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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태 목사 설교 - 보리떡 한 덩어리의 승리 / 삿 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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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7장에는 스스로를 약한 자로만 여기며 살아왔던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어나 그의 삼백 명 용사들과 함께 미디안의 대적들을 쳐부수고 승리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승리의 기사에는 인간의 상식이나 경험과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미디안과 싸우기 위해서 기드온이 일어서자 기드온을 좇아 자기 민족을 구하겠노라고 자원하여 나온 백성의 숫자가 삼만 이천 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삼만 이천 명이라는 숫자는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과 대격전을 치루기 위해서 진을 친 미디안의 군대는 마치 메뚜기의 중다함 같았다고 했습니다(12절). 그런 숱한 미디안의 군사들에 비하면 삼만 이천 명이라는 이스라엘 군대의 숫자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한 숫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모여든 삼만 이천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돌려보내라고 하십니다(2절).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나중에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군대의 숫자가 많아서 이겼노라고 자긍할까봐 그렇게 명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기드온의 용사들이 싸워야 할 그 전쟁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었으며 그 승리는 철저히 하나님께서 이루실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숫자를 믿는다는 사실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많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신은 숫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사회에서는 군사력이든 경제력이든 많은 숫자를 가진 자가 승자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의 그런 예언은 오늘날의 사회에 꼭 맞는 말인 듯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많이 소유한 자가 강한 자이고 승자입니다. 적게 가진 자는 패배자가 되는 경쟁 사회에서의 철칙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마다 숫자를 세웁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속한 숫자를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세상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속화된 현대 교회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교인 수가 많고 교회당이 거대하면 그 교회는 훌륭한 교회이고, 좋은 교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처럼 숫자가 많은 교회가 무언가 큰일을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숫자에 대해서 예민해집니다. 숫자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고 더 많은 숫자를 추구합니다. 한마디로 숫자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숫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교인들의 숫자가 아닙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일에 자기 자신을 헌신하는 일에 두려워하는, 그래서 적당히 눈치나 보면 세상과 타협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가지고서는 아무리 그 숫자가 많아도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진정으로 자기를 헌신코자 하며, 그 일을 위해서 자기 신상에 많은 손해가 오고 희생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이름과 그 나라를 위해서 싸워 보고자 결단하는 용사들을 하나님은 오늘도 찾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이제 싸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또 무어라고 하십니까? 4절에 보면 “아직도 많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남아 있는 일만 명을 물가로 데려가서 물을 먹일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먹고 있을 때 이들의 물먹는 자세를 보고 그들 중에서 군사들을 선발하도록 하십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물가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개 같이 물을 핥는 자들은 다 돌아가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물을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아 마시는 자 300명만을 선발하도록 기드온에게 명하십니다. 여기서 무릎을 꿇고 개처럼 핥아서 물을 마신 사람들은 언제 공격이 있을지 모르는 적진 앞에서 경계 태세를 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핥은 자들은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군인 정신이 투철하게 준비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기드온의 삼백 용사가 선발이 됩니다만, 이 삼백 명의 숫자는 기드온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숫자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다시금 하나의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자기 부하 한사람을 데리고 적진에 정탐하러 들어갔을 때 미디안 군사 두 사람이 밤에 꾼 꿈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기드온의 군대가 필연코 승리할 것을 그 이방인들의 입술을 통해 듣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승리의 확신을 갖게 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더하시기 위해서 이방인 군인에게 꿈을 보여주신 것으로서, 그 꿈은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의 진으로 굴러 와서 장막을 무너뜨리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한 군사가 그 꿈에 대해서 말하자 다른 한 군사는 “그 보리떡 한 덩어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고 해몽을 합니다. 여기서 다시금 확신을 얻은 기드온은 그날 밤에 마침내 삼백 명의 용사를 이끌고 미디안을 공격해서 해서 미디안의 수십만 대군을 다 물리치고 그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몰아내게 됩니다. 기드온이 거두는 이러한 대승리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큰 승리의 하나로서, 이 승리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보리떡 한 덩어리의 승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란 극히 연약하고 비천한 것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는 주식은 밀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보리는 짐승들의 사료로 사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웬만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리떡은 잘 먹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흉년이 들어 궁핍할 때나, 또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가난한 빈민층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보리떡입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거기서 어떤 소년이 예수님께 갖다 드린 보리떡은 그 당시 갈릴리의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음식임을 말합니다. 보리떡은 그처럼 별로 가치가 없는 물질입니다. 거기다가 보리떡은 힘도 없습니다. 집채만한 바위가 아니라 보리떡 한 덩어리가 굴러 와서 미디안의 장막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기드온과 그의 용사들은 보리떡 한 덩어리처럼 연약하고 미천하지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런 놀라운 승리가 가능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의 승리는 ‘약한 자를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 복음의 대단히 중요한 원리를 한 가지 말해줍니다. 이처럼 약한 자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29).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육체를 자랑하지 않으며 겸손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능력이나 숫자를 자랑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저 한 덩어리 보리떡과 같은 존재라는 고백과 함께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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