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을 깨우는 교회 (사 51:17~20, 롬 13:11~14)
본문
미인은 밤에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체내에서 다양한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성장 호르몬도 밤에 많이 분비되는데 성장 호르몬은 노화방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숙면이 미모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피부 미인은 밤에 만들어진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밤을 새고 난 다음날 화장이 잘 먹히지 않고 들뜨는 이유는 성장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피부의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습니다. 잠을 잘 자야 피부가 좋아집니다.
질 좋은 수면은 아침 햇볕을 봐야 한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햇볕을 쬐면 밤에 잠도 잘 온다는 것입니다. 수면은 종일의 삶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종일 열심히 일하는 것은 양질의 수면에 절대적 요인입니다. 잘 자기 위해서는 일을 잘 해야 하고,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잠을 잘 자야합니다. 잠을 잘 깨기 위해서는 잠을 잘 자야 합니다.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잠을 깨기도 힘듭니다. 또 깬다는 것은 잠자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안 자도 되는 존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안 주무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주무셔야 할 만큼 피곤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육체적인 피곤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무실 필요가 없습니다. 시편 121:4에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자지 말아야 하고, 잘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잘 수 없고, 자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교회가 잠이 들어 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잠들지 말아야 하는데 잠들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등지는 일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지만 자기 마음에 내키지 않아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가는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어디론가 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요나가 배 밑에서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풍랑이 일고 배가 요동하게 되자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요나를 깨우며 말합니다.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하나님의 사람이 잠들었을 때에 세상 사람들의 소리입니다. 자기들은 잠을 자지만 하나님의 사람만은 깨어있기를 바라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사람의 맥박은 오전 5시에 가장 빨라집니다. 사람의 맥박이 가장 빨라지는 시간인 오전 5시는 깊은 잠을 자기에 적당한 시간은 아닙니다. 오전 5시는 잠들어 있기보다 깨어 있는 것이 모든 면에서 효율적입니다. 오전 5시에 정해 놓고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사람이 깨어 있어야 할 시간이 있습니다. 지금이 잘 때인가, 깨어 있을 때인가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깰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깨어서 민족과 사회를 깨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세상을 향해 ‘깰지어다’를 외쳐야 합니다.
이사야 51:17에는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 지어다”라고 합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깰지어다’를 외칩니다. 이 외침이 우리의 외침이 되어야 합니다.
당시의 예루살렘의 상황은 버림받고 근심하는 아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짐승들이 사는 음산한 황무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나 위로할 사람이 없고, 낳아 기른 자식도 소용이 없습니다. 도시가 황무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당시의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았고,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고,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들은 백성을 미혹하게 하고, 예언자들은 거짓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타락한 모습입니까?
이사야 28:7-8에는 더욱 비참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것이 없도다”라고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할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완전히 소망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15세 이상이 일인당 연간 술을 14.4리터 소비합니다. 슬로베니아가 15.15리터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마신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 ‘술고래’가 한국입니다. 슬로베니아는 순한 술을 많이 마시는데 ‘독한 술’은 한국이 단연 으뜸입니다. 독주 소비량이 11.97리터로 OECD 국가 중 최고입니다. 기분 좋아 마시고, 화가 나서 마시고, 만났다고 마시고, 헤어진다고 마시고, 밤에 마시고, 아침에 해장술 마시고, 이래저래 마실 일이 많아서 탈입니다.
항공기 내의 술 소비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자국 비행기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술 소비량은 소주로 치면 연간 200만병 분이라고 합니다. 이 소비량은 세계 2위입니다. 1위가 못 되서 억울하지요?
한국 남성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부문들을 보세요. 40대 남성 사망률 세계 1위입니다. 40, 50대 남성 사망률이 여자의 3배로 남녀비교치가 세계 1위입니다. 40, 50대 남성 자살률이 여자의 3.3배로 남녀비교치가 세계 1위입니다.
한국 여성 세계 1위 부문은 성형수술이 17%로 세계 1위입니다. 제왕절개가 39.6%로 세계 1위입니다. 여성흡연자의 1일 흡연량이 24.8개피로 세계 1위입니다. 전업주부율이 58%로 세계 1위입니다. 공주병 환자 수가 세계 1위입니다. 화장품 사용빈도가 세계 1위입니다. 그 외에도 살인과 성범죄가 세계 4위, 5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는 일본의 2배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세계 11위 수출국답게 부정적인 면에서 순위가 상위권의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국가가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국가가 술 취한 상태입니다.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립니다. 우리나라의 국시가 무엇인지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권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들 모두가 혼란에 빠지고, 정부에 대하여 아예 기대를 접고 포기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은 이사야 당시의 사회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황폐한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윤리가 땅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가 가진 기본 권위가 사라집니다. 당회가 교인을 치리할 수 있는 권위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깨라고 외칠 수 있는 권위도 없습니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야단칠 수 있는 권위도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너나 잘 하세요”라고 반박이나 합니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책망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권위와 힘을 상실한 사회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깨우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예수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에게 “달리다굼”하십니다. 이 소리는 잠자는 아이를 깨우는 어머니의 소리입니다.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에게 “청년아,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삶을 상실한 청년이 깨어나 어머니에게 소망이 되기를 기대하는 소리입니다. 베다니의 사랑하는 자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십니다. 삶과 죽음을 가로막은 돌문이 깨어지는 소리입니다. 이 소리들은 우리가 세상에 외쳐야 할 소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로부터 들어야 할 소리입니다.
