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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의 기쁨 (요 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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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의 기쁨 (요 21:1~11)


언젠가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 며칠 머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포구에 나가면 어부들이 들뜬 모습으로 통통배를 타고 출어합니다. 모두들 만선의 꿈은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의 모습은 둘로 갈라집니다. 어떤 때는 만선이 되어서 어부들이 고기를 내리느라 분주합니다. 고기잡이가 몹시 힘들었을 텐데 전혀 피로한 기색이 없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빈 배로 돌아옵니다. 축 처친 어깨에 잔뜩 피곤한 모습으로 배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인생이 바로 저렇구나!” 그렇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혹은 젊을 때 미래에 대한 부푼 꿈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한 해를 마칠 때 혹은 세월이 많이 흘러간 후에 보면 어떤 사람은 만선의 기쁨을 맛보지만, 어떤 사람은 빈 배로 돌아온 어부처럼 실패의 아픔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습은 과연 어느 쪽입니까? 오늘 금년의 마지막 12월 첫째 주일인데 얼마 후 한 해를 마감할 때 과연 우리의 모습은 어느 쪽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이 만선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만선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신 후 지상에 머물던 때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승천 직전까지 40일간 지상에 머물렀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연약한 제자들의 신앙을 북돋워주고, 그들을 굳세게 세워주기 위함입니다.

[1] 실패의 밤 : 빈 배의 공허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1절)에 나타나셔서 제자들을 만나주셨습니다. 디베랴 바다는 갈릴리 바다의 별칭입니다. 본래 갈릴리 바다는 민물 호수입니다. 워낙 커서(동서 12.8km, 남북 20.8 km) 끝이 안 보여서 흔히 바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2절 보면,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 중 일곱 명이 갈릴리 바다로 내려 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인 듯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상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 다시 나타나실지 그것부터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상 갈릴리 바다에 왔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무료해서 그랬는지, 생계를 위해 그랬는지 베드로가 먼저 제안합니다. 3절.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노라”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줄줄이 따라 나섭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 밤새 고기를 잡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3절(하). “ ...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밤새 헛그물질만 한 것입니다. 헛수고였습니다. 빈 배의 공허와 허탈뿐입니다. 그런데 속절없이 날이 새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빈 배를 몰고 포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신세였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실패하게 됐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실패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제자들 중에는 베테랑 어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로 갈릴리 바다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갈릴리 바다에는 고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종도 무려 32종에 달했다고 합니다. 밤 시간이 고기를 잡는 데 가장 좋은 시간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기를 많이 잡을 만한 좋은 조건들입니다. 그런데도 실패한 겁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습니다. 실패할 이유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누가 실패하겠습니까?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하는 겁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하니까 더욱 실망스러웠을 겁니다.
그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단 한 가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그들 가운데 모시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 있었던 것입니다. 4절 보면,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살아계시며 그들 곁에 와 계셨습니다. 그런데 알아보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옆에 두고도 마치 고아처럼 지낸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제 아무리 재주를 부리고 노력을 해도 헛수고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5절.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얘들아!” 이 말은 본래 어린 아이들에게 쓰는 말인데, 여기서는 아마 친근한 어투로 부르는 말일 겁니다. 그리고 큰 질책은 아니지만 철없는 모습을 지적하시는 뉘앙스로 사용된 것입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이 말은 그들이 정말 고기를 잡았나 못 잡았나 알려고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미 알고서 질문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뜻입니다. “너희들 고기 하나도 못 잡았지. 그렇지?”

제자들은 3년 동안 여러 말씀을 듣고, 이제 부활의 주님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삶의 태도가 잘못되어 실패하고 있음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부활의 주님이 이미 그곳에 오셔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아니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그들 곁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력으로 해보려고 애를 씁니다. 자기들끼리 협력도 해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허탕입니다. 밤새 ‘헛그물질’만 한 것입니다. 그들은 지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육지를 향해 돌아오고 있습니다. 빈 배, 빈 그물, 빈 손, 빈 마음, ... 이것은 주님을 등진 인생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인생들이 인생의 갈릴리 바다에서 저마다 큰 고기를 가득 낚으려는 야무진 꿈을 안고 그물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등진 채 인간의 자력으로만 사는 인생은 결국 헛그물질만 하다 끝납니다. 불원간에 인생 여정을 다 끝내고 임종의 순간을 맞이할 때 빈 배만 남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미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는 태도와 방식이 전혀 불신자처럼 하나님을 등진 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본문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인생 만사 세상 만사가 하나님 손 안에 예수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등지고 주님을 떠나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죠.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아무리 발버둥치며 애를 써봤자 헛될 뿐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대 왕 중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상당한 기간 동안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 인생이 심히 곤고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 인간이 제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이렇게 말합니다. 전2: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학개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찾았지만 마음과 생활로는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진노하십니까? 학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인간이 노력하지만 하나님이 막으시면 전혀 복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떠나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이런 사실을 명심하시고 결코 하나님을 멀리 하는 일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2] 승리의 아침 : 만선의 기쁨

실패의 밤을 보낸 제자들에게 다행히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빈 배를 끌고 힘없이 돌아오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6절.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이 말씀은 상식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밤새 그물질을 했는데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보통 밤에 잘 잡히는데 이제 날이 새는 시간이 잡히겠습니까?
그런데 다행히 제자들이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6절(하).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만선의 기쁨을 안고 해변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변으로 돌아온 제자들에게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차려 놓은 조반이 있었습니다. 숯불을 피워놓고 그 위에 떡과 생선이 있었습니다.(9절) 제자들이 밤새 고기잡이를 하느라 얼마나 시장했겠습니까? 추웠겠습니까?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일들을 통해 다시 한번 중요한 교훈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돌아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승리한다! 주님께는 모든 게 다 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은 풍성하다!” 그렇습니다. 주님 안에 모든 것이 완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는 내 맘대로 헛그물질 하는 것을 중지하고, 오직 주님 품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그분의 뜻을 위해 살아가면 모든 것을 부어 주십니다.

