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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 나오라 (막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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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 나오라
본문 : 마가복음 10장 46 - 52절 마경훈 목사

본문 : 마가복음 10장 46 - 52절
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이제 성탄절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2000년 전 아기 예수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동방의 박사들과 양을 치던 목자들은 별과 천사의 인도를 받아 아기 예수께 나아가서 경배했습니다. 그 이후 주님은 33간의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고, 부활 후 40일 만에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만나야 할 예수님은 아기 예수가 아닙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만나야 합니다. 영원한 하늘 보좌에서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우리의 영혼의 친아버지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야 합니다.
본문에 소경거지 바디매오가 나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제생활이 어려워서 여리고 성문에서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구걸하던 곳으로 예수님이 지나가셨고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하여 들어서 알고 있던 바디매오는 주님을 향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는 바디매오를 잠잠하라고 하며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더욱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머물러서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주님이 부르신다는 말을 듣고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은 즉시로 대답했습니다. “선생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주님은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즉시로 보게 되었고 앞을 본 그는 주님을 좇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던지 주님 앞에 나오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응답이 있다면 다 해결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공생에 기간 동안 주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던지 해결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금도 응답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은 소경거지 바디매오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근거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바디매오처럼 주님 앞에 나아가서 바디매오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았던 것처럼 여러분도 주님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부르짖음으로 나아오라(47, 48절).
바디매오는 주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즉시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소경 거지가 소리를 지르니까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물러서지 않고 더욱 심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부르짖으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은 주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은 주님이 들으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어려운 문제를 만나 고통스러울 때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남 유다의 13대 왕으로 29년간 통치했던 선한 왕입니다. 그는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 앞에 부르짖음으로 국가를 이끌어갔던 왕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받은 대표적인 기도응답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번은 앗수르의 18만 5천이나 되는 군대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그 당시 유다의 국방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적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종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자신도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응답하셔서 천사를 보내주셨고 하나님의 천사가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의 18만 5천이나 되는 군대를 물리쳐주었습니다. 또 한 번은 자신의 몸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종 이사야를 보내셔서 무화과 반죽을 상처부위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순종하자 그의 생명이 15년이나 연장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역사하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겔 36:37에 보면 기도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겔 36장은 예루살렘의 회복에 관한 말씀인데 그 말씀을 하신 후에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문제가 있으신 분들은 기도하십시오.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면 바디매오처럼 더욱 소리 질러 기도하십시오.
사실 저는 우리교회 성도들의 기도의 열정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만큼 할 수 있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성도들의 기도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교회와 제 사역 그리고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하는 중보기도 사역자들을 축복했습니다.
[설교의 왕자]라 불리는 스펄전 목사님이 사역하던 교회가 런던에 있습니다. 그곳은 한 때 6000명 이상 최고 2만 명의 청중이 모였고, 당시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으로 불타오르던 교회였습니다. 스펄전의 전기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는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항상 교회 본당이 아닌 아래층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는 기도하는 성도가 많았는데 그는 성도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제 목회의 비밀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이며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탁월한 설교 때문만이 아니라 기도하던 성도들을 통해 그 교회는 황금기를 누리고 영국을 변혁시키는 변혁의 초점이 됐습니다. 그러나 스펄전 목사님이 떠난 뒤 교회가 비틀거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몰락 원인 중 가장 큰 문제점으로 기도 운동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기도가 사라질 때 하나님은 영광을 그 교회에서 거두신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교회를 움직이고 발전케 하는 ‘힘’입니다.

2.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 알고 나아오라(47, 48절).
바디매오는 두 번이나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라는 고백입니다.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 가운데 자신들의 구원자 즉 메시아가 온다는 구약의 예언을 믿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성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바디매오는 자기가 부르짖어 도움을 요청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알았던 것입니다.
주님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행 1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은 그 때까지도 주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회복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이스라엘이라는 세상 나라를 세우시고 그 나라를 통해서 세계를 통치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라고 질문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3년 반 동안 주님과 함께 있었고 십자가와 부활까지 목격했지만 주님을 잘 몰랐습니다.
