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소망의 약속 (계 3:12)
본문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죠루쥬 데스빠르떼는 「독수리전」이라는 저서에서 다리 공사 역사에 있어 가장 영웅적인 헌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합니다. 깊은 겨울, 프랑스 군대가 기병대에 의해 사방으로 포위되었었다합니다. 프랑스군은 강을 건너야 했는데 적군들이 모든 다리를 파괴해 버린 후였으므로 나풀레옹은 거의 절망상태에 빠졌습니다. 그 때에 어떻게 해서든지 다리를 놓으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물가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먼저 거의 불가능한 그 임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서너 명의 군인이 강한 물결에 쓰려가 버렸습니다. 다른 몇 명의 군인들도 춥고 또한 몸이 얼어 물속에 잠겨 버렸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군인들이 물에 들어가 임시로 다리를 가설하여 군인들이 무사히 안전한 강 건너 쪽으로 건널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에 일어났던 일이 가장 극적이고 역사에 길이 기록될 만한 일이었다합니다. 군인들이 모두 건넌 다음 임시 가설한 다리 기둥을 붙들고 있던 군인들에게 물에서 올라올 것을 명령하였으나, 한 사람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설한 다리 기둥을 붙들고 조용히 얼어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도 그들의 헌신에는 눈물을 흘렸다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도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존전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다리로 만들기 위해 우리의 생명을 버릴 것을 요구하실 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기꺼이 그 일을 하려 할 것입니다.(다리 기둥을 붙들고 얼어 죽은 군인-21세기 예화사전)
빌라델비아는 소아시아 서편 루디아 영토에 있는 성읍으로, 이곳에 언제 교회가 세워졌으며 누가 세웠는지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다만 빌라델비아 교회는 일곱 교회 중 성도들이 굳게 믿음을 지킴으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가장 많은 칭찬과 축복을 받은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에도 여러 말씀을 주셨는데, 칭찬과 축복 권면과 상급에 대한 말씀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분이며 다윗의 열쇠를 가진 분이시라고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예수님께로부터 주의 말씀을 인내하며 지킨 것을 인정받고 주님을 배반하지도 않았음을 칭찬받습니다. 비록 그들이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사단의 회가 있는 곳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믿음의 정절을 지켰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교인들이 주님의 칭찬을 얻었지만 방심하는 것은 신앙에 있어 금물임을 교훈하시며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굳게 잡을 것을 권면합니다. 그러한 권면을 하고 난 후 요한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한다는 약속을 주셨음을 상기시키며 그들을 핍박하던 유대인들이 굴복하고 회개할 것이며 시험의 때를 면할 수 있도록 예수님이 도와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주님께서 속히 임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소망의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성전 기둥'을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빌라델비아는 잦은 지진으로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으나 파괴된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신전의 돌 기둥 뿐 이었다 합니다.(Ramsay, Johnson). 지진과 폐허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신전 기둥을 본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은 승리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하고 요동치 않는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나타냅니다(Charles, Mounce, Ladd).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것은 건물의 한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 이상의 의미가 함께합니다.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은 성도들의 영예로운 지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둥에 관한 가르침이 나타납니다.
(갈 2: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초대교회의 기둥들이었습니다. 탈무드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이스라엘의 세 '기둥'(암무딤)이라 하였고 이스라엘의 계약 공동체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그들 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Longenecker). 이러한 개념을 사용하여 바울은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을 '기둥'에 비유한 것 같다고 이해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어가는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을 향해 의도적으로 히브리적 개념을 도입해 논리를 펴나가면서 세 사도가 갖는 비중을 강조하였습니다.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 이 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공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지도자적 입장에 서 있었던 사실에 역점을 둔 것으로 봅니다(행 15장). 야고보에 대해 바울은 1:19에서 '주의 형제 야고보'라고 구체적으로 기록하였으나, 본 절 에서는 그냥 '야고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전체 맥락이 예루살렘 공의회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의장이었습니다. 바울이 다른 두 사도보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의 이름을 먼저 기록한 것은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의장으로서의 야고보를 설명하기 위함인 것으로 이해 합니다(Boice). 그러나 다른 사도들의 이름이 뒤에 나왔다고 해서 예루살렘 교회 속에서 이들의 서열이 정해져 있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바울은 모두 아홉 번에 결쳐 베드로를 언급하는데 일곱번은 '게바'라고 불렀으며 두 번은 '베드로'로 불렀습니다. 특히 유대주의자들과 논의할 때 게바라는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베드로와 자신의 관계를 오해없이 설명하려 한 것으로 이해합니다(Huxtable). 요한도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여러 곳에서 함께 등장하며 또한 사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 또한 그러한 영예와 지위를 얻게 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딤전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교회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복음이 가지고 있는 구원의 진리를 높이 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의미에서 교회는 온통 진리로 새겨진 하나의 기둥입니다. 교회사 속에서 교회는 매 시대마다 엄청난 시련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2000년의 역사를 지내 오는 동안에 교회는 크고 작은 시련으로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진리를 수호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진리의 수호자로서 그 시대의 저울대였으며, 어두움을 비춰 주는 빛이었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성도들에게 부과된 소명도 진리의 기둥으로서 썩어져 가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렘 1:18)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승리'를 보장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군사적 상징어를 사용하여 강하고 확실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예레미야의 대적들이 왕이나 고관 또는 제사장 등과 같은 기득권층일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그의 주장을 비난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강력한 지원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빌라델비아 교인들 중 승리자에게 주어진 두번째 약속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 종류의 이름을 부여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름을 부여받는 것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있어서 친숙한 것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을 때 티베리우스(Tiberius)의 도움으로 재건된 후 '네오가이사랴'(Neocaesarea)라는 이름을 부여받았고 후에 베스파시안(Vespasian) 황제의 성을 따라 '플라비아'(Flavia)로 개명되었습니다(A.D. 70-79). 이러한 경험을 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름을 부여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겠다고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민 6: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내 이름'이란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해 주셨을 뿐 아니라(출 3:14). 축복 선언에 나타난 이름입니다.
