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소망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
본문
말 씀: 로마서 15장13절(신약p.259)
설교자: 최낙보 목사(포항대흥교회)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을 참으로 환영합니다. 문제하나 내겠습니다. 한번 풀어보세요. 경찰하고 소방관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경찰이 아니라 소방관이 이깁니다. 왜냐하면 소방관은 물불을 안 가리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소방관하고 장님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장님이 이깁니다. 눈에 보이는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장님하고 노인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노인이 이깁니다. 노인은 죽기 살기로 싸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사람을 당할 자가 없어요. 오늘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면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은 승리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
오늘 교회 오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강권해서 모시게 되고, 또 여러분들이 좋은 마음으로 오셔서 함께 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기 위해서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선물 받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가장 좋은 선물을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2004년 9월 13일에 오프라 원프리라는 흑인 여성이 진행하는 토크쇼에서 오프라 원프리가 진행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백만 달러의 선물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방청석에 있는 열한명의 방청객을 무대로 올렸습니다. 그리고 열쇠를 하나씩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 열쇠가 무슨 열쇠인지 아십니까? 이 열쇠는 우리가 여러분을 위해서 준비한 자동차 열쇠입니다.” GM에서 나온 폰티악 G6라는 삼천만원짜리 자동차를 나눠주었습니다. 전부다 얼떨떨 했습니다. 그리고는 사회자가 하는 말이 “이제 열두번째 행운의 주인공은 누구이겠습니까? 오늘 입장할 때 여러분에게 나눠준 작은 상자를 이제 한번 열어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딱 여는 순간 거기에는 276명 모두의 상자에 열쇠가 들어있었습니다. 미국 전국의 시청자들이 야단이 났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삼천만원짜리 자동차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누구냐? 자동차를 바꾸고 싶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선물한 것입니다. 자동차를 선물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깜짝쇼를 진행한 것입니다. 엄청난 선물을 받고는 팔짝팔짝 뛰며 눈물을 흘리고, “원더풀!”이라고 외쳤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폰티악 G6보다 더 큰 선물을 주실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일제시대 때 선교사님이 한국 땅에 오셔서 시골 마을을 다니며 전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다음 주일날 교회 오시면 구원을 얻습니다. 교회 오시기 바랍니다.”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이렇게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날 보니까 예배당에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신이 나서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고 예배를 끝냈습니다. 그리고는 “여러분, 이제 예배가 끝이 났습니다. 돌아가십시오.” 그런데 한 사람도 돌아가지 않고 꼼짝도 않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가 끝이 났습니다.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손들 들더니 “선교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뭡니까?” “선교사님이 며칠 전에 우리에게 교회 오면 9원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1원도 주지 않고 돌아가라면 어떻게 합니까?” 선교사님 발음이 좀 이상하잖아요....
오늘은 9원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물을 받고 싶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에게 선물을 주신다면 어떤 선물을 달라고 할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떤 청년이 길을 가다가 램프를 하나 주웠습니다. 램프가 참 좋아 보여서 이리 저리 만지는데 “펑”하고는 사람이 하나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인님, 저는 주인님의 종입니다. 주인님이 무엇을 원하든지 저는 한가지 소원을 꼭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말을 들으니 생각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 두가지가 생각이 납니다. 돈과 예쁜 여자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말을 못하니까 이 청년이 욕심이 나서 합쳐버렸습니다. 그래서 “돈 여자”라고 말을 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여자 하나가 나타나는데 침을 줄줄을 흘리며 히히하고 웃는데 미친 여자였습니다. 정말 돈 여자였습니다. 욕심이 낭패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신다. 여러분의 남편이, 아내가, 자녀가, 부모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선물을 주고 싶잖아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최고의 선물을 주고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고 싶은 최고의 선물은 희망입니다.
따라합시다. “희망이 최고의 선물이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길을 가다가 램프를 주으면 다른 소리하지 말고 “나는 희망을 원합니다”라고 하십시오.
하나님은 희망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그 희망의 선물을 가슴에 가득히 채워가지고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 인간은 참 연약한 인생입니다. 살다보면 정말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병이 들기도 합니다. 실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내게 직면하기도 합니다.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다 막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일지라도 그 마음속에 희망이 있으면 그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습니다. 두 팔도 못 쓰는 사람일지라도 희망이 있으니까 희망을 노래하는 위대한 가수가 되지만, 사지가 멀쩡해도 희망이 없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인생을 포기합니다.
