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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속에서도 당당하라. (시2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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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속에서도 당당하라.
본문 : 시편 27편 1 - 14절 마경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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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에 고난은 당연히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욥은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욥 5:7)고 말했습니다. 불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생에 고난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고난을 당하지만 고난 반응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고난도 이겨내지 못하고 자포자기에 빠지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작은 고난에도 인생을 포기하고 자살하기도합니다. 반대로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고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본시는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다윗의 인생은 굉장히 영광스럽고 화려한 인생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엄청난 고난을 통과한 인생이었습니다.
본시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칼을 피하여 도망간 상황에서 지은 시입니다. 그는 사울왕의 시기로 몇 번의 죽음의 과정을 통과했고 믿음으로 반응하여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사울은 망했고 다윗은 흥했으며 결국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을 통치하는 위대한 왕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킨 것입니다. 세상에 아들이 아버지를 밀어내고 왕의 자리에 앉으려고 반역을 일으켰으니 이 고난이야 말고 극에 달한 고난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정말 기가 막힌 상황입니다.
다윗은 이때의 상황을 여러 각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절에 보니 그의 대적, 원수들이 자기의 살을 먹으려고 왔다고 말합니다. 3절에 보니까 자기를 잡으려고 군대가 진 친다고 말합니다. 5절에 보니까 자기가 당한 상황을 ‘환난 날’이라고 표현합니다. 12절에 보니까 자기 주변에는 대적과 위증자 그리고 악을 토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이정도가 되면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되고 신앙마저 흔들릴 수 있는데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선포합니다. 1절에 보니까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너는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찌어다”라고 외치면서 자기 자신과 사람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완전히 불리한 상황 속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원수에 대한 승리를 확신했습니다(2, 11, 13절). 다윗의 고백을 보면 마치 이미 승리한 것 같이 말하고 있으나 실상은 아직 상황은 승리한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쫓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설교는 역경 속에서도 당당했던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역경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비결 몇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을 의뢰하면 고난 중에도 당당합니다(1절).
다윗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돕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그 믿음이 그로 하여금 역경 속에서도 당당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1절에는 "나"라는 말이 5번 나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은 자신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시라 내 삶에 역사하시고 나를 도와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내편이신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시 118:6에 보면 시인은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고 고백하는데 이것이 바로 다윗의 고백인 것입니다.
1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빛이라고 믿었습니다.
인디언의 우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가 어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별이 해를 데리고 아주 컴컴한 굴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굴에 해가 들어서자마자 어둠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역시 해에게 흑암을 보여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해가 있는 곳에 어둠은 전혀 없습니다. 해가 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어둠은 물러가고 빛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해 자체에는 어둠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 햇빛이 가려지는 곳에 어둠이 깃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빛이셨습니다. 아무리 어둠이 강력하게 밀려온다할지라도 빛 되신 주님이 다윗과 함께 계셨으매 다윗은 어둠에 묻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두려움, 사단이 주는 두려움, 환경의 두려움도 다윗을 누를 수 없었던 이유는 빛 되신 주님이 다윗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빛을 가리고 어둠 속에 들어가서 빛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빛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빛을 피한 것뿐입니다. 우리가 빛을 피하지 않고 빛 가운데 나아간다면 언제나 빛은 우리에게 비취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빛은 우리에게 언제나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빛을 피하지 않는다면 빛 되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향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역경 속에서도 빛 되신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빛은 쉬지 않고 다윗에게로 향하고 있었기에 다윗은 역경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구원이라고 믿었습니다. 다윗은 그 때까지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을 통과했습니다. 여러 번 위험에 처했고 또 여러 번 죽을 뻔했었습니다. 다윗의 능력으로는 그러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힘이 없었지만 번번이 하나님의 의뢰했고 하나님은 그 때마다 다윗을 도우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단지 지식으로만 안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풍부한 경험이 하나님의 실존을 증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담대하게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이시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의 구원자이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당에 보내셔서 죄인 된 우리를 위하여 대신 고난당하게 하셨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친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낳으신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자가 되십니다. 