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수록 풍성해지는 원리 (왕상 17:8-16) > 설교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설교자료실 >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원리 (왕상 17:8-16)

본문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원리 (왕상 17:8-16)


<의학과 과학으로 풀 수 없는 인간의 난제들>
미국에서 최근 새로 개발된 속눈썹 이식 수실이 화젯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눈 한 개당 3천불, 한국 돈으로 약 3백만원 정도 드는 성형 수술인데,
머리 뒷부분에서 머리카락을 채취해서 눈꺼풀에다가 옮겨 심는 수술입니다.
속눈썹이 없는 분들에게는 희소식이 틀림없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식한 속눈썹이 머리카락이 자라나듯이 계속해서 자라나고 색깔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식한 속눈썹을 머리카락 자르듯이 자주 손을 봐줘야 하고
세어서 흰색으로 변할 경우 염색도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외 토픽 뉴스 중에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는 일어난 일입니다.
한 남자가 아주 힘들게, 원치 않는 이혼을 하게 되자
결혼 반지를 낀 무명지 손가락 하나를 잘라 버렸습니다.
물론 그 잘린 손가락에는 결혼 반지가 그대로 끼여 있는 상태였지요.
그런데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이 남자는 결혼 반지가 달린 손가락을
이혼한 아내에게 주면서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나머지 손가락들이
크게 안심은 했겠지만 엽기적인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요즈음 성형 수술이 발달되어서 여성들이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문제는 점점 더 많아지고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의학과 과학 기술이 발달한다고 할지라도 이혼 문제나 가정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생명 공학은 복제 인간을 만들 정도로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의미와 목적까지는 제시하지 못하는 까닭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증오심과 전쟁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의학과 과학만 가지고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은 의미가 있습니다.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삶의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학이나 과학이 해결할 수 없는,
모든 인생의 난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미 없이 살던 우리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심을 믿으십시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아무 목적도 없이 마구잡이로
살던 우리의 삶을 사명자로서 살도록 인도해주심을 믿으십시오!
밋밋한 물을 맛 나는 포도주로 바꾸신 우리 주님께서
재미도 없고 불행했던 우리의 인생을 재미있고 행복한 삶으로 바꾸어 주심을 믿으세요!

<사르밧 과부의 기적: 나누었더니 넘쳐나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이 넘쳐 납니다.
C. S. 루이스는 기적이 '초자연적 능력이 자연 세계를 간섭하는 것'으로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와 자연 속에 개입하셔서 일정한 법칙이 깨지는,
아주 특수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이지요.
가령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은 자연 법칙으로 볼 때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물리적으로야 같은 액체이지만 화학적으로는 물과 포도주는 성분이 전혀 다릅니다.
이렇게 기적은 이 역사와 자연 세계의 일반 법칙을
깨뜨리면서 나타나는 아주 기이한 현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기적 이야기들은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냥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중요합니다.
또 한 가지 성경에 기록된 기적 이야기는 반드시 영적인 교훈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믿음을 강조하시기 위한 교훈들이 많습니다.

오늘 봉독한 왕상 17장에는 세 가지의 기적이 소개되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전역에 기근과 기갈이 계속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그릿 시냇가로 보내셔서 아침저녁으로 까마귀들이 엘리야를 먹여 살린 기적이 나옵니다(1-7절).
그 다음에 오늘 살펴 볼 사르밧 과부 이야기가 나옵니다(8-16절).
세 번째로,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린 기적이 나옵니다(17-24절).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기적의 목적과 영적 교훈은 무엇일까요?
아합 왕과 이세벨 여왕이 다스리던 이스라엘 나라는 우상 숭배가 성행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찾아보기 어렵고
이세벨 여왕이 섬기던 바알 신 숭배가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가 창궐하자 하나님께서 하늘에 비를 닫으시는 벌을 주셨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 전역에 가뭄이 들어 식량과 식수난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흉년 한가운데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살리시고자 그릿 시냇가로 보내셔서
까마귀를 통해서 먹여 살리셨지만 얼마 있지 않아 그릿 시냇가까지 말랐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시돈에 있는 사르밧 과부를 찾아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시돈은 이세벨 여왕의 고향으로서 바알 숭배의 본산지였습니다(왕상 16: 31).
하나님은 참 신기하게도 바알 숭배가 가장 횡행하던 시돈 땅으로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속담이 꼭 이를 두고 한 말이지요.
이세벨의 고향이요 우상 숭배의 본거지인 시돈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직접 보이시기 위해 엘리야를 그 곳으로 밀어 넣었다는 말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으로 가서 막 성문 안으로 들어 설 때에 땔감을 줍는 한 과부를 만났습니다.
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물 한 그릇만 떠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10절).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가려고 할 때 엘리야가 또 부탁합니다.
"먹을 것도 조금 가져다 주시면 좋겠습니다"(11절).
기근으로 고생하던 때에 인간적으로 보면 참 염치없는 부탁이지요.
이 때 이 여인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12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그 옛날 중동 사람들의 손님 환대는 유별났습니다.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최고의 대접을 해야만 하는 풍속이 있었기에
이 여인 역시 엘리야를 잘 대접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접할 양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방 여인인 이 과부는 엘리야가 믿는 하나님까지 거론하며 맹세를 합니다.
맹세는 만일 거짓말을 할 경우 어떤 형벌도 달게 받는다는 각오를
내포하기 때문에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을 말한다는 표시이지요.

이 여인에게는 먹을 떡, 즉 빵이 없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이 전부입니다!
아직 빵을 만들기 전의 재료만 조금 남았는데, 이것마저도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여인은 아주 무뚝뚝하게 자기의 난처한 입장을 알립니다.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자기와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은 뒤,
그 후에는 먹을 것이 다 떨어져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불쌍한 모자에게는 딱 세 가지만 남았던 것입니다.
나뭇가지 주워서 최후의 만찬을 나눈 뒤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지요.