희망이 얼마나 좋은가 애기를 한 해 드릴께요. 1905년도에 오 헨리가 쓴 ‘마지막 잎새’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존스와 수라는 화가 지망생이 나옵니다. 뉴욕의 작은 아파트를 빌려서 그림 수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존스가 폐렴에 걸렸습니다. 당시는 항생제가 발달하지 못해서 폐렴에 걸리면 아주 고생을 했습니다. 또 존스는 잘 먹지 못해서 영양실조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존스의 집 건너편에는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당시가 11월입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달입니다. 하룻밤 지나면 낙엽이 떨어지고, 또 하룻밤 지나면 낙엽이 떨어집니다. 그것을 보며 존스는 “저 낙엽이 다 떨어지면 나도 저 낙엽처럼 죽겠구나!” 수에게도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존스야 저 낙엽이 다 떨어지면 나도 죽겠지?” 이 말을 들은 수는 아래층에 살고 있는 베어만이라는 늙은 무명의 화가에게 이 말을 지나가는 말로 했습니다. 드디어 잎새는 다 떨어지고 달랑달랑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 날밤은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습니다. 다음날 아침 존스는 “창문을 열며 이제는 잎새가 다 떨어졌겠지. 나도 이제는 죽을 거야” 하며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잎새 하나가 여전히 달려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며 존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다음날에도 그 잎새는 여전히 거기에 달려있었습니다. 존스는 점점 회복되었습니다. 며칠 후 수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베어만아저씨가 세상을 떠났어. 그리고 저 마지막 잎새는 진짜 잎사귀가 아니라 베어만 아저씨가 너를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쏟아서 잎사귀를 그린 거야.” 그 베어만 아저씨가 희망을 주었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면서 그 젊은 딸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 마지막 잎새가 희망으로 병든 존스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 희망의 잎새 그것 때문에 그녀는 살아날 수가 있었습니다.
희망이 이렇게 귀중한 것입니다. 희망이 있으면 병을 이기고 희망이 있으면 얼마든지 어려움을 뚫고 살아나갈 수 있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학술원장을 지낸 찰스 핸리박사는 그의 책 “배고픈 정신”이라는 책에서 현대인의 문제는 부가 아니라 희망의 부재라고 말을 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잡지 가운데 하나인 리더쉽 저널이라는 잡지에 존 치버라는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부요를 누리고 교육을 받고 문화적인 해택을 받고 살고 있지만 중년층을 지배하는 가장 두드러진 감정은 실망감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년이 지나가면서 희망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우리나라를 바라보며 한국 사회의 가장 귀중한 것은 희망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어제 TV에서 어떤 대담하는 프로를 잠간 보았습니다. 한 대담자가 서울의 아파트 값이 보통 7-8억하는데 이것은 한국 사람들의 희망을 빨아먹어 버리는 블랙홀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크게 동감했습니다.
서울에서 집 한 채 사려면 58년 동안 일을 해야만 겨우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한 십년 동안 허리를 조이고 고생하면 자그마한 집이라도 한 채 장만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 희망마저도 다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희망을 빨아먹어 버리는 블랙홀이다.
요즘 한국의 정서가 그렇습니다. 취업문은 바늘 구멍과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밖에도 나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천에서도 용이 날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했습니다. 정주영같은 분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이명박씨 같은 분이 그렇지 않습니까? 고등학교를 보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형 이상덕 하나만 잘되면 되지 동생들은 공부 못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억지로 돈 안드는 동지상고 야간에 보냈습니다. 야간고등학교라도 열심히 하면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학교도 부자들이 다 차지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발을 딛고 일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합니다. 왜 자살합니까? 내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 될 때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결심하는 것입니다.
제가 한번 묻고 싶습니다 .이 나라의 개인이나 가정이나 기업이나 어떤 사람들 가운데서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나마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숫자는 몇 퍼센트나 되고 얼마나 되겠습니까?
솔직하게 한번 대답해 보세요. 앞으로 내 인생은 더 좋아질 것이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기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20년 전만해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군사독재 정권이 끝나면,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민주정권이 들어서면 우리나라는 잘 될 것이라는 희망속에 살아왔습니다.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까?
