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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복 받을 사람들... (마 25: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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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복 받을 사람들... (마 25:34-40)


고속도로 톨게이트주변에 대형 저울을 설치해 놓은 곳이 있습니다.
커다란 대형 트럭이 무거운 짐을 많이 싣고 와도 거뜬히 달아볼 수 있습니다. 적재적량을 넘긴 차량은 짐을 덜어놓기 전에는 고속도로로 통과할 수 없읍니다. 작은 차는 적게, 큰 차는 많이 싣는 데 차에 맞추어서 적당하게 실은 차량만 통과하게 합니다.
그 저울은 제 아무리 크고 무거운 트럭도 모두 달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인품이나 됨됨이의 척도는 측량할 수 없읍니다. 세상에 아무리 큰 저울을 구해도 사람의 마음은 달아 볼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저울이 하나님께는 있습니다.
조그마한 오차도 없는, 대단히 정밀하고도 특수한 저울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그 저울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아보십다. 그리도 누구나 한번은 이 저울에 달릴것입니다.

본문의 25절에 보면 주님께서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실 때 복 받을 사람이 누구일까요?

1) 선을 행하고도 잃어버린 사람들
임금이 칭찬하는 음성에 복받을 자들이 “어느 때에......” 라는 말로 대답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무엇을 의미합니까?
즉 자신들이 언제 주님에게 선한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행을 잊었습니다. 많은 의로운 일들을 했지만 자신들의 기억에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들은 잊었어도 주님은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잘못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몇 가지 잘한 것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잊을 까봐 수첩에 적어 가지고 다닙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으며 내가 어떻게 너에게 해줬는데 그럴 수 있느냐는 식으로 따지고 듭니다. 자신의 작은 선행을 크게 써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천국에서 기억되지 못할 것입니다.
선행을 행했습니까? 다 잊으십시오. 여러분들이 행한 선행을 잊어버리는 즉시 천국의 장부에 기록이 될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기억하고 대접받거나 칭찬을 받으려고 하면 천국에 기억되지 않습니다.

2) 잘해 놓고도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
두 번째로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은 잘하고도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언제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된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갖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여러분 이 복 받을 자들의 말속에서 무슨 말을 듣습니까? 제 귀에는 이렇게 들려지는 것 같습니다. “뭘 그런 것을 가지고 그렇게 까지 칭찬하십니까? 더 많이 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하고 그러고도 더 많이 못해서 미안스럽고 죄송한 마음이 이것이 바로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천국을 소유할 사람들의 마음은 겸손입니다. 겸손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천국이 허락되지도 않고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죽기까지 충성하고 결론적으로 해야할 말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잘해 놓고도 언제나 부족함이 느껴져야 합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께 복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로마의 황제 샤를마뉴 대제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을 거행하기 위해 시신을 성당으로 운반하였습니다. 호화롭고 장엄하게 장식하고 꾸민 장례행렬이 성당 앞에 당도할 때 주교는 출입문을 잠갔습니다. 그리고 "누가 오는 가" 라고 외쳤습니다.
왕의 전령들이 "거룩한 로마 제국의 지배자이시며 왕이신 샤를마뉴 대제"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주교는 "나는 그를 알지 못하노라. 누가 오는가?"라고 외쳤습니다.
다소 움찔한 전령들은 "이 땅 위에서 선하고 정직한 사람, 귀하신 왕 찰스이십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그 주교는 "나는 그를 알지 못하노라. 누가 오는가?"라고 외쳤습니다. 이제 완전히 압도를 당한 전령들은 "천한 죄인 찰스가 그리스도의 은총을 간청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때 주교는 "내가 그를 아노라", 들어와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선물을 받아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황제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행한 선을 가지고 당당하게 주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커다란 공로가 있어도 주님 앞에 설 때 부족함을 느끼고 죄인임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잘해 놓고도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에 가까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무로부터 뭔가를 창조하실 때는 겸손히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알 때인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시 144:3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내가 무엇인관대 이런 은혜를 주셨습니까? 라고 잘해 놓고도 부족함을 느끼며 겸손한 사람이 아버지께 복받을 사람입니다.

3) 외적으로 보잘 것 없지만 진짜인 사람들
칭찬 받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을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를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압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감히 자신들이 칭찬을 받으리라고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면에는 보화가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보잘 없을지 몰라도 내면에는 진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천국을 소유했던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라합이 그렇습니다. 그는 멸망 받을 성읍 여리고의 기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라와 민족의 멸망에서 구원 받았을 뿐 아니라 나중에 다윗왕의 족보를 이어가는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압 여인 룻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지 소경 바디메오도 마찬 가지 입니다. 부자의 대문에 구걸하던 나사로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들은 모두 당시의 형편으로는 사람취급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들이 모두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으며 구원을 받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은총은 사람의 자격조건에 따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사들은 모두 외적으로 보잘 것 없지만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인간적이고 외적인 자격 조건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습니다.

4) 가진 자로서 거룩한 부담을 느낀 사람들
40절에 보면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는 가난한자 병든 자.. 세상에서는 정말 가진 것도 없고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복 받을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어떤 부담을 느낍니다.
그들과 비교하여 자신이 많은 것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고 못가진 자들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누림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값싸게 감사하지 마십시오. 은혜만 강조하다보니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무 값싸게 인식되어 버렸습니다.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다 용서 된다고 하는 은혜가 얼마나 위대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우리에게 베풀어지기 까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은혜 누림에 대해 당연히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자신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미안함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가진자로서의 느껴야할 거룩한 부담입니다. 바울은 롬 1:14절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거룩한 부담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누구에게 주십니까?
1) 선을 행하고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2) 잘해 놓고도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3) 보잘 것 없지만 진짜인 사람들입니다.
4) 가진 자로서 거룩한 부담을 느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맙시다.
갈 6:9절에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라고 했습니다.
살후 3:13절에서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내가 복 받을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다짐을 합시다.
1) 선을 행하고 잃어버립시다.
2) 잘하고도 부족함을 느낍시다.
3) 보잘 것 없지만 진짜가 됩시다.
4) 가진 자로서 거룩한 부담을 느낍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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