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마음의 소원을 이루려면 (시 37:3∼7)
본문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나름대로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꿈을 가지고 내일을 준비합니다. 그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왜요?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더 멋있고 아름다운 내일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내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 11:1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믿음으로 내일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원을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한다고 해서 소원대로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소원과 더불어 우리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달렸는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것이요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길이 소원하는 대로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즉 이방지역에 갔습니다. 그 때 가나안 여자 하나가 주님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는 자기 딸이 귀신들려서 고통 중에 빠져있는데 그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 왔지, 너 같은 이방여인을 구원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래도 이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다시 예수님께서 “자식들에게 주려고 준비한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셨지만 이 여인은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매달립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겸손과 적극적인 믿음을 보시고 “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귀신들이 떠나고 딸이 고침을 받게 됩니다.
믿음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꿈을 갖고 소원 갖고 살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면 반드시 주님이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개인마다 꿈이 있고, 가정마다 소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먼저 생각해야 될 꿈은 두 가지이어야 합니다.
하나는 내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기를 원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한 사람도 멸망 받지 않고 다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주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평생소원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요 그 소원대로 주님이 나를 보시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보다 큰일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되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의뢰한다는 말은 힘 있는 자를 의지하고 자기의 문제 해결을 그 분에게 부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아이들은 그 부모님들을 의지합니다. 엄마, 이것 못하겠어요. 엄마가 해 주세요 하고 부탁합니다. 이렇게 믿고 의지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을 의뢰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분별력이 모자라고 힘이 모자랍니다. 어린아이는 혼자서는 쉽게 길을 잃습니다. 그러나 엄마 손을 붙들고 가면 안전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주의 손에 이끌리어 살 때 안전한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성경은 예수 믿는 우리를 어린 양으로,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가르쳐 주십니다. 마귀를 가리켜서는 우는 사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베드로 전서 5장 8절 이하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린양인데 마귀는 사자라고 말합니다. 어린양이 사자가 싸워서 이겼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어린양은 다 사자 밥입니다.
그러면 양 같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목자 곁에 있는 것입니다.
양은 눈이 근시라고 멀리 보지를 못합니다. 힘도 약하고 그렇다고 빨리 도망칠 수 있는 발도 없습니다. 자기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은 목자가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세상에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서 온통 우리를 노리는 자들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를 온전히 지켜주실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단 한시도 온전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믿고 의지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경우가 종종 있지를 않습니까? 사람을 믿은 만큼 상처받고 의지한 만큼 내가 손해 보는 일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면 악한 자가 손도 못 댑니다. 문제는 양이 목자 곁에 있어야 안전하지, 목자 곁을 떠나 있으면, 그래서 바깥으로만 돌면 사자 밥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도록 우리는 언제나 주님 곁에 바짝 다가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 앞에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먼저 날마다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 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성경 말씀을 읽으십시오.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목자 곁에 있는 양과 같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능력이 아무리 대단하고 크다 해도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시간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 받으면 마귀권세를 깨뜨릴 수가 있습니다. 이 험악한 죄악 세상에서 나 혼자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주시고, 내가 예수 안에 있으면, 능히 마귀를 대적해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실해야 됩니다.
여러분, 2007년도를 어떻게 살 것인가 마음에 결정하셨습니까?
나는 최소한 하루에 세 장 이상 성경 읽으리라 결심하고, 삼십분 이상 무릎을 꿇으리라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그 결심을 중도에 포기되지 말고 끝까지 지키십시오. 시작만 크게 해놓고 흐지부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실이라는 말은 조금도 변함없는 것이요 시작과 끝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그럴 때 주님 곁에 있는 성도, 목자 곁에 있는 양이 되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심으로 우리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줄로 믿어 이렇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우리들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맡겨야 합니다.
“여호와께 여러분의 길을 맡기고 그분을 굳게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주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하는 의로운 일과 정의로운 행동들을 한낮의 햇빛처럼 빛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너의 길을 맡기라는 말은 너의 인생 전체를 맡기라. 네가 2007년도 한 해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너의 계획이나 목표나, 방법, 모두를 다 하나님에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맡기라는 말에는 돌을 굴려버린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는 길목에 돌이나 바위 같은 장애물이 있을 때 굴려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복 받는데 있어서 가장 우리를 괴롭히는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합리주의, 이성주의, 내 편견이나 경험에 따르는 내 생각입니다. 교회생활을 영적으로 해야지, 육신의 생각대로 하면 늘 힘들고 지치고 언제나 문제는 문제로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5절에서 “만일 너희가 육신의 생각을 좇아 살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고 영의 생각을 좇아 살면 생명을 얻고 평강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육신의 생각이고 무엇이 영의 생각입니까?
