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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능력 (눅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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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능력 (눅 2:8-14)

성경에는 두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물질 세계에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사건들의 영적의미와 능력입니다. 성경은 사건과 그로부터 오는 축복으로 넘칩니다. 그래서 영으로 항상 그 사건을 현실로 받게 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돕는 게 예배입니다. 예배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사건현장에 참여합니다.

성경은 두 가지 다 강조합니다. 십자가 사건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습니다. 죄사함이 없이는 저주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입니다. 부활사건이 없이는 영원한 생명도 초자연적인 능력도 없습니다. 모든 개개의 사건들은 영적인 의미를 포함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오는 유익과 능력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누구나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성탄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때부터 기원전과 후로 나뉩니다. 동시에 우리 신앙도 기원전과 후로 나뉠 수 있습니다. 내 노력으로 복을 받으려는 신앙과 복을 받은 뒤에 그 힘으로 사는 신앙입니다. 성탄의 사건은 온 세계가 다 압니다. 하지만 새로 나신 구세주를 삶의 현장에서 예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성탄예배에 영으로 집중하세요.

1. 예배의 초청

성탄의 소식이 누구에게 알려지나요?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반응했나요? 두 무리가 성경에 나타납니다.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입니다. 박사들은 고귀한 삶을 소원해서 평생 공부했습니다. 별들을 보면서 위대한 왕이 날 것을 알게 되고 먼먼 길을 옵니다. 그들의 여행은 밤에만 계속됩니다. 낮에는 쉬고 별의 인도를 받으며 사막 길을 묵묵히 따릅니다.

그들 위에는 수억만의 별들이 쏟아질듯 비치고 있습니다. 낙타는 묵묵히 걷습니다. 그들은 때로 노래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인도하는 별에 고정됩니다. 그러다가 유대에 도달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낮에 왕궁을 방문합니다. 별의 인도가 아닌 인간의 이성을 따라 갑니다. “왕이야 당연히 왕궁에서 나지 않겠어!”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그 왕은 왕궁에 나지 않았습니다. 흔하지 않은 게 왕이지만 이 왕은 그런 왕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왕입니다. 영육간의 모든 세상을 지배하는 그런 왕입니다. 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별의 인도를 따릅니다. 결국 마구간을 비추는 별의 인도로 새로 태어난 왕을 만납니다. 그 앞에 엎드려 준비한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그리고 먼먼 길을 되돌아갑니다.

다음 무리는 목자들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목자는 천한 직업입니다.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합니다. 그러나 모든 목자에게 알려지는 게 아닙니다. 추운 밤 밖에서 성실하게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만 소식이 주어집니다. 천사가 하늘 영광과 함께 장엄하게 나타납니다. 목자들은 그런 광경 본 적이 없어요. 무서워 죽을 지경이 됩니다.

“두려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말하겠다.” 목자에게만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최고의 소식이랍니다. 바로 나에게 해당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드디어 너희를 위해 구세주가 나셨다.” 어떤 문제에서든지 구원해주는 구원자가 세상에 즉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하늘에서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 증거까지 말해줍니다.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사실 이렇게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마구간 말 밥통에 담긴 아기, 그가 구원자입니다. 이것이 사건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해당되는 능력과 축복이 따릅니다.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달려갑니다. 그래서 구세주라는 아기 앞에 엎드립니다.

누구나 별을 무심코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크고 아름다운 별이 나타나도 그냥 보고 맙니다. 아기도 수많은 아기 중에 하나입니다. 그림에는 특별하게 그리지만 실제로는 금테를 두른 것도 아니고 눈이 세 개도 아닙니다.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고 기둥을 흔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실제 태어났고 그 아기는 이미 세상을 지배하는 하나님입니다.

이미 사건의 의미는 하늘에서 주어졌습니다. 믿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은 구세주를 볼 수 있었습니다. 먼 길 와서 간난아이 하나 보는 게 무슨 큰일인가요? 세상적으로는 그래요. 하지만 하나님 일은 반드시 영적인 권세로 진행됩니다. 박사들이나 목자들이나 세상에 오신 구세주를 만나고 나서는 전과 같을 수 없게 됩니다. 영적으로 새사람이 됩니다.

2. 예배의 능력

어떻게 영적으로 달라질까요? 참된 예배가 주는 변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기 예수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구경만 했지 경배하는 사람은 없어요. 지금도 그래요. 습관적으로 나오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경배하고 축복 받고 나가는 사람은 적어요. 평범하게 보이는 사건이 영적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감동으로 경배한 사람은 영원에 참여합니다.

클린턴 대통령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습니다. 의부가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돈을 벌어오기보다는 술 먹고 어머니 때리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는 가난과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받자 다른 학교의 우등생들과 백악관에 초청되는 영광을 얻습니다. 여기에서 그의 일생 목표를 정하는 일이 생깁니다.

