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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믿음에는 열정이 있습니까? (마 20: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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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믿음에는 열정이 있습니까? (마 20:29-34)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지식적인 습득으로만 생각하려는 경향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인간의 구주가 되심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과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은 죽은 후에는 반드시 천국으로 간다는 것도 압니다.
물론 이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이란 히브리서에서 밝히는 것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우리 자신의 현실적인 소원도 성취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성경에 나타난 기적과 이사는 모두 믿음 때문에 일어난 사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딸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가고 고침을 받은 것은 이 여인의 믿음이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도 마르다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나서 이루신 주님의 역사였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하여 “당신의 믿음에는 열정이 있습니까?”이라는 제목으로 두 소경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으며, 그들이 체험한 것은 무엇인가를 조명하여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두 소경의 체험입니다.

34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
여기 “만지시니”라는 말의 원어는 “불을 피운다”는 뜻으로서, 예수님께서 손으로 만졌을 때 “불이 피어나듯이 뜨거운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두 소경의 눈에 손을 대자마자 단번에 신적인 능력이 치료의 불길로 역사하여 그들의 눈이 떠졌다는 말씀입니다.
보통 성도들은 “뜨겁다”는 말을 “마음에 감동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능력을 신뢰하면 성령의 능력을 받고, 은사를 체험하게 되면, 육신적으로도 뜨거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주시면 병도 낫고, 뜨거운 불도 받고, 각양 은사를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내 마음속에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이 예수님을 찾아가는 역사가 일어나기만 하면, 기적은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두 소경의 눈에 손을 얹어 안수하셨을 때, 일주일이 지나자 눈에서 딱지가 떨어지면서 보게 된 것이 아니라 손을 얹자마자 즉각적으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치유의 체험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병마를 물리치는 능력을 가지신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적인 능력을 행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여러분이 말씀을 듣다가 감동을 받고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 예수의 마음에 충격을 주기만 하면, 소경이 눈을 뜨게 된 것처럼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걱정하며 고민하고 있는 모든 인생의 문제는 모두 나의 문제이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두 소경이 가지고 있던 열정의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2.기적을 경험한 두 소경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두 소경의 믿음은 열정적인 믿음이었습니다.
30절을 보면 “소리질러 가로되”라고 했고, 31절을 보면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소리 지르다”는 말은 “격정적으로 소리를 지른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두 소경의 부르짖음은 격정에 넘친 뜨거운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향해 부르짖는 그들을 꾸짖었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저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르짖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 가운데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두 소경의 믿음에는 열정이 들어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부르짖는 열정, 이 신앙의 열정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의 문제점은 믿음은 있으나 열정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현대 교인들은 부르짖지 않으려 하고, 외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얌전하고 조용하게 눈만 감고 속으로 오물오물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저의 스승이셨던 주경학자 박윤선 박사님은 “생명이 있는 신앙은 박해 속에서 더욱 운동력을 나타내는 것”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운동력이 중요합니다.
열정이 식은 신앙은 이미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뜨거워야 합니다. 기도도 뜨거워야 합니다. 봉사도 뜨거워야 합니다. 헌신도 뜨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정없는 신자들에게 라오디게아 교회를 비유하면서 “뜨뜻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차지도 않은 자는 토하여 내치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사59: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신다”고 했고, 왕하 19:31절에 “여호와의 열심히 이 일을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여러분의 앞날의 모든 일을 이루려는 열심을 가지고 지금도 움직이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엘리야를 선지자로 택하셨습니까?
그리고 왜 바울을 사도로 택하셨습니까?
왕상19:10절과 14절에서 엘리야는 “열심히 특심이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빌3:6절 이하를 보면 바울은 “과거의 자신을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다”고 소개합니다.
그런가 하면 벧전3:13절에서 베드로는 “또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빛이라고 했습니다.
빛은 곧 불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불같은 말씀을 듣고도 감동이 전혀 없는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듣고 여러분의 마음에 열정이 회복되어 두 소경처럼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2)두 소경의 믿음은 참된 영적인 지식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두 소경은 주님을 향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외쳤습니다.
여기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은 메시야, 구원자(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독립운동가나 혁명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소경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실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요일2:20절을 보면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으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믿음을 주시고, 믿음이 생기면 신령한 지혜를 통하여 예수가 구주임을 알게 되고, 내가 구원받았음을 알게 되고, 천국을 알게 되고, 하늘나라의 상급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 지식이 마음속에 생기면, 그 지식을 가지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게 되고, 사망과 생명을 분별하게 되고, 하나님의 세계를 분별하여 하나님 편에만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지 못한 할머니들도 예수믿고 은혜를 받으면 믿음이 생기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하늘나라를 알게 되어 소망 중에 헌신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성령충만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3)두 소경의 믿음은 분명한 소원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부르짖는 두 소경을 향하여 “너희에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예수를 향해 “눈뜨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분명히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자녀 얻기를 원하십니까? 장사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까? 병 고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여러분의 소원이 분명하면 반드시 응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 두 소경에게는 눈뜨기를 원하는 소원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소원을 들어 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민망히 여기셔서” 직접 창조의 손을 얹어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여기 “민망히 여기셨다”는 말씀은 “간절히 열망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안에서 소원이 있는 곳에는 응답이 있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따라서 제일 위험한 신자는 세상말로 팔자가 편해서 별로 구할 것도 없고, 집에 돈도 적당히 있고, 좋은 자동차도 타고, 배우자도 잘 만나고, 아이들도 쑥쑥 커서 원하는 대학도 잘 가고, 편안하고 한가하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환경이 너무 좋아서 구할 것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할 것이 많은 사람들은 이것저것을 구하다 보면, 그들의 믿음이 독수리 날개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믿음이 성장하여 가는 가운데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간절히 원하는 소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소원을 세상 사람은 외면해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원이 크고 작은 것은 믿음의 분량입니다.
따라서 큰 소원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지금 눈앞에 기도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우리의 기도들이 모두 이루어 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2절을 보면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라는 말씀은 “부르짖는 사람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시간을 투자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시간에도 부르짖는 여러분의 소원을 “머물러 서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고 지나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열정을 가진 믿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응답받고 예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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