세상 부모도 자식을 낳기만 하고 버려두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사랑의 아버지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를 모든 환난 중에서 건져주시는 분입니다. 그 믿음을 갖고 역경 속에서도 당당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생명의 능력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능력"이라는 단어의 원어 적인 뜻은 피난처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의 피난처 되시기에 그 손에서 자신을 빼앗을 사람이 없다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 시대에는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을 내가 내어놓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해칠 수 없었습니다. 어느 선한 사람이 원수들에게 쫓기었습니다.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다가 어느 부자의 장막에 들어갔습니다. 장막에 들어가니까 주인이 습관에 따라 손과 발을 씻을 물을 내 놓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물이 아니라 기름이었습니다. 아주 귀한 손님에게나 붓는 기름을 자기 머리에 붓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씻고 나니까 밥상을 가지고 나옵니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거창하게 차린 밥상을 내 놓고 마음껏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 때 원수가 쫓아 들어와 잡을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그랬다가는 큰일 납니다. 당시의 법에 따르면 집에 들어온 손님을 주인이 내 쫓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 집에 들어가 그 사람을 끌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장막문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집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나오기는커녕 거기서 먹고 마시니 얼마나 약이 오르겠습니까!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말씀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잠언 18장 10절에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당시에 '견고한 망대'는 안전의 대명사입니다. 최신 무기가 발달된 지금이야 망대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칼과 창만 있던 그 당시에 망대는 사람을 지켜주는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혹시 극한 고난 중에 있습니까?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에 부딪혔습니까? 하나님의 바라보십시오. 구원자이신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고난이 극심하여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당신의 감각으로 느낄 수 없어도 당신의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당신의 손으로 만질 수 없어도 하나님은 당신 곁에 게시며 당신을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세계 2차 대전 중에 독일 나치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코리텐 붐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기차가 캄캄한 터널 속으로 들어가 어두워졌다고 해서 기차표를 찢어버리거나 기차에서 뛰어내리면 안 된다. 왜냐하면 조용히 앉아 기관사를 믿고 기다리면 잠시 후 밖으로 나가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힘들고 어렵고 세상이 온통 캄캄하게 보이고 소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도 신앙의 기차표를 찢어버리지 마십시오.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십시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면 고난 중에도 당당합니다(4-6절).
다윗이 하나님 앞에 구한 기도의 내용을 보면 과연 하나님이 축복 하실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에 보면 그가 극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구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간절히 원했던 소원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의 전을 사모하고 그 곳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길 때 그가 가장 소원했던 것은 더 이상 쫓기지 않고 평안하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의 전에 올라가서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된 후에도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나라만 다스렸던 왕이 아닙니다. 주변의 많은 나라를 통치했던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었고 그의 주변에는 잘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도 많았고 처첩들도 많았습니다. 그 정도 되면 주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도 식어질만한데 그는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법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는 너무나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제는 압살롬의 반역으로 잠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도 변함없이 그의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4-6절을 보면 주의 전을 사모하고 예배드리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다윗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복 주셨던 위대한 사람들은 한결 같이 주의 전을 사모하고 예배를 사모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그렇게 표현된 그들이 가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보셨던 것입니다.
저는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능력을 받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능력을 받고 싶은 사람들은 예배를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주일예배에 가서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예배드리며 은혜 받고 기도하다가 '예배는 국력이다'는 영감을 받고는 모든 군대에 주일예배를 시행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군목제도의 시작입니다. 예배가 국력입니다. 예배가 우리의 재산이요 삶의 활력입니다. 성전에서 예배하는 믿음은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한 사람의 신앙을 점검하는 잣대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과 예배 생활입니다. 아무리 믿음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예배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그 사람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14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바랄지어다’는 ‘기다린다’란 뜻인데 그냥 여유 있게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굶주린 거지가 부잣집 문턱에 앉아, 먹을 것을 좀 달라고 구걸하는 듯한 간절한 자세로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주의 전을 사모하십시오. 주님 앞에 나와서 참된 예배자로 서십시오. 그렇게 될 때 어떤 역경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을 것이고 역경 속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롬 8:28에 보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3. 부르짖어 기도하면 고난 중에도 당당합니다(7절).