술에 절어 폭언하는 의붓아버지와 함께 소리 지르고 싸우는 어머니가 그의 세계였습니다. 시골 사람들, 자기보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 그 안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역사의 인물이 서 있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전 세계를 지휘하는 대통령, 갖은 역경을 헤치고 그 자리에까지 올라간 한 위대한 존재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봅니다.

클린턴은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클린턴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선택합니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한 번 본 뒤에는 절대로 옛날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케네디를 이끌어왔던 신비한 존재에게 잡힌 느낌이었습니다. 그 힘이 자기 속에 있음을 느낍니다. 그후 클린턴은 케네디처럼 만들어져갑니다.

그의 아내 힐러리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위대한 흑인 인권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시카고를 방문합니다. 힐러리가 속한 교회 고등부 전도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연설장소로 갑니다. 연설이 끝난 다음 그 교회 아이들은 모두 강단에 올라가서 킹 목사와 악수합니다. 그때 힐러리 역시 클린턴처럼 감동을 받습니다. 위대한 영혼에 잡힌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훌륭한 분과의 만남일 뿐입니다. 육체적 만남은 짧습니다. 그러나 클린턴이나 힐러리에게는 영원과 같은 시간입니다. 세상에 물질만 존재하는가요?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관심하고 무시하고 있는 영적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로부터 오는 가치나 능력도 영원합니다. 물질적 순간을 영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케네디나 마틴 루터 킹이 아니라도 하나님을 참으로 경배하는 사람은 영감을 받습니다. 그 힘으로 삽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줍니다. 특별히 삶의 의미를 찾고 고귀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더욱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야 어떻겠습니까? 그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이는 천국의 능력을 받습니다.

박사들은 이미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수준이지요. 목자들이 겸손하고 성실했어도 구원은 없어요. 하지만 구세주를 만나 경배한 후에는 영감을 주는 영원한 존재들이 됩니다. 영적 세상의 권능이 그들을 이끌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은 계속 일어납니다. 성탄절의 사건은 아기 예수를 진정으로 경배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확실하게 일어납니다.

3. 예배의 적용

이제 우리에게는 더욱 감사할 일이 주어졌습니다. 매년 마다 아기 예수를 경배할 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매주일 그리고 얼마든지 심지어 매일 새벽에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올 수 있습니다. 물론 그냥 왔다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동방박사들 이상으로 목자들 이상으로 살아계신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성경의 사건은 모두가 영원한 것입니다. 하늘의 요소들이 땅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합한다면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 전체를, 십자가와 부활을 그대로 일 세기로 돌아가 우리의 현실 사건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사건들은 세상 사건과는 다른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합니다.

성찬예식을 생각해 보세요. 자주 할수록 좋습니다. 주의 잡히시던 날 밤의 긴장감을 가지고 받으세요. 직접 주의 영원한 음성을 들으세요. “이것은 내 몸이요 내 피다. 받아먹고 영원히 나와 하나가 되어라. 너희 육신이 약한 고로 가능하면 자주 많이 행하라. 그래서 나의 모든 특권과 능력과 축복을 네 것으로 누려라. 너는 이제 또 다른 구세주니라.”

이와 같이 성경의 모든 사건들은 그대로 영적인 현실이요 축복이 됩니다. 단지 우리 받는 사람들이 믿음을 거기 합하면 그렇게 됩니다. 예배가 얼마나 복된 것인지요. 신학교 시절 너무 많이 반복되는 예배가 지겨워 소홀이 한 적이 있었어요. 복의 문 앞에 머물렀다가 온 것입니다. 지금도 같은 일은 벌어지고 있어요. 이 축복의 순간에 말입니다.

예배 때마다 예수의 사건을 확실히 그리세요. 성경 말씀 따라 그렇게 하세요. 예수 손과 발에 박히는 망치소리를 들으세요. 그러면서 내 죄와 벌과 저주가 죽는 것을 믿으세요. 예수께서 손과 발의 못 자국을 내놓고 부활한 몸을 보이는 것을 보세요. 그렇게 내 안이 온통 새사람으로 바뀐 것을 깨달으세요. 클린턴이 케네디 만난 것만큼도 못하나요?

이제 우리 마음을 마구간에까지 낮춥시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기뻐하십시다. 동시에 주어진 새로운 삶을 받아들입시다. 이제 당신은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는 대통령으로 살았기에 그 영광이 온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지배하는 하늘의 왕입니다.

아기 예수는 분명한 사건입니다. 상상이 아닙니다. 그 사건은 역사 속에 일어났고 이제 반복적으로 내 안에서 일어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경배합시다. 그리고는 박사들처럼 목자들처럼 이제 다른 차원의 삶을 향해 발돋움을 시작합시다. 이미 그 모든 능력이 예배하는 사람들에 주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문제보다 병보다 세상보다 크게 되었습니다.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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