나뭇가지도 많이 주울 필요가 없습니다.
워낙 밀가루와 기름이 조금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겨우 몇 개만 주워와도 충분합니다.
아들과 자기가 먹을 양식만 아주 미량으로 남았다는, 극한 상황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절박한 형편에 놓여 있는 과부에게 엘리야가 하는 말이 놀랍습니다.
13-14절을 보세요.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여기 보세요.
엘리야 선지자는 그 과부에게 먼저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기적 이야기에 흔히 결부되는 말씀이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마지막으로 먹고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방금 말한 대로 음식을 만들되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음식을 만들어서 먼저 자기에게 가져오라는 조건입니다!
자기에게 먼저 가져온 후, 두 모자가 먹을 음식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엘리야의 이 말은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야박한 말인지 모릅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의 대명사인 과부가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과 단 둘이서 간신히 한끼 먹을 음식을 자기에게 먼저 가져오라니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엘리야를 욕할 것입니다!
"벼룩의 간을 빼 먹어라!"며 염치는 물론이고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자기한테 갖다 바치면 이제 가루와 기름은 다 동이 날 터인데
그런 다음에 과부 모자가 먹을 음식을 만들라니요!
없는 재료로 무슨 음식을 만들라는 말입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엘리야가 야비한 사람이라고 욕할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다음 말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한 말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따르면
만일 이 여인이 엘리야의 말대로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다시 비를 주셔서 기근이 끝날 때까지
그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지금 이 과부 모자가 고생하는 이유는 비가 오지 않아서 흉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만 오면 기근 문제는 간단히 해결됩니다.
만일 이 여인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지금 당장 모자 두 사람이 마지막 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최후의 음식을 엘리야에게 먼저 공궤하면 기근이 끝날 때까지
양식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이 여인은 아주 중요한 신앙 테스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냥 세상적인 생각대로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사람이 들려준 말씀에 순종하느냐,
기로에 서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여인은 곧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 이 여인이 엘리야의 말대로 했더니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15-16절을 보세요.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했더니
두 모자뿐만 아니라 엘리야까지 세 사람이 먹었지만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병의 기름도 마르지 않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이 기적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세벨의 고향, 바알 숭배의 본산지 시돈 땅도
주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 아닐까요?
더욱이 사르밧 여인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 여인으로서
정작 하나님께서 뽑아주신 선민,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참 믿음의 사람이 없는데
오히려 적의 심장부에 진짜 믿음의 사람이 살고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이 기적 이야기가 아무리 먹고살기 어려워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 사실과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가 아닌, 이방인 중에 참 믿음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자, 그렇다면 이 말씀의 영적 교훈이 무엇일까요?
이 기적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르침이 무엇일까요?
저는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진 것을 나눌 때 하나님께서 더욱 더 풍성하게 채워주신다는 원리를 가르칩니다.

사르밧 과부는 흉년을 만나 정말 어려웠습니다.
과부에게 있어서 외아들은 자기 생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기근이 되풀이 되다보니 식량이 동이 났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모자 두 사람이 먹고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최후의 밀가루와 기름만 남았습니다.
그런데다가 자기 동족도 아닌 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더욱 뻔뻔스럽게도 이 손님은 음식을 만들어 자기한테 먼저 받치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엘리야한테 실컷 욕을 퍼부은 다음에 집밖으로 내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지요.
먼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음식을 갖다 받치면 기근이 끝날 때까지
양식 걱정 않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부의 믿음입니다.
만일 이 여인이 믿음이 없었다면 엘리야를 심한 욕설과 더불어 문밖으로 내친 다음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두 모자가 먹고 그냥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이 여인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위대한 일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보통 사람이면 자기의 온 생명을 걸만큼
소중한 최후의 음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먼저 받쳤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받쳤더니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다 함께 살아나는가 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양식이 부족하여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할 때에도 양식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를 넘어 이웃을 향하는 계절>
우리는 지난 추수 감사주일에 참 기분 좋은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받친 각종 과일을 우리가 먹지 않고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우리 교회 앞 지하 상가와 자유공원에서 수고하는 전투경찰, 의경들,
그리고 만석동에 있는 보육원 원아들에게 나누고 베풀었습니다.
지하상가에 과일과 떡을 손수 나누어 드린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의 기분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상인들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추수 감사주일에도 이웃돕기 헌금을 해서
어려운 이웃과 나누려고 합니다.
작년에는 백혈병으로 고생하는 학생을 위해 온 교인들이 헌금해서 아주 좋은 열매를
거두었는데 금년에는 동기부여가 약해서 그런지 그리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물질이라고 할지라도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뿌듯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이번 추수 감사주일은 우리끼리만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절기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이웃을 생각하고 우리 가진 적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사르밧 과부의 기적 이야기가 가르쳐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진 것이 지극히 적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기꺼이 이웃과
나누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채워주신다는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기적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볼 때 사르밧 과부는 참 바보 같은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지금 당장 굶어죽는다고 할지라도 자기에게
남은 마지막 음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먼저 베풀었습니다.
나누고 베풀었더니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에도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내리교회도 사르밧 과부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그저 자기 필요만 채우기에 급급해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어려운 이웃, 힘든 교회들과 우리의 사랑과 봉사를 나눌 때
하나님께서 모자라고 없는 가운데에도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연말연시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나쁜 사람, 즉 '나 + 뿐'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가진 것이 비록 적고 보잘 것이 없다할지라도
나누고 베풀 때 더욱 풍성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앞으로 우리 내리교회는 사르밧 과부의 기적을 체험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고객센터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기독정보넷공식트위터 Copyright © cjob.co.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