군사독재가 무너지면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 이 나라는 정말로 푸른 계절이 오고 정말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벌써 민주화된 정권이 세 번째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이제는 희망이라는 것은 휴지조각처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습니다. 이제는 좌절감 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젊은이들까지도 꿈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풀어야 할 될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희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희망의 상실은 인간의 마음과 정신까지 병들고 죽이게 만듭니다. 이런 절망감은 수많은 현대인들의 심리적 장애의 중요한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희망이 없으면 누구든지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희망이 사라져 버리면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으면 의육이 상실되고 맙니다. 희망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내 형편이 아무리 어렵고 내 몸이 병들고 아무리 환경에 내가 처해져 있다 할지라도 내 가슴속에 희망이 있으면 어떤 문제도 극복해 나가고 이겨나가고 승리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링컨을 존경합니다. 그런데 링컨은 10여차례 선거에서 낙선하고, 자신의 사랑하는 약혼녀는 병으로 죽었습니다. 젊을 때 링컨이 얼마나 좌절감에 빠졌는지 그의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지극히 불행한 존재이다. 만일 내가 느끼는 것을 온 인류에게 나눠준다면 이 땅에는 즐거운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얼마나 심각한 좌절감에 빠졌으면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나의 지금 슬픔과 좌절감을 온 인류가 나눠가진다면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즐거운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엄청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링컹이지만 그런 것들을 다 극복하고 그가 위대한 대통령으로 세계적인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 어머니가 그에게 물려준 믿음. 링컨의 지금 기념관이 워싱턴에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 링컨이 평소에 사용한 성경이 있는데 그 성경에 가장 강하게 표시된 부분이 시편 34편 4절 말씀입니다. 링컨이 애용했던 성경구절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낙심이 되고 좌절감에 빠질 수 밖에 없을 때 마다 그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희망을 회복시켜 승리해 나갔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어떻게 해요?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내 모든 두려움, 나를 엄습하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내어 주실 줄로 내가 믿습니다. 이 믿음 가지고 있으니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그는 승승장구하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아실 것입니다.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요,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바흐는 열 살도 되기 전에 부모을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결혼한지 십삼년만에 병으로 죽었습니다. 다시 재혼했습니다. 자녀 한 명은 정신 박약자였습니다. 그는 노년에 앞을 보지 못할 정도로 시력 나빠졌습니다. 또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작곡을 했습니다. 그는 작품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라는 사인을 하며 작곡해 나갔습니다.
우리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역경을 연속적으로 맞이하면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승리한 자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인물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신 그 믿음과 그 소망을 통해서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대도 예기치 않은 질병의 선고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병을 이기는 가장 중요한 것은, 병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은 ‘나도 낳을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병과 싸울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가진 사람은 어떤 병과도 싸워서 이겨낼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희망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어떤 희망이 있습니까? 사업에 실패했습니까?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고시에 떨어졌습니까?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에디슨은 위대한 말을 했습니다. 그는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심지어는 900번 이상을 실패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그는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서 낙심하고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희망으로 수없이 반복되는 실패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성공의 자리로 도약했습니다.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오늘 이 위대한 희망을 선물로 소유하는 축복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중요합니까? 오늘 연세가 많은 사람들, 65세 이상 되신 분들은 전철탈 때 공짜가 됩니다. 좋기도 하지만 노인이라는 느낌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엄습해오는 외로움, 내 인생은 다 끝났는가 하는 이런 마음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희망을 접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희망이 왜 중요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왜 중요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참된 소망을 주시기 때문에, 참된 희망을 주시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참된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늙어가도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에 날마다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다 죽을 겁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의 소망을 가지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 나라를 사모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나라를 우리를 위해서 준비해 놓은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소망이 넘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 어디에 희망을 두고 사시겠습니까? 자식에게 희망을 걸고 사시겠습니까? 오늘 지혜로운 현대인들은 자식이 잘되는 것으로 나는 만족합니다라고 하며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식에게 기대했다가 실망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자식과는 같이 살지 않겠노라고 합니다.
돈에다가 희망을 거시겠습니까? 돈이 여러분의 희망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 명예나 권력이 여러분의 희망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했습니다.
가장 위대한 인간으로서 축복되게 살아갔던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따라합시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에게 소망을 줄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 썩어지고 말것입니다. 헛된 소망일 뿐입니다. 참되시고 영원하신 그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우리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15장 13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소망의 하나님, 그 하나님을 내가 믿을 때 그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소망이 넘치게 채워주실줄로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꼭 믿으셔야 됩니다.
그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주십니다. 이제 마지막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인간은 왜 절망의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이 범죄함으로 소망의 하나님과 단절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지금도 절망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끊어져버린 인간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축복의 사람으로 소망의 사람으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내일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념하는 성탄 절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다시 하나님과 화복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질 수 있는, 구원의 길, 회복의 길, 축복의 길이 열려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십자가는 뭡니까? 이 십자가가 바로 희망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인간은 참된 희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희망의 십자가입니다. 누구든지 십자가 앞에 나아오면 여러분의 과거도 절망적인 상황도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시고, 여러분의 앞날에 놀라운 은혜와 축복과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죽음 저편에 있는 영원한 천국에 영생복락을 누리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우리 인생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도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어떤 좌절과 어떤 질병과 어떤 어려움 속에 있는 분일지라도 오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소망의 구주로 영접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만 믿으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영원한 희망을 주십니다. 이제 그 희망을 가지고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링컨과 같은 그 절망의 골짜기에서도 건져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때부터 희망이 살아나는 겁니다. 나는 죽어도 다시 살고, 영생을 누리게 되는 소망, 이 소망을 소유하셔서 남은 인생을 저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시며 땅위에서 사는 동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