둘째, 지금은 교회가 먼저 깨어날 때입니다.
에베소서 13:11에는 말씀합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 소리는 영혼의 잠을 깨우는 ‘복음의 자명종’(Gospel Alarm)소리로 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교회가 먼저 깨어나야 합니다. 사회를 깨우기 전에 먼저 우리가 깨어야 합니다. 우리가 깨지 못하면 사회를 깨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깨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시기를 알아야 합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라고 합니다. 이 시기는 자다가 깰 때입니다. 이 시기는 우리의 시간 ‘크로노스’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입니다. 이 시기가 이미 왔으므로 잠잘 시간이 지났습니다. 문제는 깨어날 때 자고, 잘 때 깨어 있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깨어날 때 자고, 잘 때도 자는 것입니다. 항상 잠든 상태이기에 문제가 큽니다.
이 시기는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운 때입니다. 우리는 의로 인정받았습니다. 구원받은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로 날마다 거룩한 삶을 삽니다. 성화의 단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완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영화의 단계에 들어갑니다. 영화의 단계로 가기 전에 성화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거룩하게 사는 것이 깨어있는 상태입니다.
이 시기는 밤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자다가 깨야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9에는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절대 예수님은 더디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곧 오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13:25에는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라고 합니다. 가라지를 뿌리는 원수는 절대 잠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시대의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우리가 잠든 시간은 세계의 3분의 2가 우리를 해하려고 하는 시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든 시간에 원수는 깨어 있습니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자기가 든 등불이 꺼진 줄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잠들어 있으면 잠들어 있는 것조차도 모릅니다. 깨어 있어야 시대를 분별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마태복음 16:3에는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합니다.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보면서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를 아는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 잘 때입니까? 깰 때입니까? 여러분은 자고 있습니까? 깨어 있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깨어있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제자들을 깨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 번씩이나 깨웠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조그만 배에서 주무실 때에 그들은 죽게 되었다고 소리치며 예수님을 깨우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말 죽게 되었는데 아무리 깨워도 잠자는 제자들입니다.
세상의 악한 무리들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교회를 잡으려고 합니다. 교회를 멸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창피를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조롱하고 모독합니다. 가룟유다라는 제자를 앞세워 예수님을 잡습니다. 지금도 교회를 조롱하고 교회를 멸하려고 하는 데는 예수 믿는 사람을 앞세워 놓습니다. 안 믿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들이 더 악하게 교회를 어렵게 만듭니다. 예수를 팔았던 가룟유다가 제자였던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교회를 어렵게 하고 교회를 멸하려고 합니다.
이사야는 세상에 대하여 외칠 때 자신이 먼저 죄인인 것을 깨닫습니다. 이사야 6:5에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합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고백합니다. 표준 새번역에는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사야의 심정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옷을 찢고, 재를 쓰고, 마음을 완전히 열고 깨어나서 주님을 찾을 때 교회의 부흥은 일어납니다. 찬송가 372장 4절을 보세요. “나 항상 깨어서 늘 기도드리며 내 믿음 변치 않도록 날 도와주소서”. 이 찬송이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간절한 소망이 우리에게 있어야 새로운 부흥의 불길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결론
애니 딜라드는 “우리가 완전히 깨어난다면 신비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깨어나면 신비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나야 신비를 봅니다. 그런데 깨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잠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잠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영혼이 깨어 있을 때입니다. 도둑은 잠도 안 자고 눈을 부릅뜨고 밤을 지셉니다. 우리가 잠들면 우리는 도둑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도둑보다는 우리가 나아야지요.
제가 여러 해 전에 갔던 이집트의 전통 수도원인 ‘성 마카리우스 수도원’을 설립한 마카리우스는 주후 300년경에 태어나서 스케티스에서 수도 생활을 하던 성인입니다. 그는 원래 낙타를 타고 다니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떠돌이 상인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은둔자의 삶을 살았고 수도원을 창설하였습니다. 이 수도원은 한 때 400명 이상의 수도사가 있던 유명한 수도원입니다. 마카리우스도 떠돌이 상인이었지만 그가 수도 생활을 한 후에 많은 제자를 길러냈습니다. 그 수도원은 지금도 120명의 수도사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깨어남으로 수많은 영혼이 깨어납니다. 한 영혼이 깨우쳐지므로 교회가 깨우쳐집니다. 제가 그 곳에 갔을 때 어느 나이 많은 수도사는 자신이 교회를 위해 기도를 잘 할 수 있도록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수도원에서는 영성의 물줄기를 교회에 흘려보내주고 있었습니다. 내가 깨어나면 교회가 깨어나고, 교회가 깨어나면 사회도 국가도 깨어납니다. 교회가 세상 깨우기 위해 먼저 깨어나야 합니다.
어떤 분이 “사람의 영혼 속에는 천사가 깨어나려고 움직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깨어나고 우리가 살아 있는 천사가 됩시다. 우리가 깨어나면 교회가 깨어납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깨어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새롭게 깨어나 1907년의 한국교회의 부흥을 다시 한번 이 나라에 뜨겁게 재현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