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선교는 옵션이 아니다 (행 1:1-8)
본문
누가는 성경을 두 권 썼는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입니다. 이 두 권의 책은 신약성경의 1/3정도의 분량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 책을 단지 한 사람 데오빌로에게 보냈습니다. 그 수신자가 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태어나셔서 이 땅에서 행하신 일에 대해서, 사도행전은 전도와 선교의 현장의 발자취를 소개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이라 해서 12사도가 다 나오는 것이 아니고 1장부터 11장까지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유대인을 위해, 12장부터 28장까지는 바울을 중심으로 이방인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사도행전의 별명이 있습니다. 성령행전이라고 부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심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8절 말씀처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땅 끝까지의 복음 전달과정을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교는 하나의 선택과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지상명령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성경을 13권 썼는데 그중 마지막 책이 디모데 후서이고 마지막 장이 4장인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4장 1절에서 2절에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하나님 앞과 그리고 예수 앞에서와 예수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사건 앞에서 엄히 명하는 것이 있으니 때를 얻든 그렇지 못하든 말씀 전파를 항상 힘쓰라는 것입니다. 이때는 A.D 64년 네로가 엄히 정치하던 시기로 복음을 전파하다가 잡히면 십자가형을 당하기 일수인 그때에, 그때에라도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복음을 지키다 받는 고난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13절에서 14절에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지 말고 순수하게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지키다가 고난이 오더라도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인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의 일대기를 보더라도 한 순간이라도 신앙의 절개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분들의 순교의 피가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건재하게 되는 요소가 된 줄 믿습니다.
요즘은 신앙지키기가 힘듭니다. 적당히 타협하는 우리의 습관이 신앙지키기 힘든 것을 나타내줍니다. 주 5일 근무제는 성경적이 아닙니다. 엿새 동안 힘써 일하고 일곱째 날 쉬어야 하는데 5일 근무하고 다 빠져 나가니 믿음을 지키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복음을 전하다가 받는 고난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5절에서 8절에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잘 한 사람들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들에게 이런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한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7절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지금의 기록은 바울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그때는 바울 곁의 모든 동역자들이 다 떠났습니다.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때는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고 감옥의 맨 밑바닥에서 자기 인생을 돌아볼 때 주님이 자기 곁에서 자기를 강건케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또 하나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과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요셉을 보면 그의 마음이 얼마나 정결하고 깨끗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의 정결한 마음을 하나님이 보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범사가 형통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민족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서 땅 끝까지로 복음을 전파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 1절에서 3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1절에 포함되어 있음)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했습니다. 자기 동족애가 마음 깊은곳에서 끓어 올랐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성경구절을 살펴볼 때 선교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꼭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세 가지로 살펴볼 것입니다
첫째, 세상 나라로는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함께 잠을 자도 꿈이 다 다릅니다. 본문 3절에 보니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많은 관심이, 제자들은 세상나라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제자들의 생각에 예수라면 정치적 메시야,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박과 핍박 속에서 건져 해방시켜 줄자라 여기며 자신들을 정치세계의 왕좌에 앉혀 줄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해방될 줄 알았던 이스라엘이 예수그리스도가 잡히심으로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 속에서 고향으로 향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땅의 일들에만 집착했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7절과 8절에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의 말씀을 들려 준 것입니다.
동문서답과 같은 말씀으로 들려질 수 있습니다. 때와 기한은 알 것 없고 오직 권능을 입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나오는 목적이 다 다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설명하시는데 제자들은 이 땅의 일들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모습 속에서도 교회 나오는 목적이 다 다르다고 합니다. 이민교회에서는 교제형 교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민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또 교양형 교인들이 있습니다. 요즘은 교양있고 매너 있는 사람들은 교회 나가는데 그들에 끼기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순교형 그리스도인입니다. 내 가족이, 부인이, 남편이 나가라고 하니까 죽을 각오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카타르시스형 교인입니다. 마음이 울적하고 괴로울 때 눈물 흘리고 토해내고 싶을 때 교회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심리적 용어로 눈물 흘리고 펑펑 쏟아놓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카타르시스형입니다. 말씀에 은혜 받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정화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습관형교인입니다. 나가지 않으면 목사님이 전화하고 그저 주일이 되면 나가는 습관형 교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 속하는지 마음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습니까?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두 번째, 하나님 나라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스위스 은행장 헨리 듀넌트가 나폴레옹 대제를 만나기 원했습니다. 나폴레옹이라는 거목을 한번 만나기 원했고 또 하나는 불란서와 경제협력을 이루어서 스위스가 부강한 나라가 되기 원해서 만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스위스에서 불란서를 갔습니다. 간 날 마침 전쟁이 일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전쟁터로 갔는데 그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처음에는 경제적 꿈을 이루려던 꿈을 접고 다친 사람을 치료해 주면서 이 불쌍한 사람들을 고쳐주어야겠다고 생각한데서 생긴 것이 적십자 운동입니다. 이와 같이 정말 헨리 듀넌트는 이 땅의 부강한 부의 꿈을 저버리고 평화를 생각하며 적십자사를 만든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세상 꿈은 잊어버려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갖고 새롭게 해야 합니다.
미국의 닉슨대통령 보좌관이 워터게이터 사건 이후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 사람이 찰스 코튼이라는 사람인데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있다고 누가 성경을 전해줘서 읽다가 거듭나고 은혜를 받아 책을 썼는데 그 책이 ‘중생’(Born Again)이라는 책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을 주시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이 책을 쓰게 했고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중생하기를 바라는 책이 된 것입니다.
셋째, 선교는 성령님이 하십니다.
7절과 8절에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권능, 능력은 듀나미스 듀나미스에서 다이나마이트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사도행전 별명이 성령행전입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에서 7절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고 한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복음이 이 땅에 편만케 된 것은 성령의 강권적 역사로 가능한 것입니다.
스데반집사가 성령이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4절에서 60절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했고 사도행전 8장 1절에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이 8장 1절에서 성취됩니다. 그들이 명령에 순종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억지로 하십니다. 성령이 하시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능력을 받고 능력이 받을 때 증인 즉 순교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 없이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선교하는 사업, 선교하는 생명은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E 랜드 의 박성수 사장님이 이대 앞에서 처음 6백 만원으로 청바지가게를 오픈하면서 하나님의 사업임을 고백하고 기도했답니다. 지금은 2001아울렛을 인수해서 주일도 문 닫고 사업하고 있습니다. 이 기업은 자기 개인의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인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도 모든 것이 주께로 왔음을 고백하며 기업도 하나님을 위해서 개인의 생명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