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기도하면 역사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역경 중에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역사를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유명한 영국수상 윈스톤 처칠경은 그의 [전쟁 회고록]에서 1940. 9. 15을 자기 조국인 영국이 당시의 나치 독일과의 공중전에서 특별한 승리를 거둔 [절정의 날]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당시 독일 공군기와 폭격기가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상황에서 영국 측으로서는 거의 방어수단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독일군 이 결정적인 승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독일 비행기들이 전혀 이유 없이 10분 동안에 걸쳐 전면적인 후퇴를 시작한 것입니다. 영국의 공군 전투 부대 사령관이었던 공군대장 다우딩경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 날을 회고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으로 의당 일어나야 할 사건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엄청난 사건이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노만 그럽이 쓴 [탁월한 중보기도의 사람 리즈 하월즈(Rees Howells)]에 보면 당시 웨일즈 성경대학의 학장이었던 리즈 하월즈의 영향으로 처칠수상은 두 번에 걸친 전국적인 기도의 날을 선포하여 온 교회 온 국민에게 기도를 호소했습니다. 리즈 하월즈 자신은 독일의 공습이 시작되자 학교강당에서 교직원 학생들과 함께 매일 아침1시간과 점심 후 그리고 저녁 7시부터 자정까지 기도에 힘썼고 공습이 절정에 달할 때 마다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증거합니다. 그는 독일공군이 이유 없는 후퇴를 하던 9.15 직전에 기도회를 인도하며 이런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잦은 공습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분들이 계십니까? 여러분 자신이 지옥에서 구원받은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공습에서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왜 믿지 못합니까? 그러나 우리가 만일 이때에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만 있다면 나치 속에서 역사하는 마귀의 체제는 오래지 않아 종말을 고할 것이며, 고귀한 생명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흐름을 바꾸시는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의 리즈 하월즈와 영국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가르쳐 "역사를 바꾸는 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문제를 만나도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문제보다 크신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느 1:5에서 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그가 포로의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했고 그 일에 자신이 쓰임 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당시 정황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루살렘성을 회복시켜주셨고 느헤미야의 기도대로 느헤미야를 사용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환난 날아 부르짖었고 환난에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시 50:l5에서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시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6절에 보면 “내 머리가 나를 두른 원수 위에 들리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어려워도 머리를 하나님을 향해서 들라 즉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억수 같은 장마 비와 홍수로 빠져 죽을 지라도 머리만 물 밖으로 나와 있으면 살아납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역경에 부딪힌다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살아남고 승리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역경 속에 있습니까? 저는 욥의 친구 엘리바스가 욥에게 했던 충고를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욥 5:8)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아뢰십시오. 그분에게 도움을 구하십시오. 역경 중에도 당당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큰 고난이 있어도 기도하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축복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점 중에 Holy day In 호텔이 있습니다. 이 호텔의 창업 배경이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케몬스 윌슨(K. Wilson)이라는 사람은 미국 사람으로, 원래 제재소 직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침에 출근해보니 자기의 책상 위에 해고 통지서가 있었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황당하게 해고된 그는,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직장과 자기 상관에 대한 복수심이 끓어올랐습니다. 그는 제재소 옆에 똑같은 제재소를 만들어 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자본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한 나머지 집을 떠났습니다. 여러 달 동안 방황하면서 모든 것을 잊으려 했지만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가진 돈을 모두 다 써버리고 다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자살하고 싶어. 모든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어.” 이때 아내는 남편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한 가지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 있어요. 당신은 당신이 처한 이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기도해 본적이 없잖아요.” 아내의 말 한마디는 그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맞아, 나는 기도해 본 적이 없지.’ 그 후 그는 아내와 더불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기도하는 동안 신기하게도 자기 마음에 있었던 직장과 상사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서 조그마한 건축업을 시작했는데, 건축업이 너무 잘되어 5년 만에 은행 빚을 다 갚으며 자기 발로 일어 설 수 있는 자기 기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새로운 소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제가 건축을 하면서 여러 곳을 여행하다 보니 맘에 드는 호텔이 없습니다. 좋은 호텔은 있지만 너무 비싸고 작은 호텔은 너무 분위기가 좋지 않더군요. 제가 호텔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하고 아주 깨끗하며 적절한 가격에 쉼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호텔을 짓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하나 둘 호텔을 짓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세계적인 체인이 되어 홀리데이인 호텔이 된 것입니다. 기도로 일군 사업자입니다. 그는 해고의 절망을 기도로 극복했고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풍성한 하나님의 역사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역경 중에 기도하는 사람은 그 기도의 행위로 자신이 알곡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채질을 하면 알곡은 안으로 들어오고 쭉정이는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환란의 바람이 불면 알곡은 하나님 앞으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고 쭉정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뢰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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