신명기 28장은 ‘축복의 장’이라 불립니다. 거기 보면 축복의 원리가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신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 ... )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기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복을 받는다고 약속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십자가 대속의 복음을 믿음으로 받지만, 축복은 말씀에 순종으로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실천할 때 모든 복이 ‘임하여 미친다’(overtake)고 했습니다.

물론 주님을 따른다는 것,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답답하고 옹색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혹은 불안하고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스펄전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비유해서 ‘수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행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발행한 수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수표책이라고 했습니다. 그 수표에 서명을 하면 자기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듣고 기도로 순종으로 서명하면 그 약속들이 모두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 자력으로 애를 쓸 때는 물고기들이 마치 도망 다니듯 그물에서 멀리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물고기들이 그물 속으로 몰려들 듯이 잡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복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복은 멀찌감치 도망가 버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며 그 말씀에 순종하면 복이 우리를 뒤따라와서 덮치듯이 임하여서 내 것이 됩니다. 이게 성경적 축복의 원리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실패하셨습니까? 그래도 괜찮습니다. 주님께 돌아오면 됩니다. 실패해도 복된 실패가 있습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그냥 낙심하고 주저앉으면 저주가 되지만, 실패 때문에 깨닫고 주님께로 돌아오면 그것은 복된 실패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실패는 인간의 한계를 인식시켜 주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예수님을 실패의 순간, 고난의 순간, 질병에 걸린 순간에 만난 체험을 가진 계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났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환란도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밤새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자기 꾀로 장자의 축복을 거머쥐려고 했습니다.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분노로 흥분한 형을 피해 도망가는 신세가 됩니다. 허겁지겁 도망가다 들판에서 돌베개 베고 잡니다. 그때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 후 타향살이 20년 동안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러자 갈 때는 봇짐 하나 메고 갔는데, 고향 땅으로 돌아올 때는 거부가 되어 왔습니다. 무엇보다 원한을 품고 있던 형 에서와 극적으로 화해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 꾀를 버리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와 순종한 것밖에 없습니다.

모나미(Mon Ami) 송 회장님의 간증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모나미 153」볼펜은 전 국민이 다 아는 제품입니다. 그 이름을 붙인 경위가 아주 감동적입니다. 1963년 그 볼펜을 출시할 때 회사가 도산 위기였다고 합니다, 회사의 사활을 걸고 출시하는데, 제품의 이름을 정하려고 했습니다. 직원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데, 여러 가지 이름이 나왔습니다. 모나미는 프랑스어로 ‘나의 친구’라는 뜻인데, 1963년이니까 「모나미 1963」, 출시일이 5월 1일이니까「모나미 501」등 ... 그런데 직원 하나가 「모나미 153」이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왜 153이냐고 물었더니 부르기도 좋고 각 숫자를 더하면 가보가 된다(1+5 +3=9)는 겁니다. 직원들이 무슨 화투 이야기냐고 핀잔을 줍니다. 그런데 송 회장(당시 사장)에게는 이상하게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면서 예사롭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급히 자기 방으로 가서 성경을 뒤적이다가 오늘 본문 요21:11 말씀을 찾아냅니다. 거기 보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잡은 물고기의 수가 153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거다 싶은 생각에 그 이름을 갖고 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 그 이름을 허락받으면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았습니다. 사업이 바쁘다고 소홀히 했던 것을 회개하면서 앞으로 회사운영을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상도를 지키면서 하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원칙을 세웁니다. 주일성수, 십일조, 새벽기도 등을 꼭 지키겠다고 서원합니다. 그때 기도제목으로 걸었던 게 50억 자루 판매였는데, 이미 달성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그분에게 있었던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안에 성경적 축복의 원리가 들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그 원리에 충실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승리의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부활의 주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던졌던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 봅시다. 동일하게 오늘 우리에게 던져주시는 주님의 질문입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너희들, 나를 떠나 너 혼자 잘 살겠다고 야단이더니 그래 고기 많이 잡았니? 어디 좀 보자! 만선이 되었느냐? 아니면 빈 배냐? 내가 도와주랴?” 여러분의 배는 지금 만선입니까? 빈 배입니까? 지난 한 해 어떻게 살았습니까? 실패의 밤이었습니까? 아니면 승리의 아침이었습니까? 빈 배의 공허함입니까? 만선의 기쁨입니까? 이제는 주님 모시고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만선의 기쁨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삶을 마치고 떠나갈 때 기쁨을 가득안고 당당하게 천국에 들어가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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