민수기 14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와 시내 광야를 거쳐 바란 광야,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왔습니다. 이제 산만 넘으면 가나안 땅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그 땅에 대해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며 사십일 동안 땅을 탐지하고 오라 명령합니다. 그들이 돌아와 보고하는데, 열 명은 육신의 생각대로 말합니다. “우리가 가서 보니 땅은 비옥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키도 크고 싸움에 능하며 그들의 성은 튼튼합니다. 그곳 아낙 자손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와 같습니다. 그러니 그들과 싸웠다가는 다 죽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다릅니다.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의 생각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가면 죽는다던 사람은 광야에서 모두 죽었지만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차지했습니다.
항상 죽음을 생각합니까?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빨리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내일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힘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바로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행을 믿기 때문에 돈을 맡깁니다. 택시기사를 믿으니까 택시를 탑니다. 의사를 믿으니 내 몸을 맡겨서 수술하게 합니다. 하지만 믿다가 큰 코 다치는 일도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은 온전한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왜 사람을 못 믿습니까? 변덕스럽기 때문입니다. 변덕스럽지 않더라도 실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십니다. 결코 실수가 없으십니다. 항상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지하는 믿음은 곧 맡기는 것입니다.
나의 앞날을 맡깁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짐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가 의로운 행실을 해서 의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단 말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17절에서 바울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가 복음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의인은 믿음으로 인하여 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는 숫자를 가지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숫자를 보면 0이 있고 그 다음에 1이 있고, 2가 있습니다.
1이 큽니까, 0이 큽니까? 1이 큽니다.
그러면 큰 1을 하나님이라 생각하고 작은 0을 우리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0이 앞에 있고 1이 뒤에 있습니다. 그래서 0 다음에 1이면 0.1이니까 십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생각보다 나의 생각을 앞세우면 하나님의 능력은 10분의 1로 줄어들고, 나의 생각이 두 번 앞섰다 하면 0.01 즉 100분의 1이 되고, 내가 하나님보다 세 단계 앞에 섰다 그러면 1000분의 1이 됩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장세우면 세울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점점 더 약해집니다.
그러나 0앞에 1이 나오면 얼마입니까? 10입니다. 1이 0앞에 한 다섯 번 앞에 오면 얼마입니까? 100,000입니다. 주님을 앞장세운 만큼 나에게는 플러스가 되고, 내가 주님 앞에 서서 뛰면 뛸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 보면 내가 깨어지고 부서질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크게 드러나고 내가 고집 부리고 내 육신의 생각으로 가면 갈수록 주님의 도우시는 역사는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 믿어도 별 볼일 없다는 사람이 있고, 예수를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다고 간증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왜 그렇습니까? 주님을 앞장세우고 나가면 주님의 능력이 무한정 커지고, 주님을 뒷전에 던져놓고 나 혼자 뛰어 다니면 어떤 능력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원하거든 때를 기다리십시오.
오늘의 본문 7-8절 말씀에 “잠잠히 인내하면서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악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속상해하거나 그들의 악한 계획들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십시오. 노여워하거나 화를 터뜨리지 마십시오.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자신에게 해로울 뿐입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잠잠히 인내하면서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라는 말은 단순히 침묵하고 있으란 뜻도 아니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서 내 생각이나 마음대로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좋으신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잘 이루시겠지 하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길로 나를 인도할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면 때가 되면 주님이 이루어주십니다.
야고보 5:7-8절에 보면 “형제 여러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참고 기다리십시오. 농부는 귀한 추수를 바라고 참고 기다립니다. 그는 또한 이른 비와 늦은 비가 곡식을 촉촉이 적셔 주기를 기다립니다. 여러분도 인내심을 갖고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왜 이리 날씨가 추워? 주님 내가 믿습니다. 겨울아, 물러갈지어다. 여름아, 와라! 그러면 여름이 옵니까?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겨울 빨리 좀 지나가게 해주세요. 아무리 목 놓아 부르짖어도 1, 2월 지나고 3월이 와야 봄이 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너무 힘들고 아무리 어두워도 주님의 지신 십자가를 나도 지고 주님이 주신 말씀대로 지켜 살아가노라면, 소망 가운데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좋은 것들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 23:21절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일로 너에게 맡기리니,”라고 말씀하시고 계속해서 “내 아버지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면 그 기쁨이 메아리쳐 돌아와 나도 기뻐지고, 우리가 하나님 마음을 섭섭하게 하면 내 마음에 어두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메아리의 법칙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법칙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면 그 기쁨이 나에게 갑절로 돌아옵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불안이 함께 따라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활을 자꾸 하면 나한테는 영광스런 일만 나타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 욕 돌리는 일로 살아가면 욕된 일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면서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을 의뢰하십시오. 성실하게 신앙 생활하십시오. 그리고 다 맡기십시오. 그리고 참고 때를 기다리십시오. 할 도리를 다하고 때를 기다리면 때가 되면 주님이 이루어주십니다.
2007년 한 해 동안에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들이 주님의 도우심 가운데 다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