주님을 잘 몰랐던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계시로 인하여 주님을 바르게 알게 됩니다. 십자가 앞에서 도망을 쳤던 제자들이 주님을 바로 알게 되자 주님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그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 가운데도 교회 생활은 오래했는데 주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내 생활과 상관이 없고 주일날 예배 시간에나 만나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나와 상관없고 특별한 사람들이나 기도응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삶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역사 없이 주님을 바로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교회에서 다양한 봉사를 해도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주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주님을 알아가는 방법입니다. 기도하면 주님을 경험하게 되고 주님을 경험한 만큼 알아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주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고 나를 알면 겸손해집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어떤 환란과 시험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견고할 수 있습니다.
성 프란시스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가 한번 기도를 시작하면 언제 끝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수도원에서 기도에 열중하고 있을 때 손님이 찾아왔다. 밤늦게까지 아무리 기다려도 성 프란시스의 기도는 끝날 줄을 몰랐다. 수도원에서 일하는 사람이 몹시 궁금하여, 몰래 그의 기도를 훔쳐 들어보았다. "오! 주 하나님. 당신은 누구시며, 나는 누구입니까?

3. 장애를 극복하고 나아오라(46, 48절).
바디매오가 주님 앞에 나아가는데 크게 세 가지 장애가 있었습니다.
첫째, 자신에게 있는 문제가 장애요소입니다.그는 소경이었습니다. 그는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했다면 그는 주님을 만날 수도 그의 눈이 치료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만나면 그 장애마저 치료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까? 자신에게는 주님 앞에 나아가는데 방해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자기가 가진 장애가 커 보여서 주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장애요소가 아무리 커도 주님은 그 장애요소를 가지고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장애요소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면 그분은 미쁘시고 자비로우신 분으로 우리의 장애요소까지 제거해주시고 우리를 받아주시는 분입니다.
제가 이번 주에 읽은 책은 강영우 박사의 [내 안의 성공을 찾아라]입니다. 그분은 일찍이 실명을 하고 양친을 잃었으며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주님을 만남으로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한국 최초로 맹인 박사가 되었고 지금은 미국에서 대통령 임명, 상원 인준을 거치고 고위공직자 500명 중 한 명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입니다. 그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 아들은 하버드를 졸업했고 의학박사로 안과 전문의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변호사이며 법학박사로 미연방상원 법사위원회 고문 변호사입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적 에세이인 [내 안의 성공을 찾아라]에서 “실명과 가난은 내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었습니다. 성공의 디딤돌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장애로 인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둘째, 환경이 장애요소입니다.주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거지였습니다.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관계 같아 보입니다. 결코 하나 될 수 없는 관계처럼 보입니다. 만약 바디매오가 자신이 가진 환경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했다는 그는 평생 소경으로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자신의 누추한 환경까지 이해하고 받아주실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대대로 주님은 그의 환경까지 용납하고 그를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주님을 만나는데 결코 방해요소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지휘고하 빈부귀천을 보지 않고 주님을 믿고 나아오는 자들을 만나주십니다. 그분을 만날 때 우리의 신분, 우리의 환경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오히려 좋은 환경 속에 있던 사람들이 주님을 찾는데 더 게을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힘든 환경 속에 있던 사람들이 주님을 찾았고 주님을 찾으므로 환경이 변화되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들이 장애요소입니다.바디매오가 주님을 향하여 부르짖자 사람들이 그를 꾸짖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48절에 보니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디매오가 주님을 만나는데 사람들이 방해요소였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주님과 나만의 관계가 아닙니다. 반드시 사람들 틈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우리들의 신앙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우리들의 신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다른 사람 핑계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이 내 신앙생활에 장애요소가 된다 하더라도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다면 내가 손해인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다른 사람들의 꾸짖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했다면 그의 눈은 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핑계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로막아도 주님 앞에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가로막으니 더욱 심히 소리 질렀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좀 더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작은 장애요소에도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보류시키는 소극적인 자세를 벗어나야 합니다. 바디매오처럼 어떤 장애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주님을 찾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4. 겸손함으로 나아오라(47, 48절).
바디매오는 주님을 향해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님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주님 앞에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모든 사람의 영적인 실상이 불쌍한 존재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롬 3:23에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롬 5:12에 보니까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겸손한 사람들이 있고,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고,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잠 18:12에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 29:23에 보면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애를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하나님 없는 자신의 존재가 불쌍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이 성숙할수록 자신이 더 큰 죄인인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졌습니다.