(민 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신 말씀 중에도 거듭 언급하셨던 '여호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절대 거룩한 자신의 이름을 전제하여 제사장들로 하여금 축복을 선언하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전 인격과 명예를 걸고 축의 내용을 그 백성에게 반드시 이루실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또한 이것은 오직 자신의 이름에 의해서 그 축복이 선포될 때만이 그 속에 담겨진 내용이 유효하게 작용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으로 영원히 인 쳐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나타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승리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인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승리한 자들이 하나님의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을 소유함을 나타냅니다.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하늘 시민권이 보장됨을 의미하며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것으로 그때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주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당시 사람들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다는 것은 대단히 제한적인 일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로마 제국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우든지 아니면 엄청난 재물을 대가로 치러야만 로마 시민이 될 수 있었습니다(행 22:28). 이처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로마 시민이 되었기에 시민권에 따른 특권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소수 귀족층을 형성했으며 '백색 장옷'(Toga)을 입음으로써 일반 백성들과 스스로를 구분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었으며, 체벌을 받지 않을 권리와 항소권, 재판 기피 신청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행 22:25). 따라서 일반 백성들과 로마 시민들은 외형적으로나 내면적으로 뚜렷이 구분되었습니다. 바울이 성도들의 '하늘나라 시민권'을 주창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였습니다. 즉 너희는 하늘나라 백성으로서 이 세상 백성들과는 뚜렷이 구분이 된다, 혹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로마 시민에게 위에서 제시한 특권과 함께 납세 의무, 병역 의무, 라틴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의무가 엄격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은 빌립보 교인들이 하늘나라 백성으로서의 의무에 보다 더 충실해야 할 것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주의 새 이름을 기록하겠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영광에 성도들도 동일하게 참여하게 해주신다는 축복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새 이름, 곧 다른 모든 권세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절대적인 권력과 인격 그리고 성품을 나타내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이긴자들에게 주어짐을 의미합니다.
(계 19:12,13)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언급됩니다. 이 이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나타내는 표상으로서 상호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으며 요한도 알아볼 수 없었던 이름은 매우 깊은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 이름은 인간이 깨달아 알 수 있도록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은 일부분이며 예수님의 존귀한 본질은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의 한계를 훨씬 넘어선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나아가 구속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음을 나타냅니다.
(사 62:6,7)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불란서 파리에 여행 중이던 한 미국 사람이 파리 시내의 어떤 장신구점에 들어가서 중고품 호박 목걸이를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귀국하는 길의 공항 세관에서는 그 목걸이에다 많은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이상스럽게 생각한 그 사람이 목걸이를 들고 보석상에 가서 감정을 부탁하였습니다. 보석상 주인은 목걸이를 자기가 2만 5천 불에 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목걸이를 그냥 가지고 나와서 이번에는 더욱 권위 있는 감정사에게 갔습니다. 현미경으로 잘 조사해본 그 감정사는 이 목걸이를 나에게 파신다면 3만 5천 불을 드리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궁금증을 도저히 풀 수 없었던 목걸이 주인이 도대체 그 목걸이가 왜 그렇게 값이 나가는 것인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감정사는 그를 현미경 앞으로 인도하고, "자, 보세요. 무엇이 보입니까?"고 했습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그 사람의 눈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보였습니다. '조세핀에게 나폴레옹으로부터.' 나폴레옹 황제가 그 애인 조세핀에게 준 선물 목걸이였던 것입니다. 그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값이 나갔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장을 맞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엡 1:1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도장을 맞은 값비싼 인생인 것입니다.
이긴 자에게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의 새 이름을 기록하리라는 소망의 약속은 우리에게도 주신 약속입니다. 이 약속 붙잡고 인내하는 모두가 됩시다. (강성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