도 담대한 믿음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다윗은 온갖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한 용기를 가졌습니다.
시3:6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시23:4 (다윗의 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 ”
시27: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프랑스의 전쟁 영웅 잔느 다르크의 이야기입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 중에 프랑스는 패색이 짙었습니다. 그런데 1429년 어느 날 잔느 다르크가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 듣게 됩니다. “너의 조국 프랑스를 구하라!” 그녀는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심을 믿고 용기 있게 앞장서서 돌진합니다. 가는 곳마다 승리였습니다. 나중에는 영국군이 흰옷을 입은 잔느 다르크만 봐도 혼비백산 도망쳤다고 합니다. 담대한 믿음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도 때로는 배짱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물론 인간적인 배짱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영적인 배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백’이 있습니다. 회장 백만 있어도 든든한데, 우리 배후에는 왕 회장보다 더 센 ‘하나님 하’자(字) ‘하 회장’이 계십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함으로 나아가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② 말씀 중심의 삶 :
담대한 믿음과 더불어 반드시 지킬 사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 중심의 삶’의 원칙입니다. 7절(하). “ ...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영적인 진로입니다. 그대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앞길을 환하게 열어주십니다. ‘형통’이란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진정한 형통이 아닙니다. 나중에 잘못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살다보면 내 뜻이 맞는 것 같습니다. 혹은 세상 사람들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뜻은 우둔합니다. 근시안적입니다. 당장은 맞는 것 같고 당장은 성공할 것 같지만 나중에 가보면 실패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은 때때로 이해가 안 되지만 그대로 순종하고 따라가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혹시 실패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승리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롬8:28)이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119:165 “주의 법(=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막힘이 없는 축복의 고속도로(Highway)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승리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전쟁 중에 미군 조종사 6명이 비행기를 몰고 아프리카 군사기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도 피곤해서 잠깐 졸다 깨어났는데 시계를 보니까 50분이 흘렀습니다. 목적지까지 1시간 예정이어서 아직 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계기판을 보니까 목적지가 이미 지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계속 날아갑니다. 안타깝게 아무리 가도 활주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기름이 떨어졌고, 비행기는 사막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6명 전부 굶주림과 더위로 죽고 맙니다. 그들은 죽은 이유는 단 하나 계기판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계기판입니다. 그것을 무시하면 큰일 납니다. 결코 자기 생각이나 느낌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삶의 기준이요 판단 기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판단이 옳겠습니까? 하나님의 판단이 옳겠습니까? 뻔 한 이치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가 말씀 중심에서 이탈해서 좌우로 치우치게 되는(7절)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세상 욕심 때문입니다. 세상의 욕심에 우리 마음이 미혹되고 중독 되다 보니까 무감각해지고 둔해져서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깨달아도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지그 지글러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스키모인의 늑대 사냥법입니다. 아주 날카로운 칼에 피를 발라 얼린 후 늑대가 지나가는 길목에 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피 냄새를 맡고 늑대들이 와서 혀로 핥아먹습니다. 그러다가 얼음에 자기 혀마저 얼얼해지고 무감각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칼날에 혀가 잘리고 피가 흘러나와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욕심에 중독이 되면 죽는 줄도 모르고 자꾸 세상으로 갑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늘 정신을 차리고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말씀을 듣고, 일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특별히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 사실을 믿고 말씀 중심으로 삶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험한 전쟁마당과 같습니다. 숱한 문제들이 내 앞을 가로막습니다.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대적하지 못할 정도로 승리하는 무적인생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게 과연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대로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거칠 것이 없는 형통의 인생이 펼쳐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무쪼록 무적 장군 여호수아의 승리 비결을 배우심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무적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