우리도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기도할 때도 “주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긍휼이 여겨주셔야만 합니다.”라는 자세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설교할 때마다 자기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자랑과 간증의 차이는 분명한 것입니다.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한다면 자랑이고 교만이 됩니다. 주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한다면 간증이고 겸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이런 구별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5. 분명한 소원을 가지고 나아오라(51절).
주님은 바디매오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바디매오는 즉시로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바디매오는 분명한 소원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소원을 두고 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려면 마음에 확실한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라는 책에서 개척 시절에 경험한 구체적인 기도의 응답에 대한 간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목사님은 심방을 위하여 자전거가 필요했고, 성경 연구를 위하여 책상과 의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세 가지를 달라고 6개월을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낙담하여 하나님께 도대체 언제 쯤 그 물건들을 주실 것인지 따지듯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 마음속에서 들리는 희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들아! 나는 네가 6개월 전에 처음으로 기도 하던 날, 이미 네 기도를 들었단다. 자전거가 필요하다고 그랬지? 하지만 여러 종류의 자전거가 있는데, 그 가운데 어떤 종류를 원하는 것이냐? 책상의 경우에도 나무의 재질이 각기 다른데 어떤 종류를 원하는 것이냐? 또한 수많은 의자 중에서 어떤 의자가 갖고 싶으냐?” 그래서 조목사님은 자전거는 미국산 자전거를 구했고, 책상은 필리핀 산 호마가니 책상을 구했고, 의자는 다리에 작은 바퀴들이 달려서 방 안을 마음대로 움직여 다닐 수 있는 책을 원했습니다. 그 후, 2주가 채 안 되어 미국 선교사의 아들이 쓰던 중고 미국산 자전거를 하나 얻게 되었고, 필리핀산 호마가니 나무로 만든 책상과 책상에 어울리는 작은 바퀴가 달린 의자를 갖게 되었습니다.
조목사님은 그 간증을 하고나서 이렇게 충고합니다. “막연하게 기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종이에 적으십시오.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상세히 말씀드리십시오. 그 후 그것들을 이미 받은 줄로 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어떤 특별한 일에 사용하실 때 먼저 그들의 마음 가운데 간절한 소원을 불어넣으시고 그들이 그 소원을 따라 움직일 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그들을 도우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특별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6. 믿음을 가지고 나아오라(52절).
주님은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보기를 원한다’고 대답한 바디매오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를 주님이 치유하시지만 그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믿음이 없이는 구체적인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디매오에게 주님의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서 눈을 뜨게 된 것은 그가 주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나타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자들을 분석해 보니까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주님의 치유도 믿습니다. 주님이 지금도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능력과 치유와 기적이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그들은 능력도 치유도 기적도 말하지만 항상 남의 것을 말합니다. 그런 것들은 다른 사람의 것이지 자기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님의 능력과 치유와 기적을 믿는데 항상 과거의 것만 믿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과 치유와 기적을 나타내셨다. 그런데 주님의 능력과 치유와 기적이 지금 나에게 나타난다는 것은 믿지를 않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세련된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기도는 박력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한다고 다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를 해도 믿음으로 구하지 않으면 응답은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약 1:6,.7에 보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본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몇 달을 두고 비가 오지 않자 이대로 가다가는 농사를 다 망치겠다고 사람들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우찌무라 간조는 아이들과 함께 식사 기도를 올리는데 “하나님, 비를 주십시오. 오늘 꼭 비를 주실 줄로 굳게 믿습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이 학교 갈 채비를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아이는 아무 소리 없는데 3학년인 작은아이가 난데없이 우산을 찾습니다. “아버지, 우산 !” “맑은 하늘에 우산은 왜 찾느냐?” 우찌무라 간조가 어리둥절해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아이 하는 소리 좀 보십시오. “아버지, 아까 기도하실 때에 오늘 비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우산을 가지고 가야지요!” 우찌무라 간조는 속으로 아차 하고 크게 회개했다고 합니다. ‘나의 믿음은 전부 거짓이다. 저 아이의 믿음이야말로 참 믿음이다’ 그 아이 보기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갑시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능력으로도, 가족들의 사랑으로도, 사회적 배려로도 고칠 수 없었던 시각장애를 주님 앞에 나오므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사 55:3에 보니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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