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람나무 같은 성도 (시 128:1-6)
본문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은퇴 후 자신의 기념도서관을 방문했습니다. 그러자 마을 초등학생들이 대통령을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 그 중 한 학생이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공부를 잘 하셨어요?"
"난 공부를 잘 못했지. 눈이 나빠서 안경을 벗으면 거의 시각장애인이었어. 특별한 재주도 없었고 겁도 많은 편이었지."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됐나요?"
"나는 믿음이 있었단다. 나는 힘이 없지만 힘을 주시는 하나님과 성경을 믿었어. 하나님은 항상 내 등뒤에서 나를 응원하고 계셨단다. 그것이 가장 큰 힘이었지."
당신의 등뒤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힘겨운 삶의 무게입니까, 아니면 가족 부양의 중압감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응원단장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어떤 시련에 처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등뒤에서 응원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화가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는 한 폭의 그림을 봅시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나서 밭고랑 위에서 기도하는 두 부부의 모습을 보면 경건한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현대 사회는 너무나도 다양성을 띠고 있습니다. 한 가족이라도 여러 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가족이 온전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만큼 큰복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 전체가 하나님만 섬기는 가정이 되도록 끝까지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감람나무와 같은 성도, 가정,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1. 늘 푸른 신앙의 성도
본문 1-3절"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감람나무는 설령 베어진다고 해도 베어진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이 나옵니다. 인내력과 번식력이 대단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은 비록 그 부모들이 나이가 들어 죽어 세상을 떠난다고 할지라도 그 자손들이 새롭게 자라나 그 가정의 혈통을 유지하므로 그 가정은 계속 존립하게 됩니다. 감람나무의 잎은 늘 푸른 상록과에 속합니다. 계절과 환경에 관계없이 언제나 같은 색을 지니고 있고 잎이 떨어지지 않는 나무입니다.
성도의 삶에 있어서 고난 없는 삶처럼 무익한 삶은 없습니다. 세상은 고난을 불행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고난은 유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고난을 주시고 우리가 축복을 달라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깊은 웅덩이를 허락하시고 우리가 성숙을 요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어느 누가 고난 없이 새벽을 깨울 수 있으며 어느 누가 허리가 꺾어지는 고통 없이 기도의 자리로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고난은 축복이며 특권입니다. 인간은 고난을 통하여서 만이 육체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본질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아무 일이 없는 편안한 사람입니다. 기도하려고 해도 기도 거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와도 간절할 만한 아무런 동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새벽을 깨우려 해도 도무지 새벽을 깨워야 할 만한 아무런 동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너무 살기가 좋고 아이들 키우는 재미가 좋고 사는 것이 황홀하고 자아 성취하는 일이 보람차고 일하는 것이 즐겁고 친구들과 어울려 세상 문화와 레저를 누리며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새벽은 남의 나라 이야기이고 기도실은 형무소와 같은 곳 일수 있습니다. 오직 저들의 소원은 예수를 믿어도 쉽고 편안하게 믿으려는 욕구만 있을 뿐입니다. 안 믿자니 그렇고 믿자니 깊이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불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들어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충만합니다. 요셉이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들어가는 고난이 없었다면 어찌 용서의 영성을 소유할 수 있었을까요? 야곱이 에서와의 갈등이 없었다면 어찌 깨어짐의 사람이 되었을까요? 베드로가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는 실패가 없었다면 어찌 제자가 되었을까요? 바울이 날마다 죽는 것과 같은 삶이 없었다면 어찌 그 은혜가 머물 수 있었을까요? 사도 요한에게 죽음을 방불한 고난이 없었다면 어찌 하늘이 열렸을까요? 신앙의 성숙은 침대나 소파에서 얻어지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은사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은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달리면 걷고 싶고 걸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다. 그런 육신을 믿고 신앙생활하면 우리의 영은 금방 죽습니다. 영이 죽는데는 하루도 안 걸립니다. 영을 살리는 데는 오랜 시간과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금을 닮았다고 금이 아니며 노래를 잘 부른다고 다 가수가 아니며 뿔이 있다고 다 소가 아니듯이 영적인 지식이 풍성하고 체험이 많고 주의 일에 힘쓰며 예수를 오래 믿었으며 영적인 용어를 능숙하게 사용한다고 영의 사람이라 말 할 수 없습니다. 영의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입니다. 냄새로 진짜 예수쟁이를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화와 조화를 향기로 구분하듯이 현재 당신이 고난 중에 있다면 당신은 적어도 그분을 닮아 가는 일에 초대된 귀빈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아무 일이 없이 편안하다면 그분도 당신을 위하여 아무 일도 안하고 계시는 손님일지도 모릅니다. 그분으로 하여금 바쁘시게 합시다. 그분으로 하여금 쉬지 못하시게 합시다. 그러면 당신은 열두 광주리 가득한 풍성한 삶을 살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에게는 다양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수많은 아픔과 고난이 있습니다. 넘어지거나 떨어지거나 포기하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람나무 같이 늘 푸른, 한결같은 신앙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축복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거룩한 신앙의 성도
본문 1-3절"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감람나무의 열매를 감람이라 하는데, 양쪽이 뾰족하고 길이 3cm되는 핵과입니다. 열매에서 짜낸 기름은 감람유라 하며 거룩한 의식에 쓰입니다. 감람나무와 기름은 거룩을 상징하며 죄와 허물을 씻게 됩니다. 거룩한 사람과 의식과 장소에서 감람유는 반드시 쓰이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고 큰 감동과 기쁨을 줍니다. 타락하고 더러웠던 사람들도 깨끗하고 새롭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의 성도와 교회가 거룩한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속화의 모습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더욱 구별된 거룩한 모습으로만 세상과 사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찌르고 피나게 하는 가시나무와 같은 존재가 아닌 사람들을 치료하고 거룩케 하고 향기로운 감동을 주는 감람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영국이 아프리카를 탐험할 때 두 영국인의 행동이 크게 대비됐습니다. 한 사람은 황금전쟁을 일으켜 아프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엄청난 금과 다이아몬드를 영국에 들여왔습니다. 그는 영국을 진정 사랑하는 애국자이며 영웅으로 칭송받았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의 침략정책과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영국인들로부터 반역자요 배신자로 비난받았습니다.
전자는 세실 로드, 후자는 데이비드 리빙스턴입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로드의 무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영국 국립묘지에 안장돼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왜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습니까? 그것은 믿음의 차이 때문입니다. 리빙스턴은 하나님(God)을 믿었고, 로드는 황금(Gold)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갈라놓았습니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명예와 이익과 인기를 위해서 하나님과 믿음을 저버리고 사는 단세포적이고 얕은 삶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에게서는 멀어지고 박수와 갈채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하나님과 믿음을 선택하는 용기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쉽게 배반하고 버려도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떠나지도 아니하시고 버리지도 않으십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형통하거나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점점 더 악해지고 더러워질 뿐입니다. 잘못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방향전환을 해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은 과거를 묻거나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을 잘 섬길 때 거룩해 집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쓰임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잘 섬김으로 감람나무처럼 거룩하게 쓰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평강이 충만한 신앙의 성도
본문 4-6절"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지 못하는 한 그의 행복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약 백성의 관심사는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과 가족을 넘어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로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형통하고 평안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소원을 들으시고 이스라엘이 대대로 평강과 축복을 누리기를 기뻐하십니다. 감람나무는 평화와 평강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길 때 평강의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평강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평강을 보여 주며 나누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강이 충만해야 합니다. 싸우고 다투는 전쟁과 파괴적인 지옥의 삶이 아니라 평강과 사랑의 천국의 삶을 누리고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맹수들은 동족간에는 절대로 생명에 치명적인 공격을 하지 않습니다. 방울뱀은 무서운 독이 나오는 송곳니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울뱀끼리 싸울 때는 이 무기를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자들은 자신들의 영토 내에서 주도권 쟁탈전을 벌일 때 동족과 치열하게 싸우지만 상대를 죽이거나 중상을 입히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동물세계의 싸움의 법칙입니다.
인간은 동족간에 살상의 무기를 사용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상대가 항복을 하면 더욱 잔인하게 공격해 굴복을 받아냅니다. 약점을 보이는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위대한 것은 사랑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상처를 아물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무기는 사랑입니다. 1그램의 사랑은 1톤의 무기보다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성패를 결정하는 열쇠는 서로의 진실한 사랑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전에 친구와 심하게 다퉜습니다. 그는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인물 중 예수를 배반한 악당 가룟 유다의 얼굴을 제일 먼저 완성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싸운 친구의 얼굴을 모델로 가룟 유다를 그린 것입니다. 이번에는 예수를 그릴 차례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예수의 얼굴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친구에 대한 증오심이 자신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즉시 가룟 유다의 그림을 지우고 친구에게 달려가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화실로 돌아와 인자한 예수의 얼굴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증오심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자신입니다. 남을 증오하면 그 순간부터 자신의 마음이 병듭니다. 용서도 실력입니다. 실력 있는 사람이 먼저 용서합니다. 평생 가슴속에 증오를 안고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합니다. 성도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사랑과 용서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길이고 축복의 길입니다. 승리와 천국의 길입니다. 불안과 미움의 사람이 아닌 평강과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벌써 12월이 되었습니다. 대강절과 우리의 남은 생애를 통하여 늘 푸르고 거룩하고 평강의 감람나무와 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위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